"전 세계 평론가들은 북한 지도자 김정은을 과소평가한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28일자 최신호에서 아시아 문제를 다루는 '반얀'(Banyan) 칼럼을 통해 한 말이다. 이코노미스트는 과거 반얀 칼럼의 평가도 다를 게 없었다고 인정했다. 2011년 20대에 집권한 김정은을 '풋내기'(callow)로만 봤다는 것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겸 노동당 위원장이 27일 마침내 우리 땅을 밟았다. 북한 최고 지도자로는 사상 처음 군사 분계선을 넘었다.
10년 만에 열린 남북 정상회담에 파격적인 행보로 임한 김 위원장을 보는 외신들의 눈이 달라졌다. 김 위원장을 과소평가했다는 데 공감대가 모인다. 미국 정보당국이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김 위원장에 대한 정보가 없어 애를 먹고 있는 것도 그를 너무 쉽게 본 결과라고 꼬집을 정도다.
김 위원장이 집권했을 때 적잖은 이들이 북한의 변화를 기대했다. 스위스 유학파로 알려진 20대라면 뭔가 달라도 다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일각에서는 김 위원장이 유약하다는 평가도 나왔다. 고위 간부들의 꼭두각시로 전락하는 게 아니냐고 우려할 정도였다. 북한 붕괴 임박설도 곳곳에서 제기됐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아버지 김정일, 할아버지 김일성과 다를 바 없는 폭군의 철권통치 전형을 보여줬다. 고모부 장성택을 비롯한 고위 간부 숙청에 이어 이복형 김정남을 암살한 게 대표적이다. 전보다 훨씬 잦은 핵·미사일 실험으로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와 맞서 한반도를 전쟁 공포로 몰아넣기도 했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의 도발에 민감하게 반응한 게 오판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김 위원장을 과소평가한 탓에 그가 제 아버지나 할아버지보다 무기 개발에 더 우선순위를 둘 것이라는 사실을 예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CNN도 북한에서 교수를 지낸 한 탈북자의 말을 빌려 "전 세계가 김 위원장과 북한을 과소평가해왔다"고 지적했다. 2014년 북한을 탈출한 이 탈북자는 "김정일이 죽었을 때 북한이 곧 무너질 것으로 예상한 이들이 얼마나 많았느냐"며 "그러나 김씨 정권은 여전히 강하다"고 말했다.
이코노미스트는 김 위원장이 이전 세대와 처음부터 다른 점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경제를 되살리려는 의지가 강했다는 것이다. 그는 북한 주민들의 사무역(밀무역)을 이전만큼 통제하지 않고 일부 국영기업을 사실상 민영화하는 등 자본주의를 일부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였다.
김 위원장이 남북 정상회담에 앞서 핵실험·ICBM 시험발사 중단, 북부 핵실험장 폐쇄를 선언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경제 건설과 핵무력 건설 병진노선을 끝내고 경제 건설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이코노미스트는 김 위원장이 스스로 능숙한 젊은 독재자임을 증명하고 있는 셈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그가 지난해 말 3차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에 이어 핵무력 완수를 선언하고 추가 도발을 중단한 채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외교 댄스'를 주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문 대통령에 이어 곧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다.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는 공포로 마음을 채우고 식량으로 배를 채우는 게 김 위원장의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란코프 교수는 김 위원장을 똑똑하고 계산적이며, 가학적이지는 않지만 잔혹하고 능수능란한 독재자라고 평가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이번 댄스가 어떻게 끝날지 불투명하지만 생존이 걸린 김 위원장이 더 조심스럽게 스텝을 연습할 게 확실하다고 지적했다.
김신회 기자 raskol@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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