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의 청와대가 지난해 총선 직후 안랩을 돕기 위해 삼성그룹에 부당한 압력을 행사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는 최순실 씨의 국정농단 사태가 아직 수면위로 올라오기 전이며, 직전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참패하면서 정권 재창출에 대한 위기감이 생겨나기 시작할 때였다.
청와대 “왜 안랩은 안되는지 알려달라”
청와대의 안랩 지원은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그룹 차원의 보안 솔루션인 PMS(Patch Management System)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졌다.
국내외적으로 수십만대의 PC를 운영하는 삼성그룹은 2015년의 악성코드 공격에 대한 대책으로 2016년 초부터 PMS도입을 검토해왔다. PMS는 기업이 사용하는 각종 S/W의 보안 패치를 중앙에서 관리하는 시스템으로 보안 전문 회사들이 솔루션을 보유, 판매하고 있다.
애초 삼성이 유력하게 검토한 제품은 글로벌 보안회사인 S사의 제품이었다. S사의 제품은 보안 취약점이 자주 발견되어온 어도비시스템즈의 제품이나 자바 관련 S/W의 보안패치 제공을 빠르게 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었다. S사는 한국의 대표기업이라고 할 삼성전자 등에 솔루션을 남품할 경우 기업가치를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삼성과의 협상에 적극적이었다. 반면 국내의 대표적 보안회사인 안랩의 경우엔 일부 S/W회사들과 관련한 업무 협약을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
실무진에서 쉽게 결론에 이르렀던 S사 솔루션의 도입이 갑자기 중단된 것은 2016년 6월이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측에서 재검토 지시가 내려진 것이다. 그동안 전문성이 요구되는 특정 제품이나 솔루션의 도입을 놓고 ‘윗선’의 개입이 전혀 없었다는 점에서 의외로 받아들여졌다.
이재용 부회장실의 지시가 나온 배경에는 청와대의 압력이 있었다. 익명을 요구한 삼성전자의 한 관계자는 “청와대에서 직접 (이 부회장 측에) ‘왜 안랩은 안되는지 알려달라’는 요청이 있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부회장실의 재검토 지시를 받은 실무진들은 결국 국내에서 운용하는 PC에는 안랩의 제품을, 해외에서 사용하는 PC에는 S사 제품을 도입하기로 잠정 결론을 지었다. 국내외에서 사업장을 운영하는 글로벌 기업에서 동일한 기능을 위해 두 개의 솔루션을 도입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부회장실의 요구를 무시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그 직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이 안건은 최종 결재를 얻지 못했고, 현재까지 삼성그룹은 PMS를 도입하지 못했다. 2015년 이후 2년이 흐르도록 보안상의 허점을 그대로 안고오게 된 셈이다.
최순실 게이트에서 드러난 박근혜 정부 행태와 유사
삼성그룹의 PMS는 도입 예상비용이 수십억원 수준으로 그리 큰 액수는 아니다. 다만 한번 투자가 이루어지면 연간 단위의 계약 연장이 보장된다는 점에서 공급 업체로서는 무시할 규모는 아니다. 또 대표적인 글로벌 기업인 삼성전자 등에 납품한다는 이점도 무시할 수 없다.
특히 청와대가 나서서 민간기업에 특정 제품을 사용하도록 압력을 행사했다는 점에서 직권남용 및 강요로 볼 여지가 다분하다.
이번 국정농단 사태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비선실세' 최순실의 이권 챙겨주고자 개별 기업들을 상대로 압력을 행사한 사례들과 유사하다. 실제 박 전 대통령은 현대차가 KD코퍼레이션과 11억원 상당의 납품 계약 및 최순실이 운영하던 플레이그라운드에 71억원 상당의 광고를 발주하도록 하거나 KT로 하여금 플레이그라운드에 68억원 상당의 광고를 발주하도록 하는 등 개별기업에 압력을 넣은 8건과 관련해 직권남용과 강요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한편 삼성전자는 본지의 취재에 대해 “당사에서 어떤 제품을 공급받는지는 밝힐 수 없다”면서 “그 연장선상에서 청와대의 개입이 있었는지도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답했다. 당시 삼성그룹의 미래전략실에서 이 프로젝트를 담당했던 임원은 올해 미래전략실 해체 과정에서 회사를 떠나 연락이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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