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대통령 "위안부 합의, 내용-절차 모두 잘못" "대통령으로서 사과", 피해자 할머니들 "일본 사과 받게 해달라"

문재인 대통령은 4일 박근혜 정권이 체결한 한일 위안부 합의와 관련, "진실과 정의의 원칙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정부가 할머니들의 의견을 듣지 않고 일방적으로 추진한 내용과 절차가 모두 잘못된 것"이라고 질타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9명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함께 하는 자리에서 "대통령으로서 지난 합의가 양국 간의 공식합의였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으나, 그 합의로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천명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과거 나라를 잃었을 때 국민을 지켜드리지 못했고, 할머니들께서도 모진 고통을 당하셨는데 해방으로 나라를 찾았으면 할머니들의 아픔을 보듬어 드리고, 한도 풀어드렸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며 "오히려 할머니들의 의견도 듣지 않고, 할머니들의 뜻에 어긋나는 합의를 한 것에 대해 죄송하고, 대통령으로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문 대통령은 "오늘 할머니들께서 편하게 여러 말씀을 주시면 정부 방침을 결정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하겠다"며 조언을 당부했다.

이에 이용수 할머니는 "내 나이 90에 청와대 근처에도 못 와봤는데 문 대통령께서 당선되고 벌써 두 번이나 청와대에 들어왔다"며 "2015년 12월 28일 합의 이후 매일 체한 것처럼 답답하고, 한스러웠다. 그런데 대통령께서 이 합의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조목조목 밝혀주어 가슴이 후련하고 고마워서 그날 펑펑 울었다"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이 할머니는 그러면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공식사과, 법적 배상을 26년이나 외쳐왔고 꼭 싸워서 해결하고 싶다. 대통령께서 여러 가지로 애쓰시는 데 부담 드리는 것 같지만 이 문제는 해결해 주셔야 한다"며 "(일본이) 소녀상을 철거하라고 하는데, 소녀상이 무서우면 사죄를 하면 된다. 국민이 피해자 가족이다.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면 세계평화가 이루어진다"고 강조했다.

이옥선 할머니도 “해방이후 73년을 기다리고 있는데 아직도 사죄를 하지 않는다"며 "어린 아이를 끌어다 총질, 칼질, 매질하고 죽게까지 해놓고 지금 와서 하지 않았다 게 말이 되나"라며 일본정부를 질타한 뒤, “우리의 소원은 사죄를 받는 것이다. 사죄를 못 받을까봐 매일 매일이 걱정이다. 대통령께서 사죄를 받도록 해달라"고 당부했다.

길원옥 할머니는 인사말 대신 가요 '한 많은 대동강'을 불렀고, 작년에 발매한 음반 ‘길원옥의 평화’를 문 대통령에게 선물했다. 길 할머니는 평양 태생으로 13세 때 끌려가 돌아가지 못한 실향민이다.

문 대통령은 앞서 김정숙 여사와 함께 현관 입구에 서서 입장하시는 할머니들을 일일이 반갑게 맞이했고, 개별 이동으로 늦게 도착하신 한 할머니를 15분 간 현관에서 선 채로 기다렸다가 함께 입장했다. 김 여사는 오찬이 끝난 후 할머니들에게 일일이 목도리를 매주기도 했다.

청와대는 이날 '나눔의 집'에서 출발한 할머니들을 비서실에서 제공한 의전 차량을 이용해 경찰의 에스코트 아래 국빈 이동시와 같은 최고의 예우로 모셔왔다. 경호처는 교통편의뿐만 아니라 건강상 불편사항에 대비해 엠블런스를 차량 이동시 배차했고, 오찬행사 후 나눔의 집 복귀시에도 같은 방법으로 모셔다 드렸다.

오찬에는 윤미향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공동대표, 지은희 정의기억재단 이사장, 안신권 나눔의 집 소장, 강경화 외교부장관, 정현백 여성가족부장관, 남인순 국회여성가족위원장 등이 배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