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ㆍ박성민의 2018 정치 기상도
미국 정치 전문가인 안병진 교수는 2016년 <미국의 주인이 바뀐다>라는 도발적 제목의 책에서 뛰어난 통찰을 보여 주었다. 이 책에는 ‘건국 이후 첫 주류 교체와 미국 문명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데 (미국을 한국으로 바꾼다면) 이 제목, 이 부제에 딱 어울리는 나라가 한국이다.
한국의 주인이 바뀌고 있다.
건국 이후든, 해방 이후든 주류 교체는 (정권교체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혁명적 사건이다. ‘이 나라는 내 나라’라는 인식이 강한 보수로서는 상상할 수도, 인정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항상 주류였던 한국의 보수는 좋게 말하면 ‘주인 의식’이 강하고, 나쁘게 말하면 ‘소유욕’이 너무 강하다. 회사, 학교, 신문사, 교회도 ‘내 거니까 내 맘대로 한다’는 식이다. 그런 인식의 연장에서 ‘국가’도 내 거다. 아무리 보수(우파)는 ‘재산권’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진보(좌파)는 ‘인권’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지만 한국의 보수는 지나치게 소유에 집착한다. ‘이익은 사유화하고 손실은 사회화한다’는 보수의 민낯은 (국민이 위임한) 공적 권력을 사적 이익을 위해 사유화한 국정농단 사건에서 숨김없이 드러났다.
반면 진보는 좋게 말하면 ‘비판 정신’이 강하고, 솔직하게 말하면 ‘비주류 의식’이 너무 강하다.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당시 야당 후보였던 한나라당 이회창은 마치 챔피언처럼 행동한 반면 여당 후보였던 노무현은 도전자처럼 싸웠다.
한나라당이 민주당보다 의원 수도 많았고 이회창이 노무현보다 나이가 더 많은 탓도 있었겠지만, 이회창의 보수적 이미지와 노무현의 개혁적 이미지는 그들 속에 잠재된 주류 의식과 비주류 의식의 반영이었을 것이다. 노무현은 대통령이 되어서도 비주류 의식에 사로잡혀 있었고, 그건 과반 의석을 넘긴 열린우리당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잠재의식을 넘어서는 것은 그토록 어려운 것이다.
그런 보수의 나라에서 지금 주류가 바뀌고 있는 것이다. 영원한 제국 같았던 보수의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 붕괴의 조짐을 눈치챈 사람들은 있었을 테지만 이렇게 빠른 속도로, 이렇게 무기력하게 몰락할지는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를 보면 빈틈없이 강고해 보였던 지배권력은 대개 그런 식으로 한순간에 와해적 최후를 맞았다. 히말라야가 무너지면 에베레스트의 아우라도 사라진다. 보수의 페르소나 박근혜가 몰락하자 보수의 아우라도 사라졌다.
지난 60년간 보수우위 시대를 지탱해온 보수의 히말라야인 일곱 개 기반이 모두 흔들리고 있다. 지식인, 보수 언론, 문화, 재벌, 권력기관, 기독교, 보수 정당의 물적 토대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2000년대 이후 담론 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보수 지식인은 찾아보기 힘들다. 젊은이들에게 영향력이 있는 문화계 인사들은 블랙리스트에 오른 사실을 자랑스러워하며 광장에서 보수 권력을 조롱한다. 숫자가 너무 많아 (보수 정권은) 리스트를 만들고 관리하기도 버거웠다. 존경받는 (보수) 언론인, 종교인, 기업인도 보이지 않는다. 젊은이들에게 보수에 대한 이미지를 물어보면 “존경할 인물이 없다” “부패했다” “촌스럽다”는 것이었는데 최근에는 “능력도 없다”가 추가됐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은 보수 몰락의 결과지 원인이 아니다. 지난 60년간 한국 사회를 지배해(혹은 이끌어) 온 보수의 두 축, 즉 세상을 ‘북한’과 ‘돈’이라는 프리즘으로만 보는 ‘안보 보수’와 ‘시장 보수’는 1987년과 2017년 광장에서 탄핵당했다.
보수의 시대를 다시 볼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이다. 한때 세계 휴대전화 시장을 지배했던 노키아와 모토로라가 스마트폰 시대의 새로운 강자인 애플과 삼성으로부터 패권의 지위를 다시 찾아올 가능성과 비슷할 것이다. 그들은 시대의 변화를 읽지 못하고 혁신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순간에 몰락했다.
이제 와서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이 ‘신보수’와 ‘개혁보수’를 내세우지만 말장난에 불과한 느낌이다. “별의별 것을 다 갖다 붙여 놓아도 보수는 바꾸지 말자는 것”이라던 노무현의 비판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자유주의자인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자유헌정론 2>의 후기인 ‘나는 왜 보수주의자가 아닌가’에서 “보수주의적 태도의 근본적인 특징들 중 하나는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다. … 보수주의는 다른 방향을 제시할 수 없기 때문에 … 결국 속도에만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비판했는데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1987년 이래로 보수가 서서히 몰락한 이유는 ‘선거’ 때문이다. 선거는 보수의 가장 약한 고리다. 다른 영역의 수구·보수 카르텔이 강고했던 것에 비하면 비교적 평평했던 선거는 치를 때마다 보수의 성을 조금씩 무너뜨려왔다. 오는 6·13 지방선거에서는 아마도 자유한국당으로 대표되는 보수, 즉 ‘북한에는 강경하고 시장에는 관대한’ 전통적 보수 세력의 몰락을 볼 수도 있다. 1980년대는 김영삼·김대중의 자유주의 세력과 진보 세력이 손을 잡고 집권 보수 세력에 맞섰다. 1990년대는 김영삼·김대중의 자유주의 세력에 보수 세력이 투항한 시대였다. 자유와 개혁의 시대였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이회창·이명박·박근혜를 거치면서 보수 정당 주도권이 자유주의 세력에서 보수 세력으로 넘어가면서 보수는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90년 3당 합당 이후 보수 정당 안에서는 자유주의 세력과 보수 세력이 ‘개혁’과 ‘보수’로 충돌하면서 만들어낸 다양성이 당을 강하게 만들었고 승리를 가져다주었다. 정체성이냐 외연 확대냐, 집토끼냐 산토끼냐의 치열한 논쟁은 당의 건강성을 보여주는 바로미터다. 그러나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거치면서 다른 목소리를 허용하지 않고 한목소리로 충성을 보이라고 몰아붙이더니 급기야 국정교과서라는 자폐적 광기의 정점으로 치닫고 말았다. 그때 보수는 끝났다. 민주당도 경계해야 할 지점이다. 다른 목소리를 막는 순간 정당은 죽는다.
한국의 유권자 지형을 거칠게 분류하면 30% 대 20% 대 30% 대 20%다. 맨 앞의 30%는 2007년 정동영과 권영길의 지지율 합이다. 마지막 20%는 이른바 ‘태극기’다. 결국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과 구속은 앞의 세 세력이 손을 잡은 결과 80%의 압도적 지지 속에 이루어진 것이다.
2012년 대선의 50% 대 50% 구도에서 세 번째 그룹이 이탈해 박근혜를 찍은 것이다. 이들을 중도 보수, 합리적 보수, 중도 우파, 자유주의 우파 등 뭐라 부르든 현재 한국 정치 지형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집단이다. 적어도 다음 대선까지는 이들의 선택이 정치 지형을 좌우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여전히 70%라는 현실에는 ‘홧김에 서방질’하는 중도 보수의 풀리지 않은 분노가 숨어 있다. 앞의 50%는 문재인 당선으로 화가 풀렸지만 오히려 세 번째 그룹은 박근혜를 찍었었다는 부끄러움과 자괴감, 그리고 ‘쪽팔림’이 뒤엉켜 좀처럼 화가 풀리지 않는다.
자유한국당은 이들이 돌아올 것으로 믿는 모양이지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들 중에는 이미 2014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박원순을 찍은 사람도 꽤 된다.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을 찍은 사람 중 정몽준을 찍은 사람은 거의 없지만 박근혜를 찍은 사람 중엔 박원순을 찍은 사람이 꽤 있다. 박원순이 13%가 넘는 큰 차로 승리한 것은 그 때문이다. 그때보다 훨씬 명분, 인물, 매력을 잃은 자유한국당을 찍을 것이라 볼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의 배경에는 비견될 만한 지도자가 없다는 점도 영향이 있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과 비교한다면 2003년에는 다섯 명의 전직 대통령이 생존해 있었다. 그중엔 상왕 이미지가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도 있었다. 야당에는 박근혜, 이명박이 강하게 버티고 있었다. 당은 소수당이었다. 반면 문재인 대통령은 네 명의 대통령이 생존해 있지만 아무 영향력이 없고, 민주당의 정신적 지도자였던 김대중·노무현·김근태 세 분은 돌아가셨다. 여야를 막론하고 강력한 차기 주자도 없다. 1993년 김영삼 전 대통령과 비슷한 위상이다.
보수 세력이 분열하기 전에도 선거 지형은 점점 악화되고 있었다. 2010년 이후 모든 선거에서 20~40대 유권자층에서 보수는 한 번도 이겨 본 적이 없다. 2017년 대선 때는 50대마저 잃었다. 이미 자유한국당은 전의를 상실하고 한강 전선을 포기했다. 홍준표 대표가 대구의 당협위원장을 맡겠다고 선언한 순간 수도권 승부는 끝난 것이다. 2016년 총선에서는 호남을 국민의당에 완전히 잃은 민주당에 1석을 내주었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직후에 치러진 총선에서도 뚫리지 않았던 보수의 아성 강남과 대구도 뚫렸고, 부산·경남은 누구의 텃밭인지 구분하기도 어렵다. 정치적 의사결정의 핵심으로 떠오른 30~40대 여성에게 자유한국당은 혐오스러운 ‘마초 정당’으로 보일 뿐이다.
무엇보다 자유한국당의 위기는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통합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데 있다. 두 당의 통합이 무산된다면 자유한국당이 민주당의 대척점 지위를 유지할 수 있지만 통합이 된다면 신당의 정체성을 둘러싼 논쟁은 있겠지만 ‘보수의 대안 정당’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커 보인다. 아직 ‘화가 풀리지 않은’ 세 번째 30%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지도부를 구성할 수 있다면 일거에 당 지지율이 2등으로 올라설 가능성이 높다. 앨버트 허쉬먼이 <이탈, 항의, 충성(Exit, Voice, and Loyalty)>에서 통찰한 대로 자유한국당과 민주당에서 이탈할 정당이 생기는 것이다.
천신만고 끝에 통합에 성공하더라도 안철수와 유승민 두 사람의 정치 행로는 험난할 것이다. 안철수를 정치로 불러낸 세 그룹인 2030·중도·호남은 이유가 다 달랐다. 2030 젊은층은 기성 정치가 싫어서 안철수를 불러냈고, 중도는 가장 유력한 대선주자인 박근혜가 싫어서 불러냈고, 호남은 박근혜의 유일한 대항마인 문재인이 싫어서 불러냈다. 안철수가 ‘새정치’를 하려고 했다면 2030을 중심으로 중도의 지지를 받는 정치를 했어야 한다.
그랬다면 호남의 지지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바둑에서 수순이 중요하듯이 정치에서도 수순이 중요한데 안철수는 호남을 기반으로 국민의당을 창당한 순간 2030의 지지를 거의 잃었고 중도에서도 상당한 지지를 잃었다. 뒤늦게 수순을 바로잡아보려고 하지만 열 배는 어려운 길을 자초한 셈이다.
정치가·군인·기업가는 결과를 만들어내야 하기 때문에 ‘하나만 같아도 동지’로 보는 유연함이 있어야 한다. 반면 ‘하나만 달라도 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정치에는 맞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은 학자, 종교인, 법조인, 언론인, 시민운동을 하는 것이 낫다. 정치가와 군인은 전쟁에 이기기 위해서 공산주의 소련과 ‘연합’도 할 수 있어야 한다. 삼성이 스마트폰 시장에서 강자가 된 것도 구글의 안드로이드 ‘동맹’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김영삼과 김대중이 대통령이 된 것도 ‘3당 합당’과 ‘DJP 연합’을 했기 때문이다. 노무현도 정몽준과 후보 단일화를 했기 때문에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이회창이 ‘하나만 달라도 적’으로 보는 대쪽 같은 원칙 대신 ‘하나만 같아도 동지’로 보는 양김 정치의 절반만 배웠어도 대통령이 되었을 것이다.
정치는 합리적인 사람보다는 합목적적인 사람이 해야 한다. 정치적 반대자들과 싸우는 건 작은 용기만 있어도 되지만 지지자들에게 욕먹는 결단은 큰 용기가 없으면 할 수 없다. 정치가 어려운 이유다. 우디 앨런이 영화 <지골로 인 뉴욕>에서 장사가 안되는 중고서점을 폐업하면서 “요즘은 이런 귀한 책 찾는 놈들이 더 귀해”라고 한탄했지만 요즘은 지지자들에게 욕먹을 준비가 되어 있는 정치가를 볼 수 없다. 옛날에는 위대하면 유명해졌지만 지금은 유명하면 위대해진다고 믿는 시대다. 예능의 시대, 가벼움의 시대다. 지도자도 없고, 위대함도 없다.
정치는 단순하다. 지지기반을 넓히면 살고 좁히면 죽는다. 지난 30년간 연합을 한 정치세력은 승리했고 분열한 세력은 패배했다. 예외가 없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보수가 정치적 상수에서 변수로 전락했다는 사실이다. 지난 30년간 유지돼온 민자당 대 반민자당, 한나라당 대 반한나라당, 새누리당 대 반새누리당의 보수 우위 시대가 막을 내리고 민주당 대 반민주당의 시대가 열렸다. 한국의 주류가 바뀌고 있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통합에 성공한다면 6·13 지방선거는 통합신당과 자유한국당의 반민주당 연대, 민주당과 통합신당의 반자유한국당 연대, 그리고 연대 없는 3당 경쟁의 세 가지 시나리오가 있다. 분명한 것은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는 ‘담대한 연대’를 결단하는 지도자가 승리자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박성민
1991년 설립한 정치컨설팅그룹 ‘민’의 대표이자, 한국의 대표적인 정치컨설턴트다. 30년 이상 선거를 치르면서 익힌 감각과 예리하고 독창적인 시각을 평가받고 있다. 정치게임에서 승리하는 법칙을 담은 <강한 것이 옳은 것을 이긴다> <정치의 몰락> 등을 썼다.
<박성민 | 정치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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