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생 투신한 다음에야 열린 '학폭위'
피해 학생 측, 학교 측 사건 은폐ㆍ축소 의혹 제기…'성추행 피해' 경찰 조사 앞 둬
[아시아경제 김민진 기자, 이민우 기자] "어른들은 어린이들을 무시하고, 자신이외에는 생각하지 않는 입으로만 선한 악마입니다"(학교 폭력에 시달리다 서울 성동구의 한 아파트 8층에서 투신한 초등학생의 유서의 한 구절).
초등학교 6학년 남자 아이는 같은 반 학생들로부터 지속적인 성추행과 폭력, 괴롭힘에 시달렸다. 아이 엄마는 절규했지만 학교는 외면했다.
아이는 절망했다.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가 열리면 자신을 괴롭히는 '나쁜 아이들'에게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낱같은 희망이 깨지자 아이는 A4 용지 반쪽 분량의 유서를 품에 안고, 참혹하고 가슴 아픈 결정을 내렸다.
지난달 16일 서울 성동구의 한 아파트 8층 자신의 방 창문에서 초등생이 투신한 사건이 최근 뒤늦게 알려지면서 파장이 일고 있다. 20미터가 넘는 높이에서 뛰어 내린 아이는 기적같이 목숨을 건졌다. 아이는 빠르게 회복하고 있지만 시신경 손상으로 장애가 남을 수 있는 상황. 뇌손상이 의심돼 정밀검사도 필요하다.
피해 학생의 마음에는 몸에 난 것보다 더 큰 상처가 남았다. 결국 지난 11일에서야 학폭위가 열렸다. 아이가 투신한 후 23일 만의 일이다.
아시아경제와 연락이 닿은 피해 학생 A군의 어머니는 "변호사를 선임해 법적 조치를 취하는 중"이라며 "입장 정리에 시간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학교 측의 대응을 두고 축소ㆍ은폐 의혹도 제기됐다. 하지만 A군이 재학 중인 초등학교 관계자는 "학교에서는 사건을 축소 은폐하지 않았고, 정해진 법적 절차에 따라 사안을 처리했다"며 피해 학부모의 주장을 반박했다.
학교 관계자는 "피해 학생 학부모가 투신 사고가 일어나기전에 학교나 담임선생님에게 적극적으로 피해 학생이 괴롭힘을 당한 사실을 얘기하거나 학폭위를 열어 달라는 요구를 하지 않았다"며 "담임선생님이 괴롭힘 사실을 인지하고 (학생이 투신하기까지) 조치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고 말했다.
학교 홈페이지에는 학교장 명의의 글을 올려 "사고 발생에 대해 인지한 즉시 교육청에 서면 보고했고, 경찰과 공조했다"고 밝혔다. 취재가 시작된 이후 학교 측은 이 글을 다시 홈페이지에서 내렸다.
피해 학부모 측 주장과는 차이가 크다. A군 측 법률 대리인인 이길우 법무법인 태신 대표변호사는 "학교 측 입장은 피해 학생과 부모에게 두 번 상처를 주는 것이고 분개할 일"이라며 "피해 학생은 가해 학생 중 B군에게 초등학교 1학년때부터 지속적으로 괴롭힘을 당했고, 6학년때 다시 같은 반이 돼 학기 초부터 시달렸다"고 말했다.
피해 학생 어머니가 가해 학생인 B군 어머니와 담임에게 여러 차례 "걱정된다"는 의사를 전달했기 때문에 문제의 소지가 있었다는 사실을 학교에서도 알고 있었다는 주장이다.
피해 학생 측은 가해 학생이 학폭위에 낸 최초 진술서에는 지난 1년 간 저지른 학교폭력 내용도 담기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피해 학생의 학부모가 이를 전해 듣고 항의하자 가해 내용을 전부 담은 2차 진술서를 제출했지만 학폭위 결정에는 성추행과 관련된 가해 내용이 누락됐다는 것이다.
이 변호사는 "가해 학생들은 두 번째 진술서를 제출할 때에서야 성추행 혐의를 인정했지만 학폭위는 이를 단순 '실수'로 봤다"며 "학교 측이 책임 소지를 없애기 위해 사건을 은폐ㆍ축소했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성추행 피해 문제와 관련해 피해 학생 측은 경찰에 진정을 넣었고, 21일 조사를 앞두고 있다.
이에 대해 성동광진교육지원청 관계자는 "일반적인 학교폭력으로는 퇴학 처분을 내릴 수 없는 초등학생에게 강제전학 처분을 결정하는 경우는 드물다"라며 "학폭위는 성추행 등 모든 사항을 고려해 최고 강제전학이라는 처분을 내린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와 별개로 조사 대상이 초등학생인 점, 조사 인력이 전문적이지 않다는 점 등을 이유로 학교 측 조사의 한계가 지적되고 있다. 교육계 관계자는 "학교폭력의 경우 목격 학생들의 진술 증거 외에는 객관적인 증거를 확보하기 힘들다"라며 "학교폭력전담기구 자체도 통상 생활지도부장을 포함한 2~3명의 교사로 구성돼 전문 수사기관의 조사 능력과는 차이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A군은 지난달 19일 같은 반 학생들에게 괴롭힘을 당해 힘들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아파트 창문에서 투신했다. 가해 학생들은 A군을 학기 초부터 학교와 수학여행 등에서 수 차례 가격하고 폭력과 모욕적인 언행을 하는 한편 성기를 보여달라고 하는 등의 성추행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학교 측은 뒤늦게 가해 학생들을 강제 전학시키거나 출석정지 10일 등의 징계를 내렸지만 방학을 앞둔 데다 졸업을 앞둔 6학년인만큼 처벌의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특히, A군과 가해 학생들이 같은 중학교에 진학할 수도 있는 만큼 A군 측의 불안감은 크다.
김민진 기자 enter@asiae.co.kr
이민우 기자 letzwin@asiae.co.kr
이민우 기자 letzw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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