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박주연 기자 =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 대표가 사실상 '고립무원'(孤立無援) 신세로 전락하고 있다. 문재인 전 대표가 합의 추대를 거부하자 친노계 일각에서는 대놓고 김 대표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나오는가 하면 이젠 비주류까지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 특히 김 대표가 기대를 걸었던 '당 대표 합의추대'에 대해 당 안팎의 여론이 부정적으로 흐르면서 이같은 흐름이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사안이 촉발된 것은 지난 22일 김종인 대표와 문재인 전 대표의 만찬 회동 이후다. 두 사람은 이날 서울 모처에서 회동을 갖고 대표 추대론 등 현안에 대한 대화를 나눴지만 이후 공개된 문 전 대표와 김 대표의 발언이 엇갈리면서 양측은 더욱 감정적으로 충돌했다.
문 전 대표는 회동이 끝난 후인 23일 한 언론과 만나 김 대표에 대한 합의추대가 어렵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밝힌 뒤, 특히 김 대표가 당 대표를 맡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전당대회에도 불출마하는 것이 낫다고 전했다.
그러자 김 대표는 이에 발끈했다. 김 대표는 25일 광주시의회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문 전 대표와 단 둘이 만나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불편한 심기를 그대로 드러냈다. 김 대표는 "사후에 말을 만들어서 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맞지 않다"면서 "일부 사람들이 말을 자꾸 이상한 형태로 만들어내는데 정상적인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도 했다.
김 대표가 이같이 역정을 내며 반발했지만 당내에선 흔쾌히 편을 들어주는 이가 없는 것 같다. 오히려 당내 일각에서 "비례 2번이면 사실상 보상을 받은 것 아니냐"는 목소리까지 나올 정도다.
김 대표는 지난번 비례대표 파동 당시에는 당 대표직을 내려놓겠다며 '벼랑 끝 살라미 전술'을 통해 위기를 정면돌파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김종인 대표에 대한 공격의 선두에는 주류인 정청래 의원이 서있다. 그는 김 대표의 '정무적 판단'으로 공천에서 배제됐지만, '더컸유세단'을 이끌며 전국 유세를 벌여왔다. 정치권에서는 주류 친노가 김 대표에 대한 '계산'을 시작한 것 아니냐는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정 의원 외에도 범친노로 정세균계를 이끄는 정세균 의원, 역시 범친노인 임채정 전 국회의장, 친노인 설훈 의원 등 대부분의 친노가 김 대표 추대론에 부정적이다.
정 의원은 실제 지난달 26일 전남 영광 이개호 의원 선거사무소 개소식에서 "개인 김종인에게는 서운해도, 대표 김종인에게는 비판을 자제해달라. 계산은 총선 끝나고 해도 늦지 않다"고 말한 바 있다. 총선이 끝난 직후에는 자신의 말을 실천이라도 하듯 총선 후에는 '김종인 저격수'로 나섰다. 그는 자신의 사회관계망(SNS)에 "비리혐의로 돈 먹고 감옥간 사람은 과거사라도 당 대표 자격기준에서 원천배제해야 한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정 의원은 25일 뉴시스와 만나 "이제 제가 할 일은 다 했다고 보고 조용히 지켜보고 있다"며 "당헌당규에 맞게 해야 한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없다"고 밝혔다.
그는 호남 완패는 김종인 대표의 책임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비례대표 파동이 선거 막판에 결정적인 치명타를 날렸다"며 그런 것이 없었으면 호남에서의 참혹한 패배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김종인 대표가 비례파동 당시 김대중 대통령을 언급하며 '비례대표 공천장사를 했다'는 식으로 표현했고, 인신공격을 했다"며 "호남사람들이 굉장히 화난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여기에다 당내 소수파인 비주류 역시 김 대표의 상황을 외면하고 있다는 점이다. 김 대표와 당내에서 가장 가깝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박영선 비대위원은 물론 김부겸 당선인 등 비주류의 영향력있는 인사들이 대부분 미온적인 반응이다.
이에 더해 비주류인 3선의 이상민 의원은 25일 한 라디오방송에 출연, 김 대표가 문 전 대표에 대해 "다시는 만나지 않을 것"이라며 불편한 심기를 내비친 것에 대해 "적절하지 않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대표의 입지가 더 불안해 보이는 대목이다.
이 의원은 "김 대표가 화가 많이 났지만 이런 말을 밖에 하는 것은 당의 취약한 구조나 상황을 볼 때 적절치 않다"며 "조금 삭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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