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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 April 25, 2016

구조 조정? '박근혜 사기극'은 한 번이면 족하다 [장석준 칼럼] 총선 메시지, '사회 국가' 건설

총선이 벌써 2주 전 일이다. 그 동안 언론은 뜻밖의 총선 결과를 놓고 여러 분석들을 쏟아냈다. 하지만 정치권이 과연 이번 총선이 던지는 메시지를 제대로 읽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정부가 내놓은 구조 조정 의제에 맞설 만한 주장을 좀처럼 들을 수 없다는 사실이 이런 의문을 더욱 키운다.

이번 총선의 메시지를 정확히 읽어내려면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 4년 전 대통령 선거를 되돌아보는 일이다. 대통령 중심제 국가에서 국회의원 선거는 대통령에 대한 중간 평가 성격을 띠기 때문이다. 국회의원 선거 결과는 지난 번 대통령 선거의 선택에 대한 아래로부터의 재평가다. 따라서 총선 결과의 진지한 독해를 위해 우리는 2012년 대선부터 다시 곱씹어야 한다.

2012년 대선이 품었던 역사적 가능성 : 사회 국가의 열망 


이제까지 세계사의 경험을 보면, 어떤 자본주의 사회든 민주주의 틀을 일정하게 갖추고 나면 사회 개혁이 다음 과제로 떠오른다. 참정권을 획득하게 된 대중은 이 권리를 행사한 결과로서 삶의 질을 보장받길 바란다. 역사상 고용 보장과 공공 복지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재정 확대를 통해 이런 목표를 얼마간 달성한 국가를 '사회 국가' 혹은 '복지 국가'라 부른다.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가 나아갈 방향도 마땅히 이것이었다.

1990년대 중반까지는 한국 사회 역시 마치 진화론의 도식마냥 이 길을 밟아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1996년 겨울의 노동법 개악 반대 총파업은 이를 밀어붙일 사회 세력이 커가고 있다는 증거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곧 천진한 낙관주의로 밝혀졌다. 1997년 외환 위기를 계기로 한국 사회의 시간은 세계의 시간에 폭력적으로 병합됐다. 이 땅에서 오랜만에 사회 개혁 요구가 움트던 그 시점에 바깥세상에서는 사회 국가가 지구 자본주의 변동에 휩쓸려 위기와 후퇴를 거듭하는 중이었다. 이른바 '신자유주의 지구화'의 물결이었다. 이 물결 속에서 민주화 다음의 과제를 향해 막 나아가려던 한국 사회는 사회 국가가 답이 아니라는 새로운 교리와 맞닥뜨려야 했다. 

기묘한 엇갈림이었다. 다만 우리만의 엇갈림은 아니었다. 1980년대에서 1990년대에 걸쳐 마치 도미노처럼 민주화를 겪은 나라들이 모두 이런 상황에 처했다. 한국을 비롯해 라틴아메리카 여러 나라들, 남아프리카공화국이 다 엇비슷했다. 지난한 투쟁 끝에 민주주의 제도는 갖추었지만, 사회 개혁으로 나아가는 길은 차단됐다. 대신 자본주의 중심부에서 사회 국가들이 이완되면서 등장한 질서를 민주화=자유화라는 명분 아래 강요받았다.

한국의 '민주' 정부들은 이런 지구 질서에 철저히 순응했다. 김대중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 구조 조정 패키지의 집행을 책임졌다. 노무현 정부는 고용과 복지 대신 자산 시장 부양과 주택 담보 대출로 가계 소득을 지탱하던 2000년대 중반의 전 세계적 흐름을 뒤따랐다. 그 연장선에서, 민주화 이후 처음으로 전임 정권보다 보수적인 정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섰다. 이명박 정부는 노무현 정부 시기에 한국 중산층이 선택한 길, 즉 부동산 가격 상승에 편승하는 길의 보다 노골적인 추진자로서 선택받았다.

지난 역사를 이렇게 장황하게 되짚은 것은 2012년 대선이 품고 있던 중대한 역사적 가능성을 환기하기 위해서다. 18대 대선의 주된 쟁점은 무엇이었던가? 복지와 경제 민주화였다. 여야 후보들 모두 저마다 복지와 경제 민주화의 적임자임을 내세우며 경쟁했다.

복지는 두 해 전 지방 선거부터, 그리고 뜻하지 않은 서울시장 보궐 선거를 거치며 최대 정치 쟁점으로 부상했다. 박근혜 후보 진영은 이에 대응해 복지 담론을 일정 수용하면서 새로 경제 민주화를 들고 나왔다. 그래서 이 주제들이 2012년에 잇달아 실시된 두 전국 선거의 화두가 됐다. 사회 개혁 의제가 선거의 핵심 쟁점으로 떠오른 것은 한국 정치에서는 처음 보는 현상이었다. 

이는 최근 몇 년 동안 이 나라 바깥에서 벌어진 정치적 격변, 가령 스페인에서 신생 좌파 정당 포데모스가 보여준 이례적 성장, 영국 노동당 대표 경선에서 급진 좌파 제러미 코빈의 예기치 않은 당선,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예비 경선에서 '민주적 사회주의자' 버니 샌더스가 몰고 온 돌풍 등과 무관하지 않았다. 물론 한국 경제는 미국, 유럽과는 달리 2008년 금융 위기의 직격탄을 맞지 않았다. 그래서 이들처럼 정치판이 요동치지는 않았다. 포데모스 같은 대안 정당이 급성장하지도 못했고, 코빈, 샌더스 같은 믿을 만한 대변자가 출현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2012년 대선을 앞두고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계승한 정치 세력이 '복지 국가'를 이야기하도록 압박하고 새누리당조차 이를 포용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 아래로부터의 힘이 분명히 있었다. 이것은 포데모스, 코빈, 샌더스 현상과 결코 다르지 않은 사회적 각성이었다. 신자유주의 이후의 대안은 사회 국가를 재건(서유럽)하거나 새로 건설(한국)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는 각성이었다. 

우리는 다른 나라들과 한국을 비교하면서 흔히 외국 사례를 신비화하거나 우리 자신을 비하하는 오류에 빠지곤 한다. 포데모스나 샌더스 바람을 바라보면서도 이런 시선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런 변화는, 비록 저들에 비해 아직 영글지 못하고 뚜렷한 구심도 없기는 하지만, 우리들 사이에서도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적어도 4년 전에는 그랬다. 

사회 국가 건설 없이 구조 조정 없다 

박근혜 정부의 가장 참담한 역사적 과오는 모처럼 등장한 이런 각성과 열망이 성장하지 못하도록 사기 협잡을 일삼은 데 있다. 박근혜 후보와 새누리당은 부동산 기득권 연합의 지지를 이명박 정부로부터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이 복지와 경제 민주화를 야당보다 더 유능하게 추진할 수 있다는 메시지로 승부수를 던졌다. 국가정보원 개입이라는 변수를 논외로 한다면, 이 전략이야말로 박근혜 후보가 신승(辛勝)을 거둘 수 있었던 주된 요인이었다. 이 덕분에 중도층이 나름의 명분을 갖고 박근혜 후보에게 표를 던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고 나서 제일 먼저 한 일은 복지 공약들을 실행할 수 없다고 선언한 것이었다. 핵심 공약으로 내세운 정책들을 스스로 실현 불가능한 것으로 낙인찍었다. 탄핵이 아니고서는 대통령 임기 5년이 보장되니 복지 확대는 대한민국에서 5년 동안 금지된 일이 돼버렸다. 거짓 공약을 내세워 복지, 경제 민주화 열망을 납치해서는 볼모로 감금해놓은 것이다. 말이 5년이지 5000만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으로부터 5년씩을 도둑질한 꼴이다.  

그러면서 세계의 시간과 한국의 시간은 다시 어긋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바깥세상이 사회 국가 재건의 길로 성큼 나아가고 있는 반면 우리는 2012년에 도달한 지점에서 오히려 후퇴를 강요받는 중이다. 

지난 대선으로부터 만으로 3년밖에 안 됐는데도 한 10년은 훌쩍 지난 것 같다. '보편 복지' 이야기하던 게 이제는 오래 전 추억처럼만 느껴진다. 그렇다고 2012년의 민심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은 결코 아니다. 국민의 최소한의 안전마저 챙기지 못하는 이 정부의 무능이 너무도 참혹해서 이를 따지고 바로 잡느라 미래를 꿈꾸고 앞당기는 일에는 신경 쓸 겨를도 없었던 것뿐이다. 

총선 결과는 바로 이런 울화통 터지는 현실에 대한 분노의 폭발이었다. 어떤 복잡한 수사를 덧붙이든 이번 총선은 결국 박근혜 정부 심판 선거였다. 중대한 세계사적 전환기에 자그마치 5년이라는 시간을 강탈해간 범죄 정권에 대한 심판이었다.

그렇다면, 20대 국회가 당장 착수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는 너무도 분명하다. 그것은 사기 절도당한 시간이 더 길어지지 않도록 2012년의 의제들을 다시 정치의 중심에 놓는 일이다. 사회 국가로 나아가는 출발점이 될 정책들을 하나 둘 실현함으로써 그때의 열망들이 다시 깨어나 꿈틀대도록 만드는 일이다. 

그런데도 들려오는 소식은 구조 조정 운운뿐이다. 좋다. 지구 자본주의의 시공간 안에 살고 있으니 시대 변화에 따른 산업 구조 개편은 어떻게든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사회 국가 건설이라는 방향이 먼저 잡혀야 제대로 된 산업 구조 개혁 논의도 가능하다. 그렇지 않다면 이는 노동 대중에게 고통을 전가해서 거대 자본만 살려준 1997년 외환 위기의 반복이 될 수밖에 없다.  

지금 정말 시급한 것은 구조 조정이 아니다. 복지와 경제 민주화, 즉 사회 국가 건설이다. 총선 민심을 대변하고자 하는 정치 세력이라면, 마땅히 이렇게 외쳐야 한다.

"사회 국가 없이는 구조 조정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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