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3 총선에서 모든 언론매체와 여론조사기관의 예측을 뒤엎고 원내 제1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이 그런 ‘기적’을 만들어준 주권자들의 마음(민심)을 바르게 헤아리지 못하고 갈팡질팡을 거듭하고 있다. 그런 혼란의 한가운데에 비상대책위원장 김종인과 전 당 대표 문재인이 자리잡고 있다. 두 사람은 최근 며칠 동안 볼썽사나운 사건에 휩싸여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사건의 발단은 총선 9일 뒤인 지난 22일 김종인과 문재인이 함께한 저녁식사 자리에서 나눈 대화 내용이었다. 23일 문재인이 한 매체에 공개한 내용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김종인은 문재인이 공개한 내용에 대해 극도로 불쾌감을 보이며 정반대 주장을 했다. 그는 24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문 전 대표가 전당대회에 내가 출마하면 상처를 받게 될 것이라는 말을 한 적이 없다”며 “더 이상 개인적으로는 문 전 대표를 안 만날 것이다. 믿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주장도 했다. “낭떠러지에 떨어지려는 것을 구해놨더니 문 전 대표와 친문(親文)이라는 사람들이 이제 와서 엉뚱한 생각들을 한다. 내가 만찬에서도 ‘친노, 즉 당신 편은 당신이 통제할 수 있어야 하지 않느냐’고 했더니 (문 전 대표가) 자기 말을 안 듣는 친노도 많다더라. 거기에 대해 뭐라고 하나라고 말하더라.”
“(김종인에게) 비대위가 끝난 뒤에 당 대표를 할 생각은 않는 게 좋겠다. 당 대표를 하면 상처를 받을 수 있다. 대선 때까지 경제민주화의 스피커 역할을 해 달라. 지금 상황에서 (김 대표) 합의 추대는 전혀 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경선은 또 어떻게 할 수 있겠나?”
▲ 지난 1월15일 더불어민주당 조기선대위원장으로 영입된 김종인 전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이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마친 뒤 의원들의 박수를 받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
저녁식사 자리에서 오간 대화 내용에 관해 두 사람 중 누가 진실을, 누가 거짓을 말하고 있는지는 녹취록이 없는 한 가려낼 수가 없다. 다만 중요한 것은 문재인도 김종인도 지혜롭기는커녕 정치적 역량을 올곧게 갖추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문재인이 근자에 더불어민주당 안팎에서 뜨거운 쟁점이 되어 있는 ‘김종인 합의 추대’가 당헌에 어긋날 뿐 아니라 그 당이 최대 목표로 삼고 있는 정권교체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고 판단했다면, 그는 진지한 논의를 통해 김종인을 설득했어야 한다. 그리고 확실한 약속도 받지 못한 상태에서 대화 내용을 언론에 공개해버린 것은 사려 깊지 못한 행동이었다.
김종인은 비대위원장이 되어 파멸 위기에 빠진 더민주를 구해낸 ‘메시아’라도 되는 듯한 자기도취적 발언을 공개적으로 했다. “낭떠러지에 떨어지려는 것을 구해놨다”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어떻게 그 혼자서 제1야당을 구했다는 말인가? 자기가 주도한 비이성적 비례대표 공천과 ‘셀프공천’, 광주학살의 주범인 전두환이 권력 찬탈을 위해 만든 국보위에 참여한 전력, 그리고 오래 동안 대중의 지지를 받고 있는 ‘햇볕정책’ 부정과 ‘북한 궤멸론’ 등으로 얼마나 많은 표를 잃었는지를 아직도 모르고 있는가?
문재인과 김종인은 현재 더불어민주당이 민주정당과는 거리가 먼 기형적 ‘1인 독재정당’으로 변질된 데 대해 무한책임을 져야 할 대표적 인물들이다. 이런 불행의 씨앗은 문재인이 김종인을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영입’하는 과정에서 싹트기 시작했다. 문재인은 ‘삼고초려’라는 방식으로 김종인을 ‘모셔’ 왔는데 그 절차는 더민주의 당헌에 완전히 어긋나는 것이었다. 당헌 제15조에는 전국대의원대회가 당 대표와 최고위원을 선출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그런데 문재인은 ‘비상사태’라는 이유로 최고위에서 형식적 결의를 한 뒤 김종인을 실질적 당 대표로 만들어 주었다.
김종인은 비대위와 선대위를 주관하면서 2000년대에 그 어떤 당 대표도 갖지 못한 전권을 휘둘렀다. 문재인이 언론에 밝혔듯이, 그는 김종인이 당의 분열과 갈등을 수습하고 총선을 승리로 이끌면 ‘경제민주화의 스피커’로 충실한 역할을 하리라고 기대했을 것이다. 당내 최대 계파를 이끄는 자신의 뜻에 어긋나게 ‘합의 추대’ 같은 것을 음양으로 추진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듯하다.
문재인은 4월 25일 현재 차기 대선주자들 가운데서 압도적인 1위로 나타났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의 발표를 보면 문재인 27.0%, 안철수 18.4%, 오세훈 9.6%이다. 문재인이 이런 사실에 고무되어 김종인을 ‘임시 관리인’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고 자신이 이끄는 최대 계파를 통해 전당대회에서 정식 당 대표를 선출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문재인이 ‘대권 행보’ 이전에 명심해야 할 사항이 있다. 현재 최고의결기구 구실을 하고 있는 비대위가 당규에 따라 7월에는 반드시 전당대회를 열어 새 대표를 뽑게 하도록 국회의원들과 당원들을 설득하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대표적 ‘김종인 합의추대론자’인 이종걸(원내대표이자 비대위원)이 전당대회 연기론을 주장하는 것을 정당하게 비판하면서 당헌과 당규를 엄격하게 지키도록 촉구해야 하지 않는가?
지금 더불어민주당 지도부 일부는 그 당의 이름과 달리 ‘비민주적’ 행태를 일삼고 있다. 당의 헌법인 당헌과 시행령 격인 당규를 무시하고 특정인의 과욕에 휘둘려 ‘합의 추대’를 위해 전당대회 연기를 주장하는 것이 바로 그렇다. 더민주가 이런 상태로 내년 대선에서 정권교체의 주역이 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래도 새누리당의 장기집권 기도를 좌절시키고 민주주의를 되살리는 주체로 미흡하나마 더민주가 앞장설 수밖에 없음이 엄연한 현실이다. 더민주는 비생산적인 ‘합의 추대’ 논란을 당장 그만두고 7월 전당대회에서 어떤 사람이 대표로 선출되는지를 타진하기 위해 자유경쟁을 유도해야 한다. 계파 갈등이 일어나더라도 현명하게 민주적으로 극복해야지 지레 겁을 먹을 일은 아니다. 지난 총선에서 더민주를 비판하고 견제하면서도 원내 제1당으로 만들어준 유권자들은 그 당이 어디로 가는지를 날카롭게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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