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 안보문제 비서실장에 안 맡겨”
당시 정책조정회의 안보실장이 주재
이재정 통일부 장관이 실질적 의장
북 인권결의안 ‘송민순 vs 이재정’ 대립구도
문정인 “문재인 처음에 찬성 입장.
회의서 ‘기권’ 다수의견 따라”
“회고록은 宋 보고싶은 대로 본 것”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의 회고록을 둘러싼 논란이 커진 것은 무엇보다 야권의 유력 대선 주자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개입됐다는 주장 때문이다. 노무현정부 당시 비서실장이던 문 전 대표가 2007년 유엔의 북한인권결의안 표결 전에 북한에 의견을 물어 기권 입장을 정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한 것처럼 회고록에 묘사되면서 정치적 후폭풍이 커진 것이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 당시 외교안보 정책에 관여했던 인사들은 문 전 대표의 역할에 대해 고개를 젓고 있다. 문 전 대표가 유엔의 북한인권결의안 뿐만 아니라 여타 외교안보 이슈를 결정하는 주도적 위치에 있지 않았다는 얘기다.
참여정부에서 동북아시대위원장과 외교부 국제안보대사 등을 맡으며 외교안보정책에 깊이 관여했던 문정인 연세대 명예교수는 17일 본보 통화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역할 분담을 분명히 해 안보 문제는 비서실장에 맡기지 않았다”며 “(송 전 장관이) 문재인을 끌어들인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당시 외교안보부처 장관회의인 안보정책조정회의가 매주 목요일 오후5시에 열렸는데, 문 실장은 이 회의에 간헐적으로 참석했다는 것이다. 회의 주재자는 백종천 안보실장이었고 이재정 당시 통일부 장관이 실질적인 의장 역할을 했다고 한다.
외교 안보 이슈를 둘러싼 대립도 송 전 장관 대(對) 이 전 장관이었으며 백 전 실장과 김만복 당시 국정원장이 이 전 장관에 동의하는 구도였다는 증언도 대체로 일치한다. 북한 인권결의에 대해서 ‘송민순 대(對) 이재정ㆍ김만복 백종천’이 맞붙는 1대 3의 대립 구도였다는 것이다. 당시 외교통상부 차관보였던 심윤조 전 새누리당 의원도 “(이재정ㆍ김만복ㆍ백종천) 3명이 늘 똘똘 뭉쳤고 송 장관이 혼자 싸웠다”며 “나중에 송 장관이 사표 쓴다고 해서 이걸 말리고 그랬다”고 전했다. 문 교수도 “핵심은 이재정과 송민순의 싸움, 통일부와 외교부 싸움이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 주재로 열린 11월 16일 회의에서도 대통령 앞에서 송 전 장관과 이 전 장관이 크게 싸웠다는 증언도 마찬가지다. 당시 이 전 장관의 정책보좌관이었던 홍익표 더민주 의원은 “이 장관은 16일 회의에 문 실장이 참석한 것을 처음에 기억하지 못 했는데, 그만큼 별 얘기를 안 했다는 것이다”고 말했다.
북한인권결의안 안건이 처음 올라온 11월 15일 안보정책조정회의에서는 문 전 대표가 처음에는 유엔 표결에 찬성 입장을 밝혔다는 증언도 나온다. 문 교수는 “당시 사안이 워낙 첨예해 청와대 행정관들과 수시로 이야기했던 기억이 난다”며 “분명히 문 전 대표는 인권 변호사인양 처음에는 찬성 의견이었다”고 밝혔다. 홍 의원도 “이 장관이 ‘문 실장이 어떻게 찬성 의견을 내냐’면서 굉장히 언짢은 투로 저한테 이야기를 하셔서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하지만 당시 회의에서 1대 3의 구도가 형성되면서 문 전 대표가 ‘다수 의견’을 따랐다는 것이다.
북한에 의견을 물어보자는 제안이 나왔다는 문제의 ‘18일 회의’에서 문 전 대표의 역할 역시 동일하다는 증언이다. 18일 회의 전에 이미 기권 결정이 났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홍 의원은 “16일 회의에서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도 있고 여러 상황이 있으니 주무장관인 통일부 장관의 의견을 따릅시다’고 해서 결정이 된 것이다”고 전했다. 문 교수는 “기권 결정은 이미 돼 있는데, 송 장관이 강력하게 주장하니까 한번 토론 해 보라는 의미였다”며 “노 전 대통령 스타일상 송 장관을 추스려 잘 하라는 것이지, 재논의하라는 것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문 교수는 “송 장관이 회고록에 쓴 내용은 자기 보고 싶은 대로 본 것으로 자기 입장에선 진실일 순 있으나, 상대가 말하는 진실도 있는 것이다”고 덧붙였다.
송용창 기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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