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7년 11월 15일 오후 전남 목포 신항만에 인양된 세월호의 모습. | |
ⓒ 이희훈 |
"세월호의 비극 이후 우리는 달라졌습니다. 생명을 우선하는 가치로 여기게 되었고, 이웃의 아픔을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촛불도, 새로운 대한민국의 다짐도 세월호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15일, 세월호 참사 4주기를 하루 앞두고 문재인 대통령이 내놓은 성명이다. 그는 새로운 대한민국의 시작을 세월호의 비극에서 찾았다.
세월호는 나라답지 않은 나라의 상징이었다. 부패하고 무능한 정권의 민낯에 경악한 시민들은 애써 마음 한켠으로 밀어두었던 세월호를 다시 떠올렸다. 정권을 단죄한 혁명의 광장은 세월호 앞에선 엄마의 마음으로 젖었다. 먹먹한 울음으로 나라다운 나라를 명령했고, 변화를 시스템화하라고 지시했다. 부름을 받은 대선 주자들은 너나할 것 없이 개헌을 주장해야 했다.
세월호에 응답해야 하는 개헌
▲ 세월호참사 4주기를 이틀 앞둔 14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4월16일의약속 다짐문화제’. | |
ⓒ 권우성 |
그렇게 문재인 정부가 나왔다. 촛불을 문재인 정부와 동치해선 곤란하지만 촛불 없이 지금의 문재인 정부는 불가능했다. 유례 없이 지속되고 있는 대통령 지지율 고공행진은 청와대의 공도 있겠으나 이 정부 출생의 비밀과 더 관련이 깊다. 시민들 다수가 촛불을 들었고, 지금은 그 촛불이 꺼지지 않도록 지키고 서 있는 것이다. 우리는 아직 변화의 풍랑 속에 있다.
문재인 정부가 개헌에 민감한, 아니 민감할 수밖에 없는 역사적 이유도 여기 있다. 그리고 그 정부가 세월호를 새 대한민국의 출발로 진단하고 있는 만큼, 이들이 제출한 개헌안에는 필연적으로 세월호의 흔적들이 엿보인다. 조국 민정수석은 지난 3월 20일 청와대의 개헌안을 처음 발표하는 자리에서 '세월호'를 세 번이나 언급했다.
"87년 6월 항쟁을 통해 헌법을 바꾼 지 벌써 30여 년이 흘렀다. 그동안 IMF 외환위기, 세월호 참사를 거치면서 국민의 삶이 크게 바뀌었고, 촛불집회와 대통령 탄핵 이후 새로운 대한민국을 요구하는 국민의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개헌의 필요성을 설명하며)
"세월호 참사, 묻지마 살인사건 등 각종 사고와 위험으로부터 우리 사회가 더 이상 안전하지 못하다. 이에 헌법에 생명권을 명시하고, 모든 국민이 안전하게 살 권리를 천명하는 한편, 국가의 재해예방의무 및 위험으로부터 보호의무를 규정하겠다." (생명권·안전권 신설 부분)
"세월호 특별법 입법 청원에 600만명의 국민이 참여했지만 입법발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중략)국민이 국회의원을 소환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과 국민이 직접 법률안을 발의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을 신설하겠다." (국민발안제·국민소환제 신설 부분)
31년만의 개헌이 필요한 이유에서부터 세월호가 등장했고, 전에 없이 국민의 생명권과 안전권을 헌법에 명기했다. 기존 헌법에서 "국가가 재해를 예방하고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던 것을 "보호해야 한다"고 고쳐 국가의 책임을 못박았다. 세월호로부터 서서히 촉발된 시민혁명, 그 역사가 내준 과제에 청와대가 답안을 제출한 격이다.
응답 없는 자유한국당
국회는 국민의 대표라니까 이들이 제출한 답안지를 채점해보자. 다음은 '생명권' 개헌에 대해 각 정당이 낸 답안이다.
▲ 지난 9일 국회 헌정특위에 제출된 정당별 개헌 의견 비교표. | |
ⓒ 김성욱 |
민주당 : 생명권 신설.
한국당 : (공백)
평화당 : 생명권 신설. 인간존엄의 기초이자 모든 기본권의 전제로서 판례·학설상 인정되어온 생명권을 명문화.
정의당 : 헌법재판소 결정례로 인정된 생명권을 명시하고 사형제도의 폐지도 함께 명기
대통령 : 모든 사람은 생명권을 가지며, 신체와 정신을 훼손당하지 않을 권리를 가진다.
이번엔 '안전권' 개헌 문제다.
▲ 지난 9일 국회 헌정특위에 제출된 정당별 개헌 의견 비교표. | |
ⓒ 김성욱 |
민주당 : 안전권 신설.
한국당 : (공백)
평화당 : 안전권 신설. 위험으로부터 안전할 권리.
정의당 : 안전하게 살 권리를 기본권으로 신설.
대통령 : 모든 국민은 안전하게 살 권리를 가진다.
4당의 답안지 가운데 자유한국당의 일관된 공란이 단연 눈에 띈다. 지난 3일 당의 구체적인 개헌 로드맵을 처음 공개한 자리에서 "국민 기본권 강화"를 강조하면서도 유독 생명권·안전권에는 침묵했던 자유한국당이 끝내 답안지를 수정하지 않은 것이다. 국회에 제출된 표에 휑하게 남은 저 네모 빈칸 깊은 곳에서부터 어떤 아우성이 들려오는 것 같다. 자유한국당은 세월호 참사 당시 국정을 운영하던 집권 여당이었다.
현재 국회 의석수 116석으로 개헌 저지선을 갖고 있는 자유한국당이 반대하는 한 개헌은 불가능하다. 생명권과 안전권이 신설된 개헌안도 그저 빛 좋은 개살구 신세다. 생명권·안전권이 포함된 청와대의 기본권 개헌안 발표 직후 "지방선거용 개헌"(3월 20일, 홍준표 대표)이라고 폄하하던 자유한국당은 이번 6월 안산시·경기도의원 지방선거에서 4.16생명안전공원을 "세월호 납골당"이라고 호도하며 선거 여론전을 펼치고 있다. 1기 특조위 때 가족들에게 대못을 박은 황전원씨를 2기 특조위원으로 재차 추천했다. 한 아버지가 머리까지 또 밀었지만 여전히 꿈쩍 않고 있다.
그렇게 세월호 4주기가 돌아왔다. 세월호 이후 우리는 더 이상 서정시를 쓸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의 서정시를 계속 써내려가야만 한다.
그러나 아직 자유한국당에선 대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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