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댓글 시스템, 이대로는 안 돼…“댓글도 저널리즘의 일부, 포털 철학 바꿔야”
[미디어오늘 금준경 기자]
“여론이란 네이버 기사에 달린 베스트 댓글인 것이다.” 매크로 댓글 조작 혐의를 받는 드루킹이 지난 1월 페이스북에 쓴 글이다. 그는 댓글을 조작하면 여론조차도 좌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포털 댓글 ‘매크로’ 조작 논란이 정치권 최대 이슈다.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해온 것으로 알려진 파워블로거 드루킹이 매크로 프로그램을 동원해 현 정부를 비판하는 내용의 댓글을 조작한 정황이 드러나면서다.
보수언론과 자유한국당 등 야당은 여권 핵심인사인 김경수 민주당 의원과 드루킹 간 텔레그램 대화 기록이 있다며 ‘정권차원의 여론조작 사건’ 프레임을 부각하고 나섰다. 반면 김경수 의원과 여당은 이번 수사 의뢰를 한 게 민주당이며 드루킹의 인사 청탁을 거절하자 벌어진 일이라는 점에서 자신들도 피해자라는 프레임으로 맞서고 있다.
그러나 누구의 말이 맞는지를 따지기에 앞서 이번 사건의 본질은 누구나 댓글 여론조작을 쉽게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있다.
매크로는 한 번의 입력만으로도 같은 행동을 빠르게 반복하는 프로그램을 말한다. 드루킹 일당은 네이버 실명 아이디들을 수집한 다음 매크로에 연동해 정부에 우호적이지 않은 ‘작업 대상’ 기사 댓글에 순차적으로 ‘공감’ 버튼을 누르게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면 정부 비판 댓글을 지지하는 이용자가 급증한 것처럼 보이게 변했다.
실제 경찰 수사 대상인 지난 1월 ‘평창올림픽 아이스하키팀’ 관련 네이버 기사에는 여자 아이스하키팀 남북단일팀에 대해 “문체부 청와대 여당 다 실수하는 거다. 국민들 뿔났다” “땀 흘린 선수들이 무슨 죄냐” 등 정부를 비판하는 두 댓글의 초반 공감수가 700건 넘게 급증하고, 나중에는 4만 건을 넘은 것으로 나타났다.
황용석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매크로는 코딩을 해서 자동화시킨 소프트웨어로 검색 결과 상단에 노출되기 위해 마케팅 분야에서 주로 쓰여졌다”면서 “이번 사건은 마케팅이 아닌 여론 공간에 대한 매크로 기법이라는 점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방법은 심각한 여론조작 행위다. 주류의 견해를 받아들이는 일명 ‘벤드웨건’ 효과를 감안하면 수천~수만 명이 공감한 베스트 댓글 메시지는 여론을 왜곡할 수 있다. 더욱이 기사의 베스트 댓글만 읽고 기사 본문은 제대로 읽지 않는 뉴스수용자가 적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이 효과는 상상 이상일 수 있다.
드루킹이 페이스북에 “여론이란 네이버 기사에 달린 베스트 댓글인 것”이라고 하거나 “온라인 여론점유율=대통령지지율”이라고 쓴 말은 과장됐지만 허언이라고만 보기 어려운 이유다.
이 같은 상황에 네이버는 책임이 없을까. 네이버가 그동안 매크로를 통한 여론조작 가능성을 알고서도 방치한 것인지 따져봐야 한다. 지금껏 네이버는 시스템 개선을 통해 여론조작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차단해왔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네이버는 △1일 댓글 작성 제한(20개) △댓글 작성 후 10초 이내 댓글작성 금지 △같은 IP에서 중복 계정 접속 또는 동일 댓글 반복 시 캡챠(CAPTCHA, 사람만 인지할 수 있는 문자를 보여주고 입력하도록 하는 시스템) 도입 등을 통해 대응해왔다. 또한 5월1일부터 ‘자동 댓글’을 금지하는 조항을 약관에 명시해 시행할 계획이다. 네이버 관계자는 “수사 결과 새로운 매크로 기법이 밝혀지게 되면 대응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기술 대응이 완벽할 수 없다. 매크로 프로그램 제작이 어렵지 않고, 네이버가 정책을 바꾸면 새로운 기법이 나올 수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매일경제는 16일자 “댓글 실명제 필요성 다시 일깨운 민주당원 댓글 조작 사건”이란 제목의 사설을 통해 인터넷 실명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치권에서도 장제원 자유한국당 의원이 ‘인터넷 실명제’ 법안을 발의한 가운데 이번 논란이 법안 통과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인터넷 실명제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뿐더러 정작 ‘악플’ 개선효과는 크지 않으며 공론장을 위축시킨다는 이유로 이미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황용석 교수는 “사업자가 여론공간의 왜곡을 막는 건 숙명적인 일이지만 여론공간의 기만적 행위를 전제해 완벽하게 설계하기는 힘든 면이 있다”고 지적한 뒤 “온라인 여론시스템을 도구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이 변해야 한다. 여론을 왜곡하는 원인제공자를 찾고, 재발되지 않도록 엄격한 법적 조치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매크로 의혹과 별개로 댓글 조작 논란은 어제 오늘의 일도, 진보나 보수의 문제도 아니다. ‘이명박근혜’ 정부 때 국가정보원, 군사이버사령부, 기무사령부, 십알단(십자군 알바단) 등 국가기구와 캠프 차원의 댓글 조작 의혹이 불거진 바 있다.
근본적인 문제는 끊임없이 여론을 왜곡하고 조작하려 하는 욕망에 있고, ‘순공감순’으로 배열되는 현재 포털의 댓글 시스템은 이 욕망을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다. 따라서 논의의 틀을 ‘기술적 대응’이나 ‘실명제 도입’에 국한하지 않고 포털에 댓글 정책에 대한 방향 개선으로 이어져야 한다.
이성규 메디아티 미디어테크랩장은 “댓글도 저널리즘으로 봐야 한다”면서 “댓글과 기사를 별개의 것으로 보는 포털의 철학이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성규 랩장은 “댓글은 기사 신뢰에 영향을 미치는 등 별개로 보기 힘들기 때문에 투명성 원칙을 통해 책임 있는 발언을 하도록 해야 한다”면서 “댓글 작성자를 시민 저널리스트로 보고, 저널리즘이 요구하는 윤리를 지키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은 댓글 작성자의 IP정도만 드러내고 있는데 지역이나 연령이 노출되고 글을 쓴 사람이 과거에 쓴 댓글 이력을 공개하고, 뉴욕타임스처럼 댓글이 검색에 잘 걸리게 하는 방식을 검토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뉴욕타임스는 실명제를 요구하지 않지만 이름·지역을 입력하게 해 최소한의 책임을 부여하게 하고 댓글 작성자에게 등급제를 부여한다. 사용자가 검증된 만큼 댓글이 검색 결과에 노출되도록 하고 좋은 댓글은 뉴스처럼 메인에 배치해 ‘책임감’과 ‘신뢰도’를 높이고 있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