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하철 5호선 여의도역 인근 오피스텔 에스트레뉴. 여의도 오피스텔 공실이 늘어나는 추세지만 늦은 밤까지 불 꺼진 창이 드문 건물이다. 펀드매니저·애널리스트로 일하다 전업투자자로 전향한 사람들이 모여 만든 부티크(소규모 비공식 투자회사)들이 대거 입주해있어서다. 이 건물의 입주율은 곧 증시 호황과 불황의 가늠자가 된다.
A씨가 소유한 이 오피스텔 한실이 이달 또 경매로 나왔다. 59번째로 경매되는 A씨 소유 물건이다. 감정가로만 480억원에 달하는 A씨 소유 오피스텔이 순차적으로 경매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건물 절반이 A씨 소유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이 오피스텔의 절반이 A씨 소유였다. 사업가 A씨 가족은 오피스텔 62실을 소유했다. 전체 118실 중 절반을 넘는다. 그러나 2014년부터 올해까지 A씨가 가지고 있던 59실이 차례차례 경매로 넘어갔다. A씨의 빚이 남아 있어 나머지 3실도 언제 경매로 넘어갈지 모르는 상황이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이 오피스텔의 절반이 A씨 소유였다. 사업가 A씨 가족은 오피스텔 62실을 소유했다. 전체 118실 중 절반을 넘는다. 그러나 2014년부터 올해까지 A씨가 가지고 있던 59실이 차례차례 경매로 넘어갔다. A씨의 빚이 남아 있어 나머지 3실도 언제 경매로 넘어갈지 모르는 상황이다.
A씨는 2010년 총 480여 억원을 들여 이 오피스텔들을 분양받았다. 집단 해약분을 한꺼번에 사들였다. 당시 이 오피스텔을 분양받았던 60여 명은 모델하우스와 실제 건물의 내부 자재 등이 다르다며 건설사에 소송을 걸었다. 법원이 원고측 손을 들어주자 자금압박에 몰린 건설사는 오피스텔 60여 실을 한꺼번에 급매물로 내놨다. 연말 결산을 앞둔 건설사는 분양가 대비 25% 할인하는 조건을 내걸었다. 한 사업가가 발빠르게 모두 사들이겠다며 나섰지만 계약 직전 자금 조달에 실패해 매입을 포기했다.
인테리어 사업을 하던 A씨는 좋은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미 이 빌딩 오피스텔 2실을 분양받은 적이 있었다. 그가 관심을 보이자 분양 회사는 400억원이 넘는 매입비용 전부를 은행권에서 대출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했다. 모자란 80억원은 회사에서 빌려준다는 파격적인 조건도 붙였다. “내 돈 하나 들이지 않고 여의도 한복판 건물 절반을 가질 수 있다니.”
아내 명의로 계약서에 서명했다. 수백억 원의 빚을 졌지만 실당 450만원씩, 62실에서 30억원 가까이 임대료를 매달 거두면 아무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임대 수익으로 나머지 오피스텔도 하나하나 매입해갈 계획이었다.
◆임대료 예상치 크게 밑돌아
그러나 초기 임대료가 예상치보다 휠씬 낮게 형성된 게 발목을 잡았다. 초기 수분양자들이 떠나면서 발생한 60실 가까운 공실을 마냥 놀릴 수 없었던 시공사는 당초 목표였던 월 450만원보다 200만원이나 낮은 월 250만원 정도에 오피스텔을 임대했다. 이게 거의 시세로 굳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헐값에 세를 내주면 수익은 커녕 이자 갚기도 힘들 판국이었다.
마음이 급해진 A씨는 글로벌 부동산 서비스 회사인 S사에 “임대료 밀릴 걱정 없는 외국계 회사를 순차적으로 입주시켜달라”며 3000만원의 계약금을 건넸다. 유럽 소재 증권거래소에 상장한 유명 회사였기에 기대가 컸다. 그러나 몇 달이 지나도 임차인을 소개받을 수 없었다. 인근 비슷한 면적의 오피스텔 시세(월 350만원)보다 100만원 이상 비싼 임대료를 부담하며 선뜻 들어온다는 사람은 없었다.
◆지역 중개업소 외면한 것도 실수
그러던 중 귀인(?)이 나타났다. 꿈에서 그리던 월 임대료 450만원을 낼 임차인을 구해준 중개업자를 만난 것이다. 경기 용인시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하던 사람이었다. 그 중개업자는 “60실 모두 나에게 맡겨 달라고”며 자신감을 피력했다. 여의도에 사무실을 가진 다른 중개업자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원하던 임대료를 맞춰준 사람이 없어서였다. 모두 “턱없이 비싸다”고 힐책했다. A씨는 그 중개업자에게 오피스텔 모두를 전속 관리해달라고 부탁했다. 패착이었다. 자신만만하던 그 중개업자도 월 450만을 낼 임차인을 더 구하지 못했다. “처음부터 지역 사정에 밝은 인근 중개업소들에게 맡겼더라면 공실이라도 면할 수 있었을 텐데.” 후회해봐야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사정을 잘 아는 여의도 S공인 대표는 “5~6년 전 여의도에서 전용면적 107㎡(옛 50평형대) 오피스텔의 월 임대료를 450만원 넘게 받으려는 건 굉장한 무리수였다”며 “현재 임대료는 350만원 수준“이라고 말했다.
궁지에 몰리자 결국 임대료를 주변시세 수준으로 낮춰 서둘러 임차인을 들였다. 급한 나머지 보증금을 거의 내지 않고 한두 달치 임대료만 선지급하겠다는 임차인까지 받아들인게 화근이 됐다. 이들이 임차료를 연체하기 시작했다. 함부로 쫓아낼 수도 없었다. 법대로 명도하려면 반년 이상 넘는 시간이 소요돼서다. 그렇게 짧게는 반년, 길게는 1년 넘게 임대료를 못 내는 일부 임차인들을 보듬고 있었다. 책상이나 소파 등은 그대로 둔 채 컴퓨터만 들고 야반도주하는 임차인도 나타났다.
◆정치에 기대려다 더 큰 화 불러
두 번째 귀인(?)이 나타났다. 2012년 대선 전이었다. 친분이 두터웠던 고등학교 동창생은 공실로 있던 A씨 오피스텔 일부를 빌려달라고 제안했다. ‘비공식 선거 캠프’로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대선 후보와 매우 가까운 사이라고 주장하던 그는 “함께 대한민국 대통령을 만들자”고 부추겼다. 고민 끝에 오피스텔을 10실 정도 빌려줬다. 그렇게 A씨의 부동산은 대선 직전까지 반년에서 1년 정도 거의 무상 임대됐다. 대선에서 승리하면 큰 돈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철썩같이 믿었다. 하지만 고교 동창생은 선거가 끝나고 시치미를 뗐다. A씨는 “대선을 거치며 순수 임대료만 5억원 가량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뒤늦은 후회
매달 대출 이자로 나가는 돈만 수억원에 이르렀다. 수익이 적으니 연체한 이자는 그대로 채무가 됐다. 공실로 남은 오피스텔은 아예 관리비조차 내지 못했다. 관리사무소 직원들과 얼굴을 붉히는 일도 자주 있었다. 가지고 있던 물건을 매각하는 방법도 고민해봤지만 모두 공동담보로 잡혀있어 내다 팔 수도 없었다.
같은 건물 내 다른 임대인과 사이도 안 좋았다. 건물 절반을 소유한 A씨가 자치단을 이끈다고 하자 나머지 소유주들의 반발이 거셌다. 설령 나머지 소유자들끼리 자치단을 만든다고 하더라도 절반을 소유한 A씨 측의 동의 없이 건물 내 현안을 처리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2014년 A씨의 오피스텔 13실이 경매에 넘어갔다. 감정가격 보다 2억~3억 싼 가격에 소유권이 뿔뿔이 흩어졌다. 이어서 13실, 32실도 차례로 경매에 넘어갔다.
이 과정에서 그동안 밀렸던 관리비가 또다시 발목을 잡았다. 밀린 관리비 11억원을 내라며 관리사무소가 A씨를 상대로 소송을 건 것이다. 법원은 관리사무소 편을 들어줬다.
현재 A씨에게 남은 오피스텔은 총 4실이다. 이중 하나는 법원 경매 절차를 밟고 있다. 나머지는 아내와 두 딸이 하나씩 소유하고 있다. A씨는 “너무 많은 대출을 일으켜 무리하게 오피스텔을 분양받은 게 패착이었다. 몇 년 동안 대출 이자 등을 갚느라 돈을 다 써 이젠 빈털터리가 됐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
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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