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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October 28, 2011

유창오의 <진보 세대가 지배한다>

"20~40대, 박원순 압도적지지" (<조선일보>)

"20~40대 몰표,
강남

"성난 2040, 정치판을 탄핵하다" "
넥타이-하이힐 부대, 양극화-청년 실업 심판" (<동아일보>)

패닉이다. 10월 27일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 보수 언론은 일제히 한목소리로 서울 시장 선거에서 20~40대의 박원순 지지를 놓고 '충격'과 '공포'를 보였다. 그럴 만했다. 20대 69퍼센트, 30대 76퍼센트, 40대 67퍼센트가 '원조 보수'를 자처한 나경원 대신 '시민운동'의 아이콘 박원순을 선택했다.

나경원의 네거티브 공세도 진정성에 대한 의심도 콘텐츠에 대한 회의도 이른바 20~40대의 몰표를 막지 못했다. 당연한 결과다. 이들의 몰표는 박원순에 대한 지지가 아니라 '이명박'으로 상징되는 한나라당에 대한 거부였다. 박원순이 아니라, 박영선이 나왔어도 혹은 다른 누가 나왔어도 이들은 '1번 후보'가 아닌 '다른 후보'를 선택했을 것이다.

이런 20~40대의 반란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마침 이 질문에 답하는 책이 서울 시장 선거 직전에 나왔다. 유창오의 <진보 세대가 지배한다>(폴리테이아 펴냄). 이 책은 마치 10·26 서울 시장 선거 결과를 예측하기라도 하듯이 이런 부제를 달았다. "2040 세대의 한국 사회 주류 선언."

세대가 곧 계급이다!?

▲ <진보 세대가 지배한다>(유창오 지음, 폴리테이아 펴냄). ⓒ폴리테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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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여의도에서 현실 정치가 굴러가는 모습을 지켜본 유창오는 최근 수차례의 선거 결과를 토대로 한 가지 결론을 내린다. 2011년 한국 사회는 두 개의 대한민국으로 나뉘었다. 그리고 그 기준은 40대를 중심으로 한 늙은 세대와 젊은 세대다. 그가 식상한 세대 구분을 되뇌는 것은 아니다.

"이명박 정부를 거치면서 20~40대 진보 블록과 50~60대 이상의 보수 블록이 양립되는 양상으로 세대 구도가 변했다. (…) 40대의 민주적 성향이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을 겪으면서 형성된 '가치·문화적'인 것이라면, 20~30대의 진보적 성향은 외환 위기 이후 본격화된 신자유주의와 양극화를 겪으면서 형성된, '계층적·경제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20대 80의 사회'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이에 대한 저항 의식과 세대 정체성을 키워가고 있는 것이다. 신규로 사회에 편입한 20~30대에게 하위 80퍼센트 트랙만이 허용되는 '20대 80 사회'가 이들을 진보적으로 만든 것이다. (…) 2010년 이후 심화되고 있는 세대 갈등은 과연 대한민국의 구조적이고 본질적인 균열에 해당되는 것인가?

(…) 지금 젊은 세대가 이명박 정부에 등을 돌리고, 성장보다는 분배를 선호하고, 나아가 '탈지역주의' 색깔을 분명히 하게 된 것은, 경제적 이해관계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2011년 대한민국에서 '세대는 경제적 이해관계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단위인 동시에, 정치적 성향과 선호가 분명한 집단이다. 2011년 현재, 세대는 계급이다."


유창오의 주장은 단순명쾌하다. 겉보기에 세대 갈등으로 비쳐지는 선거 결과가 사실은 계급 투쟁의 결과라는 것이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해방 이후 65년간 나오지 않았던 계급 투표가 2010년부터 세대 갈등의 외피를 띠고 등장했다. 과연 2011년 서울 시장 선거에서 20~40대는 계급 투표를 한 것일까?

2040은 한 덩어리가 아니다!

이런 유창오의 주장은 2012년 총선, 대선 승리 전략으로 이어진다. 40대가 20~30대를 견인(?)함으로써 책 제목대로 "진보 세대가 지배하는" 대한민국이 가능하다는 것. 이런 전략은 연초에 화제가 되었던 조국과 오연호의 <진보 집권 플랜>(오마이북 펴냄)의 메시지와도 겹치고, 사실상 야권 전략가의 생각도 대동소이할 것이다.

그런데 정말로 그런가? 유창오의 주장을 따라가면서 문득 미국의 정치학자 아이라 카츠넬슨이 계급 형성 과정을 놓고서 했던 얘기가 떠올랐다. 카츠넬슨은 에드워드 톰슨의 <영국 노동 계급의 형성>(창비 펴냄)을 따라서, 자본주의 착취 구조는 노동 계급이 만들어지는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카츠넬슨의 주장을 보면, 노동자는 공통의 경험, 그런 경험을 통해서 만들어진 공통의 취향 등을 통해서 점점 '운명을 함께하는' 한 덩어리가 된다. 그리고 그렇게 한 덩어리가 된 이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집단행동을 할 때 (고전적이지만 여전히 힘이 센 확실한 방법은 정당을 만들어서 국회, 정부를 접수하는 것이다!) 비로소 노동 계급이 등장한다.

이런 카츠넬슨의 주장을 염두에 두고 '세대가 곧 계급'이라는 유창오의 주장을 살펴보자. 지금의 20~40대가 분명히 '불안' 속에 살아가는 것은 맞다. 하지만 앞에서 설명했듯이 그것은 그들이 한 덩어리가 되기 위한 필요조건일 뿐이다. 과연 20~40대가 공통의 경험, 공통의 취향 그리고 공통의 이해관계를 매개로 한 덩어리로 뭉칠 수 있을까?

대답이 부정적이라면 그렇게 20~40대를 한 덩어리로 간주하고 심지어 '세대가 곧 계급'이라고 말하는 유창오의 주장은 상당히 '오버'다. 백 보 양보해서 생존이든 유행이든 '반(反) 이명박' 주문이 효과를 발휘해 2012년에 정권 교체에 성공한다 한들, 새롭게 탄생한 정부는 누구의 이익을 대변할 것인가?

20대와 40대, 30대와 40대의 이해관계가 같은가? 아니, 40대를 꿰뚫는 공통의 이해관계라는 게 있기는 한 건가? 강남에 자기 아파트를 가진 대학 교수전세를 전전하는 수도권 외곽의 중소기업 노동자의 차이는 천지차이일 텐데…. 20대를 꿰뚫는 공통의 이해관계도 마찬가지다. 서울 소재 대학을 나온 100만 원짜리 원룸에서 사는 이와 지방 대학을 나와 옥탑 방을 전전하는 이의 차이처럼.

'불안'이 영혼을 잠식하면…

20~40대가 힘을 모아서 '진보 세대가 지배하는' 대한민국, 더 구체적으로는 각종 '불공정한 관행이 개선된' '복지 국가'를 만들자는 유창오의 진정성은 이 책 전체를 꿰뚫는 미덕이다.

그러나 몇 번의 투표에서 20~40대가 이명박 정부에 반대하는 표를 던졌다고 해서, 그것이 곧 진보(?) 세대의 등장을 예고하는 것이라고 단언해서는 안 된다. '불안'은 행동의 동력이 될 수도 있지만, 영화 제목처럼 '영혼을 잠식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불안 탓에 영혼을 잠식당한 이들이 어떻게 변하는지 우리는 지난 세기 히틀러의 독일에서 봤다.

지금 필요한 일은 오히려 20대, 30대, 40대와 같은 '세대' 속에 감춰진 갈등을 드러내, 새로운 이해관계의 덩어리들이 제각각 목소리를 내게끔 하는 일이 아닐까? 그렇게 만들어진 대한민국은 진보 세대가 지배하는 대한민국은 아닐지언정, 지금처럼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무릎팍 도사가 만들어낸) 몇몇 스타가 지배하는 대한민국보다는 나을 것이다.

하나만 덧붙이자. 유창오는 계속해서 20~40대를 '진보 세대'라고 호명하면서도 정작 그 주체는 486 세대로 제한하는 듯하다.

새로운 질문을 던져보자. 왜 20~30대는 자기가 직접 후보로 나서지 않은가? 왜 유명인이나 연예인이 찍어주는 정치인의 거수기 역할을 하는 것으로 만족할까? 독일의 20~30대는 해적당도 만들었다는데…. 그러고 보니 1954년 김대중, 김영삼이 처음 국회의원 선거에 나섰을 때, 그들의 나이는 각각 만 서른, 만 스물일곱이었다. 좌파 가세…'보수 안방'까지 흔들" (<중앙일보>)
 

/강양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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