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처음 추진한 건 노무현 전 대통령과 민주당이었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고 난 뒤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은 한미 FTA 비준을 못해 안달하고 있고 민주당은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이하 존칭 생략) 노무현 때는 FTA가 장밋빛 미래를 펼쳐줄 것처럼 떠들던 사람들이 이명박 때 와서는 FTA가 나라를 팔아먹는 것처럼 호들갑을 떨고 있다. 노무현의 FTA와 이명박의 FTA는 다른가.
이명박과 노무현이 함께 나온 한미 FTA 광고를 두고 말이 많다. 노무현 재단은 “한미 FTA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참여정부에서 추진한 한미 FTA의 ‘짝퉁’이고, 불량부품을 여기저기 끼워넣은 ‘불량상품’”이라고 비판했다. 참여정부 인사들은 “노무현 대통령이 시작한 한미 FTA, 이명박 대통령이 마무리하겠다”고 말하는 이 광고가 “퍼주기 재협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한미 FTA를 흡사 노 전 대통령이 지지하는 것처럼 만들었다”고 비난하고 있다.
노무현은 2006년 6월 1차 협상을 시작해 이듬해인 2007년 4월 타결, 그해 6월 합의문에 서명까지 했으나 미국 의회의 반대로 진도를 더 나가지 못했다. 노무현은 임기 막판까지 한미 FTA 비준에 매달렸으나 미국 정부가 재협상을 요구하면서 꿈을 이루지 못했다.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물러나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한미 FTA 비준은 장기전으로 치닫게 된다.
이명박은 한미 FTA의 최대 걸림돌이었던 미국산 쇠고기 문제를 파격적으로 양보하고 진전을 끌어낸다. 이명박은 모든 연령과 모든 부위의 쇠고기를 수입하라는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였다가 집권 초기 거센 반발에 직면한다. 수십만명이 몰리는 촛불집회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이명박은 수입 조건 강화를 요구, 30개월 이상 쇠고기와 광우병 특별 위험물질을 수입 금지하겠다고 한 발 물러섰다.
그러나 오바마는 무역 불균형 등을 이유로 한미 FTA 비준을 계속 미뤄왔고 이명박은 지난해 12월 굴욕적인 재협상을 하기에 이른다. 재협상 결과는 참담했다.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여 자동차 관세 철폐 시한을 연장하고 개성공단 제품을 한국산으로 인정하지 않는 조건에 합의했다. 그리고 지난 12일 미국 의회는 한미 FTA 법안을 최종 가결한다. 이제 공은 우리 국회로 넘어왔다.
민주당이 요구하는 재재협상안은 쇠고기 수입 관세를 10년 동안 유예하고 11년차부터 8%씩 철폐해 15년차에 40% 모두 철폐하기로 하는 내용을 포함, 개성공단에서 생산되는 제품의 한국산 원산지 인정을 위한 역외가공 조항 도입, 의약품 분야의 허가‧특허 연계제도 폐지, 투자자 국가 소송제도 폐기, 서비스 시장개방 방식을 포지티브 리스트로 전환할 것 등이다. 그러나 정부와 한나라당은 재재협상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입장이다.
최종 가결된 협상안은 당초 노무현이 추진했던 협상안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이른 바 한미 FTA의 독소 조항들은 이명박의 작품이 아니라 노무현 때부터 이미 포함돼 있었다. 달라진 게 있다면 미국산 쇠고기 수입 조건과 자동차 관세 철폐 시한, 그리고 개성공단의 원산지 인정 제외 등이다. 노무현의 계획에서 훨씬 후퇴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만으로 착한 FTA가 나쁜 FTA가 됐다고 말하는 건 지나친 비약이다.
노무현이 살아있다면 어땠을까. “내가 추진하려고 했던 한미 FTA는 이런 게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미국산 쇠고기 때문에? 자동차 교역조건이 후퇴했기 때문에? 개성공단 제품을 제외한 것 때문에? 물론 노무현이라면 이처럼 굴욕적인 재협상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노무현이라면 국내 피해를 최소화하는 대책을 적극적으로 마련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한미 FTA는 노무현의 작품이고 이명박은 그 충실한 계승자다.
노무현이 살아있다면 투자자 국가 소송제 등 독소 조항의 삭제 또는 변경을 요구할 수 있었을까. 분명한 것은 그가 대통령으로 있을 때도 이런 비판이 끊이지 않았지만 그때는 귀기울여 듣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돌아보면 노무현이 직면했던 가장 큰 과제는 설비투자와 고용 확대를 통한 내수 창출이었다. 노무현의 패착은 양극화의 딜레마를 재벌 대기업과 시장의 힘으로 넘어서려고 했다는데 있다.
노무현의 FTA와 이명박의 FTA가 다르다고 주장하는 건 위선이고 자가당착이다. 이명박의 FTA를 반대하려면 먼저 노무현의 FTA를 넘어서야 한다. 노무현의 한계를 인정하고 극복하지 않는다면 언젠가 우리는 박원순이나 안철수에게 실망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명박 정부의 집권 말기, 우리는 진보의 가치를 다시 정립하는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노무현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
이명박과 노무현이 함께 나온 한미 FTA 광고를 두고 말이 많다. 노무현 재단은 “한미 FTA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참여정부에서 추진한 한미 FTA의 ‘짝퉁’이고, 불량부품을 여기저기 끼워넣은 ‘불량상품’”이라고 비판했다. 참여정부 인사들은 “노무현 대통령이 시작한 한미 FTA, 이명박 대통령이 마무리하겠다”고 말하는 이 광고가 “퍼주기 재협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한미 FTA를 흡사 노 전 대통령이 지지하는 것처럼 만들었다”고 비난하고 있다.
노무현은 2006년 6월 1차 협상을 시작해 이듬해인 2007년 4월 타결, 그해 6월 합의문에 서명까지 했으나 미국 의회의 반대로 진도를 더 나가지 못했다. 노무현은 임기 막판까지 한미 FTA 비준에 매달렸으나 미국 정부가 재협상을 요구하면서 꿈을 이루지 못했다.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물러나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한미 FTA 비준은 장기전으로 치닫게 된다.
"노무현 대통령이 시작한 한미 FTA, 이명박 대통령이 마무리하겠다"고 말하는 정부 광고. 참여정부 인사들은 이 광고가 “퍼주기 재협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한미 FTA를 흡사 노 전 대통령이 지지하는 것처럼 만들었다”고 비난하고 있다. | ||
이명박은 한미 FTA의 최대 걸림돌이었던 미국산 쇠고기 문제를 파격적으로 양보하고 진전을 끌어낸다. 이명박은 모든 연령과 모든 부위의 쇠고기를 수입하라는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였다가 집권 초기 거센 반발에 직면한다. 수십만명이 몰리는 촛불집회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이명박은 수입 조건 강화를 요구, 30개월 이상 쇠고기와 광우병 특별 위험물질을 수입 금지하겠다고 한 발 물러섰다.
그러나 오바마는 무역 불균형 등을 이유로 한미 FTA 비준을 계속 미뤄왔고 이명박은 지난해 12월 굴욕적인 재협상을 하기에 이른다. 재협상 결과는 참담했다.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여 자동차 관세 철폐 시한을 연장하고 개성공단 제품을 한국산으로 인정하지 않는 조건에 합의했다. 그리고 지난 12일 미국 의회는 한미 FTA 법안을 최종 가결한다. 이제 공은 우리 국회로 넘어왔다.
민주당이 요구하는 재재협상안은 쇠고기 수입 관세를 10년 동안 유예하고 11년차부터 8%씩 철폐해 15년차에 40% 모두 철폐하기로 하는 내용을 포함, 개성공단에서 생산되는 제품의 한국산 원산지 인정을 위한 역외가공 조항 도입, 의약품 분야의 허가‧특허 연계제도 폐지, 투자자 국가 소송제도 폐기, 서비스 시장개방 방식을 포지티브 리스트로 전환할 것 등이다. 그러나 정부와 한나라당은 재재협상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입장이다.
최종 가결된 협상안은 당초 노무현이 추진했던 협상안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이른 바 한미 FTA의 독소 조항들은 이명박의 작품이 아니라 노무현 때부터 이미 포함돼 있었다. 달라진 게 있다면 미국산 쇠고기 수입 조건과 자동차 관세 철폐 시한, 그리고 개성공단의 원산지 인정 제외 등이다. 노무현의 계획에서 훨씬 후퇴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만으로 착한 FTA가 나쁜 FTA가 됐다고 말하는 건 지나친 비약이다.
노무현이 살아있다면 어땠을까. “내가 추진하려고 했던 한미 FTA는 이런 게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미국산 쇠고기 때문에? 자동차 교역조건이 후퇴했기 때문에? 개성공단 제품을 제외한 것 때문에? 물론 노무현이라면 이처럼 굴욕적인 재협상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노무현이라면 국내 피해를 최소화하는 대책을 적극적으로 마련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한미 FTA는 노무현의 작품이고 이명박은 그 충실한 계승자다.
노무현이 살아있다면 투자자 국가 소송제 등 독소 조항의 삭제 또는 변경을 요구할 수 있었을까. 분명한 것은 그가 대통령으로 있을 때도 이런 비판이 끊이지 않았지만 그때는 귀기울여 듣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돌아보면 노무현이 직면했던 가장 큰 과제는 설비투자와 고용 확대를 통한 내수 창출이었다. 노무현의 패착은 양극화의 딜레마를 재벌 대기업과 시장의 힘으로 넘어서려고 했다는데 있다.
노무현의 FTA와 이명박의 FTA가 다르다고 주장하는 건 위선이고 자가당착이다. 이명박의 FTA를 반대하려면 먼저 노무현의 FTA를 넘어서야 한다. 노무현의 한계를 인정하고 극복하지 않는다면 언젠가 우리는 박원순이나 안철수에게 실망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명박 정부의 집권 말기, 우리는 진보의 가치를 다시 정립하는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노무현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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