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조선업 구조조정의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현대중공업의 고강도 인력 감축안이 공개되고 한진해운의 채권단 자율협약 신청 계획이 발표되면서다. 해운사는 국내외 이해관계자가 복잡하게 얽혀 있고, 조선 3사는 고용효과가 커 고난도 구조조정이 될 수밖에 없다.
정부는 24일 경제현안회의(청와대 서별관회의)를 열고 채권단 중심의, 선제적인 기업 구조조정 원칙을 견지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정부는 26일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주재하는 ‘산업·기업 구조조정협의체’ 회의 직후 앞으로의 기업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하기로 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용선료(선박 임대 비용)와 회사채 채권자 협상, 선박금융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해외 선주와의 용선료 인하 협상이나 회사채 투자자 채무 재조정은 현대상선 채권단이 자율협약을 받아들이면서 전제로 단 조건이어서 많이 알려져 있다. 이에 더해 한진해운·현대상선이 갚아야 할 5조원 규모의 선박금융(선박담보대출)이 구조조정의 복병으로 떠올랐다. 두 회사가 빚을 못 갚으면 금융회사가 담보물인 배를 압류한 뒤 팔 수 있기 때문이다.
선박금융은 해운사가 선박 구입에 쓰기 위해 금융회사로부터 10~20년간 장기대출을 받은 돈이다. 통상 대출금은 배 값의 70% 안팎이다. 채권단에 따르면 선박금융은 한진해운 총 부채의 60%(3조2000억원), 현대상선 총 부채의 37.5%(1조8000억원)를 각각 차지한다. 한진해운은 64척, 현대상선은 33척의 선박을 선박금융으로 구입했다. 이는 선박담보대출이어서 담보가 없는 은행 신용대출이나 회사채와 달리 채무 재조정 대상도 아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해 두 회사는 선박금융의 만기 연장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국내 금융회사보다는 해외 금융회사가 만기 연장에 부정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현대상선의 선박금융(1조8000억원)은 지난해 용선료(1조8793억원)와 비슷하다. 이 때문에 용선료 협상이 잘되면 선박금융 만기 연장도 순조롭게 진행될 거란 전망이 나온다. 현재 현대상선은 전체 선주 중 60%의 선주와 용선료 인하에 합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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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업은 대량 실업사태가 가장 큰 걸림돌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조선사 1~2곳의 문을 닫아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국내 금융회사가 대우조선해양에 물린 돈을 다 떼인다면 우리 경제가 감당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 대우조선해양의 금융권 익스포저(대출·보유 유가증권·지급보증의 합계)는 21조7000억원으로 84.3%가 수출입은행·산업은행·농협 등 특수 은행에 집중돼 있다. 구조조정에는 비용이 들어가며, 이에 따른 은행권 부실을 메우기 위해 국민 세금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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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또 다른 고위 관계자는 “정치권이 총론에선 구조조정에 찬성해도 각론에 들어가면 지역구 이해관계 등으로 인해 다른 소리를 할 것”이라며 “외환위기 때와 같이 ‘큰칼 휘두르는’ 구조조정을 기대하지는 말라”고 했다. 하나금융투자 김상만 연구원은 “ 주력 산업의 침체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돼 잠재적인 구조조정 비용 부담이 크다는 게 문제의 핵심”이라며 “일부분의 문제라면 수술을 통해 해결이 가능하지만 본류가 문제가 되면 섣불리 접근하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서경호·이태경 기자 praxi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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