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집권 말기에 접어드는 박근혜 정부의 ‘보은성 낙하산 인사’ 세례가 추석 연휴 이후 본격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연말까지 기관장 임기가 만료되는 공공기관은 한국수력원자력, 마사회, 도로공사, 기업은행 등 60여곳에 달한다.
18일 여권에 따르면 기획재정부 공공기관운영위원회는 한국수자원공사 신임 사장에 이노근 전 새누리당 의원과 이학수 수공 부사장을 국토교통부 장관에게 추천하기로 결정했다. 그동안 수공에서 내부인사가 사장에 오른 적이 거의 없어 이 전 의원이 유력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서울 노원구청장 출신인 이 전 의원은 19대 국회의원을 지낸 후 지난 총선에서 낙선하는 등 수공과 연관성이 있는 경력이 거의 없다.
민간 기업인 한국거래소 신임 이사장에는 ‘청와대 핫라인’으로 불린 정찬우 전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유력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캠프 출신인 정 전 부위원장은 지난 총선에서 새누리당 비례대표를 신청했지만 공천을 받지 못했다. 정 전 부위원장이 거래소 이사장으로 뜻을 정하면서 최경수 현 이사장이 공모에 응하지 않는 등 많은 후보들이 신청을 접었다는 후문이다. 거래소는 오는 30일 주주총회를 열어 신임 이사장을 선임한다.
공기업 감사 등에는 이미 청와대발 낙하산이 곳곳에 착륙했다. 조인근 전 청와대 연설기록비서관은 지난달 한국증권금융 상근 감사위원에 선임됐다. 2004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전당대회 때부터 박 대통령을 보좌해 온 조 전 비서관은 금융분야 경력이 전무하다. 지난 4월 한국전력은 20대 총선에서 낙선한 조전혁 전 새누리당 의원을 비상임감사로 선임했다. 김현장 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위원과 김기석 전 새누리당 국민통합위원회 기획본부장도 각각 한국광물자원공사, 신용보증기금 감사에 앉았다.
박 대통령은 지난 대선 때 ‘공공기관 기관장 선임 시 정치적 영향력을 배제하기 위한 장치를 강화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고 당선인 시절에는 MB 정권의 낙하산 인사에 대해 “잘못된 일”이라고 공격했으나 이제는 태도가 완전히 바뀌었다. 기동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청와대가 한국거래소 이사장에 ‘친박 실세’인 정찬우 전 부위원장을 밀고, 이노근 전 의원을 아무런 직무 연관성도 없는 수공 사장으로 검토하는 등 임기 말 인사 파행이 점입가경”이라고 밝혔다.
신용보증기금, 한국예탁결제원, 자산관리공사, 기업은행, 기술보증기금, 수출입은행 등의 기관장 임기가 올 연말까지 만료되는 금융권에서는 낙하산에 의한 초대형 물갈이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공공기관은 아니지만 정부가 영향력을 행사해 온 KB국민은행의 차기 회장과 은행장에도 청와대 인사 낙점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송윤경 기자 ky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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