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0일 박근혜 대통령이 지진 피해 지역인 경주를 방문했습니다. 경주를 방문한 박 대통령은 한 장의 사진 때문에 온라인에서 거센 비판을 받았습니다. 사진 속 박근혜 대통령이 발에 흙을 묻히지 않으려는 듯한 자세로 악수를 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이 사진에 대해 <인사이트>는 '지진 피해입은 경주 시민들을 서운하게 만든 사진 한 장'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박 대통령이 지진 피해 주민들을 위로하기 위해 경주 지역을 찾았다가 뜻밖에 역풍을 맞았다"고 보도했습니다.
<인사이트>는 이 기사에서 "포착된 사진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진흙으로 뒤덮인 바닥을 밟지 않으려는 듯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라고 표현한 뒤 "해당 사진이 공개되자 지진으로 인해 아직 정신적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경주 지역 주민들은 서운함을 드러냈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인사이트>는 "저런 식으로 위로할 거면 그냥 방문하지 말지", "뒤에서 붙잡아주는 사람도 웃기네"라며 박 대통령을 비난하는 이들의 목소리도 기사에 담았습니다.
<서울신문> 온라인판도 "해당 사진을 두고 지진 피해 지역 중 하나인 경북 포항의 지역 커뮤니티에는 '흙 안 밟으려는 필사의 몸부림', '38선인 줄…넘어가면 죽나봐요' 등의 댓글이 이어졌다"고 보도했습니다.
<경향신문> 페이스북에도 비슷한 내용의 사진과 글이 올라왔습니다. <경향신문> 페이스북에는 '경주 방문 박 대통령, 흙 피하여 "많이 놀랐죠?" 위로'라는 제목의 기사 링크와 함께 "대통령 발에 진흙이 묻는 꼴은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못 본다. by 청와대 경호원"이란 소개글도 함께 게재됐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흙을 밟지 않은 이유는?
기자도 이 사진을 보고 처음에는 '역시나'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내 정말 박근혜 대통령이 흙을 밟지 않기 위해서 저렇게 악수를 했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청와대 관련 동영상을 찾아봤습니다.
사진의 진실은 이랬습니다. 경주를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은 기와 보수 작업을 하는 곳에 멈춰 섰고, 옆에 있던 정부 관계자는 흙이 기와 보수 작업에 사용된다고 설명합니다. 이후 박 대통령은 자원봉사자들과 악수를 하고, 청와대 동영상에는 '피해복구에 사용되는 작업용 훍이니 밟으면 안 됩니다!'라는 자막이 나옵니다.
동영상을 보면 박근혜 대통령뿐만 아니라 자원봉사자들도 흙무더기에 가까이 가지 않고 악수를 합니다. 사실 중간에 기와에 올릴 흙을 뭉쳐 놓은 덩어리만 밟지 않으면 됐지만, 그 사실을 잘 모르는 박 대통령은 흙이 묻어 있는 곳을 아예 밟지 않았습니다. 박 대통령이 몸을 너무 숙이다 보니 옆에 있던 경호원이 넘어지지 않도록 손을 내밀기도 했습니다.
언론이 보도한 사진 한 장만 보면 마치 박근혜 대통령이 흙을 밟지 않으려고 했던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흙을 밟지 말라고 해서 밟지 않았을 뿐입니다.
또 다시 재연된 풀 기자단 체제의 오류
이번에 언론이 확대 생산한 오류는 '풀 기자단' 취재 방식 때문입니다. 풀 기자단은 대통령 일정이나 큰 사건 등이 일어났을 때, 모든 언론사가 몰려 취재하기 힘들 경우, 기자 대표를 뽑아 밀착 취재하는 것을 말합니다. 풀 기자단이 취재한 내용을 다른 언론사가 공유하는데, 이때 풀 기자단이 어떻게 기사를 작성하느냐에 따라 기사 내용이 바뀔 수도 있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이미 지난 대선 때도 이런 오류가 나왔습니다. 2012년 11월 박근혜 후보가 부산 자갈치 시장을 방문했을 때, 풀 기자단이 각 기자들에게 보낸 메일에는 "해산물을 가득 산 박 후보가 8000원을 냈고 상인이 당황했다"라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가리비와 조개, 꽃게 등 푸짐한 해산물을 산 뒤 8천 원을 들고 있는 박 후보의 사진은 소셜미디어에 퍼졌고, '세상 물정 모른다'는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당시 실제 상황은 좀 달랐습니다. 박근혜 후보에겐 8천 원 밖에 없어 조윤선 선거캠프 대변인이 5만 원을 건네줬고, 박 후보가 상인에게 5만 원을 냈습니다. 박근혜 캠프에서는 언론에 공개되지 않은 영상을 찾아 오만원권 지폐를 줬다면서 반박하기도 했습니다.
<경향신문> 페이스북이 '경주 방문 박 대통령, "흙 피하며 많이 놀랐죠?" 위로'라는 제목으로 링크한 기사의 원문은 '박 대통령 경주 지진 현장 방문...특별재난지역 선포 검토하라'는 다른 제목의 기사였습니다. 이 기사 본문에는 페북 제목과 달리 흙과 관련된 얘기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사진에는 '경호원이 박 대통령이 진흙을 밟아 묻지 않도록 뒤에서 붙잡고 있다'는 설명이 있었습니다.
현장에 가지 않은 기자가 현장 상황을 제대로 알기는 힘듭니다. 그러나 기자라면, 최소한 교차 검증을 해야 합니다. 또 혹시 다른 이유는 없었는지 살펴보고 기사를 작성해야 할 의무는 있습니다. 2012년 박근혜 후보의 부산 자갈치 시장 사진이나 이번 박근혜 대통령의 경주 방문 사진을 보면 무조건 비판을 하기 위해 앞뒤 가리지 않고 뛰어들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이 글을 쓰는 기자도 개인적으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갖고 있진 않습니다. 하지만 무턱대고 그녀를 비난하거나 나쁜 사람으로 몰 수는 없습니다. 최소한의 합당한 근거와 자료를 가지고 비판하려고 애를 씁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이기 때문입니다.
▲ 인사이트와 경향신문 페이스북이 게재한 경주 방문 박근혜 대통령 관련 사진과 기사 링크 | |
ⓒ 임병도 |
이 사진에 대해 <인사이트>는 '지진 피해입은 경주 시민들을 서운하게 만든 사진 한 장'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박 대통령이 지진 피해 주민들을 위로하기 위해 경주 지역을 찾았다가 뜻밖에 역풍을 맞았다"고 보도했습니다.
<인사이트>는 이 기사에서 "포착된 사진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진흙으로 뒤덮인 바닥을 밟지 않으려는 듯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라고 표현한 뒤 "해당 사진이 공개되자 지진으로 인해 아직 정신적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경주 지역 주민들은 서운함을 드러냈다"고 밝혔습니다.
<서울신문> 온라인판도 "해당 사진을 두고 지진 피해 지역 중 하나인 경북 포항의 지역 커뮤니티에는 '흙 안 밟으려는 필사의 몸부림', '38선인 줄…넘어가면 죽나봐요' 등의 댓글이 이어졌다"고 보도했습니다.
<경향신문> 페이스북에도 비슷한 내용의 사진과 글이 올라왔습니다. <경향신문> 페이스북에는 '경주 방문 박 대통령, 흙 피하여 "많이 놀랐죠?" 위로'라는 제목의 기사 링크와 함께 "대통령 발에 진흙이 묻는 꼴은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못 본다. by 청와대 경호원"이란 소개글도 함께 게재됐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흙을 밟지 않은 이유는?
▲ 청와대 관련 동영상을 보면 '피해복구에 사용되는 작업용 흙이니 밟으면 안됩니다'라는 자막이 나온다. | |
ⓒ 임병도 |
기자도 이 사진을 보고 처음에는 '역시나'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내 정말 박근혜 대통령이 흙을 밟지 않기 위해서 저렇게 악수를 했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청와대 관련 동영상을 찾아봤습니다.
사진의 진실은 이랬습니다. 경주를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은 기와 보수 작업을 하는 곳에 멈춰 섰고, 옆에 있던 정부 관계자는 흙이 기와 보수 작업에 사용된다고 설명합니다. 이후 박 대통령은 자원봉사자들과 악수를 하고, 청와대 동영상에는 '피해복구에 사용되는 작업용 훍이니 밟으면 안 됩니다!'라는 자막이 나옵니다.
동영상을 보면 박근혜 대통령뿐만 아니라 자원봉사자들도 흙무더기에 가까이 가지 않고 악수를 합니다. 사실 중간에 기와에 올릴 흙을 뭉쳐 놓은 덩어리만 밟지 않으면 됐지만, 그 사실을 잘 모르는 박 대통령은 흙이 묻어 있는 곳을 아예 밟지 않았습니다. 박 대통령이 몸을 너무 숙이다 보니 옆에 있던 경호원이 넘어지지 않도록 손을 내밀기도 했습니다.
언론이 보도한 사진 한 장만 보면 마치 박근혜 대통령이 흙을 밟지 않으려고 했던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흙을 밟지 말라고 해서 밟지 않았을 뿐입니다.
또 다시 재연된 풀 기자단 체제의 오류
이번에 언론이 확대 생산한 오류는 '풀 기자단' 취재 방식 때문입니다. 풀 기자단은 대통령 일정이나 큰 사건 등이 일어났을 때, 모든 언론사가 몰려 취재하기 힘들 경우, 기자 대표를 뽑아 밀착 취재하는 것을 말합니다. 풀 기자단이 취재한 내용을 다른 언론사가 공유하는데, 이때 풀 기자단이 어떻게 기사를 작성하느냐에 따라 기사 내용이 바뀔 수도 있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 2012년 11월 부산 자갈치 시장을 방문한 박근혜 후보가 8천원을 꺼내는 모습 | |
ⓒ 공동취재기자단 |
이미 지난 대선 때도 이런 오류가 나왔습니다. 2012년 11월 박근혜 후보가 부산 자갈치 시장을 방문했을 때, 풀 기자단이 각 기자들에게 보낸 메일에는 "해산물을 가득 산 박 후보가 8000원을 냈고 상인이 당황했다"라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가리비와 조개, 꽃게 등 푸짐한 해산물을 산 뒤 8천 원을 들고 있는 박 후보의 사진은 소셜미디어에 퍼졌고, '세상 물정 모른다'는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당시 실제 상황은 좀 달랐습니다. 박근혜 후보에겐 8천 원 밖에 없어 조윤선 선거캠프 대변인이 5만 원을 건네줬고, 박 후보가 상인에게 5만 원을 냈습니다. 박근혜 캠프에서는 언론에 공개되지 않은 영상을 찾아 오만원권 지폐를 줬다면서 반박하기도 했습니다.
<경향신문> 페이스북이 '경주 방문 박 대통령, "흙 피하며 많이 놀랐죠?" 위로'라는 제목으로 링크한 기사의 원문은 '박 대통령 경주 지진 현장 방문...특별재난지역 선포 검토하라'는 다른 제목의 기사였습니다. 이 기사 본문에는 페북 제목과 달리 흙과 관련된 얘기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사진에는 '경호원이 박 대통령이 진흙을 밟아 묻지 않도록 뒤에서 붙잡고 있다'는 설명이 있었습니다.
▲ 경향신문 페이스북이 링크한 원본 기사 제목과 사진 | |
ⓒ 경향신문 캡처 |
현장에 가지 않은 기자가 현장 상황을 제대로 알기는 힘듭니다. 그러나 기자라면, 최소한 교차 검증을 해야 합니다. 또 혹시 다른 이유는 없었는지 살펴보고 기사를 작성해야 할 의무는 있습니다. 2012년 박근혜 후보의 부산 자갈치 시장 사진이나 이번 박근혜 대통령의 경주 방문 사진을 보면 무조건 비판을 하기 위해 앞뒤 가리지 않고 뛰어들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이 글을 쓰는 기자도 개인적으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갖고 있진 않습니다. 하지만 무턱대고 그녀를 비난하거나 나쁜 사람으로 몰 수는 없습니다. 최소한의 합당한 근거와 자료를 가지고 비판하려고 애를 씁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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