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다음주의 질문
황준범
정치데스크 jaybee@hani.co.kr

최근의 ‘최순실 의혹’ 사태를 바라보며 한 인사가 들려준 10여년 전의 일화다. “박근혜 당시 국회의원의 참모들을 한자리에서 만날 일이 있었다. 어떤 여자가 체어맨을 타고 나타났다. 박 의원도 체어맨을 타고 다닐 때였다. 정윤회 비서실장과 지금의 청와대 ‘문고리 실세’들도 함께 있었는데 그 여자가 가장 당돌한 태도였다. 그게 최순실이라는 걸 나중에 알았다.”
이 인사는 “최순실 힘이 막강했다. 지금 청와대에 있는 3인방이라는 사람들은 그 신하로 보일 정도였다. 그 뒤 박 의원이 당 대표도 하고 대통령까지 됐으니 최순실 힘이 얼마나 굉장해졌겠냐”고 말했다.
최순실씨의 힘이 어디까지인지는 더 지켜볼 일이지만, 그가 박근혜 대통령과 얼마나 각별한 사이일지는 짐작할 수 있다. 박 대통령은 어머니를 잃은 20대 초반에 4살 어린 최씨를 만나 지금까지 40여년을 고락을 함께했다. 더구나 최씨는 박 대통령이 ‘멘토’처럼 따랐던 고 최태민 목사의 딸이다. 혼자서는 옷을 사지도, 머리 손질을 하지도 못하는 박 대통령 곁을 수족처럼 지켜온 게 최씨다. 부모 잃고, 친동생들과도 사이 틀어지고, 그 자신 결혼도 하지 않은 박 대통령에게 최씨는 혈육 이상의 존재일 것이다. 그런 피붙이 같은 사람이 주얼리숍에 가서 브로치 사다주고, 옷 맞춰주고, 관저에 들어가서 같이 밥 먹고 연속극 본다 한들 문제될 건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22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대통령 주재 수석 비서관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박근혜 대통령이 22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대통령 주재 수석 비서관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하지만 거기까지면 좋았을 것을. 요즘 나오는 얘기들을 보면 최씨는 손을 너무 뻗었다. 대통령과의 친분을 공적인 영역에까지 활용한 정황들이 드러나고 있다. 정치권의 한 인사는 “박근혜 대통령에게는 박지만도 박근령도 아닌 최순실이 ‘친인척 중의 친인척’이다. 모든 정권의 성패는 친인척 문제로 귀결되는데 결국 박근혜 정권도 올 데까지 온 것 같다”고 말했다. 김영삼(아들 김현철), 김대중(아들 김홍일·홍업·홍걸), 노무현(형 노건평), 이명박(형 이상득) 등 전직 대통령들은 모두 임기말 또는 퇴임 직후 친인척이 비리로 사법처리 당하는 전례를 쌓았다. 박 대통령에게 이번 일은 ‘비선 실세 의혹’을 넘어 ‘임기말 친인척 비리’의 경로에 접어드는 위중한 사태라는 얘기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은 이번에도 ‘묵살’로 돌파할 태세다. 박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난무하는 비방과 확인되지 않은 폭로성 발언”이라고 확실한 지침을 내렸으니, 주변 누구도 대통령에게 “이렇게 넘어갈 일이 아닙니다”라고 막아서지 못할 것이다. 가뜩이나 이번 사안은 박 대통령과 최순실씨 관계의 특수성 때문에, 참모들이 말을 꺼내기란 더 어려울 게다. ‘최순실 문제’ 앞에서 유독 박 대통령 참모들은 쩔쩔매다 못해 안쓰러운 모습을 보여왔다. 박 대통령이 승마협회 문제와 관련해 2013년 8월 유진룡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나쁜 사람들이라더라”며 국장·과장을 경질할 것을 직접 요구했다고 <한겨레>가 2014년 12월 보도했을 때, 청와대는 “확인하기 어려운 내용”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승마하는 최순실씨의 딸이 연관된 문제였다. 당시 진땀 빼던 청와대 대변인은 지금은 새누리당 원내대변인으로서 최순실 사태에 대해 “의혹 부풀리기 정치 공세”라며 또 허우적대고 있다.
하지만 대통령이 외면한다고 조용해질 일이 아니다. 정권 내부에서 폭탄 터지는 소리는 잦아지고 있다. 현 정부에서 임명된 홍기택 전 산업은행장은 “청와대 서별관회의에서 대우조선해양 지원을 결정했다”고 폭로했고, 박 대통령이 임명한 이석수 특별감찰관은 조사 내용을 언론에 알렸다는 이유로 ‘국기 문란 사범’으로 내몰리자 불만을 표시하며 사표를 냈다. 현 정부 첫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을 지낸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청와대 공격에 입을 열기 시작했다. 정권 실세 최경환 의원실 인턴의 중소기업진흥공단 특혜채용 의혹과 관련해 박철규 당시 이사장은 ‘외압 없었다’는 진술을 번복하고 ‘최 의원이 합격 처리를 지시했다’고 법정에서 폭로했다. 남은 1년5개월 동안 언제 어디서 어떤 폭탄이 터질지 모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