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게이트’가 정국의 핵으로 떠올랐다. 청와대가 전국경제인연합회 소속 재벌 대기업의 팔을 비틀어 800억원 가까운 거금을 모아 재단법인 미르와 케이(K)스포츠를 설립, 여기에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로 알려진 최순실(60·최서원으로 개명)씨가 개입했다는 의혹이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다.
지난 20일 한겨레가 최순실 실명을 공개하면서 파문을 일으켰고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우병우 민정수석의 청와대 입성에도 최씨가 관여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비선 실세들의 국정 농단 사건으로 비화하고 있다.
국내 언론보다 앞서서 두 재단 설립과 모금 과정에 최씨가 개입돼 있다는 의혹을 제기한 언론이 있다.
▲ 지난달 21일자 선데이저널 1038호. |
이 매체는 지난달 11일 “검찰은 본국 조선일보 고위직 중 한 사람이 대우조선해양 남상태 전 대우조선해양사장의 연임로비에 관여했다는 의혹도 들여다보고 있다”며 ‘조선일보’를 언급했으며 고위직 간부는 송희영 전 조선일보 주필로 드러났다. 국내 언론보다 두어 발짝 앞서 보도를 내놓고 있는 것이다.
미디어오늘은 21일 선데이저널의 연훈 발행인에게 서면 인터뷰를 요청했다. ‘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BBK 주가 조작 사건을 최초로 보도하는 등 한국의 최고 권력을 상대로 탐사보도를 펼쳐온 기자다. 아래는 그와의 서면인터뷰 일문일답이다.
- 선데이저널은 지난달 ‘최순실 개입설’을 처음으로 제기했다. 기사 소스는 청와대 내부였다. 구체적인 증거를 밝히지 않아 반신반의했던 것도 사실이다. 당시 청와대 측과 접촉했던 것인가?
“청와대 고위직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복수로 확인했다. 구체적인 증거나 팩트가 없다고 느낄 수 있지만, 권력의 핵심부에서 이미 이런 소문이 나돌고 있다는 것 자체가 청와대 기강이 어느 정도인지 보여준다는 차원에서 의미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미 박근혜 정권에서 최순실이 스타렉스 밴(van)을 타고 비밀통로를 통해 자유롭고 빈번하게 청와대를 출입하고 있다는 사실은 청와대 경비까지도 알고 있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 조선일보 고위간부가 대우조선해양 비리 사건에 연루됐다는 보도(8월11일)도 선데이저널이 가장 먼저였다. 비결은 무엇인가?
“역설적으로 한국 언론 때문이 아닐까. 한국 언론이 쓰지 못하거나 안 쓰는 소스들을 제보해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제보가 들어오면 30년 넘게(올해는 선데이저널 창간 34주년이다.) 구축한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해 확인 작업을 한다. 대우조선해양 비리사건도 자체 내부에서 제보하기도 했으나 특히 은행권에서 자세하게 제보해 왔다. 그리고 아무래도 언론자유가 있는 미국법의 적용을 받다보니 보도가 자유롭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정의로운 한국의 기자나 검찰, 경찰 등 다각도로 제보해 오고 있다. 한국은 언론자유가 제약받는 지점이 많지만 미국은 그런 면에서 의혹제기가 조금 더 자유롭고, 공공의 알권리를 보다 포괄적으로 인정한다. 대신 허위사실로 드러나면 언론이 거기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한다.”
▲ 지난달 14일자 선데이저널 1037호. |
“대통령의 성향을 봤을 때 이번 정권에서 진실이 드러나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만 정권이 바뀌게 되면, 교체는 아니어도 적어도 이번 정부가 끝나면 반드시 문제가 될 것이다.”
- 후속 보도로 무엇을 주목하고 있나?
“굳이 말하자면 최순실 씨다.(그가 밝힌 후속 보도 제목은 ”미르 케이스포츠재단은 박근혜 정권의 BBK인가?“였다. 그는 BBK를 무려 100회 이상 보도했다.) 대통령 본인은 깨끗하다고 하지만 주변에는 대통령을 등에 업고 호가호위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최씨도 그중 한 사람이다. 처음부터 멀리해야 할 인물을 너무 가깝게 의지하다 결국 부메랑이 되지 않았나 싶다.”
- 최순실을 추척하면서 느꼈던 압력이나 압박, 특히 한국 권력의 압박은 없었나?
“최씨에게서는 없었다. 다만 수년 전 정윤회씨 측에서 연락받은 적은 있다. 2013년 즈음인데, 이른바 문건 파동이 터지기 전이다. 당시 정씨가 대통령 인도네시아 해외순방 기간에 순방단에 끼지는 않았어도 순방기간에 해당 순방국에 있었다는 의혹을 보도했는데 자신이 정윤회라는 인사가 전화를 걸어 ‘인도네시아에 간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여권 사본을 보내주면 정정기사를 실어주겠다’고 했으나 그 뒤 연락이 오질 않았다. 그 외는 특별한 권력의 압박이나 회유는 없었다.”
- 최순실 기사와 관련해 제기된 소송은 없었나?
“없다. 미국에 등록돼 있는 매체라 번거로운 모양이다.”
- 미국 한인 사회에서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은 어떠한가?
“한마디로 관심이 없다. 최순실 하면 최태민의 딸이고 아버지 대를 이어 딸이 ‘박근혜 대통령을 잘 모시고 있다’는 정도로 알고 있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12일 오전 청와대에서 제35회 임시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
“밀실, 비선이란 말 자체가 나오는 게 문제 아닌가. 대통령은 나를 따르라며 국민들을 가르치려고 한다. 그런데 지침만 있고 소통이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아버지에 대한 재평가를 상당히 중요한 가치로 여긴다. 정부 정책도 이 부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새마을운동, 경제개발 계획이 다 그런 거 아닌가. 박근혜 정부가 성공하려면 박정희 전 대통령이 과오라고 평가받는 부분에 있어서 선을 긋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런데 지금 국민들은 대통령에게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부정적 모습, 이를 테면 독재, 소통부족, 밀실행정, 인의 장막 등을 본다.”
국내에서는 조선일보와 TV조선이 각각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의 비리 의혹과 케이(K)스포츠·미르 재단 의혹을 터뜨린 게 시작이었다. 이에 청와대는 송희영 전 조선일보 주필의 대우조선 관련 호화 향응 및 인사 청탁 의혹으로 반격을 가했다.
선데이저널은 조선일보와 청와대의 피 튀기는 ‘치킨게임’에 대해 지난 1일 “청와대의 경우 방상훈 사장 일가의 일탈 행위를 만지작거리고 있다는 후문이고, 조선일보의 경우 본지가 보도한 문화재단 미르와 최순실씨와의 연관 관계를 놓고 후속 취재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현재 조선일보는 ‘최순실 게이트’에 침묵하며 납작 엎드린 모습이다. 연훈 발행인은 조선일보에 대한 청와대의 추가 폭로 가능성과 관련해 “계속 취재 중”이라고만 말했다.
▲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왼쪽)과 송희영 전 조선일보 주필(오른쪽). ⓒ연합뉴스 |
“믿을만한 정보니 썼지, 안 그랬으면 썼을까. 지금 상황에서 구체적으로 언급하기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
- 조선일보에 대한 청와대의 전면전과 관련해 취재는 어디까지 진행됐나?
“말하기 어렵다. 계속 취재 중이다.”
- 우병우에 대한 검찰 수사는 어떻게 진행될 것으로 보고 있나?
“들리는 정보로는 넥슨과의 부동산 거래는 무혐의, 정강의 배임 횡령과 관련해서는 약식기소선에서 마무리된다고 한다. 덮기는 애매하고 파헤치기는 어려우니 그 정도에서 절충점을 찾은 게 아닌가 싶다. 민정수석 자리를 유지하는데 정상적 수사가 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게 넌센스다.”
- 선데이저널 기사들을 보면, 검찰, 청와대 등 국내 핵심 권력뿐 아니라 꼼꼼한 자료에 기반하고 있다. 취재하는 데서 겪는 어려움이 있나?
“한국 언론도 마찬가지지만 확인 작업을 거쳐야 하는데 아무래도 미국에 있으니 한계가 있는 부분은 있다. 그래도 통신수단이 발달해 과거보다는 수월해졌다.”
- 이번 선데이저널의 기사가 국내에서는 주목을 받지 못했던 것 같다. 아쉬움은 없나?
“당연히 아쉬운 부분이지만 주목을 끌기위해 기사를 쓰는 게 아니기 때문에 주목을 받던 무시를 하던 개의치 않고 묵묵히 우리의 길을 갈 뿐이다. 과거 전두환 군부 독재 시절부터 지금까지 줄곧 34년 동안 한길을 가고 있다.(독재 정권을 비판하던 연훈 발행인은 전두환 정권 때 취재차 귀국했다 공항에서 체포돼 10개월 옥살이를 한 바 있다.)”
- 한국 언론에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한국 언론이나 기자들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한다면 ‘선데이저널’ 기사를 인용하되 창피스럽더라도 가급적 바이라인을 달아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번 한겨레 기사도 마찬가지지만 인용까지는 아니어도 언급 정도는 필요하다고 본다. 그런 부분이 아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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