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외교 존재감 드러낸 김여정
현송월과 달리 단아하며 고급 패션
시종일관 꼿꼿함 속 여유로운 표정
발언 자제하면서도 중요문제는 주도
미국 언론 “북한의 이방카” 큰 관심
전문가 “한반도 문제 핵심 키 부상”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 특사로 파견된 김여정 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평창 외교’를 마치고 11일 북으로 돌아갔다. 북한 내 정치적 위상을 확실히 보여줌과 동시에, 로열패밀리라는 점까지 당당히 과시하며 국제무대에 성공적으로 데뷔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 평화공세로 김정은 체제의 부정적 이미지를 해소하려는 북한의 노력이 성과를 거둔 것이다.
김여정 제1부부장 방남은 그 자체로 화제였다. 김일성 주석-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 이어지는 북한 로열패밀리 직계가족으로선 첫 남쪽 방문이자, 북한을 통치하는 오빠 김정은 위원장의 ‘메신저’ 역할을 할 것이란 기대 때문이었다. 김 제1부부장은 9일 김정은 위원장 전용기편으로 인천국제공항에 첫발을 내디딘 역사적 순간부터 미소를 잃지 않았다. 개회식은 물론 2박 3일 체류 동안 수 차례 열린 남측 당국자와의 식사 자리나 이동 과정에서도 특유의 ‘반달웃음’을 볼 수 있었다.
단아한 패션도 주목 받았다. 화려한 복장으로 위상을 과시하기보다는 무채색 계열 의상과 수수한 메이크업으로 오히려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자아냈다는 평이다. 지난달 사전점검단 방남 당시 화려한 패션과 메이크업으로 관심을 끌었던 현송월 북한 삼지연관현악단장과도 자연스레 비교됐다. 고명현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북한은 세련된 감각을 지닌 김여정을 통해 북한이 과거의 모습에서 달라졌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을 것”이라고 했다.
김 제1부부장은 “서울이 처음이지만 낯설지는 않다”고 말하기도 했다. 10대 시절 김정은 위원장과 함께 스위스 유학 경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김 제1부부장의 국제 경험이 작용한 대목이었다.
북한 실세로서 카리스마도 관심을 끌었다. 김 제1부부장은 시종일관 꼿꼿한 자세로 상대를 응시하곤 했다. 인사할 때에도 좀처럼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오히려 턱 끝을 약간 들어올려 당당함을 보이려 했다. 여유로운 표정과 태도 역시 눈에 띄었다.
공개 석상에서는 말을 극도로 자제했지만, 중요한 문제를 논할 땐 주도적인 모습을 보였다. 방남 이튿날인 10일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만난 김여정 제1부부장은 본인을 ‘김정은 위원장의 특사’라고 밝힌 뒤 대화를 이끌기도 했다. 그 전까지 남측 당국자와 대화 시 대체로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대화를 주도한 것과는 상반된 모습이었다.
전문가들은 김여정 제1부부장의 데뷔 무대에 ‘합격점’을 줬다.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은 “북한의 평화공세 최전선에 김여정이 서 있는 셈인데 올림픽이라고 하는 최대 국제 행사에서 보여준 김 제1부부장의 표정 관리나 제스처는 성공적이었다”며 “역사적으로 본다면 김여정 제1부부장이 남북관계, 한반도 핵 문제에서 키를 쥔 인물로 평가 받을 수도 있겠다”고 내다봤다.
외신도 북한의 김여정 카드를 성공적이라 평했다. 미국 CNN 방송은 10일 ‘김정은 여동생이 올림픽에서 관심을 독차지하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이번 올림픽에 ‘외교 댄스’ 부문이 있다면 김정은 여동생이 금메달 후보”라고 평가했다. 김 제1부부장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딸에 빗대 ‘북한의 이방카’라고 칭하며 “김여정이 미소와 악수, 대통령 방명록에 남긴 따뜻한 메시지로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같은 날 “북한의 ‘정치 공주’이자 ‘퍼스트 시스터(first sisterㆍ1인자의 여동생)’인 김여정이 한국 사람들 예상과 달리 권력이나 부를 드러내지 않았다”고 소개했다.
정부도 김여정 제1부부장 ‘격’에 맞게 초특급 대우를 했다. 북측 고위급 대표단은 서울 광진구 워커힐호텔 꼭대기 층(17층)을 숙소로 사용했다. 김 제1부부장은 국빈급 VIP 전용으로 운영하는 17층 ‘프레지덴셜 스위트’에 머문 것으로 알려졌다.
호텔 17층은 철저히 통제됐다. 호텔 측이 엘리베이터 버튼 중 ‘17층 버튼’은 아예 작동하지 않도록 해놔 일반 투숙객이 올라갈 수 없도록 했다. 대표단은 하우스키핑 서비스(House Keepingㆍ객실 청소 및 정리)도 이용하지 않았다. “호텔 직원에게 객실이 공개되는 것을 극도로 꺼려서”라는 게 호텔 관계자 설명이다. 조식은 16층 라운지에서 해결했고, 국가정보원 경호인력이 일반인 출입을 막았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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