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검찰이 이명박 전 대통령과 삼성의 정경유착에 대한 수사에 나섰다. 이명박이 실소유주로 추정되는 자동차 부품업체 다스의 미국 소송비용을 삼성이 대신 납부했다는 것이 의혹의 핵심이다. 이 사건의 뿌리는 2007년 터진 삼성 비자금 사건이다. 이건희는 이 사건으로 2009년 8월 유죄판결(배임과 조세포탈죄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1100억 원 원)을 받았다. 그리고 그 해 12월 이명박은 오로지 이건희 단 한 명만을 사면하는 이른바 ‘원 포인트 1인 사면’을 실시했다. 삼성이 다스의 소송비용을 대납한 대가로 이건희의 사면을 따냈다는 추정이 충분히 가능한 대목이다. 검찰 수사를 계기로 삼성 비자금 사건의 전모를 3회에 걸쳐 검토해 보기로 한다.
2008년 4월 18일 삼성 특별검사 조준웅이 삼성 비자금 사건에 대한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준웅은 이날 에버랜드를 ‘애벌랜드’라고 잘못 발음해 좌중을 웃겼지만, 수사 결과는 절대 웃을 수 없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었다. 가장 중요한 대목은 조준웅 특검이 이건희를 구속 기소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조준웅은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범죄 사실은 배임행위로 인한 이익이나, 포탈한 세액이 모두 천문학적인 거액으로서 법정형이 무거운 중죄에 해당하지만 장기간 내재되어 있던 불법행위를 현 시점에서 엄격한 법의 잣대로 재단하여 형사상 범죄로 처단하는 것으로 그 조직 구성원의 개인적 탐욕에서 비롯된 전형적인 배임, 조세 포탈 범죄와는 다른 측면이 있다. 평등한 법 적용이 그 법의 적용을 받는 대상이 갖고 있는 개별적 특수성이나 시대적 상황 등 다른 요소는 전혀 외면한 채 기계적으로 똑같이 적용하라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려우니 좀 쉬운 말로 풀어 써보자. 조준웅의 결론은 △이건희의 범죄 사실은 ‘무거운 중죄’이지만 △다 지난 일이니 지금의 잣대로 판결할 수는 없고 △이건희가 저지른 배임과 탈세는 개인적 탐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므로(응?) △일반인들과 똑같이 평등하게 법을 적용해서는 안 된다 정도로 해석될 수 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아니 ‘죄는 미워하되 죄인이 이건희라면 미워하지 말라’ 뭐 이런 뜻인가?
참여연대는 “특검의 판단은 상식적으로도 모순될 뿐더러 의도적인 봐주기를 위한 결론”이라고 주장했고, 경실련은 “법과 원칙을 저버린 면죄부 수사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저항했으며, 경제개혁연대는 “승복할 수 없는 특검의 '삼성 봐주기' 결론이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결론은 뒤바뀌지 않았다. 이재용 2심 선고에 버금가는, 아니 그 보다 더 황당한 이건희 봐주기 수사였다. 조준웅은 그렇게 이건희의 잘못을 역사 속에 묻어버리려 했다.
그런데 이 어이없는 수사를 이끈 조준웅 특검은 2007년 12월 20일에 임명됐다. 이명박이 당선된 직후이긴 했어도, 조준웅을 선택한 주체는 노무현 대통령이었다는 뜻이다. 당시 청와대 앞으로 모두 세 명의 후보 명단이 도달했다. 무슨 일이 있었기에 노 전 대통령은 이런 허접한 수사 결과를 만들어 낸 조준웅을 특별검사에 임명했을까?
셋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데…?
당시 특검 후보를 추천할 권한을 가진 곳은 대한변호사협회(변협)였다. 변협은 원래 보수적 성향이기도 했지만 삼성 비자금 사건에 대해서는 더더욱 간여해서는 안 되는 단체였다. 비자금 사건은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 고백으로 시작됐는데 변협은 “의뢰인의 비밀을 누설했다”는 이유로 김용철에 대한 징계를 거론했던 곳이기 때문이다.
변협이 추천권을 갖게 된 이유는 이렇다. 당시 여당이었던 대통합민주신당은 특검 추천권을 대법원장이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은 국회의장 산하 후보추천위원회에 특검 추천권을 주는 안을 내놓았다. 반면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은 추천 권한을 대한변협에 줘야 한다고 맞섰다. 결국 다수당이었던 한나라당이 특검법을 통과시켜주는 대신 추천권을 변협에 돌리는 데 성공했다.
추천 권한이 변협에 넘어가는 순간 삼성 비자금 특검은 절대 성공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변협이 올린 세 명 후보는 도저히 누구를 선택할 수 없을 정도로 엉망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지금 평가해보면 당시 특검 후보 면면은 실로 화려하기 짝이 없었다. 공안검사 출신 조준웅을 빼더라도 나머지 두 명이 정홍원 법무연수원장과 고영주 전 남부지검장이었다.
정홍원이 누군가? 이후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의 공직자후보추천위원장을 맡았고, 박근혜 정부의 초대 국무총리에 임명된 인물이다. 세월호 참사가 터져 사임을 표명했지만 안대희, 문창극 두 후보자가 연달아 낙마하며 총리를 2년이나 맡았다. “왜 그만두고 싶은데 그만두지를 못하니”라는 갖은 비아냥거림을 들었다. 정홍원이 특검이 됐다한들 비자금 사건이 제대로 밝혀졌을 리가 없었다는 이야기다.
고영주는 또 누군가?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을 맡아 MBC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던 바로 그 고영주다. 고영주는 “문재인은 공산주의자”라는 황당한 발언으로 재판을 받는 와중에도 국회에서 “문 대통령이 평소 소신대로 했으면 우리나라는 적화의 길을 갔을 것"이라는 놀라운 발언을 내뱉었다. 고영주가 특검이 됐어도 조준웅 특검보다 나은 결과가 나올 리가 없었다.
변협이 조준웅-정홍원-고영주 트리오를 후보로 올린 것은 참여정부에 대한 농락, 혹은 조롱에 가까웠다. 2007년 12월 ‘한겨레21’의 보도를 살펴보자.
“청와대 관계자는 ‘(삼성 특검에선) 검찰도 주요 수사 대상인데, 세 사람 모두 검찰 출신으로 채워 최소한의 구색도 맞추지 않았다’며 ‘대통령의 임명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말했다. 법조계 안팎에선 변협이 법규상의 추천권을 남용해 대통령을 조롱했다는 말까지 나왔다. 청와대 관계자는 ‘뻔히 짐작 가는 바가 있다’고도 했다. 삼성, 검찰과 한 덩어리의 이해관계에 얽혀 있는 변협이 검찰 논리에 충실한 인사를 특검으로 내세워 검찰이 크게 당하지 않도록 배려한 의도가 엿보인다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은 결국 내키지 않은 세 후보 중 조준웅을 선택했다. 처음에 청와대의 선택은 정홍원으로 기울었다. 하지만 정홍원은 변호사로 일하면서 삼성 관련 변호를 여러 차례 맡았다. 직접적인 이해관계자였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청와대의 선택은 셋 중 유일하게 삼성과 수임관계로 엮이지 않았던 조준웅으로 결정됐다.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이야기다.
이건희 풀어주고 아들을 삼성전자에 꽂은 엽기적 행각
그런데 이 황당한 스토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삼성과 수임관계가 없었다는 이유로 특검이 된 조준웅은 이건희에게 면죄부를 주고 변호사로 돌아왔다. 2009년 12월 이건희는 이명박으로부터 ‘1인 사면’이라는 큰 선물을 받았다. 그런데 이건희가 사면을 받은 지 고작 한 달 뒤, 조준웅의 아들이 삼성전자 과장으로 입사를 하는 엽기적 상황이 연출됐다.
당시 조준웅 아들은 36세였다. 서울법대를 나왔지만 10여 년 동안 사법고시에서 낙방한 장수 고시생이었다. 조준웅의 아들은 고시를 포기하고 공익요원으로 군 복무를 마친 뒤 중국으로 어학연수를 떠난 상태였다.
사법고시를 10년 이상 낙방한 사람을 대기업에서 사원도 아니고 과장으로 덜컥 채용하는 일은 단언컨대 없다. 그런데 어떤 직장 경력도 없는 사회 초년병 조준웅의 아들은 ‘사법고시 10년 낙방’이라는 경력만으로 삼성전자 과장으로 입사를 하는 기적을 연출했다.
채용 절차도 황당했다. 조준웅의 아들은 중국 삼성전자에 입사했는데, 중국 삼성전자는 2009년 12월 1일~15일 경력채용 입사지원서를 받았다. 이때 다섯 명이 지원했다. 조준웅의 아들은 지원자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다. 삼성은 기다렸다는 듯이 다섯 명의 지원자를 모두 탈락시켰다. 그리고 입사지원 기간이 한참 지난 2010년 1월 6일 조준웅 아들이 지원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딱 9일 뒤인 1월 15일 삼성은 그를 채용했다.
삼성은 이에 대해 “조준웅 아들 채용은 특검과 무관하다”고 밝혔다. 정말 궁금해서 묻는 건데, 삼성 당신들은 그 말이 믿어지나? 2년 전 아버지 조준웅이 이건희에게 면죄부를 주고, 한 달 전 그 이건희가 사면을 받아 자유를 얻었다. 그리고 한 달 뒤 조준웅의 아들이 삼성전자에 과장으로 취직했다. 이게 무관한 일이라고? 퍽이나 무관도 했겠다.
조준웅 특검팀이 애초부터 사건을 제대로 파헤칠 가능성은 제로였다. 특검은 이건희에게 면죄부를 줬고, 그 특검 수장의 아들은 굴지의 대기업 삼성에서 승승장구하며 살고 있다. 삼성은 이렇게 대놓고 한국 권력층을 관리했다. 이 부당한 경제 권력과 사법 권력의 거래가 오늘날 한국 사회를 엉망진창으로 만든 주범이라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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