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박원순 서울시장은 정명훈 서울시립교향악단(시향) 상임지휘자 겸 예술감독을 만나 2012년부터 일부 급여를 삭감하는 3년 재계약에 구두 합의했고, 오는 27일에는 재계약 안이 최종 확정될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재계약 합의는 문제의 본질을 외면한 미봉책이라는 주장이 제기된다. 정 지휘자의 내년 급여는 올해에 비해 3억 원 정도 줄어 17억 원 안팎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고액 급여도 문제지만 서울시향의 파행적인 운영체제가 더 문제라는 관점도 있으며 심지어 일부에서는 정 지휘자의 고용 자체를 신중하게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까지 말한다.
지난 11월 17일 서울시의회 행정감사에서 민주당 장정숙 의원이 "시민 세금으로 지급되는 정 지휘자의 급여가 과다하다"고 지적한 후, 연출가 김상수씨가 <한겨레>와 <프레시안> 등에 이를 문제 삼는 글을 게재했다. 김상수씨는 12월 들어 <미디어 오늘>에 매우 상세하고 신랄한 칼럼을 4회에 걸쳐 연재하면서 정 지휘자의 고액 급여와 서울시향 운영의 개선을 촉구했다. 이에 대해 <중앙일보>를 비롯한 보수언론들은 대체로 정 지휘자의 고액 급여나 운영방식이 문제될 게 없다는 투로 보도했다.
<한겨레>가 보도한 서울시향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정 지휘자는 연봉과 활동비로 20억 4200만 원을 받았다고 한다. 정액 연봉 외에 1회 당 지휘수당으로 4244만 원, 유럽 출장 때마다 1등석 비행기 왕복표 2장, 매니저의 유럽 왕복 비즈니스 클래스 1장, 유럽 상근 보좌관 활동비 3만 유로(약 4500만 원)에다 해외협연자 섭외비 등 사용 근거가 명시되지 않은 4만 유로(약 6000만 원)도 정 지휘자의 계좌에 입금된 것으로 밝혀졌다.
정명훈 "나는 음악밖에 모르는 사람"
정 지휘자는 이 문제에 대해 극도로 말을 아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정 감독은 논란에 일체 입을 닫고 있다. 그를 공격한 연출가 김씨의 칼럼이 나오자, 시향 상임작곡가 진은숙씨(유럽 체류중)가 '클래식 사정을 모르는 근시안적 발상'이라는 반박 글을 시향에 보냈으나, 정 감독은 공개를 막고 시향 안에 함구령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한겨레> 12.12자 기사)
정 지휘자는 16일 박원순 서울시장과 재계약을 합의하고 나서 마련된 약식 기자회견에서도 고액 연봉 논란에 대해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강 들었지만 저는 구체적으로 말하기가 힘들다"며 "솔직히 믿기 힘들겠지만 저는 음악밖에 모르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지난 한 달 남짓 인터넷과 트위터에서는 정 지휘자에 대한 격렬한 찬반 논쟁이 벌어져왔다. 확실한 통계를 낼 수는 없지만 대체로 정 지휘자를 비판하는 편보다는 두둔하는 편이 많은 것 같다. 특히 문화평론가 진중권씨는 정 지휘자에 대해 거의 외경하는 수준의 태도를 보이는 점이 이채롭다. 그는 '마에스트로(거장, 명지휘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정명훈은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 '예술은 예술의 논리로 풀어야 한다'등의 말로 정 지휘자를 적극적으로 비호하고 나섰다.
정명훈은 과연 '마에스트로'인가
찬성론자들은 세계적 수준의 지휘자 정명훈이 아시아 최고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서울시향을 맡아 일하는 데에는 각별한 노고가 소모되는 것이므로 그에 합당한 대우를 해줘야 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에 반대하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먼저 정 지휘자의 급여는 베를린 필하모니 같은 유럽 최고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급여보다 훨씬 많으며, 미국에서도 굴지의 극소수 지휘자가 받는 급여와 비슷한 수준이다. 참고로 2008~2009년 뉴욕 필하모니의 지휘자 로린 마젤은 약 37억 원, 다음으로 보스턴 심포니의 지휘자 제임스 레바인은 약 20억 원을 받았다고 한다.
아예 노골적으로 정 지휘자가 위에 언급된 지휘자들처럼 과연 세계 최고 수준의 지휘자인지에 회의를 나타내는 관점도 있다. 더욱이 구미와 한국의 국민소득 차이를 감안할 때 그의 급여는 지나치게 높다고 말한다. 또한 정 지휘자의 급여가 국내의 다른 지휘자인 곽승(대구시향), 금난새(인천시향), 함신익(KBS 교향악단) 등보다 많을 수는 있지만 그것이 무려 5~10배의 격차를 가진다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된다는 주장도 있다. 그들은 내년부터 삭감하기로 한 정 지휘자의 급여도 사실은 정식 급여와는 거의 무관한 가족 항공료, 유럽 주재 보좌관 연봉 등으로서 애초부터 없었어야 했던 것이었다고 말한다.
나는 정명훈이 세계적 수준의 지휘자인지 아닌지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다만 오케스트라 음악을 감상하고자 하는 음악 애호가에게 만약 일정한 수, 구체적으로 말해서 대략 10명 정도의 세계적 지휘자를 선택해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과연 정명훈은 어느 정도의 순서에 들 수 있을지? 물론 나는 일본인인 오자와 세이지와 함께 한국인 정명훈을 선택할 것이다. 하지만 외국인일 경우 얼마든지 나와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을 터이다.
문제의 본질은 고액 급여가 아니다
나는 문제의 본질은 고액 급여보다 정 지휘자 특유의 계약 조건과 급여 지불 방식에 있다고 본다. 정명훈의 작년 급여는 기본연봉 2억2000만 원에 지휘료와 판공비 등으로 18억2000만 원이 따로 지불되었다. 그런데 오케스트라에서 객원지휘자가 아닌 상임지휘자의 급여는 전체 연봉을 정하면서 의무 연주 횟수를 함께 규정하는 것이 상식이자 관행이다.
하지만 정명훈의 경우 연봉과 지휘료를 구분하여 따로 지급하도록 계약되었다. 이것은 연봉은 상임지휘자처럼 받고 회당 지휘료는 세계적인 객원지휘자 대우(회당 4000만 원 이상)로 받는 특혜적인 구조다. 이렇게 될 경우 원천징수되는 근로소득세는 연봉 2억2000만원에서만 내고, 이보다 턱없이 많은 지휘료는 세금 3.3%만 낸 채 이듬해 종합소득세로 환산된다.
한편에서는 시장 논리를 동원하여 정 지휘자를 옹호하기도 한다. 정 지휘자가 영입되기 전인 2004년 서울시향의 정기공연 1회당 유료 관객수는 466명이었는데, 지난해에는 1274명이었고 올해는 1800명을 내다보고 있다고 한다. 이에 따라 40억 원 이상의 수입이 창출되었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비약적인 성장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6년 전 30억 원 이하였던 서울시향의 예산도 그동안 131억 원으로 대폭 증액되었다. 내년에는 서울시 지원 예산에다 관람료 수입을 합쳐 180억 원 정도의 예산이 편성될 것으로 추산된다. 야박한 계산 같지만 서울시민 중 서양음악, 그것도 오케스트라 음악의 애호가는 얼마나 될까? 불과 수만 명이 채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1000만 명 서울시민이 예외 없이 1년에 1300원씩의 돈을 내는 셈이라면 이것은 합당한 것일까?
정 지휘자를 두둔하는 사람들은 그가 지휘자뿐 아니라 예술감독 직을 겸하고 있다는 점을 들기도 한다. 그래서 그는 연주뿐 아니라 시향에 대한 스폰서 유치에도 남다른 노고를 기울인다고 한다. 그런데 계약서에는 '서울시립교향악단의 홍보마케팅을 목적으로 자신의 초상권을 사용하여 스폰서를 유치할 경우, 자신의 초상권이 전체 홍보마케팅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따라 스폰서 금액의 30%이내에서 상호 합의한 금액을 정명훈'에게 지불한다고 되어 있다.(<미디오 오늘> 김상수 칼럼 참조)
물론 서울시향의 유료 관객수가 늘어난 것은 정명훈이라는 이름값에다가 연주의 질 향상이 결정적인 몫을 했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얼마 전 라디오를 통해 서울시향의 연주를 듣고 대단히 흐뭇했던 적이 있다. 서울시향의 연주 기량이 정명훈의 지휘 덕분에 현저히 향상된 것은 틀림없는 일이다. 나는 서양악기 연주를 전공하는 친구에게 기량이 향상된 서울시향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런데 웬 일인지 친구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며 말하는 것이었다.
"우리 오케스트라가 잘하는 건 좋은 일이지. 그러나 비싼 돈으로 외국인 연주자를 사다가 소리를 좋게 하는 것이라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친구의 말이 사실이라면 정작 이것이야말로 정명훈의 서울시향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생각 들었다. 그런데 이것은 유감스럽게도 사실이었으며 이미 음악계에서는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었다.
정명훈의 서울시향은 필요할 때마다 외국의 연주자들을 일체의 경비를 부담하면서 초청하여 한국 단원에 합류시켜 연주하게 한다. 오케스트라에서 객원지휘자라는 말은 있지만 '객원연주자'라는 것은 없는 것으로 안다. 지금 서울시향의 악장은 프랑스 인으로서 프랑스 필하모닉의 악장도 겸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연주가 있을 때만 내한한다. 악장뿐 아니라 단원의 15% 이상이 고액의 외국인 초빙자로 구성되어 있다. 이것은 서울시향의 '소리'가 좋아진 이유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서울시민의 오케스트라'라고 하기는 좀 민망하지 않은가?
우리를 착잡하게 만드는 진중권과 정명훈
진중권씨를 비롯한 '정명훈 옹호론자'들은 "고액의 히딩크를 데려왔기에 한국 축구가 월드컵 4강까지 오르지 않았느냐?"고 말한다. 자국에서 개최한 대회에서 판정시비까지 일으키며 단 한 번 4강에 오른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최소한 히딩크는 외국인 선수들을 사와서 한국팀 실력을 높인 것은 아니지 않은가? 게다가 '예술은 예술의 논리로 풀어야 한다'면서 왜 이 경우에는 스포츠의 논리를 가져다 대는지.
"정명훈 가만 놔둬라. 그 만큼 잘났으면, 그 정도 받아도 된다. 예술가가 굳이 정치 입장을 물을 필요도, 그들에게 정치적 입장을 요구해서도 안 된다."(진중권)
진중권이 사려 깊다면 최소한 서울시향 문제에 관해서만은 언급을 자제했어야 한다. 아무리 그가 서양음악에 관해 해박하다고 할지라도 그는 이 글의 앞에서 정명훈의 연봉을 문제 삼는 것은 '클래식 사정을 모르는 근시안적 발상'이라며 정명훈을 서둘러 옹호한 서울시향 상임작곡가 진은숙의 동생 아닌가?
"그러니까, 당신들이 그 100만 명이나 촛불 들고 거리에서 서서 미국 쇠고기 안 먹는다고 시위하는 그런 사람들이란 말이죠? 40년 전에는 미국에서 뭐 안 갖다 주나 하면서 손 벌리고 있더니, 이제 와서는 미국산 쇠고기 안 먹겠다고 촛불 들고 서 있는 그 사람들. 그게 옳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게 말이나 되는...알았어요. 알았어."(목수정, <레디앙> '경악, 음악가 정명훈이 쏟아낸 말들')
이것은 지난 2009년 국립오페라 합창단이 해체되기 직전 목수정씨와 합창단원들이 파리의 호텔에 머무르는 정명훈 지휘자를 찾아가 지지서명을 요청했을 때 정 지휘자가 한 말이라고 한다. 지면상 전후 사정을 거두절미했지만 이런 말 속에는 정명훈의 내심이 일정 부분 담겨 있다고 보아 인용한 것이다.
그는 자기 말대로 정말 '음악밖에는 모르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음악밖에는 모른다는 말은 역사나 정치에는 어둡다는 뜻도 된다. 그렇다면 역사나 정치에 관해서는 일절 말하지 않았어야 옳았다.
지난 11월 17일 서울시의회 행정감사에서 민주당 장정숙 의원이 "시민 세금으로 지급되는 정 지휘자의 급여가 과다하다"고 지적한 후, 연출가 김상수씨가 <한겨레>와 <프레시안> 등에 이를 문제 삼는 글을 게재했다. 김상수씨는 12월 들어 <미디어 오늘>에 매우 상세하고 신랄한 칼럼을 4회에 걸쳐 연재하면서 정 지휘자의 고액 급여와 서울시향 운영의 개선을 촉구했다. 이에 대해 <중앙일보>를 비롯한 보수언론들은 대체로 정 지휘자의 고액 급여나 운영방식이 문제될 게 없다는 투로 보도했다.
<한겨레>가 보도한 서울시향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정 지휘자는 연봉과 활동비로 20억 4200만 원을 받았다고 한다. 정액 연봉 외에 1회 당 지휘수당으로 4244만 원, 유럽 출장 때마다 1등석 비행기 왕복표 2장, 매니저의 유럽 왕복 비즈니스 클래스 1장, 유럽 상근 보좌관 활동비 3만 유로(약 4500만 원)에다 해외협연자 섭외비 등 사용 근거가 명시되지 않은 4만 유로(약 6000만 원)도 정 지휘자의 계좌에 입금된 것으로 밝혀졌다.
정명훈 "나는 음악밖에 모르는 사람"
정 지휘자는 이 문제에 대해 극도로 말을 아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정 감독은 논란에 일체 입을 닫고 있다. 그를 공격한 연출가 김씨의 칼럼이 나오자, 시향 상임작곡가 진은숙씨(유럽 체류중)가 '클래식 사정을 모르는 근시안적 발상'이라는 반박 글을 시향에 보냈으나, 정 감독은 공개를 막고 시향 안에 함구령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한겨레> 12.12자 기사)
정 지휘자는 16일 박원순 서울시장과 재계약을 합의하고 나서 마련된 약식 기자회견에서도 고액 연봉 논란에 대해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강 들었지만 저는 구체적으로 말하기가 힘들다"며 "솔직히 믿기 힘들겠지만 저는 음악밖에 모르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지난 한 달 남짓 인터넷과 트위터에서는 정 지휘자에 대한 격렬한 찬반 논쟁이 벌어져왔다. 확실한 통계를 낼 수는 없지만 대체로 정 지휘자를 비판하는 편보다는 두둔하는 편이 많은 것 같다. 특히 문화평론가 진중권씨는 정 지휘자에 대해 거의 외경하는 수준의 태도를 보이는 점이 이채롭다. 그는 '마에스트로(거장, 명지휘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정명훈은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 '예술은 예술의 논리로 풀어야 한다'등의 말로 정 지휘자를 적극적으로 비호하고 나섰다.
정명훈은 과연 '마에스트로'인가
찬성론자들은 세계적 수준의 지휘자 정명훈이 아시아 최고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서울시향을 맡아 일하는 데에는 각별한 노고가 소모되는 것이므로 그에 합당한 대우를 해줘야 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에 반대하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먼저 정 지휘자의 급여는 베를린 필하모니 같은 유럽 최고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급여보다 훨씬 많으며, 미국에서도 굴지의 극소수 지휘자가 받는 급여와 비슷한 수준이다. 참고로 2008~2009년 뉴욕 필하모니의 지휘자 로린 마젤은 약 37억 원, 다음으로 보스턴 심포니의 지휘자 제임스 레바인은 약 20억 원을 받았다고 한다.
아예 노골적으로 정 지휘자가 위에 언급된 지휘자들처럼 과연 세계 최고 수준의 지휘자인지에 회의를 나타내는 관점도 있다. 더욱이 구미와 한국의 국민소득 차이를 감안할 때 그의 급여는 지나치게 높다고 말한다. 또한 정 지휘자의 급여가 국내의 다른 지휘자인 곽승(대구시향), 금난새(인천시향), 함신익(KBS 교향악단) 등보다 많을 수는 있지만 그것이 무려 5~10배의 격차를 가진다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된다는 주장도 있다. 그들은 내년부터 삭감하기로 한 정 지휘자의 급여도 사실은 정식 급여와는 거의 무관한 가족 항공료, 유럽 주재 보좌관 연봉 등으로서 애초부터 없었어야 했던 것이었다고 말한다.
나는 정명훈이 세계적 수준의 지휘자인지 아닌지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다만 오케스트라 음악을 감상하고자 하는 음악 애호가에게 만약 일정한 수, 구체적으로 말해서 대략 10명 정도의 세계적 지휘자를 선택해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과연 정명훈은 어느 정도의 순서에 들 수 있을지? 물론 나는 일본인인 오자와 세이지와 함께 한국인 정명훈을 선택할 것이다. 하지만 외국인일 경우 얼마든지 나와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을 터이다.
문제의 본질은 고액 급여가 아니다
나는 문제의 본질은 고액 급여보다 정 지휘자 특유의 계약 조건과 급여 지불 방식에 있다고 본다. 정명훈의 작년 급여는 기본연봉 2억2000만 원에 지휘료와 판공비 등으로 18억2000만 원이 따로 지불되었다. 그런데 오케스트라에서 객원지휘자가 아닌 상임지휘자의 급여는 전체 연봉을 정하면서 의무 연주 횟수를 함께 규정하는 것이 상식이자 관행이다.
하지만 정명훈의 경우 연봉과 지휘료를 구분하여 따로 지급하도록 계약되었다. 이것은 연봉은 상임지휘자처럼 받고 회당 지휘료는 세계적인 객원지휘자 대우(회당 4000만 원 이상)로 받는 특혜적인 구조다. 이렇게 될 경우 원천징수되는 근로소득세는 연봉 2억2000만원에서만 내고, 이보다 턱없이 많은 지휘료는 세금 3.3%만 낸 채 이듬해 종합소득세로 환산된다.
한편에서는 시장 논리를 동원하여 정 지휘자를 옹호하기도 한다. 정 지휘자가 영입되기 전인 2004년 서울시향의 정기공연 1회당 유료 관객수는 466명이었는데, 지난해에는 1274명이었고 올해는 1800명을 내다보고 있다고 한다. 이에 따라 40억 원 이상의 수입이 창출되었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비약적인 성장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6년 전 30억 원 이하였던 서울시향의 예산도 그동안 131억 원으로 대폭 증액되었다. 내년에는 서울시 지원 예산에다 관람료 수입을 합쳐 180억 원 정도의 예산이 편성될 것으로 추산된다. 야박한 계산 같지만 서울시민 중 서양음악, 그것도 오케스트라 음악의 애호가는 얼마나 될까? 불과 수만 명이 채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1000만 명 서울시민이 예외 없이 1년에 1300원씩의 돈을 내는 셈이라면 이것은 합당한 것일까?
정 지휘자를 두둔하는 사람들은 그가 지휘자뿐 아니라 예술감독 직을 겸하고 있다는 점을 들기도 한다. 그래서 그는 연주뿐 아니라 시향에 대한 스폰서 유치에도 남다른 노고를 기울인다고 한다. 그런데 계약서에는 '서울시립교향악단의 홍보마케팅을 목적으로 자신의 초상권을 사용하여 스폰서를 유치할 경우, 자신의 초상권이 전체 홍보마케팅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따라 스폰서 금액의 30%이내에서 상호 합의한 금액을 정명훈'에게 지불한다고 되어 있다.(<미디오 오늘> 김상수 칼럼 참조)
물론 서울시향의 유료 관객수가 늘어난 것은 정명훈이라는 이름값에다가 연주의 질 향상이 결정적인 몫을 했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얼마 전 라디오를 통해 서울시향의 연주를 듣고 대단히 흐뭇했던 적이 있다. 서울시향의 연주 기량이 정명훈의 지휘 덕분에 현저히 향상된 것은 틀림없는 일이다. 나는 서양악기 연주를 전공하는 친구에게 기량이 향상된 서울시향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런데 웬 일인지 친구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며 말하는 것이었다.
"우리 오케스트라가 잘하는 건 좋은 일이지. 그러나 비싼 돈으로 외국인 연주자를 사다가 소리를 좋게 하는 것이라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친구의 말이 사실이라면 정작 이것이야말로 정명훈의 서울시향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생각 들었다. 그런데 이것은 유감스럽게도 사실이었으며 이미 음악계에서는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었다.
정명훈의 서울시향은 필요할 때마다 외국의 연주자들을 일체의 경비를 부담하면서 초청하여 한국 단원에 합류시켜 연주하게 한다. 오케스트라에서 객원지휘자라는 말은 있지만 '객원연주자'라는 것은 없는 것으로 안다. 지금 서울시향의 악장은 프랑스 인으로서 프랑스 필하모닉의 악장도 겸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연주가 있을 때만 내한한다. 악장뿐 아니라 단원의 15% 이상이 고액의 외국인 초빙자로 구성되어 있다. 이것은 서울시향의 '소리'가 좋아진 이유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서울시민의 오케스트라'라고 하기는 좀 민망하지 않은가?
우리를 착잡하게 만드는 진중권과 정명훈
진중권씨를 비롯한 '정명훈 옹호론자'들은 "고액의 히딩크를 데려왔기에 한국 축구가 월드컵 4강까지 오르지 않았느냐?"고 말한다. 자국에서 개최한 대회에서 판정시비까지 일으키며 단 한 번 4강에 오른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최소한 히딩크는 외국인 선수들을 사와서 한국팀 실력을 높인 것은 아니지 않은가? 게다가 '예술은 예술의 논리로 풀어야 한다'면서 왜 이 경우에는 스포츠의 논리를 가져다 대는지.
"정명훈 가만 놔둬라. 그 만큼 잘났으면, 그 정도 받아도 된다. 예술가가 굳이 정치 입장을 물을 필요도, 그들에게 정치적 입장을 요구해서도 안 된다."(진중권)
진중권이 사려 깊다면 최소한 서울시향 문제에 관해서만은 언급을 자제했어야 한다. 아무리 그가 서양음악에 관해 해박하다고 할지라도 그는 이 글의 앞에서 정명훈의 연봉을 문제 삼는 것은 '클래식 사정을 모르는 근시안적 발상'이라며 정명훈을 서둘러 옹호한 서울시향 상임작곡가 진은숙의 동생 아닌가?
"그러니까, 당신들이 그 100만 명이나 촛불 들고 거리에서 서서 미국 쇠고기 안 먹는다고 시위하는 그런 사람들이란 말이죠? 40년 전에는 미국에서 뭐 안 갖다 주나 하면서 손 벌리고 있더니, 이제 와서는 미국산 쇠고기 안 먹겠다고 촛불 들고 서 있는 그 사람들. 그게 옳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게 말이나 되는...알았어요. 알았어."(목수정, <레디앙> '경악, 음악가 정명훈이 쏟아낸 말들')
이것은 지난 2009년 국립오페라 합창단이 해체되기 직전 목수정씨와 합창단원들이 파리의 호텔에 머무르는 정명훈 지휘자를 찾아가 지지서명을 요청했을 때 정 지휘자가 한 말이라고 한다. 지면상 전후 사정을 거두절미했지만 이런 말 속에는 정명훈의 내심이 일정 부분 담겨 있다고 보아 인용한 것이다.
그는 자기 말대로 정말 '음악밖에는 모르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음악밖에는 모른다는 말은 역사나 정치에는 어둡다는 뜻도 된다. 그렇다면 역사나 정치에 관해서는 일절 말하지 않았어야 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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