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K 주가 조작 사건의 진실이 밝혀질지, 이제 검찰의 의지에 달렸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도 이와 유사하게 해외 자원 개발 사업의 허위 공시가 몇몇 게이트로 비화된 일이 있었다. 그때마다 권력형 비리니 자원 개발주 '먹튀'니 하는 말 따위로 그 사건의 성격이
규정되곤 했다. 그러나 세계화된 세상에서 자원을 둘러싼 문제가 투자 국가에서만 발생하지는 않을 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주연을 맡은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2006년)는 1991년부터 10년간 내전을 겪은 시에라리온의 참상을 다뤘다. 이것은 분쟁 지역의 다이아몬드를 둘러싼 폭력을 방지하는 2002년의 킴벌리 협약으로 이어졌다. 다큐멘터리 <피 묻은 핸드폰>(2010년)은 핸드폰, 컴퓨터, 카메라 등 전자기기에 쓰이는 각종 광물이 콩고에서 어떻게 갈등과 분쟁의 씨앗이 되고 있는지 고발했다.
이런 자원 분쟁의 피해는 자원 보유 국가에서 발생하지만, 산업화된 국가와 초국적 기업, 초국적 소비자의 동조와 묵인 없이는 그 피해가 커질 수 없다. 바로 자원의 저주다. 2010년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아프리카에서 채굴되어 수입되는 원자재 중 주민 약탈, 불법 무기 거래, 내전, 환경 파괴 등과 연관된 '피 묻은 광물'이나 '갈등을 내포한 광물'을 규제하는 법규 제정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그렇다면, 한국 정부는 어떤가? '블러드 다이아몬드' 유통을 막기 위한 킴벌리 협약에 현재 약 70여 개국이 가입했다. 한국 역시 가입국이다. 그러나 CNK 다이아몬드 게이트의 대상인 카메룬은 가입되어 있지 않아 다이아몬드 수출이 어렵다. 외교통상부 역시 이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뻥튀기 조작'에 동참한 대담함을 보였다.
시에라리온과 콩고 내전이 수십, 수백만 명의 생명을 앗아간 극단적인 사례인 점을 감안하면 카메룬의 경우와 이들을 직접 비교하는 것이 무리일까? 외교통상부 압수 수색까지 단행한 검찰의 수사가 이런 지대 국가(rentier state)의 비극을 조금이라도 고려할까? 그렇다면 우리는 자원 보유국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
이런 질문에 우리가 왜 익숙해져야 하는지 안내하는 책이 있다. <공정한 미래>(창조문화 펴냄)다.
기후,
환경, 에너지 분야의 세계적인 연구 기관 부퍼탈 연구소에서 펴낸 이 책은 지속 가능한 세계화가 화두다. 과학자, 경제학자, 법학자 등 다양한 영역의 연구자들이 환경, 사회, 경제 분야를 아우른다. 내가 몸담고 있는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의 방향과 다소 차이가 있더라도, 싱크탱크로서의 전문성, 포괄성, 영향력 면에서 부럽다.
2005년 독일에서 출간되고 2007년 영어판이 나온 것에 비하면 한국에서는 출판이 늦었다. 근래 들어 국내에서도 자원, 에너지, 생태 등 이 책에서 주목한 많은 이슈를 진지하게 다룬 책이 눈에 띄게 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새롭고 정교한 데이터와 의미 있는 사건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들이 던지는 질문이 여전히 낯설게 느껴지는 우리 현실을 돌아보면 다소 늦게 나온 이 책 역시 반갑기 짝이 없다.
"한정된 자원과 글로벌 공정성"으로 번역된 부제가 말해주듯이 이 책은 <성장의 한계>(1972년)와 <우리 공동의 미래>(1992년)에서 출발한다. 그렇다고 화석 자원과 생물 자원의 희소성에 집중한 나머지 자연 사용의 한계론이나 생산성(효율성) 향상의 함정('약한 지속 가능성')에 빠지지 않는다. 오히려 불평등한 사회 구조와 생태계의 수용성의 관계에 관심을 둔다. 따라서 글로벌 공정성(혹은 정의)의 원칙을 확립하는 것이 국제적, 국가적, 지역적 차별과 배제를 해결하면서도 자원 고갈과 생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자원의 부족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 국내적으로 불공정한 시스템 때문에 갈등과 충돌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쟁, 1퍼센트에 대한 99퍼센트 점령 운동 소식, 특히 올해 다보스 포럼의 자본주의 실패 논쟁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자본주의의 위기감은 고조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이런 흐름에는 '생태계 망각'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아닐까? 페테 헤니케 부퍼탈 연구소 소장은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 책은 집단적 금기에 속하는 주제들을 반복적으로 언급한다. 글로벌 공정성과 생태계의 운명이 그것이다. 우리는 공적 자금의 부족과 합리적 조치에 의해 사라지는 직업에 대해서는 예민하게 반응하면서도, 기상 변화, 빈곤, 자원 전쟁에 대해서는 남의 일처럼 여긴다. 이 책은 누구나 예감은 하면서도 자기의 문제로 여기지 않는 문제에 집중한다. 이를테면 세계의 천연자원이 한정된 상황에서 앞으로 어떻게 보다 많은 사람들이 적절한 수입을 올리며 생활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를 밝히는 것이다. 이것은 금세기의 핵심 주제이기도 하다." (12쪽)
이 책은 시종일관 작금의 경제적 세계화를 비판하며 생태적·사회적 세계화를 지향한다. 민주적이고 세계 시민적인 생태학의 입장을 지지하며 생태적 복지 모델로의 이행이 세계의 민주화를 위해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생태적 공정성과 자원 공정성이 이런 세계화의 핵심 원리가 된다. 아리스토텔레스, 칸트, 롤스, 프레이저의 논리를 따라가며 글로벌 윤리로서의 정의론을 뒷받침한다(4장). 이러한 공평한 번영의 방안으로 '감축과 수렴(contraction and convergence)'을 인용하고(5장), 기후, 환경, 무역, 인권, 사회적 책임을 위한 국제 협약을 제안한다(6장).
석유, 가스를 비롯한 에너지, 각종 광물 자원, 토지, 물, 생물 자원에 이르기까지 불균등하게 분포한 천연자원을 공정성의 원리가 실현되면 우리의 미래가 지속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은, 자본주의의 위기를 극복하려는 다보스 포럼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녹색 성장, 공정 사회, 복지와 정의 담론이 팽배하지만 생태적·사회적 세계화와 글로벌 공정성에 대한 고민은 찾아보기 힘들다. 얽히고설킨 세상에서 우리만 잘 살 수 있다는 생각은 통하지 않는다. 글로벌 공정성 없이 한 곳의 지속 가능성은 불가능하다.
저자와 출판사에게 미안하지만, 국내에 널리 알려진 토머스 프리드먼의 <코드 그린>(최정임·이영민 옮김, 21세기북스 펴냄), 폴 호큰·에이머리 로빈스·헌터 로빈스의 <자연 자본주의>(김명남 옮김, 공존 펴냄)보다 먼저 읽어야 할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이 책은 대학 교재로 쓰이기에 적절한 내용과 수준이다.
그렇다고 주의해서 읽어야 할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곳곳에 숨어 있는 오타나 오기가 독서를 방해하는 문제는 넘어가더라도, 결론부에 이르면 마땅찮은 주장들이 튀어나온다. 미래에 대한 지나친 낙관과 비관을 경계하는 균형 잡힌 시각은 돋보이지만, 사회적·생태적 시장 경제라는 대안은 진부하고, 과연 '거대한 전환'에 이르는 길인가에 대해서도 다른 생각이 든다. 이 대목은 독자의 몫이다.
정작 문제는 마지막에 있다. 7장 '유럽의 역할은 무엇인가?'에서 부퍼탈 연구소의 지나친 유럽 중심주의가 눈에 들어온다. 유럽이 민주적이고 생태적인 세계 사회를 만들기 위한 구심점이 될 것이고, 미국을 포함한 세계 모든 국가의 노력을 결집하는 주체가 될 것이라는 견해는 희망 섞인 목표라기보다 오만과 편견으로밖에 읽히지 않는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주연을 맡은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2006년)는 1991년부터 10년간 내전을 겪은 시에라리온의 참상을 다뤘다. 이것은 분쟁 지역의 다이아몬드를 둘러싼 폭력을 방지하는 2002년의 킴벌리 협약으로 이어졌다. 다큐멘터리 <피 묻은 핸드폰>(2010년)은 핸드폰, 컴퓨터, 카메라 등 전자기기에 쓰이는 각종 광물이 콩고에서 어떻게 갈등과 분쟁의 씨앗이 되고 있는지 고발했다.
이런 자원 분쟁의 피해는 자원 보유 국가에서 발생하지만, 산업화된 국가와 초국적 기업, 초국적 소비자의 동조와 묵인 없이는 그 피해가 커질 수 없다. 바로 자원의 저주다. 2010년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아프리카에서 채굴되어 수입되는 원자재 중 주민 약탈, 불법 무기 거래, 내전, 환경 파괴 등과 연관된 '피 묻은 광물'이나 '갈등을 내포한 광물'을 규제하는 법규 제정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그렇다면, 한국 정부는 어떤가? '블러드 다이아몬드' 유통을 막기 위한 킴벌리 협약에 현재 약 70여 개국이 가입했다. 한국 역시 가입국이다. 그러나 CNK 다이아몬드 게이트의 대상인 카메룬은 가입되어 있지 않아 다이아몬드 수출이 어렵다. 외교통상부 역시 이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뻥튀기 조작'에 동참한 대담함을 보였다.
시에라리온과 콩고 내전이 수십, 수백만 명의 생명을 앗아간 극단적인 사례인 점을 감안하면 카메룬의 경우와 이들을 직접 비교하는 것이 무리일까? 외교통상부 압수 수색까지 단행한 검찰의 수사가 이런 지대 국가(rentier state)의 비극을 조금이라도 고려할까? 그렇다면 우리는 자원 보유국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
이런 질문에 우리가 왜 익숙해져야 하는지 안내하는 책이 있다. <공정한 미래>(창조문화 펴냄)다.
▲ <공정한 미래>(볼프강 작스·부퍼탈 연구소 지음, 이한우 옮김, 창조문화 펴냄). ⓒ창조문화 |
2005년 독일에서 출간되고 2007년 영어판이 나온 것에 비하면 한국에서는 출판이 늦었다. 근래 들어 국내에서도 자원, 에너지, 생태 등 이 책에서 주목한 많은 이슈를 진지하게 다룬 책이 눈에 띄게 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새롭고 정교한 데이터와 의미 있는 사건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들이 던지는 질문이 여전히 낯설게 느껴지는 우리 현실을 돌아보면 다소 늦게 나온 이 책 역시 반갑기 짝이 없다.
"한정된 자원과 글로벌 공정성"으로 번역된 부제가 말해주듯이 이 책은 <성장의 한계>(1972년)와 <우리 공동의 미래>(1992년)에서 출발한다. 그렇다고 화석 자원과 생물 자원의 희소성에 집중한 나머지 자연 사용의 한계론이나 생산성(효율성) 향상의 함정('약한 지속 가능성')에 빠지지 않는다. 오히려 불평등한 사회 구조와 생태계의 수용성의 관계에 관심을 둔다. 따라서 글로벌 공정성(혹은 정의)의 원칙을 확립하는 것이 국제적, 국가적, 지역적 차별과 배제를 해결하면서도 자원 고갈과 생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자원의 부족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 국내적으로 불공정한 시스템 때문에 갈등과 충돌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쟁, 1퍼센트에 대한 99퍼센트 점령 운동 소식, 특히 올해 다보스 포럼의 자본주의 실패 논쟁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자본주의의 위기감은 고조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이런 흐름에는 '생태계 망각'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아닐까? 페테 헤니케 부퍼탈 연구소 소장은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 책은 집단적 금기에 속하는 주제들을 반복적으로 언급한다. 글로벌 공정성과 생태계의 운명이 그것이다. 우리는 공적 자금의 부족과 합리적 조치에 의해 사라지는 직업에 대해서는 예민하게 반응하면서도, 기상 변화, 빈곤, 자원 전쟁에 대해서는 남의 일처럼 여긴다. 이 책은 누구나 예감은 하면서도 자기의 문제로 여기지 않는 문제에 집중한다. 이를테면 세계의 천연자원이 한정된 상황에서 앞으로 어떻게 보다 많은 사람들이 적절한 수입을 올리며 생활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를 밝히는 것이다. 이것은 금세기의 핵심 주제이기도 하다." (12쪽)
이 책은 시종일관 작금의 경제적 세계화를 비판하며 생태적·사회적 세계화를 지향한다. 민주적이고 세계 시민적인 생태학의 입장을 지지하며 생태적 복지 모델로의 이행이 세계의 민주화를 위해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생태적 공정성과 자원 공정성이 이런 세계화의 핵심 원리가 된다. 아리스토텔레스, 칸트, 롤스, 프레이저의 논리를 따라가며 글로벌 윤리로서의 정의론을 뒷받침한다(4장). 이러한 공평한 번영의 방안으로 '감축과 수렴(contraction and convergence)'을 인용하고(5장), 기후, 환경, 무역, 인권, 사회적 책임을 위한 국제 협약을 제안한다(6장).
석유, 가스를 비롯한 에너지, 각종 광물 자원, 토지, 물, 생물 자원에 이르기까지 불균등하게 분포한 천연자원을 공정성의 원리가 실현되면 우리의 미래가 지속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은, 자본주의의 위기를 극복하려는 다보스 포럼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녹색 성장, 공정 사회, 복지와 정의 담론이 팽배하지만 생태적·사회적 세계화와 글로벌 공정성에 대한 고민은 찾아보기 힘들다. 얽히고설킨 세상에서 우리만 잘 살 수 있다는 생각은 통하지 않는다. 글로벌 공정성 없이 한 곳의 지속 가능성은 불가능하다.
저자와 출판사에게 미안하지만, 국내에 널리 알려진 토머스 프리드먼의 <코드 그린>(최정임·이영민 옮김, 21세기북스 펴냄), 폴 호큰·에이머리 로빈스·헌터 로빈스의 <자연 자본주의>(김명남 옮김, 공존 펴냄)보다 먼저 읽어야 할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이 책은 대학 교재로 쓰이기에 적절한 내용과 수준이다.
그렇다고 주의해서 읽어야 할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곳곳에 숨어 있는 오타나 오기가 독서를 방해하는 문제는 넘어가더라도, 결론부에 이르면 마땅찮은 주장들이 튀어나온다. 미래에 대한 지나친 낙관과 비관을 경계하는 균형 잡힌 시각은 돋보이지만, 사회적·생태적 시장 경제라는 대안은 진부하고, 과연 '거대한 전환'에 이르는 길인가에 대해서도 다른 생각이 든다. 이 대목은 독자의 몫이다.
정작 문제는 마지막에 있다. 7장 '유럽의 역할은 무엇인가?'에서 부퍼탈 연구소의 지나친 유럽 중심주의가 눈에 들어온다. 유럽이 민주적이고 생태적인 세계 사회를 만들기 위한 구심점이 될 것이고, 미국을 포함한 세계 모든 국가의 노력을 결집하는 주체가 될 것이라는 견해는 희망 섞인 목표라기보다 오만과 편견으로밖에 읽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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