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계를 대표하는 이세돌(33·사진) 9단이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에 2연패를 당하면서 크나큰 당혹감을 줬다. 인류가 즐기던 가장 복잡한 게임인 바둑까지 인공지능이 넘어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계 최대의 IT업체인 구글이 이번 대국을 앞두고 알파고에 대한 한국기원 측의 정보 요청을 거부했음이 밝혀져 불공정 게임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2일 3차전 관건은 ‘패’싸움
상대 알파고에 대한 정보가 전무한 이 9단은 1차전은 상대를 떠본다는 기분으로 느슨한 경기를 펼치다 당했고, 2차전은 긴장을 늦추지 않고 끝까지 압박했지만 결과적으로 졌다. 전 인류를 대표해 패했으니 심리적 충격이 상상을 초월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알파고의 기력(碁力)을 인정하면서도, 이 9단이 지금까지 자신의 플레이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며 남은 대국에 기대를 걸고 있다.
이 9단은 10일 2차전에 패한 뒤 숙소인 포시즌스호텔에서 평소 가깝게 지내는 홍민표 9단, 이다혜 4단과 함께 12일 3차전에 대비해 알파고의 장단점을 밤늦도록 분석했다. 1, 2차전에서 가끔 보여준 것처럼 알파고가 가끔 두는 ‘이해할 수 없는 수’에 대해서도 깊은 토론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후반에 갈수록 계산에서 앞서는 알파고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중반 이전에 세력을 두텁게 하면서 우세를 확보해야 한다는 결론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만수 8단은 “아직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패’를 승부에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바둑에서 가장 미지의 영역으로 꼽히는 패는 양쪽이 한 점씩 단수로 몰린 상태로 물려 있어 서로 잡으려는 형태다. 하지만 알파고는 패를 쓸 수 있는 상황을 아예 만들지 않고 있다.
#대국은 처음부터 불공정한 게임
구글은 세계 인공지능 연구의 주도권을 잡고자 이번 대국을 기획했다. 이미 알파고보다 훨씬 복잡한 분야인 무인차 개발을 선도하고 있는 구글은 아직 인간이 지배하고 있는 바둑에 도전장을 냈다. 알파고 개발사인 딥마인드를 인수한 구글은 알파고를 앞세워 지난해 10월 프로 2단인 유럽 챔피언 판후이를 5대 0으로 이긴 뒤 지난 1월 네이처지에 이를 논문으로 게재했다. 당시 논문에 실린 5번기가 유일하게 공개된 알파고 기보다.
이번 대국을 앞두고 한국기원은 구글에 알파고의 연습기보를 달라고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또 대국 전 한국 프로기사와의 연습대국 요청도 구글이 거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양재호 한국기원 사무총장은 11일 “알파고는 이 9단의 데이터를 전부 알고 있지만 이 9단은 알파고에 대해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대국을 치렀다”면서 “이는 명백한 불공정 게임”이라고 강조했다.
이 9단은 10년 이상 활동해 수천건의 기보가 공개돼 있는 상태다. 알파고는 이 기보를 집중 연구한 것은 물론 3000만건 이상의 기보를 데이터로 구축한 뒤 이 9단에게 도전장을 던진 것이다. 지난달 초에는 이 9단과 비슷한 고수인 중국의 저우리우양 9단을 비밀리에 영국 런던으로 불러 일종의 테스트를 했고, 승산이 있음을 확인하고서야 도전을 공식 발표했다는 것이다.
이 9단이 알파고에 대한 정보 없이 과거 슈퍼컴퓨터 1대로 운영되던 체스 프로그램 정도로 알고 계약했다면 법률적으로 불공정 계약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1200대의 클라우딩 컴퓨터로 연결된 알파고 시스템은 체스 프로그램과 연산 능력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
서완석 체육전문기자 wssu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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