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이 입수한 기록을 바탕으로 재단법인 ‘진실의 힘’은 2015년 5월 세월호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세월호 기록팀을 구성했습니다. 진실의 힘 조용환, 송소연, 강용주 이사와 이사랑 간사가 기획·진행을 맡았고, 박다영씨, 박수빈 변호사, 박현진씨가 자료 분석과 집필을 맡았습니다. 정은주 기자는 <한겨레21>과 진실의 힘을 오가며 이 작업에 집중했고, 그 과정에서 한국기자상과 민주언론상을 받았습니다. 15만 장 가까운 기록과 3테라바이트(TB)가 넘는 자료를 추적·분석한 결실을 이제 세상에 공개합니다. 약 700쪽에 이르는 책 <세월호, 그날의 기록>(진실의 힘 펴냄)입니다.
<한겨레21>은 <세월호, 그날의 기록>의 주요 내용을 소개하는 한편, 책에 모두 담지 못한 이야기를 더해 앞으로 4주에 걸쳐 집중보도합니다. 2015년 4월부터 진행한 세월호 탐사보도의 마지막 매듭입니다. 그 첫 내용은 3월13일부터 시중 발매되는 <한겨레21> 창간22주년 기념특대호에 게재됩니다. 이에 앞서 온라인으로 몇몇 내용을 먼저 보도합니다.
서울지방해양경찰청 제공
2014년 4월16일 오전 9시 40분 침몰하는 배에서 도주하기 직전 세월호 선원의 마지막 목소리가 공개됐다. 배가 기울어져 침몰하고 있을 때 세월호와 교신을 유지한 곳은 진도해상교통관제시스템(VTS) 밖에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한겨레21>이 참여한 ‘진실의 힘 세월호 기록팀’은 제주 운항관리실도 세월호와 교신을 유지했고 1등 항해사 신정훈이 9시 40분 “승객이 450명이라서 경비정 한 척으로는 (구조가) 부족할 것 같다”고 말한 것으로 처음 확인했다. 세월호가 외부와 나눈 마지막 교신이었다. 이 내용은 재판과 검찰 수사, 감사원 조사에서 단 한 번도 공개되지 않았다. 교신 직후인 9시 45분 갑판부 선원 등 10명이 세월호 조타실에서 탈출했다. 당시 세월호 선내에서는 “현재 위치에서 안전하게 기다리시고 더 이상 밖으로 나오지 마시기 바랍니다”라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제주 운항관리실 세월호, 세월호, 해운제주 감도 있습니까?
세월호 네, 세월호입니다.
제주 운항관리실 혹시 경비정, P정 경비정 도착했나요?
세월호 네, 경비정 한 척 도착했습니다.
제주 운항관리실 네, 현재 진행 상황 좀 말씀해주세요.
세월호 네, 뭐라고요?
제주 운항관리실 (다른 담당자 전화 바꿔 받음) 네, ○○님 현재 진행 상황 좀 말씀해주세요.
세월호 네, 경비정 한 척 도착해서 지금 구조 작업 하고 있습니다.
제주 운항관리실 예, 지금 P정이 계류했습니까?
세월호 네, 지금 경비정 옆에 와 있습니다. 그러고 지금 승객이 450명이라서 지금 경비정 이거 한 척으로는 부족할 것 같고, 추가적으로 구조를 하러 와야 될 것 같습니다.
제주 운항관리실 네, 잘 알았습니다. 지금 선체는 기울지 않고 있죠?
세월호 (대답 없음)
마지막 교신을 통해 세월호 선원들이 조타실에서 승객에 대한 퇴선 명령 없이 도주한 이유가 드러났다. 승객들에게 퇴선을 명령하면 선원들의 탈출 순서는 뒤로 밀릴 수밖에 없는데 사고 현장에 도착한 100톤급 경비정은 선원을 합쳐 “총인원 약 500명 정도”를 구하는 게 불가능해보였다. 구명뗏목도 터트리지 못한 상황에서 조타실에 있는 갑판부 선원 등 10명 가운데 구명조끼를 입은 사람은 3명뿐이었다. “당시 상황으로 보았을 때 만약 승객들과 선원들이 한꺼번에 바다로 뛰어든다면 구명조끼를 착용하지 못한 선원들 가운데 사망자가 나올 가능성이 있었다.” “매우 위험”했고 “죽는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았다. (2014년 5월8일 신정훈 6회 피의자신문조서) 승객들이 바다로 먼저 탈출해 자신들의 ‘구조’되는 기회가 사라지지 않도록 세월호 선원들은 퇴선 명령 없이 소형 경비정으로 도주한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세월호 선장에게만 살인죄를 인정했다. 다른 갑판부 선원들에게는 살인의 고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세월호 선장뿐 아니라 다른 선원들까지도 승객을 버리고 도주한 책임을 무겁게 물을 수 있는 진실의 한 조각이 새롭게 드러난 것이다. ‘진실의 힘 세월호 기록팀’에 참여해 산산조각 난 채 온갖 잡동사니 속에 뒤섞여 있는 진실의 조각들을 하나씩 찾아서 닦아내 <세월호, 그날의 기록>를 펴냈다. 세월호 참사를 시민의 눈으로 기록한 책이다. 세월호 선원·해경·청해진해운 사건은 물론 세월호 인허가 사건, 진도VTS 사건 등 세월호 관련 수사 및 공판 기록 등 15만 장 가까운 재판 기록과 국회 국정조사특위 기록 등 3테라바이트(TB)의 자료를 분석했다. 각 자료와 기록을 인용할 때마다 주석을 달아서 정확성을 기했다. 주석은 2281개다. 세월호의 ‘마지막 교신’과 같은, 새로 발굴한 진실의 조각들이 <세월호, 그날의 기록>에는 가득하다.
‘진실의 힘 세월호 기록팀‘이 펴낸 <세월호, 그날의 기록>
해경, 사고 현장서 ‘인증 사진’
사고 현장에 처음 도착한 해경 123정이 찍은 ‘인증 사진’ 3장을 처음 공개했다. 이 사진들은 123정 정장 김경일의 휴대전화에 저장돼 있던 것들이다. 기울어진 세월호 선수를 바라보는 김경일의 뒷모습, 선원들이 조타실에서 빠져나오는 모습, 구명뗏목을 터뜨리는 해경의 모습 등이다. 채증 사진과 달리 123정 조타실에서 찍은 사진으로 기념 사진과 비슷하다. 기울어진 배 안으로 뛰어들어 승객을 탈출시켜야 할 구조 세력이 왜 밖에서 인증 사진을 찍었는지, 그 사진들이 어떻게 활용됐는지 확인되지 않았다. 김경일은 8시 49분 세월호가 기울어져서 10시 30분 침몰할 때까지 101분 동안 인터넷에 8차례 접속했다. 이 사진들은 <한겨레21> 1103호에 실린다.
해경 지휘부는 구조 지휘 책임을 서로 떠넘겼다. 해경청장 김석균은 해경 본청의 역할을 “상급 부서에 보고하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현장 지휘는 서해해경청의 몫이라고 주장했다.
감사원 이번 세월호 침몰 사고와 같은 대형 인명 사고의 경우 (해경)청장이 직접 현장 지휘를 하였어야 하는데도 서해해경청장과 목포해경서장에게 현장을 지휘하도록 한 이유를 말씀하여주십시오.
김석균 1차적으로 현장 지휘는 서장에게 있으며, 상황의 중요성에 따라 지방해경청이 직접 관여하여 현장 지휘를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고 본청은 정채적인 지휘나 지휘, 상급 부서에 보고하는 것이 중앙구조본주(본청)의 역할이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서해해경청장 김수현은 총지휘가 본청의 역할이라고 주장했다. “사고가 발생한 이후 9시 10분경 중앙구조본부가 설치됨으로써 해양경찰청과 경비국장이 현장에서 총괄 지휘하였고” 해경청장이 존재하기 때문에 서해해경청장은 지휘 라인이 아니라 “스태프가 되었다”고 주장했다.
“객실 문에 잠겨 못나온다” … 사라진 119 신고 전화
<세월호, 그날의 기록>은 세월호 관련 119, 112, 122 신고 내용을 전부 담았다. 전남 119상황실에는 오전 8시 52분부터 쉼 없이 신고 전화가 울렸다. “배가 기울었어요. 살려주세요.” “빨리 좀 와주세요.” 아우성이었다. 세월호 선내 상황도 속속 전해졌다. 배가 바다 한가운데에서 기울어지면서 승객이 머리를 다쳐 피가 나고 다리가 부러졌다. “너무 아파요”라고 울고 “장난 전화하는 거 아니”라고 절규했다.
특히 진실의 힘 세월호 기록팀은 오전 10시 이후 “문에 잠겨 못나오고 있다”는 단원고 학생의 신고가 119 녹취록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전남 119 종합상황실이 국회와 감사원에 제출한 119 신고 내역을 보면, 9시 23분이 마지막 신고다. 그러나 10시 10분 서해해경청 상황실은 문자상황시스템으로 지시한다. “전남 119에서 박○○ 학생이 문이 잠겨서 못 나오고 있다는 사항, 연락처 010-9170-××××.” 문자상황시스템은 해경의 메신저로 위성통신망을 이용해 어디서나 실시간으로 보고 및 지휘할 수 있다. 목포해경서장 김문홍이 탑승한 3009함도 10시 12분 문자상황보고시스템에 “객실에서 문이 잠겨서 못 나온 승객들 연락. 구출될 수 있도[록] 지시 바람”이라고 썼다. 그 시각 세월호는 70도 이상 기울어져 바닷물이 배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검찰과 감사원은 “객실에서 문이 잠겨서 못 나온 승객들 연락”이 담긴 신고 전화가 왜 전남 119 신고 내역에 없는지, 해경은 신고자 박○○ 학생 등을 구조했는지 확인하지 않았다.
‘왜 못 구했나’ ‘왜 침몰했나’에 답하다
<세월호, 그날의 기록>은 누구나 가질 법한 당연한 의문을 묻고 답했다. ‘왜 못 구했나’ ‘왜 침몰했나’ ‘대한민국에서 제일 위험한 배, 어떻게 태어났나.’ AIS와 국정원같이, 의심의 눈초리를 받는 주제들도 들여다봤다. 기록 속에 흩어져 있는 단서들을 모아 어떤 의문은 털어내기도 하고 어떤 의문은 새로 제기하고도 했다. 진실의 힘 세월호 기록팀에 참여한 <한겨레21>은 제1103호부터 3회에 걸쳐 주요 내용을 발췌해 보도한다.
진실의 힘은 1970~80년대 군사정권 하에서 간첩으로 조작된 이들이 재심재판을 통해 무죄를 밝혀내고 손해배상을 통해 국가 책임을 추궁하는데 성공한 이들이 만든 단체다. 진실을 밝히는 길이 얼마나 고된지 몸으로 알고 있다. 작은 힘이나마 함께하고자 2015년 5월 세월호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진실의 힘 세월호 기록팀’을 구성했다. 세월호 탐사보도를 해온 <한겨레21> 정은주 기자와 함께 20대의 젊은 박다영 씨, 박수빈 변호사, 박현진 씨가 참여했다. 이 책은 기록팀의 눈을 조명탄 삼아 깊은 바다 어둠 속 진실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용기 있게 그날을 기록하고 증언한 세월호 희생자, 생존자들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4.16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협의회와 유족들은 희생자들이 세상을 향해 남겨놓은 마지막 목소리를 실명으로 사용하도록 허락했다.
새누리, 세월호 특검 반대
세월호 진실은 여전히 어두운 바다 속에 가라앉아 있는데 여당은 세월호 참사 진상조사를 위한 특별검사 임명 요청안에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다. 원유철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세월호 특검법은 이견이 있어서 처리되지 않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19대 국회 마지막인 이번 회기에서 처리되지 않으면 특검은 무산된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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