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추격이 무섭다. 위협 수준을 넘어섰다. 저렴한 가격만을 내새웠던 과거와 달리 기술과 브랜드가치 면에서도 뒤지질 않는다. 조선, 철강 등 굴뚝산업은 물론 전자·IT, 자동차까지 전 산업에 걸쳐 중국은 한국의 가장 강력한 경쟁상대가 됐다. CES와 IFA, MWC 등 글로벌 3대 IT 전시회의 메인 무대를 차지하는 등 변방에서 중심으로 약진했다.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노키아와 애플의 계보를 잇는 차기 대권주자로까지 거론된다. 리차드 유 화웨이 소비자사업부문 대표는 "3년 안에 애플을 따라잡고, 5년 내에는 삼성도 추월할 것"이라고 공언까지 했다. 이쯤 되면 더 이상 '대륙의 실수'가 아니다. 중국의 공세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 고도의 기술력을 요구하는 장치산업에까지 손을 뻗었다. 전기차 배터리도 중국이 노리고 있는 분야다. 중국 굴기 앞에 혁신 없는 산업구조를 고수하고 있는 한국은 분명 '바람 앞의 등불'이다.(편집자)
[뉴스토마토 김민성기자] "중국과의 격차요? 몇 년 차인지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흐름을 봐야죠. 추격은 길지만 추월은 한순간입니다."
단순 격차만을 따지는 기자 '우문'에 반도체업계 고위관계자는 '현답'을 내놨다. 지난해부터 중국의 추격을 '굴기'라는 표현을 써가며 경종을 울렸지만 여전히 기술 격차만 따지는 시각에 대한 일종의 경고 의미도 담겼다. 디스플레이 가운데 LCD(액정표시장치) 시장에서는 이제 중국과 주도권 싸움을 해야 할 처지로 내몰렸다. 전문가들은 산업의 기초체력을 길러야 한다고 주문한다. 당장 1~2년 후에 매달리지 않고 장기적 안목에서 인재 양성과 기술 개발 등에 나서야 한다는 얘기다.
반도체 논문 급증 vs. 연구투자 소홀
기초체력의 척도라 할 수 있는 학술논문 등 연구실적에서 중국은 한국을 위협할 만큼 급성장했다. 지난 2014년 국제반도체소자학회(IEDM) 학술지에 실린 논문 중 중국인이 작성한 것은 26편으로 한국(13편)의 두 배에 달했다. 유회준 KAIST 교수는 “중국 논문의 양과 질이 높아졌다”며 “분야도 헬스케어, 무선 등으로 다변화되고 연구기관도 다양해졌다”고 평가했다.
중국이 기초체력을 다지고 있는 사이 한국은 정체를 보였다. 김형준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는 <축적의 시간>(2015)에서 “(우리)기업들이 굉장한 자만에 빠져 있다”며 “이에 더해 정부는 정부대로 실적이 좋은 기업에 미루면서 연구비를 깎고 있다“고 지적했다.
인재도 부족하다. 한국이 메모리 반도체에서 23년 독주체제를 이어오는 등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던 것은 삼성전자 등 기업의 선견지명과 함께 이를 뒷받침할 공학도들 덕택이었다. 지금 대학에서는 반도체 인재가 귀하다. 한 해 서울대학교 반도체연구소에서 배출되는 석·박사는 40여명에 불과하다. 지난해엔 석사 17명, 박사 25명이었다. 10년 전 106명이 배출됐던 것에 비하면 절반 수준이다.
여기에다 중국 기업들이 국내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인력 확보에 열을 올리면서 주요 인력도 빠져나가는 추세다. 국내 기업의 9배 이상에 달하는 파격적인 연봉도 제시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에서 퇴직하는 인력이 연간 200~300명에 달하는데, 대부분 부장급 이상 숙련된 인력이기 때문에 기술 유출의 위험도 크다.
디스플레이도 중국 천하…LCD는 '치킨게임'
LCD 산업은 휘청거린 지 오래다. '제2의 조선업' 징후도 농후하다. 중국 최대 LCD 제조사인 BOE는 20조원을 투자해 안후이성 허페이에서 10.5세대 패널공장을 짓고 있다. 왕둥성 BOE 회장은 “투자를 늘려 2022년 삼성과 LG를 넘어 세계 1위가 되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제시했다. 제품가격 하락을 고려하지 않고 생산량을 늘리겠다는 것이다. 중국이 LCD 기판 크기에서 한국과 일본을 추월한 것은 처음이다.
반면 국내 업계는 중국발 공급과잉에 제품가격이 계속해서 하락하자 일부 LCD 생산라인을 폐쇄하는 등 치킨게임에서 버거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LG디스플레이와 삼성디스플레이는 지난해 19개 LCD 생산라인 중 중소형 6개를 폐쇄한 데 이어 2~3개 라인의 가동을 추가로 중단할 계획이다.
시장조사업체 IHS는 오는 2018년 전체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국내 기업들의 점유율이 37%로 떨어지는 반면 중국과 대만 기업들의 점유율은 42%로 오르면서 시장이 중국을 중심으로 재편될 것으로 내다봤다. 8세대 생산량도 올해 중국에 추월당할 것으로 예측했다. 업계 관계자는 "LCD 시장에서는 중국과 치킨게임을 벌이기는 어렵다"며 "영업이익률도 급감하고 있어 장기적으로 LCD 시장을 중국에 내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승부처는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뿐이다.
전기차배터리 샌드위치 신세…일본 강세에 중국 추격
전기차배터리 시장에서는 테슬라에 독점공급하는 일본 파나소식의 강세 속에 중국의 견제까지 진퇴양난이다. 시장조사기관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 1~2월 업체별 전기차용 배터리 출하량은 일본 AESC가 총 299.1MWh를 출하해 13.5%의 시장점유율로, 파나소닉에 이어 2위로 올라섰다. 중국 BYD도 자국 전기차에 배터리 공급량을 크게 늘리면서 3위를 기록했다. 총 293.3MWh를 출하하며 점유율을 전년(9.8%) 대비 3.5%포인트 늘렸다.
이에 비해 LG화학, 삼성SDI, SK이노베이션 등 국내 주요 3사는 5~7위에 만족해야 했다. 테슬라 열풍으로 전기차의 대중화가 앞당겨지는 등 관련 시장의 전망이 밝지만 풍부한 내수를 바탕으로 한 중국과 달리 수출에 의존해야 하는 국내 기업들에게는 한계도 있다. 유신재 SNE리서치 상무는 “국내 업체들의 배터리 기술력은 글로벌 시장에서 인정받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라며 “치열한 수주 경쟁에서 점유율을 끌어올리는 게 향후 과제”라고 말했다.
SK하이닉스 공장 내부. 사진/SK하이닉스
김민성 기자 kms0724@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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