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권선거의 수단이 된 언론
1987년 민주화 이후 우리 사회에서 부정선거는 자취를 감추는 듯했다. 하지만 지난 대선과정에서 국정원과 기무사 등이 동원된 불법선거가 확인되면서 선거과정에 대한 불신이 증폭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총선에서도 관권을 동원한 선거개입은 여전했다. 국정원 등의 국가기관과 언론을 동원해 여론을 조작하려는 공작이 그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총선을 앞두고 북한의 로켓발사를 빌미로 남북 간의 긴장을 최고조로 끌어올리는 초대형 북풍공작을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사드배치와 같이 엄청난 국익이 걸린 중대한 문제를 정권 차원의 카드로 쉽게 소진해버리는 행태마저 보였다.
그런데 문제는 언론의 보도행태였다. 공영방송을 비롯한 소위 주류 언론은 북풍에 대한 비판은 고사하고, 정권의 북풍놀음에 발맞춰 남북긴장을 고조시키며 국민들을 위협했다. 선거나 민생 관련 보도는 사라져버렸고, 북한의 위협을 과장하는 보도가 쉴 새 없이 이어졌다. 국정원 등이 미확인된 북한 관련 정보를 꺼내면 언론이 이를 부풀리고, 정권이 북한을 위협하는 ‘말폭탄’을 쏟아내고, 언론이 이를 다시 받아쓰는 악순환이 되풀이되었다. 이와 같은 행태는 선거 직전까지도 이어졌다. 양치기 소년처럼 끊임없이 늑대가 나타났다고 외쳐댄 것이다. 주류 언론이 종북언론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본격적인 선거운동이 시작되자 언론은 노골적인 편파보도를 일삼았다. 야당의 갈등은 부추기고 확대한 반면 여당의 갈등은 축소 보도했다. 이 과정에 절묘한 역할분담까지 이루어졌다. KBS가 주로 북풍을 과장하는 역할을 담당했다면, MBC는 선거과정의 여당 편들기를 노골적으로 했고, 종편은 야당에 대해 거의 흑색선전에 가까운 비방을 반복했다. 국가기간통신사인 연합뉴스 역시 여당에 불리한 소식은 축소보도하거나 아예 누락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노골적인 선거개입은 정상적인 국회였다면 탄핵을 모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언론은 박 대통령의 발언이나 행보에 대해 무비판적으로 받아쓰며 관권선거의 수단을 자청했다.
대선 앞두고 언론장악 지속할 듯
언론의 편파보도 행태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그동안 거수기 역할을 했던 의회가 사실상 통제 불능 상태에 빠져든 만큼, 박근혜 대통령으로서는 국정원이나 검찰 등 다른 권력기관을 최대한 이용하려고 할 것이다. 이 중에서도 언론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공영방송의 경우 이명박 정부 이후 8년 동안 ‘진박 세력들’로 충분히 물갈이를 한 만큼 그 어느 기관보다 충성도가 높다고 할 수 있다.
언론이 정권의 일방적인 홍보수단으로 전락한 결과는 신뢰도 상실이다. 한때 신뢰도 1위를 차지했던 MBC의 몰락은 가장 극적인 사례이다. 예전에는 일부러 MBC를 골라보았다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리모콘에서 가장 많이 지워진 채널이 되었다. 공영방송 MBC의 극적인 몰락은 이명박 정부 이후 몰락한 공영언론의 실상을 대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권력의 논리가 개입되면서 공영방송이 제 기능을 할 수 없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의 시급성
하지만 야당은 그동안 여당이 국회의 다수당임을 내세워 사실상 공영언론의 일탈을 방조해왔다. 말로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투덜대면서도 속내는 애써 외면해왔다. 국회 선진화법이 있기 때문에 뚝심 있게 대처했다면 어떤 식으로든 대처할 수 있었겠지만, 협상과 타협이라는 이름하에 쉽고 편한 길을 걸어왔다.
언론을 두려워한 측면도 있을 것이다. 야당 의원들이 언론을 상대로 목소리를 높이다가 자신만 찍혀 일방적인 비난을 받는 걸 두려워한 것이다. 정청래, 신경민, 최민희 의원 등이 언론사를 상대로 싸우다가 언론의 근거 없는 비난 보도에 시달린 사례가 이를 증명해준다. 언론을 두려워하는 건 야당의 자신감 부족과 더불어 비겁함을 나타내기도 한다. 털어서 먼지 안 날 사람 있겠느냐는 말이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제 여소야대 국회가 만들어졌다. 더민주당 문재인 의원, 국민의 당 안철수 대표, 정의당 심상정 대표 모두 공영방송의 지배구조 개선을 약속했다. 공영방송의 양심세력이 모두 축출당하면 정권을 교체해도 소용이 없다. 양심세력이 그나마 남아있을 때 공영방송을 정상화해야 한다. 해직자 복직 같은 생색내기를 미끼로 적당히 타협하지 말라. 지금이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개선할 절호의 기회이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 이용마 MBC 해직기자. 사진=최창호 way PD |
(이 칼럼은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발행하는 웹진 ‘e-시민과언론’과 공동으로 게재됩니다. -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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