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 도종환 의원등이 '친일-독재교과서국정화반대서명운동'을 시작한 13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역 인근 서명대 바로 앞에서 보수단체 어버이연합 회원들이 항의 집회를 열고 있다. | |
ⓒ 이희훈 |
대한민국에는 정치 집회에는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일단의 무리들이 있다.
그들은 대정부 시위가 있는 날이면 어김없이 나타난다. 각종 구호가 적혀있는 피켓과 도발적인 현수막을 대동한 채 그들은 맞불시위를 놓고는 했다. 어떤 날은 시위와 집회를 막기 위해 '알박기'를 시도하는가 하면, 또 어떤 날은 야당 당사 앞으로 떼를 지어 몰려가기도 했다.
그들의 신출귀몰함은 '홍길동' 저리가라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안가는 곳이 없고 못 가는 데가 없다. 방송국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위안부 소녀상 근처에서 나타나기도 하고, 임진각 근처에 있는가 싶더니, 광화문 광장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애국심 하나로 똘똘뭉친 그들은 역동성과 호전성은 그간 많은 사람들의 연구대상 중 하나였다.
그러나 그들을 보면서 가장 의아해 했던건 역시 자금줄이다. 피켓값, 현수막값, 버스 대절비, 식대 등의 비용이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밝혀진 바가 없다. 여기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일당을 받고 동원되었다는 주장이 대세를 이루고 있으나, 그들은 회비를 걷거나 폐지 등을 수거해 자발적으로 활동해 왔다며 이를 부인하고 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고 있다. 구체적인 물증이 드러나지 않았을 뿐, 그들에게 확실한 돈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정부는 해마다 '비영리 민간단체 공익 사업 지원'을 명목으로 국고보조금을 지원하고 있다.시사저널이 입수한 2013~14년 안전행정부의 '비영리 민간단체 공익 사업 지원 대상 선정 내역'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는 2013년 289개 단체에 144억8000만원을 지원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이 내역에는 한가지 특이한 점이 눈에 띤다. 정부의 국고보조금 대부분이 보수단체에 집중되고 있는 것이다.
시사저널은 해당 자료를 분석해 민간단체의 성향을 '보수 성향'과 '진보 성향', 그리고 '보수와 진보로 구분하기 모호한 단체'로 구분하고 이들에게 지급된 보조금 내역을 세분화시켰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 첫 해인 2013년 취약 계층 복지, 국가안보·재난안전, 선진 시민의식 함양, 녹색성장(환경),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 등 5개 사업 유형 중 국가안보·재난안전 관련 단체에 37억원을 배정했다. 비율로 치자면 25%에 해당되는 금액이다. 그런데 바로 이 사업에 보수단체가 대거 몰려 있었던 것이다.
또 다른 사업 유형인 선진 시민의식 함양 분야 역시 대부분 보수단체의 차지다. 박근혜 정부는 2013년 70여 개에 이르는 이 단체들에게도 40여 억원을 지원했다. 그러나 나머지 단체들 중 진보단체나 진보성향에 가까운 단체에 대한 정부 지원금은 아예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결국 박근혜 정부는 비영리 민간단체 공익 사업 지원금의 절반 가량을 보수단체에 몰아주었던 셈이다.
보수단체에는 국고 지원금만 유입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들 단체들에는 수상한 자금도 흘러들어가고 있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탈북난민인권연합의 계좌 거래 내역에 따르면, 대한민국재향경우회(재향경우회)는 지난 2014년 12월30일 이 단체에 500만원을 입금한 것으로 드러났다. 확인해 보니 이 돈은 통합진보당 해산촉구 집회 참가자들의 일당으로 지출된 비용이었다. 재향경우회는 정치활동이 엄격히 금지된 단체다. 따라서 보도 내용이 사실이면 이는 명백한 불법행위에 해당된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도 탈북자들에게 인건비를 지출하고 그들을 각종 친정부 집회나 시위에 가담시켰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19일 JTBC는 어버이연합의 차명계좌로 보이는 계좌에서 2014년 9월부터 12월까지 '전국경제인연합회'란 법인 명의로 1억2000만원이 입금된 사실이 밝혀졌고, 이 자금이 탈북자단체로 흘러들어갔다고 보도했다.
아울러 JTBC는 어버이연합의 차명계좌로 추정되는 계좌에 4000만원이 입금된 다음날인 9월 6일, 어버이연합이 전경련이 강력하게 요구하는 민생법안처리 촉구집회를 열었다고 전했다. 전경련이 보수단체를 이용해 민생법안 통과를 위 여론 몰이에 나섰다는 뜻으로, 사실로 드러날 경우 엄청난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정부 들어 보수단체들이 어떤 활동을 해왔는지는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일이다. 그들은 국정원 사건, NLL 논란, 세월호 집회, 국정교과서, 위안부 협상, 대북 전단 살포, 민중총궐기 대회 등 각종 시국 현안 마다 어김없이 등장했고, 그때마다 여론을 호도하고 선동하면서 정부여당의 편에 서 왔다. 서로의 이익을 위해 공생관계를 유지해 왔던 것이다.
정부와 이익단체가 뒷돈을 대주고 보수단체들이 그들의 홍위병으로 맹활약하는 장면은 독재시대나 권위주의 시대에 횡횡했던 구시대의 흉물이나 다름이 없다. 보수단체로 흘러들어가는 자금에 대한 의혹의 실체가 드러난 이상 국정조사를 하는 한이 있더라도 명명백백하게 밝혀야 한다. 사라져야 할 낡은 시대의 방식이 활개치는 한 대한민국은 여전히 20세기에 머무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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