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보건시민센터는 원래 석면 추방운동과 조사연구를 하는 환경단체로 2010년 출발했지만, 이듬해 가습기 살균제 사태가 터지면서 이 문제에 전면적으로 매달리게 됐다. 사태 초기 무수한 언론보도가 있었지만 곧 기업과 정부의 모르쇠로 4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의 기억에서도 이 참사는 점차 잊혀져갔다. 이런 상황에서 환경보건시민센터가 지속적으로 이 문제를 알려온 것이 지난해 말 검찰이 수사에 착수하게 되는데까지 상당한 역할을 했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 옥시가 검찰수사를 앞두고 삭제한 게시판 글들을 보면 “호흡곤란 등 전형적인 증상에 대한 호소가 있었다”며 원료공급사와 제조사, 판매사들이 공유하게 돼 있는 물질안전보건자료(MSDS) 등을 근거로 “유해성을 사전에 인지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사들에 대해 업무상과실치사냐, 살인죄를 적용하느냐는 논란이 있는 가운데 최 소장은 “유해성을 인지했느냐가 살인죄 적용의 기준”이라며 “살인죄가 적용되는 게 맞다”고 지적했다. 검찰이 업무상 과실치사로 기소를 할 경우 공소시효는 7년. 이렇게 될 경우 2008년 이전의 사망자와 현재 가장 많은 피해자들이 몰려 있는 3차 조사 대상자(2019년에 결과가 통보 예정)들은 모두 공소 제기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 최예용. 사진제공=환경보건시민센터 |
옥시가 가습기 살균제 참사의 책임을 피하기 위해 주식회사에서 유한회사로 법인을 변경한 것과 관련해서 최 소장은 “살인범이 위장을 하고 이름을 바꾼다고 살인범이 아니게 되는가? 법적인 허점을 이용하려는 것인데 끝까지 책임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옥시가 소비자들의 게시글을 삭제했다고 하는데, 이 게시글들은 어떤 것들인가?
“저희 홈페이지에 올라온 내용들과 유사하다. 2000년대 초반부터 부작용에 대한 호소가 계속 올라왔다는 거다. 레킷벤키저가 당시 동양화학의 옥시를 인수한 게 2001년인데, 그 과정에서 성분이 바뀌었다. 그 전엔 어떤 성분인지 조차 모른다. PHMG가 이전 성분보다 훨씬 독성이 많은 것 같기는 하다.”
-검찰은 옥시가 사전에 독성을 알고 있었다고 보고 있다.
“두 가지다. 판매 전에 어느 정도 독성을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고, 그 때는 몰랐다고 해도 이후에 알게 됐을 가능성이다. 첫째는 압수수색을 해서 확인이 되는 거고, 두 번째가 옥시의 게시글 삭제와 관련된다. 제품 판매 이후에 고객들로부터 지속적으로 호소가 올라오는데 다양한 피해자들이 유사증상을 호소했다. 검찰이 파악한 바로는, 호흡곤란 등 전형적인 증상에 대한 호소가 있었다는 거다. 이런 게시글들을 수사가 본격화되기 직전에 옥시가 다 삭제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제품의 유해성을 점검해야할 이유가 생겼음에도 안했다는 게 된다.
이번 사건을 통해서 제조사들에도 당연히 책임을 물어야 하지만, 이 제조사들을 보이지 않게 비호하고 받쳐주는 그런 역할을 한 쪽에도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 옥시측이 요구를 해서 노출시험을 한 호서대, 동물실험을 한 서울대 수의대가 보도가 된 대로 조작이 맞고 옥시가 가이드라인을 준 게 맞다면 이들 역시 엄중한 비판을 받아야 한다. 연구 윤리를 넘어서는 문제다. 또 하나는 김앤장이다. 옥시가 증거를 조작하고 실험을 조작했다고 한다면, 옥시의 법률대리인이었던 김앤장이 그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조사해야 한다.”
-옥시가 책임 추궁을 피하기 위해 주식회사에서 유한회사로 변경했다는 검찰의 얘기와 언론보도가 있었다. 이게 영향이 있을까?
“중요한 쟁점이다. 저희는 알고 있었다. 2~3년전에 이름도 옥시레킷벤키저에서 알비코리아로 바꿨다는 등 여러 작업이 있었다. 이름은 대법 등기에선 바뀌지 않았으니 입에 오르내리는 것을 피해가려는 꼼수다. 그런데 유한회사 변경은 단순한 꼼수가 아니다. 언론보도를 보면 법원에선 문제를 일으킨 법인이 존재하지 않고 바뀌었다면 책임을 묻지 못한다, 그래서 기소 못한다고 나오는데 그렇게 되선 안된다. 살인범이 위장을 하고 이름을 바꾼다고 살인범이 아니게 되는가? 법적인 허점을 이용하려는 것인데 끝까지 책임 물어야 한다.”
-전체 제품들이 다 문제였던 것인가? 성분 파악이 안 된 살균제들도 있는 것 같더라.
“2011년 우리가 가습기 살균제를 조사할 당시 사용되던 제품은 20여종으로 확인됐다. 지금 피해자들이 사용 후 문제를 호소하는 제품은 대부분 액상제품으로, 13종에서 15종 가량이다. 이 가운데서도 주로 많이 판매된 6개 제품, 그런데 주성분이 겹치는 이유로 실제로는 3개만 동물실험을 했다. 옥시, 세퓨, 애경의 제품이다. 이 3가지의 주성분과 폐손상의 연관성을 확인한거다. 애경은 연관성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그 성분인 CMIT/MIT가 마치 안전한 물질처럼 그렇게 인식됐다. 그런데 2차 조사 당시 애경 제품을 단독으로 사용한 3명의 피해자가 나왔다. 한 명은 사망했다. 임상적으로는 확인이 된 것이다.”
-다른 성분을 사용하는 살균제도 있나?
“모른다. 3개 제품 이외엔 성분 검사를 해 본 적이 없다.”
-94년 유공의 가습기메이트 성분은 무엇이었나?
▲ 산소호흡기와 휠체어에 의지한 채 일인시위를 벌이고 있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사진제공=환경보건시민센터 |
-17년 동안 피해가 있었을 것인데 잠재적 피해규모를 어느정도로 보나?
“사용자가 검찰 추산이 800만명인데 우린 1087만명으로 본다. 검찰은 사용량으로 추산한 것 같고, 우린 지난해 말 서베이를 하고 이를 2011년 당시 인구로 추산했다. 그럼 여기서 실제 고농도 노출자나 피해자는 몇 만명인가. 옥시가 호서대에 실험했다는 것을 보면 60번 실험했는데 2번이 고농도 노출이었다. 물론 그들은 그걸 평균내서 안전하다는 식으로 발표했다. 여기서 고농도 노출이 60분의 2라고 보면 800만명일 경우라도 26만명이 된다. 이게 위험인구가 된다. 현재까지 피해신고가 1528명에 사망자 228명이다. 그럼 이 26만명 중 피해신고가 안 된 이들을 어떻게 찾을 것이냐가 큰 숙제인데 아무도 안 하고 있다. 행정부도, 검찰도 이건 안 하려 한다.
연쇄살인 사건이라고 치자. 수사를 해서 범인이 나왔다. 그런데 파면 팔수록 피해자는 더 나올 것이다. 범행은 오래전부터 했으니까. 그런데 현재까지 파악된 것만 조사하고 말겠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사건을 덮는 것이다. 정황이 있고 더 많은 피해자가 있다고 예상되면 제대로 수사를 해야한다. 검찰 다 할 수 업으니. 이런 환경부가 해야 할 일도 있는 것이고. 이 사건의 실체 드러내야 한다. 지금 안 하면 공소시효가 다 지나버린다. 잠재 피해규모로 보면 지금 파악된 건 1퍼센트도 안 되지 않나.”
-모든 제조사들이 흡입독성 실험을 안 한 것인가?
“아직 다 밝혀지지가 않았다. 1994년에 유공이 가습기 살균제를 처음 개발했다. 그리고 97년엔 애경이 제품을 내놨다. 이런 대기업들에 대한 신뢰 때문에 이후의 제조, 판매사들은 흡입독성 실험을 하지 않고 팔았을 수 있다. PB상품들의 경우에도 롯데마트, 홈플러스, 이마트 등 하나같이 대형 재벌기업들의 제품이다. 이렇게 큰 회사들은 나름대로 자체 안전 시스템도 갖춘 곳들이고, 회사 이름을 건 PB상품들인데 자체적으로 실험을 했을 가능성도 있다. 옥시만 그랬겠나. 다른 회사들도 피해자들의 컴플레인(소비자 호소)을 받았을 것이다. 모든 가습기 살균제에서 피해자, 사망자가 나오고 있기 때문에 거의 비슷한 양상의 피해호소가 있었을 것이다.
PB상품들을 보면 이마트는 처음부터 애경이 공급했다. 애경은 자기 상품도 있다. 홈플러스나 롯데는 PHMG로 옥시가 공급한 회사다. 중요한 것은 이런 대기업들이 PB상품을 내놓는 건 유통마진 만이 아니라 제품의 개발권과 소유권도 갖는, 결국은 돈을 더 벌려고 하는 것이다. 그렇게 이익을 보는 것이니 문제가 생기면 책임도 져야한다. ‘말이 PB지, 그냥 갖다 판거다’라는 변명은 말도 안되는 것이고.”
-공소시효가 곧 끝난다고 하는데?
▲ “우리 며느리는 누가 죽였노”. 사진제공=환경보건시민센터 |
그렇지만 이건 업무상 과실치사가 아니라 살인죄가 적용되는 게 맞다. 가습기 살균제의 유해성을 인지했느냐가 살인죄 적용의 기준이다. 기업들은 유해성을 몰랐다고 주장하는데, 이들 제조사들은 대부분 세제류나 살균제 등을 전문적으로 제조 판매하는 회사들이다. 화학물질, 유해물질에 대해서 가장 전문성이 있는 기업들이다. 기본적으로 원료 공급사들은 물질안전보건자료(MSDS)를 제조사에 제공하도록 돼 있다. 법이 그렇다. 상식적으로 유해성을 사전에 인지할 수밖에 없다. 판매업체도 마찬가지다. 제품엔 표기가 되지 않더라도 판매사들은 정확한 성분 표시가 된 원료를 받는다. MSDS는 판매업체도 받게 돼 있다. 의무사항이다.”
-정부는 태아사망의 경우 인명피해로 집계조차 하지 않는다.
“판정불가로 아예 배제하고 있다. 태아 때 노출이 됐는데 출생한 경우라면 폐손상을 확인할 수 있는데 아예 사산하거나 그러면 확인할 수 없다는 논리다. 대부분이 태아 상태에서 산모가 강제출산을 해야해서 사산하거나 산모가 사망하면서 같이 사망하는 경우다. 이들 산모들이 임신 초기인 경우가 드물다. 아기를 살려보려고 출생까지 어떻게든 버티려고 한다. 7-8개월이 돼서 병원에서 강제출산을 안 하면 둘 다 죽는다고 하니 어쩔 수 없이 사산하는 것이다. 정부는 출생기록이 없으니 판정대상이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태아에게서도 폐손상이 확인된다. 산모가 사망해서 태아가 함께 사망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태아도 당연히 피해자로 인정해야 한다.”
-3,4,5등급으로 판정이 난 사례는 가습기살균제와 정말 무관한가?
“그렇지 않다. 정부의 분류로 인해 마치 3,4등급 피해자들이 건강한 것처럼 여겨지고 있다. 3,4등급에도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사망자들이 있고 폐이식 피해자들이 있다. 지금까지는 가습기 살균제와의 연관성을 아주 특이한 기전으로 벌어지는 폐손상에 대해서만 인정해왔다. 이것만 연구가 됐기 때문이다. 다른 질환과의 관계에 대해선 연구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대표적인 게 호흡기 질환과 기저질환 문제다.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호흡기질환은 천식, 폐렴이 많다. 기저질환 문제는 원래 질환이 있었는데 가습기 살균제의 사용으로 더 악화되거나 사망에 이른 사례들이다. 기저질환이 있었던 경우 사망자도 많다. 지금까지 정부는 기저질환이 있으면, 이 기저질환과 가습기 살균제와 무관하다는 이유로 결과적으로 ‘가능성 낮음’ 판정을 한 것이다.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악화, 사망 사례가 연구가 안된 것이다. 기저질환에 있는 피해자들이 가습기 살균제 노출량이 훨씬 많다. 병원에서 가습기를 거의 24시간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악화 속도가 빠르다.
3단계로 판정한 경우들은 폐질환은 보이는데, 가습기살균제의 특이한 기전과 좀 달라 보인다는 경우다. 가습기 살균제는 폐손상만 일으킨다라는 인식이 있는 것인데, 과연 그럴까? ‘모른다’가 정답이다. 시급하게 연구를 통해 연관성 밝혀야 하는 거다.”
▲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피해자 폐사진(위)과 동물실험 전후의 실험쥐 폐사진(아래). 사진제공=환경보건시민센터 |
“피해신고 적은 이유중 하나가 그것이다. 중단단계라는 게 있다. 급속한 폐손상까지 가기 전에, 천식 발생한다던가, 환절기마다 기침을 한다던가. 산모나 아이가 아파서 아예 신경을 쓰지 않다가 나중에 확인해보니 아빠도 폐손상을 입은 경우가 드물지 않게 확인되고 있다. 노출량이 많아서 건강검진으로 확인해보니 그렇다는 거다. 확인되지 않은 피해자들이 많을 것이다.”
-정부의 피해자 분류에 문제가 있나?
“3, 4단계 피해자들이 실제 건강피해를 입었는데도, 가습기 살균제 때문이 아니라는 것으로 정부가 인정하는 것처럼 되어버린다. 그럼 이들 피해자들은 어떤 기관에도 하소연할 수가 없다. 형사소송이나 민사소송을 할 때 판단 근거를 정부의 판정으로 하고 있다. 3,4단계는 피해인정자가 아니라는 거다. 정부가 인정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실제 소송에서 계속 패소하는 그런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가 이렇게 피해 규모를 축소하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부가 소송의 대상이기 때문에 그런 태도를 보일 수 있다는 시각에 충분히 근거가 있다. 이사건이 5년 가까이 해결이 안 된 게 정부의 소극적인 태도 때문이다. 정부의 책임이 분명히 있는 문제이다. 정부의 잘못이 없는데 이런 제품이 판매되고 피해자가 발생할 수가 없는 거다. 그래서 책임 회피를 한다. 기획재정부의 내부 문건에서 이렇게 얘기가 나왔다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피해는 제조업체와 개인 간의 문제’라는 거다. 정부는 지금도 법정에서 같은 논리를 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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