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가 '탈북자 동원 집회' 의혹을 받고 있는 어버이연합 등 보수단체에 억대 자금을 지원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가운데,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전경련 사옥 앞에서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 |
ⓒ 유성호 |
청와대는 부인했다. "사실이 아니다"라는 짧은 논평만이 전해졌다. 짧긴 했지만 굵은 핵심이 들어있는지는 의문이다. 분명한 건 그 말을 곧이 믿는 이들은 많지 않아 보인다는 점이다. 어설픈 부정은 오해를 낳는 법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아래 전경련)도 부인하는 중이다. 그런데 해명이 구질구질하기 짝이 없다. 공식 해명도 없다. 최저임금 몇 백 원, 몇 천원 인상에도 벌벌 떠는 최고 기업인들이 "주인이 누군지도 모르겠다"고 본인들이 잡아떼고 있는 계좌에 적어도 수억을 '쏜' 정황이 발각됐는데도 말이다.
전경련이 어버이연합에 억대의 자금을 지원했다는 정황이 포착된 가운데, 청와대가 지시한 것이 아니냐는 후속 보도가 이어져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19일부터 JTBC와 시사저널을 비롯한 언론들의 취재가 열기를 띠는 중이다. 그 와중에 청와대는 부인하고, 전경련은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어버이연합을 비롯한 각종 보수단체들의 성실하다 못해 '시위꾼'과 같은 집회에 뒷돈을 대는 세력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식지 않았던 심증이 이제 구체적인 정황과 집중적인 후속 보도로 이어지는 형국이다.
국민들을 납득시킬 해명이 나올 가능성도 적어 보이지만, 그 어떠한 해명이나 변명에 아랑곳없이 후속 취재와 더불어 검찰 조사는 물론 국정 조사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커져 가고 있다.
청와대와 전경련의 미심쩍은 '부인'
▲ 어버이연합, 탈북단체 회원들이 1월 6일 오후 종로구 일본대사관앞에서 일본군위안부 문제 관련 한일협상을 환영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 |
ⓒ 권우성 |
"시위는 정치적 의사 표현입니다. 돈 받고 시위하는 건 돈 받고 투표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돈 받고 시위하는 건, 민주공화국의 수치입니다. '어버이'라는 이름을 수치스럽게 만든 건, 돈 주고 시위에 동원한 것보다 더 큰 죄입니다."
전우용 역사학자의 일갈이다. 맞다. 어버이연합의 시위 동원이 노인과 탈북자를 위한 '창조복지'의 일환이 아닌 다음에야 지속적이고 치밀하게 친정부·친기업 시위에 노인들과 탈북자들을 동원했다는 것은 민주주의 파괴와 다를 바 없는 행위라 할 수 있다. 그래도 짧은 논평과 묵묵부답으로 일관할 셈인가.
21일 오전, 청와대 정연국 대변인은 한 청와대 관계자가 어버이연합에 '일본군 위안부 협상타결'을 지지하는 집회에 참가해 달라고 직접 요청했다는 20일 <시사저널> 보도와 관련해 "기사는 사실이 아니다"라 못을 박았다.
정 대변인의 발언을 종합해 보면, 청와대가 어버이연합에 지시를 했다는 보도 전반은 사실이 아니지만 정정보도 요청은 추이를 지켜보겠다고 한다. 또 지시 당사자로 알려진 ㅎ비서관에 대해서는 본인의 업무라 대변인이 뭐라 답할 수 없지만, "기사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전경련의 입장은 더욱 가관이다. JTBC의 단독보도 이후 이틀이 흐른 21일 오전까지 보도자료 한 줄 내놓고 있지 않다. 20일 JTBC <뉴스룸>의 손석희 앵커는 <어버이연합인지는 몰랐다?…전경련의 '이상한 해명'>이란 리포트를 소개하며 이렇게 꼬집었다.
"전경련은 아직까지 공식 해명은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저희 JTBC 보도 이후 여러 언론이 취재에 나서자 그때그때 다른 답변을 내놓고 있는 상황입니다. 오늘(20일) 나온 다른 언론 기사들을 보면 대략 송금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어버이연합인지는 몰랐다, 그 돈은 일상적인 기부였다, 이런 주장을 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전경련이 뒤늦게 내놓고 있는 이런 얘기들은 도리어 이 거래가 심상치 않다는 점만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1억 2천만원 '푼돈'
▲ 어버이연합 서울역 난동 보수단체인 대한민국어버이연합 회원 수십명이 2월 5일 오전 설연휴 귀향객들을 대상으로 서울역에서 서명운동을 벌이던 세월호참사 유가족과 시민들, 민주노총 등 노동단체, 국정교과서 반대 시민단체 회원들을 향해 폭언과 폭력을 행사했다. 어버이연합 회원들이 서명운동중인 세월호참사 유가족과 시민들을 향해 삿대질과 폭언을 하고 있다. | |
ⓒ 권우성 |
이번에 공개된 전경련의 송금 내역은 고작 4개월치다. 이명박 정부는 물론 박근혜 정부 내내 참으로도 성실히 활동해온 어버이연합에 건네진 돈이 단 4개월치, 1억 2천만 원뿐이었을 거라고 미뤄 짐작하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뉴스룸> 역시 이에 대한 궁금증을 후속보도로 풀어냈다. 어버이연합 관계자의 말은 이를 입증한다.
"(전경련 돈) 지원 나온다는 것은 알았고 (1억 2000만 원) 푼돈에 불과하지. (관련 단체에는) 푼돈밖에 안 돼요."
'푼돈'. 1억 2천만 원이 푼 돈이라면, 도대체 얼마가 이 '관제시위'들에 투입됐을까. 이어 터져 나온 '청와대 지시' 의혹은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지는 수준이 결코 아니다. 이미 간간이 터져 나오고 있는 보도들을 종합한 의심 가능한 합리적인 추론만 해도 적지 않다.
'관제 시위'에 동원된 단체가 어버이연합 하나뿐이 아니라는 점, '관제시위'의 성격이 유독 '박근혜 정권' 편향적이었다는 점 등.
이날은 전경련 관련 시위, 저날은 '김무성 반대' 시위 등 신출귀몰했던 어버이연합의 관제시위들은 심지어 세월호 유족들을 향해 폭력으로 이어진 사례까지 있을 정도다.
그 어버이연합을 위시한 이른바 애국보수단체의 맞불집회들은 그간 개별 사안과 집회들을 모두 '보수와 진보' 혹은 '좌우'라는 '기계적 균형'을 맞추는 균형추로 작용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게 활용됐던 집회들이 기업의 돈으로, 청와대의 지시로 이뤄진 '기획 작품'이었다면, 그 책임을 누가 져야 할 것인가. 이미 청와대 지시설이 제기되기 직전인 20일 오전, 야3당은 한목소리로 전경련의 어버이연합 지원에 대해 국정조사를 추진하기로 하면서 검찰조사를 촉구했고, 경실련은 '전경련 해체'를 주장하며 검찰 조사를 의뢰한 상태다.
4.13 총선 이후 여소야대 국면에서 야당의 의지와 여론의 추이에 따라 전경련 외의 '배후'도 충분히 드러날 수 있는 상황이다.
4.13 총선 이후 달라진 분위기
한편 ㅎ행정관은 20일 밤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시사저널>의 보도를 전면 부인했다. ㅎ행정관은 "<시사저널>의 보도는 기본 팩트조차 확인하지 않은 명백한 오보이기 때문에 법적 대응도 강구하겠다"라고 밝혔다(관련 기사 : 어버이연합 핵심 인사 "청와대가 집회 지시").
그는 "어버이연합이 (청와대의) 집회 지시를 거부했다고 했는데, 어버이연합은 한일 위안부 합의 체결을 환영했고, 지난 1월 6일에 주일대사관 앞 소녀상 근처에서 한일 위안부 합의 체결을 환영하는 기자회견도 했다"라고 설명했다. 어버이연합 역시 <시사저널> 보도가 "명백한 오보"라고 밝혔다. 이러한 가운데 위안부 합의 체결 집회에 참여했던 또 다른 보수단체 역시 지시에 의한 동원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21일, 어버이연합은 <시사저널> 앞에서 항의집회를 열었다. 앞서 지난 15일 어버이연합이 세월호 반대 집회 등에 돈을 주고 탈북자들을 동원했다고 방송한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의 김현정 앵커와 권민철 기자, 해당 내용을 인용 보도한 <위키트리> 기자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고 밝혔다.
왜 <시사저널>이나 JTBC는 빼 먹었는지 의문이지만, 어버이연합이나 전경련, 그리고 또 다른 '윗선'들이 아직 상황 판단이 덜 된 것 같다. '관제시위'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이 어떠한지, 자신들이 어떤 심각한 일을 저질렀는지, 또 법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어떤 책임을 져야할지 말이다.
4.13 총선 이후 확연히 달라진 분위기를 감지하셔야 할 때다. 비록 21일 법원은 국정원 '좌익효수'에 대한 무죄 판결을 내렸지만, 상황 판단이 누구보다 빠른 검찰이나 언론이 '닥치고 전경련, 청와대 편'을 들것이라 생각하면 오산이 아닐 수 없다. 이미 싸움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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