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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April 22, 2016

“중국이 미국보다 조금 더 리니언트한 제국 되지 않을까”

“하루빨리 평양 가야지. 그게 민의고 대정치야.” 지난 18일 서울 대학로 소재 통나무출판사에서 만난 도올 김용옥은 여소야대로 끝난 이번 총선 결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뒤, 박근혜 대통령에겐 역사의 대세를 트는 대정치에 나
서라고 주문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하루빨리 평양 가야지. 그게 민의고 대정치야.” 지난 18일 서울 대학로 소재 통나무출판사에서 만난 도올 김용옥은 여소야대로 끝난 이번 총선 결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뒤, 박근혜 대통령에겐 역사의 대세를 트는 대정치에 나 서라고 주문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토요판] 특집
도올의 한국, 도올의 중국
▶ 도올 김용옥은 수년 전부터 한국 사회가 중국을 이해하는 방식에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해왔다. 최근 한 종합편성채널에서는 현대 중국 사회의 역동적 변화를 통해 우리의 현주소를 되돌아보자는 뜻에서 ‘차이나는 도올’이라는 이름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그를 만난 날은 여소야대로 끝난 4·13 총선 닷새 뒤다. 이번 총선 결과를 두고 “역사의 한 획을 긋는 사건”이라는 평가로부터 시작된 그의 입담은 21세기 중국의 미래까지 거침없이 펼쳐졌다.
“<차이나는 도올>이라는 방송 프로그램을 내가 왜 하겠어. 중국은 우리와 다른 체제의 사회인데, 사람들은 중국을 한국을 이해하는 방식으로 이해하려고만 해. 다 우리를 돌아보고 우리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자는 취지 아니겠어? 요 앞(통나무출판사) 동네 철물점 할아버지는 맨날 1번만 찍는 양반이야. 이번에 물어보니, ‘아휴 당신 강의 듣고 있자니 찍을 놈 하나 없네. 그래서 안 갔어’ 그래요. 그래서 내 강의가 뭔가 변화를 주고 있다고 나는 생각하는 거야.” 역시나 도올 김용옥은 한국 정치 이야기보따리를 맘껏 풀어놓고 싶어 했던 거다. 마침 20대 총선이 여소야대로 끝난 터다. 총선 닷새 뒤인 지난 18일 서울 대학로 소재 통나무출판사에서 그를 만났다. 올바른 ‘중국 읽기’가 무엇인지 알아보려던 인터뷰는 자연스레 총선 이야기부터 시작됐다. 결국 중요한 건 ‘한국 읽기’였다.
“전라도 신화가 깨진 거야”
-선거가 끝났다.
“내 강의를 통해 보수세력들에게조차 지금 같은 피상적인 세계 정보와 지식으로는 앞으로 이 나라를 이끌 수 없다는 근본적인 인식의 전환이 시급함을 일깨웠다고 생각해. 젊은이들도 마찬가지다. 내가 지난해부터 정치에 무관심하면서 헬조선은 무슨 얼어죽을 헬조선이냐며 젊은이들을 질타했다. 이런 분발과 자극이 이번 선거에서 20~30대의 투표율 증가로 이어져 결과적으로 야권이 승리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 거야. 또 하나. 종편이고 뭐고가 난리 치고 그랬는데, 결과는 그런 언론 농간에 더 이상 국민들이 농락당하지 않는다는 걸 증거했다.”
“단군 이래 우리 민족의 민의가 순수하게 반영될 수 있는 제도로서의 선거가 우리에게 처음 다가왔다는 것. 이것이 이번 선거가 가장 소중한, 역사의 한 획을 긋는 사건이라고 보는 것.” 그가 내린 총선 총평은 이랬다. 하지만 각론에서 그의 이야기는 충분히 논쟁적이었다. ‘호남’의 선거 결과에 대한 평가는 편파적이라 할 만큼 혹독했다.
-호남에선 국민의당이 압승을 거두었다. 그런 와중에 더불어민주당이 제1당이 되었다. 이런 결과는 좀 혼란스럽기도 하다.
“내가 아주 분노하고 있다. 호남인들의 선택에 대해서다. 1980년의 위대한 광주항쟁을 계기로 우리 민족은 민주주의를 쟁취하는 길로 나섰다. 호남이 우리 역사에서 민주의 주체요, 정의의 대들보 노릇을 해주고 있다는 것을 누구라도 인정했다. 그런데 그 호남인들이, 물론 여러 가지 이유를 댈 수 있겠지만, 이번 선거에서 말도 안 되는 모습을 보였다. 나는 같은 동포의 한 사람으로서 가혹하게 질타하고 싶다. 이제 전라도 없이는 민주가 불가능하다는 통념은 박살이 났다. 호남의 지지 없이도 야당이 제1당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뭘 의미하냐. 전라도 신화가 깨진 것이다.”
-수도권에서 더민주의 승리는 국민의당의 새누리표 잠식 효과도 있지만, 호남인들의 전략적 교차투표도 작용한 결과가 아닐까? 결과적으로 새누리당을 야권이 포위하지 않았나?
“그런 측면도 있다. 내가 하려는 말은 그런 게 아니다. 호남인들이 국민의당과 더불어 정국의 캐스팅보트를 쥐었다는 사실에 하등의 역사적 의의를 두지 말도록 쐐기를 박아두자는 거다. 그와 동시에 나는 더민주 놈들한테도 외친다. (언성을 높여) 무슨 이야기냐. 더민주는 선거 전만 해도 절망 상태였지 않았나. 그 절망감을 잊지 말라는 거다. 조금이라도 자기들이 잘해 이긴 양 승리감에 도취되면 그날로 더민주는 폭삭 망한다. <중용> 1장에 이런 말이 있다. ‘군자는 계신호기소부도(戒愼乎其所不睹)하며 공구호기소불문(恐懼乎其所不聞)이니라.’ 군자는 보이지 않는 데서도 경계하여 삼가고, 듣지 않은 것에도 두렵고 무서워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 신독(愼獨) 사상의 대명제다. 더민주는 항상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는 ‘공구’의 마음에 사로잡혀 있어야 한다. 아니, 대선까지는 아예 공구 속에서 살아라! 이번 선거는 새로운 비전을 갈망하는 민중들의 절박한 요구 아닌가? 민생을 해결하고 우리 젊은이들이 미래에 대한 꿈을 가질 수 있는 정치를 해달라는 절규 아닌가?
-지금 우리 정치에서 비전이란 도대체 뭘까?
“국가 비전은 모두 민생, 이 한마디로 압축된다. 근데 이게 대기업 몇 개 가지고 전 국민을 먹여살리는 구도 속에 안주하고 있다. 이건 집권세력이 일종의 내부 식민지를 경영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 낮은 수로는 민생 문제가 해결 안 된다. 민생이 결국 국민을 잘 살게 하는 거라면, 지금 단계에서 민생 문제 해결은 남북문제 해결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본다. 보수 꼴통들은 끊임없이 국민들을 세뇌한다. 우린 아직 전쟁 중이라고, 6·25는 끝나지 않았다고. 그래서 뻑하면 정치를 전쟁 준비하듯 한다. 그러니 선거전략이란 것도 고작 지난해 넘어온 북한 군인을 앞장세우는 거다.”
그의 이야기는 진정 민생정치를 원하면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꿔야 한다는 대목으로 이어졌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주체적으로 운영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민생이 해결되나? 멀리 갈 것도 없이 일제 때를 생각해 보라. 주권이 없는 곳엔 착취만 무성하다는 것을. 더민주 놈들도 똑같아. 그놈들, ‘아, 선생님, 그게 말이죠, 막상 현실에서는 안 먹혀요, 그런 말씀. 져요.’ 그런데 여기에 함정이 있다는 거야. 질 때 지더라도 끊임없이 그런 비전을 제시해왔다면 벌써 휴전협정은 사라졌어. 이왕 질 거 왜 선명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냐고. 카리스마틱한 리더십을 가지고 사태를 소신껏 끌고 나가는 그런 정당을 국민들은 리스펙트(존경)하는 거야.”
“이번 선거는 역사의 획 긋는 사건”
호남 선거 결과는 매우 비판적 평가
“더민주, 대선까지 ‘공구’ 속에 살아야”
“국가 비전은 민생 이 한마디로 압축”
민생 풀려면 남북 문제 해결부터
“4대강 팔 돈이면 시베리아철도를”
세계기업 삼성인데 일자리 창출 한계
낙후된 북한 지역 개발 꿈 키워야
“선거제도니 내각제니 개소리 말라”
“한 놈이 오래 해먹지 말라” 아직 유효
이인우 <서울&> 콘텐츠디렉터와 인터뷰하는 모습.
강재훈 선임기자
이인우 <서울&> 콘텐츠디렉터와 인터뷰하는 모습. 강재훈 선임기자
“싹 바꿀 수 있는 시스템에 문제 있나?”
-이제 새누리당으로 돌려보자. 박근혜 대통령은 총선 후 민의를 겸허히 받아들이겠다, 새로운 각오로 자신이 추진해온 개혁, 경제계획들을 차질 없이 수행하겠다고 했다. 국정기조는 그대로 가져가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임기를 20여개월 남긴 박 대통령에게 조언한다면?
“박 대통령이 해야 하는 가장 시급한 게 있다. 정말 역사에서 위대한 평가를 받으려면 자잘한 정치조작이나 역사왜곡 말고 진짜 대정치인이 한번 되어보라고 말하고 싶다. 시간? 충분하다. 요는 하루빨리 평양을 가라는 거야. 역사의 대세를 확 트는 것이 바로 민생이요, 민의의 반영이다. 제발 부탁이다. 도올의 말을 시대의 소리로 들어다오. 내가 존경까지는 바라지 않지만, 그래도 국민 사이에 회자는 될 정도 인물이라고 한다면. 개인 김용옥의 허튼소리가 아니다. 하루빨리 개성공단도 몇 배로 활성시키고 하나의 이념적 전향을 이룩해야 한다. 그게 민의의 반영이고 대정치다.”
이 대목에서 그의 이야기는 또 한차례 비약했다. “박근혜는 물론 정치권 모두에게 외친다. 다음 선거에서는 최소한 우리 역사가 새로운 물결을 타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여야가 경쟁하는 시대가 되어야 한다. 대정치가라면, 내가 그 분위기를 깔아주겠다, 이런 사명감과 스케일이 있어야 해. 그러지 않고는 장이 안 바뀐다. 맨날 도토리 키 재기 싸움박질만 하고 있을 거야. 4대강 팔 돈이면 시베리아로 이어지는 철도를 놔야지. 그 철로 위로 케이티엑스(KTX)가 대륙을 향해 달릴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거야. 그런 위대한 꿈을 안 꾸고 도대체 젊은이들에게 무슨 꿈을 이야기하나? 어차피 대기업 몇 개로는 자리가 없어. 삼성만 해도 세계기업인데 한국 젊은이가 거기 몇 명이나 들어가겠나? 안 된다. 정말 더 많은 젊은이들을 꿈을 꿀 수 있게 해줘야 한다. 그게 뭐냐? 낙후된 북한 지역으로 들어가 농촌을 재건하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육아시설을 짓고, 경제개발 계획을 이끌어주고, 왜 이런 꿈들을 젊은이들에게 심어주지 못하나? 무슨 선거제도니 내각제니 정말 개소리 말라고 하세요!”
-개헌 자체에 부정적인 것 같다.
“부정적일 뿐 아니라 개헌 후의 결과에 대해서도 비관적이지. 나는 현행 대통령 5년 단임제가 아직 역사적 역할이 남았다고 보는 사람이야. 지금의 제도는 장기집권에 신물이 난 국민의 선택이거든. 이 역사적 요구가 과연 완전히 실현되었다고 보는가? 한 놈이 오래 해먹지 말라는 명제는 더 이상 위협받지 않고 있는가? 나는 아직도 우리 민주주의가 이런 걱정을 불식할 만큼 성숙하지 않았다고 본단 말이야. 새누리든 더민주든 국민의당이든 국민 뜻과 거스르면 싹 바꿀 수 있다는 이 시스템에 무슨 문제라도 있나?”
너무 길다 싶었다. 총선 결과를 빌미 삼은 정치 이야기는 여러 야권 지도자들에 대한 도올 식 인물 품평을 한바퀴 돌고서야 끝났다. 본론인 듯, 본론 아닌, 본론 같은 중국 이야기로 어쨌든 넘어갔다.
-한 종편 채널에서 진행하는 강의에서 현대 중국사, 특히 시진핑 주석에 대해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시진핑 주석에게 중국의 미래를 위해 마르크스-레닌주의 대신 중국 고대 문명의 지혜에서 중국의 미래를 찾으라고 역설했다. 중국 지도부는 공산당 간판을 걸고 있는 한 절대로 마르크스-레닌주의를 포기할 수 없지 않겠는가?
“중국 체제는 근원적인 모순을 안고 있다. (자본주의적) 개혁·개방과 사회주의 원칙의 고수. 이건 너무나 웃기는 이율배반이야. 그럼에도 중국이 이런 이중 노선을 표방하는 것은 군부의 반발 때문이 아니겠는가. 체제의 가장 강력한 보수의 보루는 어느 사회나 군부다. 시진핑도 이걸 잘 안다. 우리도 권위주의 시대 때는 ‘박사 위에 육사’ 아니었나? 중국이 바로 그런 단계에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지금까지 보면 시진핑은 군부를 잘 다독이면서 조심스럽게 군부 개혁을 차근차근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
-중국의 사회주의 원칙은 민주주의와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사회주의가 지향하는 대원칙은 인간 평등이다. 평등을 향한 인류의 오랜 로맨스, 로망이 이념화한 것이 사회주의지. 마르크스주의도 그런 로망의 체계 중 하나이지, 절대불변의 원칙이 아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중국이 이 로망, 이 평등주의적인 사회주의 원칙을 버리고 공맹(공자와 맹자)으로 돌아가라고 하는 게 아니다. 중국의 위대한 전통인 선진(先秦)철학(진나라 이전의 중국 문명)의 언어를 빌려서 21세기적 중국의 이데올로기를 새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도올 김용옥은 “21세기에 중국이 다시 옛날의 저력을 발휘하리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며, 중국의 미래를 비교적 밝게 내다봤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도올 김용옥은 “21세기에 중국이 다시 옛날의 저력을 발휘하리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며, 중국의 미래를 비교적 밝게 내다봤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중국, 미국 민주주의 아류 되면 안돼”
-고대의 언어로 21세기 미래 중국의 이데올로기를 수립한다?
“나는 중국이 지도적 문명이 되려면 반드시 새로운 문명을 이끌어갈 뉴 텍스트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본다. 이 뉴 텍스트를 낡은 마르크스주의나 마오쩌둥 어록으로 할 수 있겠나? 중국 학생 교과서에서 사회주의 과목 싹 쓸어내고 새로운 언어와 이념으로 쓰인 신중국몽 텍스트가 절실하다.”
“시진핑 주석에게 정말 말하고 싶다. 당신 아버지(시중쉰 전 부총리)가 선전(심천) 경제특구를 만들었다면 당신은 사상특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모든 사상적 자유가 보장되는 그런 사상의 특구에서 중국의 미래, 나아가 인류의 미래를 논해보자는 거다! 중국의 미래는 단지 중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 전 인류는 21세기를 이끌어갈 새로운 비전을 애타게 찾고 있다. 인류의 프런티어 아카데미가 절실하다. 시진핑 당신은 전세계를 돌며 중국의 일대일로를 외치고 있는데, 전 인류를 하나로 연결하는 사상의 일대일로를 왜 건설하지 못하겠는가! 나는 그렇게 당신에게 주문하고 싶은 거다.”
중국 이야기로 넘어오니, 역시나 그의 목소리에도 더 힘이 들어갔다. 뉴 오더, 뉴 아시안틱 오더…. 그의 머릿속에 그려진 중국의 미래를 나타내는 열쇳말이었다.
-미래의 중국은 세계를 지도하는 국가가 될 수 있을까?
“우리가 중국의 미래를 말할 때 놓치는 게 있다. 민주주의가 미국 모델만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민주주의 이상에서 볼 때 미국도 실험 중인 체제의 하나일 뿐이다. 게다가 문제도 엄청 많다. 트럼프가 뭔가 하는 미친놈 날뛰는 걸 보라, 미국 민주주의의 한계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지 않나. 만일 중국의 미래에 관해 시진핑이 내게 조언을 구해온다면, 어떤 경우라도 중국이 미국 민주주의의 아류가 되어선 안 된다는 얘기 해주고 싶어. 중국은 또 하나의 미국, 미국의 21세기 후계자가 되어선 안 돼. 중국은 ‘뉴 오더’(새로운 질서), ‘뉴 아시아틱 오더’를 창출해야 한다. ‘어나더 아메리카’는 결코 반대한다, 그렇게 말해주고 싶다.”
-현 중국 지도부는 2012년 출범하면서 신중국 건설 100주년을 넘어서는 2050년쯤에 사회주의적으로 현대화된 중국을 이룩한다는 거대한 마스터플랜을 제시했다. 서구에서 탄생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이룩하지 못한 이상을 중국적 가치를 배경으로 달성한다는 문명사적 야망을 드러낸 거다. 과연 중국의 이런 역사적 실험은 성공할 수 있을 거로 보나?
“중국은 고대 문명의 전통이 지금도 이어지는 지구상의 유일한 고문명 국가이다. 수천년 전에 완성된 고문명이 21세기에 다시 거대한 힘을 발휘하려는 그 저력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중국은 역사적으로 개방적인 통합성을 유지하고 있을 때 가장 강력했다. 당나라가 대표적이다. 청나라 강희제 시대도 마찬가지다. 만주족의 청나라가 세계 제일의 강대국이 되었던 것은 외부 에너지를 끊임없이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청이 망한 것은 서구 과학문명에 뒤진 탓이 크지만, 내적으로는 만주족과 한족의 분열과 대립이 원인이었다. 그 후 여러 노선들이 중국 근대화의 주도권을 놓고 각축을 벌이다가 공산당이 최후의 승자가 된 것이지. 그런데 그 공산주의 중국이 다시 개혁·개방을 외치고 있다. 이런 200년 가까운 중국 역사를 면밀히 고찰해 보면 21세기에 중국이 다시 옛날의 저력을 발휘하리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미래 중국 체제의 모습을 그려보고 싶다.
“공산당의 개혁·개방으로 중국의 무서운 저력이 입증되었다고 한다면 남은 문제는 무엇이겠는가? 중국의 남은 과제는 20세기 신중국 탄생의 밑그림이 되어주었던 공산주의를 여하히 잘 폐기처리하느냐다. 중국이라는 나라는 외부의 것이 들어와 그대로 자기 모습을 유지한 사례가 없다. 대표적인 것이 완전히 중국화되어버린 불교다. 공산주의도 마찬가지 운명에 처할 것이다. 중국 것이 아닌 것은 사라지거나 중국화의 변질을 겪는다. 그것이 중국이다. 우리가 말하는 ‘중국 모델론’은 바로 이 과정, 공산주의가 발전적으로 소멸되는 방식으로서의 체제 이행 모델, 그것이 중국 모델론의 핵심이다. 이 역사적 대세는 너무나 명백해 두말할 필요가 없다. 마르크시즘은 이미 시효가 다했다. 그러나 그 이념이 지향한 로망은 20세기 전체 인류사의 유니크한 경험으로, 위대한 자산으로 남겨져야 한다. 단, 그 로망은 마르크스주의를 고집하는 한 이뤄질 수 없는 꿈이 되고 만다는 역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자기를 중심으로 한 천하관을 가진 나라다. 그래서 중국이 힘을 가지게 되면 반드시 패권주의로 흐를 것이라고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세계 최강자 미국을 보자. 20세기 초반 미국은 리버럴리즘의 전파자이자 파수꾼이었다. 그런 선한 미국이 후반으로 가면 거대한 금융사기꾼 집단으로 전락했어. 국제관계에서 강자는 늘 선악의 두 얼굴을 동시에 지닌다. 문제는 21세기의 중국이 20세기 초반의 선한 미국 같은 역할을 할 수 있고, 또 하려고 할 것인가 하는 의문일 것이다. 비관적 견해가 많겠지만, 나는 좀 다르게 생각한다. 어디가 더 선한 제국이냐가 아니라, 중국이 미국보다는 조금은 더 리니언트한(관후한) 제국이 되지 않을까? 세계인들은 중국이 어떤 제국이 될 것인가를 미리부터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오늘날조차 저 도덕성을 상실한 미국과 비교해 중국이 꼭 미국만 못하다고 할 수 없지 않은가? 나는 사상가의 한 사람으로서 미래의 중국인들이 미국이 구현하지 못한 선한 제국으로서 새로운 질서를 구현하도록 도와주고자 하는 거야. 중국은 맹자 이래 수천년간 왕도의 위대함과 패도의 위험성을 학습해온 제국이다. 걱정할 것은 중국의 천하주의가 아니라 중국의 부흥 과정에서 표출되는 과도한 중화민족주의다. 중국 민중은 위대한 부활을 위해 앞으로 많은 것을 배우고 개선해 나가야 하는 시기에 처해 있다. 아, 정말 시진핑이하고 나하고 마주 앉아 이런 높은 수준의 대화를 나눠야 하는데 말이야. 하하.”
‘개혁·개방과 사회주의’ 갈등 중국
“21세기 이데올로기 새로 만들어야”
민주주의란 여러 모델 공존할 수 있어
“중국의 미래는 중국만의 문제 아냐”
“‘어나더 아메리카’는 결코 반대”
개방적 통합력 지닐 때일수록 번성
“중국 과제는 공산주의 잘 폐기하기”
“걱정할 건 과도한 중화민족주의”
세계사의 새 패러다임 중국모델
“우리 역사 목 쉬어라 이야기하고파”
“순수 예능프로 해보고 싶어”
-중국의 미래에 어떤 책임감을 느끼시는 것 같다.(웃음)
“거듭 말하지만 중국 모델론은 중국만의 실험이 아니야. 많은 세계인들이 기여하고 참여해야 할 인류사의 새 패러다임이다. 나는 사상가로서 그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중국의 실험에 참여하고 싶다. 최근 나는 프랑스 출판사와 계약을 맺고 유럽 지성인들에게 직접 이 문제를 호소하는 책을 내보려 하고 있다. 한국 사상가로서 전세계 지성을 상대로 인류 미래를 말하고 싶다.”
이야기가 끝나갈 무렵, 슬그머니 심술을 부려보고 싶어졌다. “건방진 질문 같은데, 시진핑 주석이 선생의 존재를 알고 있을 것 같나, 아닌 것 같나(웃음)” 하고 물었다. 돌아온 대답. “글쎄, 뭐 잘 모르겠지? 하지만 방송 보고 대사관이 보고하지 않았을까? 안 했으면 그거 직무유기 아냐? 사실 전 국민 상대의 방송에서 시진핑을 이처럼 높게 평가해준 사례가 세계적으로 없을 거야.(도올은 현재 7회까지 방송된 이 프로그램에서 정말 엄청나게 시진핑을 띄워주었다.) 중국 정부가 나한테 감사하지는 않아도 좋은데, 우리 국민의 슬기로움에는 마땅히 경의를 표해야 할 일이다.”
긴 인터뷰의 마지막은 결국 자기 자랑(!) 몫이었다. 아니 섭외 요청(!)이었다고 해야 하나. “얼마 전 목욕탕에서 날 본 노인들이 그래. ‘어이 도올, 그 쬐그만 대가리 속에 어떻게 그렇게 큰 아파트가 들어가 있어?’ 허허. 그런데 내가 알면 얼마나 알겠는가? 그럼에도 내가 압도적으로 유식해 보이는 것은 제자들과 끊임없이 대화하기 때문이다. 그 지식과 정보들을 빨아들여서 내 머릿속에 호수를 만들기 때문이지. 지성인이라면 부지런히 자기 시대와 호흡하는 지적 대화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 나는 끊임없이 지적 성장을 거듭하려 노력한다는 점에서 다른 사람과 다르다. 공부하는 것이 인생이다. 체력이 남아 있을 때 더욱 공부하면서 대중과의 소통도 더욱 열심히 해볼 작정이다. 예를 들어 <무한도전> 스타일의 순수 예능프로를 해보고 싶다. 연예인들을 이끌고 고구려인의 기개가 서린 홀승골성(중국 요령성 환인현의 고구려 산성)에 올라가서 우리 역사와 문명을 목이 쉬어라 이야기하고 싶다.”
이인우 <서울&> 콘텐츠디렉터 iwlee21@hani.co.kr
◇관련기사
▶도올, 야권 정치인들에게 ‘직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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