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홀대는 전혀 터무니 없는 얘기…정치인이 만든 논리”
“우리는 영남에서 빨갱이고 전라도고 김대중 앞잡이였습니다. 영남에서 정말 소수자로 핍박받고 왕따 당하고. 그런데 정작 호남에 오니까 영남이라고 그래버리면 우린 어디 가서 서야 합니까. 도대체 어디 가야 합니까.”
그는 쏟아져 나오려는 울먹임을 속으로 삼켰다. 목은 잠겼고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다. 그런 그를 바라보는 시민의 눈엔 어느새 굵은 눈물방울이 맺혔다.
▲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12일 오후 광주 광산구 여성새로일하기지원본부를 방문해 간담회를 하고 참가자들의 얘기를 듣고 있다. ⓒ광주인 |
▲ 12일 오후 광주 광산구 여성새로일하기지원본부에서 열린 문재인 더민주 전 대표와의 간담회에서 황아무개(34)씨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광주인 |
4·13총선을 하루 앞둔 12일 오후, 광주 광산구 여성새로일하기지원본부를 방문해 간담회를 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는 취업설계사로 일을 한다는 한 40대 여성으로부터 질문을 받았다.
“노무현 정부 시절 문 대표께서 호남 출신을 홀대하고 쫓아냈고 기용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일파만파 퍼져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실망이 커져서 기권하겠다, 문 대표 싫다, 안 찍어버리겠다 그런 게 있는데 그 부분에 해명이 있어야 합니다.”
이 여성은 “호남 사람은 영남 사람을 싫어하지 않는데 영남 사람은 호남 사람 굉장히 싫어한다고 한다”며 “그래서 호남사람 홀대했는지, 해명이 돼야 한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지그시 질문을 듣던 문 전 대표는 ‘호남홀대론’은 자신 때문에 나오는 얘기라며 무겁게 입을 뗐다.
“참여정부의 호남홀대나 친노패권이라고 하는 건 저 때문에 나오는 겁니다. 제가 정치하지 않는다면, 제가 가장 앞서가는 대선주자가 아니라면, 당대표가 아니었다면, 제가 당 대표 할 때 호남분하고 경쟁하지 않았다면….(안 나왔을 것이다) 이것은 저를 표적으로 하는 얘기입니다. 그때마다 노무현 대통령에게 너무 죄송합니다. 제가 없었으면 (그런 말이)나오지 않았을테니까요.”
그는 호남홀대론 주장에 대해 “전혀 터무니없는 이야기”라고 했다. 그러면서 참여정부 당시 호남 출신 장관 비율이 역대 어느 정권보다 높았고 국세청장·법무부장관·국정원장·감사원장·검찰총장 등 권력기관장에도 호남 출신이 가장 많았다는 점을 들었다.
“우리가 아무리 호남호남 해도 김대중 전 대통령만큼 호남을 사랑했겠습니까. 가장 호남을 사랑하신 분은 김대중 대통령이시지요. 그러나 김 대통령은 당신이 호남이어서 호남 챙기는데 좀 주저함이 있었습니다. 영남을 껴안아야 하니까.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은 당신이 영남이기 때문에 호남을 더 끌어안았습니다. 호남 출신 장관 30%, 역대 최고 비율입니다. 권력기관장에도 호남이 가장 많았습니다.”
실제로 이용섭 광주 광산을 후보는 국세청장과 건설교통부 장관을 했다. 장병완 국민의당 광주 동남갑 후보는 기획예산처 장관, 천정배 국민의당 공동대표는 법무부장관, 정동영 국민의당 전북 전주시병 후보 통일부 장관, 정세균 더민주 서울 종로구 후보는 산업자원부 장관을 역임했다. 모두 호남 출신이다.
문 전 대표는 “국가 의전 서열 10위 가운데 보통 대여섯은 호남이었다”며 “법무부장관, 검찰총장, 국정원장이 모두 호남 출신일 때도 있었다”고 말했다.
문 전 대표가 호남 출신을 모두 쫓아냈다거나 인사에서 호남출신을 배제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그는 “인사수석을 아예 호남 분에게 맡겼다. 초대 정찬용 인사수석에 이어 그 다음도 김완기 인사수석으로 호남출신이었다”며 “‘정찬용이 인사 올리면 문재인이 잘랐다’고 하는데 인사는 인사수석이 대통령에게 바로 보고 드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민정수석이 참여하는 것은 장관이나 최고위직 등 청와대 회의에서 다루는 것만 하고 다른 인사는 모두 인사수석이 한다”며 “보고할 때도 민정수석은 배석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문재인의 호남홀대론’은 대선 후보와 당 대표 경선 등을 거치면서 왜곡된 채 확대 재생산됐다고 반박했다.
“인사홀대, 호남홀대 이야기는 제가 대선 후보로 나와 경선할 때 처음 나왔어요. 그땐 인사홀대란 말은 없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호남에 대해 섭섭한 말을 했다는 얘기가 ‘호남홀대론’이 됐고 지난해 전당대회 때 호남 분과 당 대표 경쟁을 하면서 ‘문재인이 호남홀대 주범이다’ ‘인사학살했다’는 얘기가 나왔어요.”
지난해 2·8 전당대회 당대표 경선에서 문재인 후보는 박지원 후보와 치열한 접전을 벌인 끝에 3.52%포인트 차이로 신승했다. 이 과정에서 문재인이 호남 인사들을 배제했다는 이른바 ‘호남홀대론’이 카카오톡 등 SNS를 통해 무차별적으로 퍼졌는데 이 부분을 지적한 것이다.
▲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12일 오후 광주 광산구 여성새로일하기지원본부를 방문해 간담회를 하고 있다. ⓒ광주인 |
▲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12일 오후 광주 광산구 여성새로일하기지원본부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호남홀대론에 대한 입장을 얘기하고 웃음을 짓고 있다. ⓒ광주인 |
문 전 대표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더니 “이 이야기를 조금 제대로 안 드릴 수 없다”며 전두환 군사정권 하에서 부산 등 영남 지역의 민주화운동을 거론했다.
그는 “5공 군사독재 시절 부산지역의 민주화운동은 광주 5·18을 알리고 광주 정신을 계승하자는 것이었다”며 “광주5·18 비디오를 돌려보고 5·18때만 되면 버스 두 대를 빌려 구묘역을 참배했다. 김대중 대통령 지지하고, 대통령 만드는데 함께 하고 민주당 깃발을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김대중 지지하고 민주당 깃발 드는 건 영남에서는 빨갱이고 전라도고 김대중 앞잡이로 핍박받는 일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외로움’을 전했다.
“호남은 그래도 딴 동네 건너가면 외로웠어도 호남 내에서는 다수였잖아요. 우리는 지역 내에서 정말로 소수자로 핍박받고 왕따 당하고. 노무현 대통령, 3당 합당 전에 국회의원 됐지만 3당 합당한 뒤에는 노 대통령조차 국회의원 되지 못했습니다. 영남 출신 대통령인데 영남에서 지지받지 못했던 분입니다. 근데 정작 호남에 오니까 영남이라고 그래버리면 우린 어디 가서 서야 합니까. 도대체 어디로 가야 됩니까.”
간담회 분위기는 숙연해졌다. 진한 탄식과 함께 일부 시민들은 훌쩍였다. 문 전 대표도 눈물을 글썽이나 싶더니 이내 참아 넘겼다. 가슴속에 맺힌 한스러움, 안타까움을 속으로 되삼키는 모습이었다.
문 전 대표는 “호남홀대론은 그냥 저를 공격하는 프레임”이라며 “정치인들이 만든 논리에 절대 휘둘려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노무현 대통령이 얼마나 호남을 사랑했는가 하면 국가 정책기조를 국가균형발전으로 했다”며 “그동안 경부라인으로 발전해 모든 기업 여건이 수도권과 경상도가 유리하게 돼 있어 호남의 성장 동력을 높여주기 위해 국가 균형발전을 추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광주에 자생적인 성장동력이 없기 때문에 억지로라도 만들기 위해 단군 이래 최대 예산인 5조3000억원 규모의 아시아문화중심도시와 아시아문화전당을 추진했고 혁신도시에 공기업 중 가장 큰 한전을 이전했다”고 덧붙였다.
또 “호남KTX 착공도 경제적타당성이 0.32로 기준인 1을 넘지 않아 모든 정부부처가 반대했고 심지어 이해찬 총리도 반대했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호남균형발전을 봐야 하고 먼 미래를 내다봐야 한다며 조기착공했다”며 “이런 식으로 호남을 위해 굵직한 선물을 준 정부가 어디 있었느냐”라고 말했다.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도 그렇게 못했다. 그렇게 하시면 자기 자식만 챙긴다고 야단맞으니깐 김 대통령은 하시기 힘든 것”이라며 “정말 호남 홀대라는 그런 오해만큼은 꼭 풀어주셔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문 전 대표는 간담회를 마치고 애써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붉게 상기돼 있었다.
문 전 대표의 발언 내내 손수건을 꺼내 연신 눈물을 찍어내던 황아무개(34)씨는 간담회가 끝나고 “너무 가슴이 짠해 눈물이 났다”며 “호남홀대론이 사실이 아닌데도 공격을 당하니 얼마나 억울했을까 싶다”고 말했다.
간담회를 지켜본 이아무개(52)씨는 “‘도대체 어디로 가야 하느냐’는 말이 가슴 아프다. 영남과 호남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한다는 문 전 대표의 안타까움이 느껴진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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