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 클린턴이 6월6일(현지 시간) 전당대회 대의원 과반수를 확보함으로써 민주당 대통령후보로 사실상 확정되었다. AP통신은 클린턴이 확보한 2383명 가운데 당연직 슈퍼대의원 571명은 자체 집계한 것이라고 밝혔으므로 그가 넘어선 ‘매직 넘버’가 아직 공식화되지는 않았다. 경쟁자인 버니 샌더스 측은 오는 7월의 전당대회에서 슈퍼대의원 표를 압도적으로 ‘빼앗아 올 가능성’에 기대를 걸며 패배 선언을 하지 않고 있으나, 미국의 주요 매체들은 다음 대선이 민주당 클린턴 대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의 대결이 될 것이라고 단정한 지 이미 오래이다.
비록 경선에서는 패배했지만 샌더스는 미국의 정치뿐 아니라 경제, 사회, 문화에 혁명적 변화의 물결을 일으켰다. 1941년 9월 8일에 태어난 샌더스는 75세나 되는 노인이다. 힐러리 클린턴보다 여섯 살이나 많다. 그러나 그는 이번 경선 과정에서 미국 지배체제의 근본적 개편을 열망하는 사회적 약자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으면서 끝까지 클린턴과 열전을 벌였다. 특히 샌더스에 대한 젊은 세대의 지지는 클린턴을 압도했다.
버니 샌더스에 관해 거의 무지하던 나는 경선 과정에서 속속 드러나는 그의 진면목을 보면서 ‘한국이야말로 저런 지도자를 절실히 필요로 한다’는 확신을 품게 되었다. 그는 ‘민주적 사회주의자’라고 공언하는 정치인이다. 한국에서도 그렇지만 미국에서도 정치적 신념에 ‘사회’라는 단어를 붙이고 가는 사람은 한마디로 ‘좌파’ 또는 ‘빨갱이’라는 낙인이 찍히게 마련이다. 헌법에 보장된 ‘사상의 자유’ 같은 것은 휴지조각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샌더스는 짧은 기간에 많은 미국인들의 머리에서 그런 고정관념을 지워버렸다. 그는 선거 유세와 텔레비전 토론을 통해 보수적 당원들의 표를 의식하지 않고 과감한 발언을 계속했다.
“지난 기간(40년) 동안 수천조 원의 돈이 중산층에서 상위 0.01%로 이동했다. 이것은 미국이 벌어들이는 돈의 99%가 상위 1%에게 가는, 엄청난 경제적 불균형을 의미한다.”
“나는 월스트리트의 은행들을 무너트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들이 파산하기에 너무 크다면 그들은 존재하기에도 너무 큰 것이다.”
미국의 극소수 기득권층은 정치와 경제는 물론이고 언론까지도 지배한다. 스스로 ‘자유주의적’이라고 자랑하는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같은 신문들도 경우에 따라서는 재벌과 월스트리트의 금융 지배를 비판하지만 그 뿌리를 뒤흔드는 논평은 내지 못한다. 하물며 그들의 ‘돈줄’에 기대어 경선을 치르는 힐러리 클린턴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런데 샌더스는 그 확고부동한 체제에 이런저런 계산을 하지 않고 도전한 것이다.
천신만고의 길을 거쳐 온 샌더스의 삶과 정치 역정은 보통사람들에게 감동과 함께 용기와 희망을 안겨준다. 유대계 어머니 밑에서 방 2개짜리 아파트에 살면서 소년기를 보낸 그는 가난의 고통을 어릴 때부터 몸소 체험하면서 빈민과 소외계층을 위해 살아가기로 결심한 것 같다. 31세 때인 1972년 버몬트 주 연방상원의원 특별선거에 출마했다가 겨우 2.2%의 표밖에 얻지 못한 샌더스는 같은 해 주지사 선거에서도 1.15%의 득표를 하는 처참한 ‘성적’을 보였다. 그 뒤에도 상원의원·주지사 선거에서 낙선을 거듭한 그는 1981년 버몬트주 벌링턴 시장 선거에서 상대인 민주당 후보를 겨우 10표 차로 누르고 당선되었다. 그는 역대 그 어떤 시장보다도 과감하게 행정을 혁신하고 예산을 절감하며 주민들에게 편의를 제공하는가 하면 풀뿌리 민주주의를 활성화했다. 6년 동안 시장으로 일하던 동안 벌링턴시는 ‘미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뽑히기도 했다.
1988년 버몬트주 연방하원의원 선거에 출마해 낙선한 샌더스는 1990년 선거에서 당선되어 2006년까지 8선을 하고 2006년에는 연방상원의원에 당선되고, 2012년에는 재선에 성공했다. 그야말로 ‘오뚝이 정치인’임을 입증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장관급 대우’를 누리는 한국의 정치인 대다수가 초선 이후부터 국회의원직을 계속 유지하거나 고위 공직을 차지하는 데 천박하게 집착하는 것과 달리 샌더스는 사회적 약자들을 대변하기 위해 불굴의 의지로 선거전에 나섰다는 점이다. 한 세기 동안 ‘꼴보수 공화당’이 지배하던 버몬트주에 샌더스가 풀뿌리민주주의의 뿌리를 내릴 수 있게 된 것은 바로 그런 의지의 열매였다. 그는 단 한 순간도 민주적 사회주의의 이념에서 벗어나지 않고 한결같이 ‘경제정의’를 외치면서 실천에 앞장섰다. 말과 행동이 다른 한국의 여야 정치인들이 특히 유념해야 할 교훈이다.
2015년 4월 30일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출마를 선언하던 때 샌더스에 대한 지지율은 5% 미만으로 힐러리 클린턴(60% 이상)의 10분의 1도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짧은 기간에 클린턴과 박빙의 승부를 펼치는 강력한 경쟁자로 떠올랐다. 대중이 SNS와 여러 매체를 통해 그가 어떤 정치인인지를 명확히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그가 68세이던 2010년 12월 10일 미국 상원에서 8시간 37분 동안 연설을 하면서 필리버스터를 한 모습이 새삼 인상 깊게 떠올랐다. 그는 “한 해에 100만 달러 이상을 버는 사람들에게 10만 달러의 세금 혜택을 주고, 1억 달러 이상을 버는 사람들에게는 훨씬 더 많은 혜택을 주게 되는 감세법안”에 필사적으로 반대했던 것이다.
오는 11월의 대통령선거에서 ‘매파’ 힐러리 클린턴이 당선된다면 미국은 ‘팍스아메리카나’(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평화)를 계속 외치면서 세계 도처에서 자국에 이익이 된다면 전쟁과 무력행사를 서슴지 않을 것이다. 특히 한국, 일본과 함께 구축한 ‘삼각동맹’을 기반으로 ‘중국 굴기’를 견제하면서 동아시아 패권을 유지하려고 들 것이다. 클린턴이 비핵화를 비롯한 ‘대북한 문제들’에서 아들 부시나 오바마보다 전향적 정책을 펼치리라고 기대할 수 있는 근거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샌더스의 ‘대선 공약’은 이상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대학 등록금 실질적으로 없애기’ ‘1조 달러 투입해 1300만명의 일자리 창출’ ‘시간당 최저임금 15달러로 인상’ ‘사유건강보험 없애고 모든 국민에게 정부보험 제공하는 단일지불제도로 변경’ 같은 정책이 바로 그렇다. 그러나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모든 혁명과 개혁은 이상에서 출발한다는 역사적 사실이다. 소득불평등에 대한 실증적 연구로 널리 알려진 토마 피케티(파리경제대학교 교수)는 지난 2월 16일 영국 신문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샌더스가 경선의 최종 승자가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그는 언젠가 또 다른 샌더스가 결국 대선에서 승리해 미국을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우리는 지금 1980년 레이건 당선 이후 불어닥친 신자유주의 시대의 종말을 목격하고 있다”
버니 샌더스는 미국에 희망을 안겨주었다. 노숙을 하는 ‘홈리스’(집 없는 사람들)가 셀 수 없이 많은데도 1%의 특권층이 호사의 극치를 누리는 나라, 정치인들이 총기업자들의 ‘로비’를 뿌리치지 못해 총기 자유매매가 방치됨으로써 수시로 인명살상이 벌어지는 사회, 산군복합체의 이익을 위해 도처에서 전쟁을 벌여야 하는 ‘제국’. 샌더스가 대통령이 된다면 그런 비리와 모순이 점차적으로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패배는 현실로 굳어졌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가 미국에 불어넣은 맑고 밝은 희망은 역사에 굵은 글씨로 기록되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미국의 많은 젊은이들처럼 절망과 좌절감에 짓눌려 있는 한국의 청년세대가 버니 샌더스 같이 훌륭한 정치가가 되려고 노력하거나 그런 지도자를 찾아내는 데 힘을 쏟기를 기대한다.
비록 경선에서는 패배했지만 샌더스는 미국의 정치뿐 아니라 경제, 사회, 문화에 혁명적 변화의 물결을 일으켰다. 1941년 9월 8일에 태어난 샌더스는 75세나 되는 노인이다. 힐러리 클린턴보다 여섯 살이나 많다. 그러나 그는 이번 경선 과정에서 미국 지배체제의 근본적 개편을 열망하는 사회적 약자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으면서 끝까지 클린턴과 열전을 벌였다. 특히 샌더스에 대한 젊은 세대의 지지는 클린턴을 압도했다.
버니 샌더스에 관해 거의 무지하던 나는 경선 과정에서 속속 드러나는 그의 진면목을 보면서 ‘한국이야말로 저런 지도자를 절실히 필요로 한다’는 확신을 품게 되었다. 그는 ‘민주적 사회주의자’라고 공언하는 정치인이다. 한국에서도 그렇지만 미국에서도 정치적 신념에 ‘사회’라는 단어를 붙이고 가는 사람은 한마디로 ‘좌파’ 또는 ‘빨갱이’라는 낙인이 찍히게 마련이다. 헌법에 보장된 ‘사상의 자유’ 같은 것은 휴지조각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샌더스는 짧은 기간에 많은 미국인들의 머리에서 그런 고정관념을 지워버렸다. 그는 선거 유세와 텔레비전 토론을 통해 보수적 당원들의 표를 의식하지 않고 과감한 발언을 계속했다.
“지난 기간(40년) 동안 수천조 원의 돈이 중산층에서 상위 0.01%로 이동했다. 이것은 미국이 벌어들이는 돈의 99%가 상위 1%에게 가는, 엄청난 경제적 불균형을 의미한다.”
“나는 월스트리트의 은행들을 무너트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들이 파산하기에 너무 크다면 그들은 존재하기에도 너무 큰 것이다.”
미국의 극소수 기득권층은 정치와 경제는 물론이고 언론까지도 지배한다. 스스로 ‘자유주의적’이라고 자랑하는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같은 신문들도 경우에 따라서는 재벌과 월스트리트의 금융 지배를 비판하지만 그 뿌리를 뒤흔드는 논평은 내지 못한다. 하물며 그들의 ‘돈줄’에 기대어 경선을 치르는 힐러리 클린턴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런데 샌더스는 그 확고부동한 체제에 이런저런 계산을 하지 않고 도전한 것이다.
천신만고의 길을 거쳐 온 샌더스의 삶과 정치 역정은 보통사람들에게 감동과 함께 용기와 희망을 안겨준다. 유대계 어머니 밑에서 방 2개짜리 아파트에 살면서 소년기를 보낸 그는 가난의 고통을 어릴 때부터 몸소 체험하면서 빈민과 소외계층을 위해 살아가기로 결심한 것 같다. 31세 때인 1972년 버몬트 주 연방상원의원 특별선거에 출마했다가 겨우 2.2%의 표밖에 얻지 못한 샌더스는 같은 해 주지사 선거에서도 1.15%의 득표를 하는 처참한 ‘성적’을 보였다. 그 뒤에도 상원의원·주지사 선거에서 낙선을 거듭한 그는 1981년 버몬트주 벌링턴 시장 선거에서 상대인 민주당 후보를 겨우 10표 차로 누르고 당선되었다. 그는 역대 그 어떤 시장보다도 과감하게 행정을 혁신하고 예산을 절감하며 주민들에게 편의를 제공하는가 하면 풀뿌리 민주주의를 활성화했다. 6년 동안 시장으로 일하던 동안 벌링턴시는 ‘미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뽑히기도 했다.
1988년 버몬트주 연방하원의원 선거에 출마해 낙선한 샌더스는 1990년 선거에서 당선되어 2006년까지 8선을 하고 2006년에는 연방상원의원에 당선되고, 2012년에는 재선에 성공했다. 그야말로 ‘오뚝이 정치인’임을 입증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장관급 대우’를 누리는 한국의 정치인 대다수가 초선 이후부터 국회의원직을 계속 유지하거나 고위 공직을 차지하는 데 천박하게 집착하는 것과 달리 샌더스는 사회적 약자들을 대변하기 위해 불굴의 의지로 선거전에 나섰다는 점이다. 한 세기 동안 ‘꼴보수 공화당’이 지배하던 버몬트주에 샌더스가 풀뿌리민주주의의 뿌리를 내릴 수 있게 된 것은 바로 그런 의지의 열매였다. 그는 단 한 순간도 민주적 사회주의의 이념에서 벗어나지 않고 한결같이 ‘경제정의’를 외치면서 실천에 앞장섰다. 말과 행동이 다른 한국의 여야 정치인들이 특히 유념해야 할 교훈이다.
2015년 4월 30일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출마를 선언하던 때 샌더스에 대한 지지율은 5% 미만으로 힐러리 클린턴(60% 이상)의 10분의 1도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짧은 기간에 클린턴과 박빙의 승부를 펼치는 강력한 경쟁자로 떠올랐다. 대중이 SNS와 여러 매체를 통해 그가 어떤 정치인인지를 명확히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그가 68세이던 2010년 12월 10일 미국 상원에서 8시간 37분 동안 연설을 하면서 필리버스터를 한 모습이 새삼 인상 깊게 떠올랐다. 그는 “한 해에 100만 달러 이상을 버는 사람들에게 10만 달러의 세금 혜택을 주고, 1억 달러 이상을 버는 사람들에게는 훨씬 더 많은 혜택을 주게 되는 감세법안”에 필사적으로 반대했던 것이다.
오는 11월의 대통령선거에서 ‘매파’ 힐러리 클린턴이 당선된다면 미국은 ‘팍스아메리카나’(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평화)를 계속 외치면서 세계 도처에서 자국에 이익이 된다면 전쟁과 무력행사를 서슴지 않을 것이다. 특히 한국, 일본과 함께 구축한 ‘삼각동맹’을 기반으로 ‘중국 굴기’를 견제하면서 동아시아 패권을 유지하려고 들 것이다. 클린턴이 비핵화를 비롯한 ‘대북한 문제들’에서 아들 부시나 오바마보다 전향적 정책을 펼치리라고 기대할 수 있는 근거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샌더스의 ‘대선 공약’은 이상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대학 등록금 실질적으로 없애기’ ‘1조 달러 투입해 1300만명의 일자리 창출’ ‘시간당 최저임금 15달러로 인상’ ‘사유건강보험 없애고 모든 국민에게 정부보험 제공하는 단일지불제도로 변경’ 같은 정책이 바로 그렇다. 그러나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모든 혁명과 개혁은 이상에서 출발한다는 역사적 사실이다. 소득불평등에 대한 실증적 연구로 널리 알려진 토마 피케티(파리경제대학교 교수)는 지난 2월 16일 영국 신문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샌더스가 경선의 최종 승자가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그는 언젠가 또 다른 샌더스가 결국 대선에서 승리해 미국을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우리는 지금 1980년 레이건 당선 이후 불어닥친 신자유주의 시대의 종말을 목격하고 있다”
버니 샌더스는 미국에 희망을 안겨주었다. 노숙을 하는 ‘홈리스’(집 없는 사람들)가 셀 수 없이 많은데도 1%의 특권층이 호사의 극치를 누리는 나라, 정치인들이 총기업자들의 ‘로비’를 뿌리치지 못해 총기 자유매매가 방치됨으로써 수시로 인명살상이 벌어지는 사회, 산군복합체의 이익을 위해 도처에서 전쟁을 벌여야 하는 ‘제국’. 샌더스가 대통령이 된다면 그런 비리와 모순이 점차적으로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패배는 현실로 굳어졌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가 미국에 불어넣은 맑고 밝은 희망은 역사에 굵은 글씨로 기록되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미국의 많은 젊은이들처럼 절망과 좌절감에 짓눌려 있는 한국의 청년세대가 버니 샌더스 같이 훌륭한 정치가가 되려고 노력하거나 그런 지도자를 찾아내는 데 힘을 쏟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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