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국민 선전포고, 파면된 무사안일의 역적 박근혜의 오기와 패착
신승근
라이프 에디터
사람이 더불어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건 진심과 그 마음을 전하는 적절한 방식과 때맞춤이라고 생각한다. ‘불꽃이 튈 때’ 진심을 담아 고백하면 연인의 사랑은 결실을 맺는다. 진심을 다해 용서를 빌면 거친 마음도 좀 너그러워진다. 정치의 영역에서도 진심과 때맞춤은 아주 중요하다. 민심을 설득해 명분을 얻고, 용서를 구해 더럽혀진 명예를 회복할 수도 있다.
파면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12일 밤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청와대 관저를 나와 삼성동 옛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12살 때인 1964년 시작한 청와대 생활을 79년 10월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 저격·사망으로 마감하고, 34년의 인고 끝에 첫 여성 대통령으로 다시 들어간 청와대마저 첫 탄핵 대통령이 돼 쫓겨난 그의 감회는 남다를 것이다. 그래서 관저에 사흘 더 머문 그를 향해 “너무 야박하게 하지 말자”는 동정론도 나왔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에게 우리는 더 야박해야 한다. 더 준엄하게 심판하고 청산해야 한다.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 뒤 지난 사흘 동안 그의 처신엔 관대해져야 할 어떤 진솔함도 없었다. 파면된 자신을 돌아보며 개인의 이익보다 대한민국과 민주주의의 미래를 생각한다는 징후는 고사하고, 전직 대통령으로서 최소한의 품격조차 찾을 수 없다.
옛집에 도착한 그는 밝게 웃었다. 그리고 민경욱 전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시간이 걸리겠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믿고 있다”는 입장을 냈다. 헌재 결정에 대한 명백한 불복 선언이다. 파면의 이유가 된 헌법 질서에 대한 존중 의지가 없다는 것을 온몸으로 증거했다. 입을 굳게 닫았던 그가 ‘태극기 부대’의 불복을 조직화하고, ‘헌재 결정에 승복하겠다’(MBN·리얼미터 10일 여론조사)는 92%의 국민을 상대로 반격을 위한 진지전을 벌이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셈이다.
“단 한번도 사익을 위해 권한을 남용하거나 행사한 사실이 없다”고 해온 박 전 대통령은 헌재의 파면 결정과 근거가 땅을 치고 통곡할 만큼 억울할 게다. 그러나 청와대를 떠나 옛집으로 들어서는 순간에는 최소한 국민통합을 말하고, 갈등 치유를 위한 메시지를 낼 것으로 기대했다. 어리석은 바람이었다. 그동안의 침묵은 헌재 판결에 대한 강력한 불복 표시였고, “사저의 준비가 안 됐다”며 사흘간 관저에 머문 행위도 불복을 항변하는 극적 장치였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주권자의 심판을 받아야 할 종들이 주인인 우리에게 무조건 승복하라니 이야말로 적반하장이 아니고 무엇인가? 반헌법적 판결로 원천 무효임을 선언하고 제2의 건국을 향한 행군을 시작하자”는 탄핵심판 대리인 김평우 변호사의 선동 광고가 박 전 대통령의 속내라는 게 확인됐다. 어쩌면 ‘옛집에 위폐되는’ 모습을 연출해 ‘쫓겨난 비련의 여왕’으로, 앞으로 닥칠 검찰 수사와 재판 등에서 동정 여론을 끌어낼 치밀한 계산을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입장 발표는 국민의 분노에 불을 지르는 오기, 패착일 뿐이다. 이미 박사모 안에서도 “대선을 위해 결집하는 게 낫다”며 ‘박근혜 구출’엔 거리를 뒀다. 홍준표 경남지사도, 보수 논객인 소설가 복거일도 “그래도 판결엔 승복해야 한다”고 외쳤다.
“염치를 모르는 사람에게 애당초 승복 선언 같은 건 기대하지 말자”던 얘기가 맞았다. 그의 입장 발표는 법적 처분에 관한 정치적 흥정, 대타협과 포용을 명분으로 ‘박근혜를 관대하게 처리하자’는 움직임을 사전에 봉쇄하고 쐐기를 박은 것이다. 헌재가 그의 검찰·특검 조사 회피와 청와대 압수수색 거부를 헌법 수호 의지가 없는 것으로 보고 단죄했듯, “이 모든 결과를 제가 안고 가겠다”며 헌재와 국민에게 선전포고를 한 그에게 어떤 타협도, 흥정도, 관용도 허용해선 안 된다. ‘불복을 선동’하는 그에게 어울리는 곳은 구치소다.
skshin@hani.co.kr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86185.html?_fr=sr1#csidx8267c46e25e4281ac5e33a3db74e0b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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