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 사상 최초 ‘탄핵 대통령’이 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나온 지난 12일 밤.
지근거리에서 박 전 대통령을 보좌해온 윤전추 청와대 제2부속실 행정관도 눈물을 흘리며 강남구 삼성동 자택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삼성동 행(行)을 택하는 대신 청와대에 연가를 냈고, 휴가가 끝나는 대로 사표를 낼 계획이다. 박 전 대통령은 이제 개인 돈으로 윤씨 월급을 줘야한다.
이번 국정농단 사건에서 차명전화 50여대를 개설한 ‘대포폰 총책’이자 최순실의 ‘액정닦이’로 활약하는 영상을 남긴 이영선 청와대경호실 경호관은 16일 박 전 대통령 자택에 나타나며 ‘삼성동팀’ 합류를 알렸다. 하지만 사표 쓸 윤전추씨와는 달리 이씨는 당분간 나랏밥을 계속 먹을 예정이다. 법원에서 금고 이상 형(刑)이 확정되지 않는다면, 이씨는 청와대경호실 소속 신분을 보장 받을 수 있다.
이영선 경호관의 주목받는 멀티태스킹
두 사람이 하는 일은 비슷해 보이는데, 왜 처지가 달라졌을까. ‘전직대통령법’ 때문이다. 탄핵 대통령에게 남은 최후의 예우는 ‘필요한 기간의 경호·경비’다. 박 전 대통령에게서 비서관·운전기사·1억원대 연금 지원 같은 각종 ‘꿀 혜택’은 날아갔지만, 신변 보호만큼은 국가가 10년간 책임져 줄 예정이다. 대포폰 총책 이씨의 원래 소속은 청와대경호실이어서, 그가 ‘삼성동 경호팀’(20여명)으로 파견만 가면 사표 걱정없이 국가의 녹(祿)을 계속 먹을 수 있는 것. 이씨는 정권 출범 후 제2부속실에서 박 전 대통령을 보좌하다가, 2015년 말 퇴임 뒤 경호를 염두하고 청와대경호실로 소속을 옮겼다.
그래서일까. 이씨는 무늬만 ‘경호관’이지 사실상 ‘비서관’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대통령 탄핵 이전에도 대통령 의상비 대납, 차명전화기 개설, 기밀문건 전달, 주사·기(氣)치료 아줌마 대리운전 등 ‘경호·수행비서·운전기사’ 업무를 병행하는 멀티 플레이어였다. 이씨는 16일 가림막이 쳐 있는 ‘셔틀 K7’을 타고 비밀스럽게 삼성동을 오갔다. 이에 본업보단 ‘특별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는 의심을 불러일으키는 중이다. 경호를 명분 삼아 다른 미션을 수행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여권법 속 ‘숨은 꿀템’
정치권·법조계 일각에선 이영선씨의 ‘멀티 경호’ 말고도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숨은 예우’를 몇가지 더 지적하는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외교관 여권’이다.
외교관 여권이 있다면, 대부분의 국가에서 비자 면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해외에서 경범죄를 저질러도 처벌이 면제된다. 불체포 특권·재판받지 않을 권리도 있다. 공항 소지품 검사도 면제다. 공항에선 VIP 의전을 받으며, 출입국·세관 수속 과정에서 편의가 제공된다.
앞서 최순실씨는 ‘인천본부세관장·베트남 대사·대한항공 지점장’ 인사에 개입한 혐의로도 특검 조사를 받았다. 일부 야당 의원들은 “최씨가 세관을 거치지 않고 명품을 반입했다” “외교행낭에 비자금을 반출했다”는 의혹들을 제기했다.
최씨가 누리고자 했던 이런 ‘공항 특혜’는 외교관 여권 혜택과도 상당히 흡사하다. 전두환 전 대통령 역시 비록 ‘빨간줄 전직 대통령’이지만, 이런 ‘꿀템’을 오랜 기간 보유했었다. 전 전 대통령은 퇴임 후 네 차례에 걸쳐 유효기간 5년짜리 외교관 여권을 발급받았는데, 2013년 6월 당시 박근혜 대통령과 국회가 ‘전두환 일가 미납 추징금 특별환수’ 이슈를 강하게 제기하자 자진 반납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토교통부령에 따라 ‘공항 귀빈실’ 이용도 가능하다. 출입국 심사대를 거칠 필요 없이 귀빈실과 탑승구를 바로 연결하는 ‘전용문’으로 이동할 수 있다. 공항 측은 박 전 대통령이 탑승할 비행기를 동선(動線)상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탑승구에 대준다. 물론 일부에선 ‘박 전 대통령이 집 밖에도 잘 나오지 않는데, 외교관 여권과 귀빈실 예우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반박한다.
지난해 12월 야당 의원들은 탄핵되거나 실형을 선고받은 전직 대통령의 경호와 예우를 박탈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통과 가능성이 높아보이진 않는다. 게다가 박 전 대통령은 이미 탄핵됐기 때문에 법안을 고친다한들 적용 대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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