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세훈 등 정치·선거개입 모두 인정
'탄핵' 박근혜 당선마저 정당성 타격
'탄핵' 박근혜 당선마저 정당성 타격
[한겨레]
법원이 2012년 12월 대선 직전 불거진 국가정보원의 ‘사이버 여론조작’ 활동을 정치개입이자 선거개입으로 재차 인정했다. ‘중대한 헌법위반’으로 헌정 사상 처음 탄핵된 박근혜 전 대통령은 당선의 정당성마저 위태롭게 됐다.
서울고법 형사7부(재판장 김대웅)는 30일 오후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 70명에게 온라인에서 특정 정치인을 옹호하거나 비방하는 인터넷 글을 게시하도록 한 혐의(국정원법·공직선거법 위반)로 기소된 원세훈(66) 전 국정원장의 파기환송심에서 원 전 원장에게 징역 4년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한 사이버 활동은 특정 정치세력을 지지하고 반대하는 것으로서 개인과 정당의 정치활동의 자유, 의사 표현의 자유 등 헌법과 기본권을 침해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판 전 과정에서 국민과 역사 앞에서 어떻게 평가될지 객관적으로 성찰하며 진지하게 반성하는 모습을 한 번도 보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앞서 2014년 9월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재판장 이범균)는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지만, 2015년 2월 서울고법 형사6부(재판장 김상환)는 징역 3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함께 기소된 이종명(60) 전 국정원 3차장과 민병주(59) 전 국정원 심리전단장은 이날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파기환송심은 1·2심과 마찬가지로 원 전 원장 등이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에 대해 지지 또는 반대 의견을 유포했다고 인정해, 국정원 직원들의 정치활동을 금지하는 국정원법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현직 대통령은 공무원으로서의 지위와 정치인의 지위를 겸하기 때문에 현직 대통령 지지를 옹호하는 내용의 사이버 활동은 특정 정치인인 대통령과 소속 여당에 대한 지지 행위로 정치관여 행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국정원의 대선개입도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인정했다. 재판부는 “기존에 행하던 활동의 연장선상에서 이뤄진 행위라도 선거운동의 성격이 인정된다면 선거운동으로 마땅히 인정돼야 한다”고 전제한 뒤 “박근혜 전 대통령 등 대선 후보자들의 출마 선언일 이후 국정원의 사이버 활동은 18대 대선 관련해 박 전 대통령의 당선을 도모하거나 문재인·이정희·안철수 후보자의 낙선을 도모하는 의사가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선거운동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이어 재판부는 “원 전 원장이 전 부서장 회의에서 ‘야당 승리하면 국정원 없어진다’는 취지로 발언해 사실상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활동을 할 것을 국정원 전체에 지시했다”고 짚었다.
선거법 위반은 1심은 무죄, 2심은 유죄로 엇갈리면서 국정원 여론조작 사건의 핵심으로 꼽혔다. 그러나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민일영 대법관)가 2015년 7월 대법관 13명 전원 일치 의견으로 서울고법이 선거법 위반 유죄 근거로 활용한 주요 증거(425지논·시큐리티 파일)를 증거로 인정하지 않은 채 유·무죄 판단 없이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대법원 파기환송 2년 만에 원 전 원장의 선거법 위반이 재차 확인되면서 대법원의 ‘정권 눈치 보기’ 비판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원 전 원장은 2009년 2월 국정원장에 취임한 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성공적인 국정 수행이 국가안보라는 기조 아래 국정원 직원들에게 정부정책은 홍보하고 반대하는 야당, 시민단체 등은 비판하도록 지시했다. 원 전 원장은 ‘원장님 지시강조 말씀’을 통해 “우리의 임무는 국시를 지키면서 정부정책이 제대로 추진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인 만큼 정부를 의도적으로 흔들기 위한 반대는 (국정)원이 나서 설득하고 바로잡는 등 적극적인 국정원이 되어 주기를 바람(2009년 5월15일자)”, “종북좌파 세력들이 국회에 다수 진출하는 등 사회 제분야에서 활개 치고 있는데 대해 부끄럽게 생각하고 반성해야 함. 직원 모두는 새로운 각오로 이들이 우리 사회에 발붙일 수 없도록 함으로써 국정원의 존재의미를 찾아야 할 것임(2012년 6월15일자)”이라고 강조해왔다. 2012월 12월 대선 때까지 2년여간 진행된 국정원의 여론조작은 대선 직전 관련 제보를 받은 민주통합당(현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국정원 직원 김하영씨의 오피스텔을 찾으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김민경 현소은 기자 salm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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