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2월 김경준씨의 크레디트스위스 은행 계좌에서 140억원이 이명박 전 대통령 소유로 의심되는 다스로 송금되었다. 청와대 그리고 외교부와 검찰이 이를 위해 움직인 정황을 담은 서류를 공개한다.
<시사IN>은 BBK 사건과 관련한 ‘140억 송금 작전’을 이명박 청와대가 주도했다는 핵심 관계자의 증언과 이를 뒷받침할 문건을 확보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관련한 BBK 사건은 복잡하다. 이 기사를 읽는 독자들은 누구나 BBK 사건을 다 안다고 여길 것이다. 또 검찰과 특검 수사로 이미 끝난 사건이라 여기는 독자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BBK 사건과 관련한 140억원 송금 의혹은 명쾌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다시 BBK 회사의 연원부터 따져보자. 30대 재미교포 김경준씨는 1999년 BBK를 설립한다. 자본금이 5000만원에 불과해 투자자문회사의 자격 요건을 채우지 못했다. BBK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차명 회사로 의심받는 다스로부터 190억원을 투자받는다. 나중에 다스는 투자금 190억원 가운데 140억원을 돌려받지 못했다며 김경준씨와 다툰다. 이 ‘140억원’은 꼭 기억해야 할 이번 기사의 첫 번째 키워드다. 김씨는 다스를 비롯해 국내 유수의 기업들로부터 600억원이 넘는 대규모 투자를 받는다. 당시 이 전 대통령은 BBK 회장 명함을 뿌리며 투자금을 유치했다. 2000년 10월16일자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이 전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올 초 이미 새로운 금융상품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LK이뱅크와 자산관리회사인 BBK를 창업한 바 있다. BBK를 통해 이미 외국인 큰손들을 확보해둔 상태다.” 이 전 대통령은 2000년 10월17일 광운대 최고경영자 과정 특강에서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가 한국에 돌아와서 인터넷 금융회사를 창립했습니다. 금년 1월달에 BBK라는 투자자문회사를 설립하고, 이제 그 투자자문회사가 필요한 업무를 위해서 증권회사를 설립하기로 생각해서 지금 정부에 제출해서 며칠 전에 예비허가가 나왔습니다.”
사업은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BBK는 회삿돈을 유용하고, 보고서를 조작한 혐의로 2001년 3월 등록이 취소됐다. 그러자 BBK는 상장 폐지 직전의 회사를 인수해 옵셔널벤처스로 이름을 바꾸었다. 바로 역외 펀드 등을 동원해 주가조작에 나섰다는 의혹을 샀다. 피해자가 속출하고, 피해 액수도 눈덩이처럼 불었다. 검찰이 수사에 나서자, 2001년 12월 김경준씨는 옵셔널벤처스 돈 384억원을 횡령해 미국으로 도망갔다. 김경준씨는 미국에서 체포돼 로스앤젤레스 연방교도소에 수감됐다. 2007년 김경준씨의 누나 에리카 김씨는 미국 현지에서 기자를 만나 “이명박씨가 동생에게 망한 코스닥 상장사를 찾아보라고 했다. 이명박씨의 지시에 의해 주식을 사고팔았고, 검찰 수사를 받다 미국으로 간 것도 이명박씨의 지시에 의한 것이었다”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김경준씨를 사업 파트너로 연결해준 장본인이 바로 에리카 김씨다.
17대 대선 때, BBK는 ‘태풍의 눈’으로 떠올랐다. 이명박 후보의 BBK 소유 의혹이 쟁점이었다. 당시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박근혜 후보도 “이 후보가 BBK 사건에 연루됐다”라고 주장했다. 대선 직전 2007년 11월16일 김경준씨는 국내로 송환된다. 당시 김경준씨는 “이명박이 BBK의 실소유주이며, 옵셔널벤처스 주가조작 사건도 이명박의 지시에 따른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검찰은 대선을 2주 앞둔 2007년 12월5일 ‘이명박 후보는 BBK 사건과 무관하다’는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2007년 12월4일 검찰 조사를 받던 김경준씨를 검찰이 회유·협박했다는 김씨의 자필 메모가 <시사IN>에 공개되면서 BBK 사건은 특검으로 넘어갔다(<시사IN> 제12호 ‘BBK 사태는 이제 시작이다’ 커버스토리 참조). 이명박 후보가 당선한 뒤 출범한 정호영 특별검사팀은 고급 한식집에서 이명박 당선자와 꼬리곰탕을 먹으면서 조사를 마쳤다. 정호영 특검은 이 전 대통령 취임 나흘을 앞둔 2008년 2월21일 ‘대통령 당선자는 BBK 사건과 무관하다’고 결론을 발표했다. 그렇게 BBK는 종결된 사건처럼 보였다.
그런데 갑자기 BBK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2011년 2월1일 스위스 은행에 예치되어 있던 김경준씨의 돈 140억원이 다스 계좌로 송금된 것이다. 송금 시기인 ‘2011년 2월1일’을 기억해야 한다. 이 기사의 두 번째 키워드다. BBK 사건의 2막이 시작되었다.
김경준씨는 2003년 미국 연방 검찰에 체포되기 직전, 1500만 달러가 넘는 돈을 스위스 크레디트스위스 은행에 예치했다. 김경준씨 소유의 페이퍼컴퍼니인 알렉산드리아 인베스트먼트를 통해서였다. 그 돈은 주가조작 사건의 범죄 수익이었다. 미국 연방정부와 스위스 정부는 이 돈을 불법 자금으로 규정하고 누구도 인출하지 못하게 동결한다. 미국 연방법원은 370억원이 넘는 김경준씨 자산도 압류했다. 이 돈의 소유권을 놓고 김경준씨와 옵셔널벤처스 주주, 그리고 140억원을 돌려받겠다며 다스가 법적 공방을 벌였다. 2008년 12월31일 사건을 맡았던 오드리 콜린스 판사는 “별도의 법원명령 없이는 스위스 계좌에 있는 돈을 김경준씨 등을 포함한 누구도 인출해서는 안 된다”라고 판결했다. 2010년에도 미국 연방법원은 김경준씨의 압류 자산 370억원이 ‘옵셔널벤처스의 돈’이라고 판결했다. 다스가 소송에서 진 것이다. 다스는 140억원을 돌려받기 위해 스위스에서도 소송을 벌였다. 하지만 이렇다 할 성과는 없었다.
그런데 김경준씨가 ‘2011년 2월1일’ ‘140억원’을 다스에 보낸 것이다. 당시 김씨는 서울 남부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었다. 감옥에 있는 김경준씨가 미국 연방정부와 스위스 정부로부터 동결을 풀고, 스위스 은행까지 움직였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당시 변호사 자격이 박탈된 에리카 김씨가 동결을 풀기에도 무리가 있었다. 다스라는 한국의 회사가 미국과 스위스 정부를 움직였다는 것도 상식 밖의 일로 여겨졌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과 김경준씨의 ‘빅딜설’이 나왔다.
김재수 전 LA 총영사 역할에 주목
<시사IN>은 140억원 송금 미스터리에 관여한 다스의 핵심 관계자 증언을 확보했다. 다음은 다스의 한 핵심 관계자의 증언이다. “140억원을 돌려받기 위해 청와대가 직접 나섰다. 청와대와 외교부 그리고 검찰이 나서서 미국과 스위스 정부를 설득해 김경준의 계좌 동결을 풀었다. 다스는 청와대의 지시에 따라 문서를 만들어 보고하고, 다시 지시를 받았다. 청와대 담당자는 민정수석실의 ㅇ 행정관이었다. 보고는 주로 팩스를 이용했는데 다스 사장의 직통번호 054-7○4-6○○○에서 보내다가, 나중에는 팩스 전용 054-7○6-3○○○를 사용했다. 받는 번호는 청와대 민정실 02-770-○○○○였다. 외교부 담당자는 김재수 로스앤젤레스(LA) 총영사였다. 김 총영사는 다스와 만나 회의하고 직접 지시를 내렸다. 이 모든 것은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관장했다. 돈 문제만은 하나하나를 직접 챙겼고, 서류가 부족하거나 늦게 도착하면 청와대에서 불호령이 떨어졌다. 특히 어려웠던 미국 ○○○○ 문제는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해결했다.”
다스의 핵심 관계자의 증언은 사실일까? <시사IN>은 다스의 빚을 받기 위해 청와대와 외교부 그리고 검찰이 직접 나섰다는 정황을 뒷받침하는 문건을 단독 입수했다. ‘김경준 관련 LA 총영사의 검토 요청 사안(17쪽 <문건 1>)’은 외교부가 개입한 정황이다. 실무는 김재수 전 LA 총영사가 전담했다. 김 전 총영사는 2007년 10월 당시 이명박 대통령 후보가 김경준씨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의 이명박 측 변호인으로 김경준씨의 한국 송환을 막기 위해 미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는 미국 영주권을 가진 상태에서 LA 총영사에 내정된 바 있다. 외무공무원법상 영주권자는 공관장을 맡을 수 없다. 내정 뒤 그는 영주권을 포기했다. 그의 임명을 두고 당시 ‘보은 인사’라는 비판이 따랐다. <시사IN>은 다스 내부 회의록도 입수했다(위 <문건 2>). 이 문건을 보면 ‘LA 영사관 김재수’라는 이름이 적혀 있다. 현직 총영사가 일개 회사의 직원들과 관련 회의를 했다는 의미다. 김 전 총영사는 이 문건 내용과 관련한 기자의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8월18일 현재 기자에게 전화를 주겠다고 했지만, 전화가 오지는 않았다.
김경준씨는 기자와 전화 통화에서 “이명박 쪽에서 가족들이 살 수 없을 정도로 괴롭혀 돈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동결 해제와 관련해서는 다스 쪽과 내 변호사가 이야기했다. 돈을 보내면 감옥에서 풀어줄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끝내 풀어주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김씨의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2010년 2월9일자 편지를 <시사IN>이 입수했다(18쪽 <문건 3>). 수사를 맡았던 김기동 부장검사에게 보낸 편지다. 편지를 보면 수감 중이던 김경준씨는 ‘계속 오로지 미국으로 이송하는 희망으로 견디고 지냅니다’라고 썼다. 에리카 김의 국내 입국 시기와 관련해 ‘누나에게는 6월 전에 들어오는 것이 좋을 거 같다고 전달하였습니다. 아마 누나가 확인 전화를 드릴 겁니다’라고 썼다.
김경준씨의 누나 에리카 김씨는 2011년 2월25일 귀국해 검찰 조사를 받는다. 2011년 2월1일 김경준씨가 140억원을 다스로 송금한 직후다. 에리카 김씨는 횡령과 공직선거법상 명예훼손 혐의 등으로 당시 수배 중이었다. 검찰은 인터폴에 범죄인 인도 요청을 하겠다고 발표했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검사 이동렬)는 2011년 3월21일 에리카 김의 특경가법상 횡령 혐의에 대해서는 기소유예, 증권거래법·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는 ‘공소권 없음’으로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그리고 다스는 김경준씨와 가족들을 상대로 낸 모든 소송을 취하했다. 다스는 미국 법원에 “같은 건으로는 다시는 소송을 제기하지 않겠다(Request for Dismissal with prejudice)”라는 내용의 소송 취하서도 제출했다. 박지원 당시 민주당 의원은 “에리카 김과 검찰 권력이 이미 거래를 해서, 이명박 대통령 임기 내에 김경준씨가 꼭 미국으로 갈 것으로 본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경준씨가 140억원을 다스로 보낸 것은 미국 연방법원의 결정에 어긋난다. 송금 사실을 알고 당시 미국 연방법원도 경악했다. 콜린스 판사는 자신의 결정을 어기고 다스에 송금된 이유를 수사하라고 연방 검찰에 지시했다. 미국 연방 검찰은 곧바로 수사에 착수했다. 그러자 청와대는 신속하게 움직였다. 미국 변호사 출신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ㅇ 행정관과 김재수 총영사는 김경준 측과 비밀 유지 협약을 체결토록 했다. ‘공동방어 협약서 대응방안’이라는 <문건 4>(19쪽)가 이를 방증한다. 다스의 담당자는 ‘보고 사항’이라는 문서에서 콜린스 판사와 옵셔널벤처스 피해자들의 대응 논리 내용을 담아 청와대에 팩스로 보고했다(왼쪽 <문건 5>). 청와대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고 한다.
콜린스 판사는 왜 갑자기 입장을 바꾸었나
다스 140억원 송금과 관련해 청와대 담당자로 지목된 ㅇ 전 행정관은 “청와대에서 다스 업무를 본 게 아니고 BBK 미국 소송에 대한 확인 사항을 담당하고 보고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기자가 “다스 관계자는 당신이 140억원 관련해서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했다고 주장했다”라고 묻자, 그는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할 위치가 아니었고 비서관에게 보고했다”라고 말했다. ㅇ 전 행정관은 <문건 4>에 대해서는 “처음 듣는 내용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김재수 전 LA 총영사와의 회의에 대해서는 부인하지 않았다.
수상한 대목은 더 있다. 2011년 8월 연방 검찰에 140억원 송금 과정 수사를 지시했던 콜린스 판사가 갑자기 입장을 바꾸었다. 스위스 계좌 자산에 대해서 콜린스 판사는 검찰 수사 결과를 공개하지 말라고 지시한다. 그리고 다스가 요청한 민사소송 취하까지 받아들였다. 이와 관련해 최고 권력층이 관여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지는 대목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아들인 이시형 다스 전무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140억원 송금 건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 드릴 말이 없다”라고 말했다.
주진우 기자 ac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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