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인 만큼 조그마한 흑점도 남기면 안 된다.”
이명박 대통령이 9월 30일 청와대 확대 비서관회의에서 참모들에게 밝힌 말이다. 이명박 대통령 측근과 친인척 비리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나온 발언이다. 웬만한 자신감으로는 ‘도덕적으로 완벽하다’는 입 밖에 꺼내기 쉽지 않다.
이명박 대통령은 청와대 참모회의라는 공식 석상에서 그 말을 전했다. 문제는 대통령의 인식이 현실과 동떨어져도 너무 동떨어져 있다는 점이다. 썩은 냄새 진동하는 부패 사건이 이어지고 있는데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다’라는 주장을 하는 것부터가 그렇다.
이명박 대통령.
@CBS노컷뉴스
이번에는 이명박 대통령과 가족 얘기로 입방아에 올랐다. 서울 강남 내곡동 사저에 대한 의혹이다. 대통령 퇴임 후 사저를 아들과 청와대 명의로 매입한 참으로 희한한 사건이 공개된 이후 정치권 최대 쟁점으로 떠올랐다.
부동산실명제법 위반이라는 위법행위를 지적받자 아들 명의에서 대통령 명의로 바꾸기로 했다. 조선일보가 사설에서 그런 방안을 제시한 날 바로 실행한다는 점도 흥미롭다. 중요한 것은 청와대가 적당히 덮고 넘어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점이다.
복잡한 법적 논란을 떠나서라도 국민 세금을 대통령 아들 집 사주는데 쓰는 게 가능한 일인지, 명의를 바꾼다고 해도 나랏돈으로 대통령 집을 사주는 게 타당한 일인지가 논란의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국세청장을 지낸 이용섭 민주당 의원은 “대통령의 아들은 공시지가 보다 저가 매입하고 대통령실은 4배 이상 고가 매입한 것은 대통령 아들이 부담해야 할 취득비용을 국민의 세금으로 대통령실이 부담해 준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겨레는 10월 12일자 <나랏돈을 대통령 집터 매입에 썼는지가 의혹의 핵심이다>라는 사설에서 “퇴임 대통령의 사저는 그의 개인 재산이고 경호시설은 국유재산으로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면서 “경호처가 국가 예산을 들여 '대통령의 아들'을 배려했다면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흔한 다운계약서 시비 따위와 견줄 일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국가예산은 대통령 가족의 쌈짓돈이 아니다. 국고를 대통령 가족의 부를 채우는 데 활용했다면 심각한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더니 대통령이 청와대 참모 앞에서 그렇게 밝힌 지 보름도 안 돼 이런 논란에 쉽싸인 셈이다.
한나라당도 돌아서는 모습이다.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는 12일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국민 정서를 감안해 경호동이라도 규모를 대폭 줄여 달라"고 청와대에 요구했다.
김기현 한나라당 대변인도 11일 논평에서 “이 대통령의 사저 건립에 있어 경호동을 대폭 축소하는 등 국민이 공감할 수 있도록 추진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나경원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는 11일 TV토론에서 “실질적 사정 있겠지만 국민 납득 못하는 부분은 설명이 있어야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10월 12일자 6면.
한나라당 쪽에서도 ‘MB사저’ 문제를 감싸고 있을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한 셈이다. 이에 대해 이용섭 민주당 대변인은 “서울시장 선거를 앞두고, 가뜩이나 마음이 급한 한나라당에게는 때 맞춰 터져 나온 대통령의 ‘헛발질’이 참으로 마뜩 잖았던 모양”이라고 지적했다.
청와대는 이번 사안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었을까. 이번 사안이 언론 보도를 통해 공개되기 전까지 청와대는 느긋한 입장이었다. ‘상식의 눈’으로 볼 때도 문제가 심각한데 청와대는 국민에게 알려지기 전까지는 문제의 심각성을 느끼지 못했다는 얘기다.
조선일보는 12일자 6면 <이 대통령, 사저 땅 계약 5개월 넘게 명의 안 옮겨>라는 기사에서 “보안문제 등을 고려한다 해도 지난 5월 땅을 매입한 지 다섯 달이 지나도록 명의를 대통령으로 이전하지 않은 것은 편법 증여 등을 노린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적지 않다”라고 지적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완벽한 도덕정권’이라고 주장했지만, 내곡동 사저 문제는 한나라당과 보수언론도 선 긋기에 나설 정도로 곤혹스러운 사안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사저 문제가 이렇게 될지 몰랐을까, 알고도 그랬다는 것도 문제지만, 몰랐다면 ‘도덕 불감증’은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겨레 10월 12일자 31면.
한겨레 김종구 논설위원은 12일자 31면 <청와대가 ‘내곡동 땅’ 풍수를 본 까닭은>이라는 칼럼에서 이명박 대통령 가족이 ‘풍수지리’까지 고려해가면서 사저 구입을 준비했다고 전했다.
“올봄에 청와대 쪽이 내곡동의 집터가 좋은지를 한 풍수지리 전문가한테 자문했다는 점이다. 특히 부인 김윤옥씨가 적극적이었다고 한다. 집을 지으면서 풍수를 보는 것이야 흔한 일이지만 이 대통령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잘 알려져 있듯이 이 대통령 부부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여서 풍수지리 같은 것에는 무척 냉소적이었다. 2008년 취임 초 청와대에서 열린 언론사 편집·보도국장단 만찬 자리에서 ‘청와대 터가 나빠 역대 대통령들이 불행해졌다’는 말이 화제가 되자 이 대통령이 직접 마이크를 잡고 ‘나는 풍수지리 따위는 믿지 않는다’고 공언한 적도 있다. 그런 이 대통령 부부가 내곡동 터의 풍수지리에 관심을 보인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퇴임 뒤의 안위’가 지금 청와대의 최대 관심사가 됐음을 보여주는 방증이 아닐까. 집터가 좋아야 일신이 평안하고 집안에 복이 깃든다는 게 풍수지리의 요체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