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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October 15, 2011

노무현은 이명박의 미래다! 다음은?

'좌파 정부', '분배 정부'라고 비난만 잔뜩 받았지, 과감한 분배 정책을 쓰지 못했다. 예산을 더 주고 싶었지만 관련 부처에서 사업을 빨리빨리 만들어 오지 않았다. 나는 대통령으로서 민생의 어려움을 풀어주지 못했다. 국민들에게 너무 미안하다. (<운명이다 : 노무현 자서전>(유시민 정리, 돌베개 펴냄)
오는 10월 26일 서울시장 선거를 시작으로 2012년 총선, 대선이 줄줄이 이어진다. 벌써부터 '안철수 현상', '박원순 바람' 등 새로운 지도자에 대한 갈망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다. 여기서 잠깐 2002년의 '노무현', 2007년의 '이명박'을 떠올려보자. 그때는 그들 역시 대중의 뜨거운 지지를 받았었다.

지금은 어떤가? 아무도 노무현 전 대통령을 '성공한 대통령'이라고 평가하지 않는다. "피폐해진 민생의 어려움 때문에 가장 서민적인 후보에 대한, 서민 편에 서리라고 보이는 후보에 대한 기대감이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면서"(노회찬)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나, 그는 자신의 고백처럼 "민생의 어려움을 풀어주지 못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어떤가? 이대로라면 그 역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실망한 대중은
대기업 CEO 출신인 이명박 대통령이 최소한 '먹고사는' 문제만큼은 챙기리라 생각하면서 그를 지지했다. 그러나 현실은 '민생 파괴' '생태 파괴'라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대중의 열망 속에서 권력을 위임받았던 이들 두 대통령은 왜 저렇게 대중으로부터 멀어졌을까? 그리고 결국은 실패한 지도자가 될 수밖에 없었는가? 좋은 통치자는 어떻게 탄생하는가?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전 수석전문위원 한귀영 박사가 <진보 대통령 vs 보수 대통령>(폴리테이아 펴냄)에서 이 간단치 않은 질문의 답을 찾았다.

한귀영 박사는 2003년부터 2008년까지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매달 1~2회씩 꾸준히 실시한 약 130회의 여론 조사 결과를 토대로 두 대통령이 임기 중에 내놓은 어젠다(의제)와 지지율 간의 관계를 추적한다. 그 분석 결과는 우리가 한국 정치에 가지고 있었던 통념을 깬다.

예를 들어서, 대통령은 집권 후에 지지층의 이해관계에 부합하는 정책을 추진하면 야당 지지층이 강력히 반대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대통령은 '갈등'을 야기하기보다는 '
통합'에 주력해야 하는가? 한귀영 박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어젠다와 지지율 간의 관계를 보여주면서, 이런 주장에 단호하게 반대한다.
노무현 정부를 포함한 민주 정부 10년의 가장 큰 문제는 선거에서의 공약과 달리 당선되고 난 후에는 지지층의 이해관계를 벗어난 정책을 추진했다는 점이다. (…) 대통령이 한 정당의 지도자라는 사실을 외면하고 갈등을 회피하려는 경향을 보이며 (…) "전체의 이익을 대표하는 태도를 취할 경우, 결과적으로 기득 이익과 타협하게 된다."

이런 한귀영 박사의 견해를 염두에 두고 <진보 대통령 vs 보수 대통령>을 정치 컨설턴트 박성민 '정치 컨설팅 민' 대표와 같이 읽으며, 좋은 통치자의 조건을 탐색해 보았다. '프레시안 books'는 앞으로도 '정치의 계절'을 앞두고 쏟아지는 책들을 놓고 한국 정치와 한국 사회를 읽는 대화를 계속 지상 중계할 예정이다.
ⓒ프레시안(손문상)

"우리 대통령 vs 너희 대통령"

프레시안 : 이번에 같이 읽어볼 책은 <진보 대통령 vs 보수 대통령>입니다. 한귀영 박사가 머리말에 박성민 대표와의 토론이 책의 방향을 잡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감사의 말을 전했더군요. 몇 주 전에 책이 나오기 직전에도 만나서 제목 얘기를 비롯해서 얘기를 나눴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박성민 : 오랫동안 여론 조사 기관에 몸을 담으면서 쌓인 풍부한 데이터를 토대로, 대통령의 어젠다와 지지율의 상관관계를 밝힌 박사 학위 논문 주제가 흥미로웠는데, 그 논문을 토대로 책을 쓴다는 얘기를 들었고, 몇 가지 주제를 놓고 같이 토론을 한 적이 있었어요. 책이 출간되기 전에 우연히 만났을 때는 제목 이야기로 농담을 했었습니다.

"진보 대통령 vs 보수 대통령" 이렇게 제목을 정해놓았다기에 나라면 "우리 대통령 vs 너희 대통령" 이렇게 붙이겠다고 했어요. 그래야 책이 팔린다고요. (웃음)

프레시안 : 그 제목도 그럴듯한데요. (웃음) 이 책이 '어젠다'를 내세우고 있습니다만, 사실은 현대 민주주의의 딜레마를 다루고 있습니다.

시민은 선거를 통해서 대통령, 국회의원 같은 대표에게 권력을 위임합니다. 여기서 그 위임을 받은 대통령, 국회의원이 과연 자신에게 권력을 위임한 그 시민을 위해서 일할지 의문이 제기됩니다. 바로 정치학자들이 '책임성(accountability)의 원리'라고 부르는 것인데요. "우리 대통령 vs 너희 대통령"이 그런 책임의 원리를 더 잘 함축하는 듯해요.

"우군을 확인하라!"

박성민 : 여기서 한 가지 명확히 할 게 있어요. 우리는 흔히 추상적으로 시민 전체가 대통령에게 권력을 위임한 것으로 말하곤 합니다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지요.

예를 들어서, 2002년에 이회창 씨를 찍었던 사람이나 2007년에 정동영, 문국현 씨를 찍었던 사람은 노무현이나 이명박에게 권력을 위임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오히려 권력을 빼앗겼다고 생각할 거예요. 선거를 통해 누군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그 순간 그는 '정파의 대통령'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는 것이지요. 언론도 다 그렇게 쓰고요. 2008년 미국 대선에서 패배한 존 매케인의 '오바마는 나의 대통령이다' 같은 연설이 멋있게 인용되기도 하고요. 근데 이게 머리로는 되지만 가슴으로는 잘 안되죠. 솔직히 쉽지 않죠. 이 책의 논지를 이해하는데 이 점을 명확히 인식하는 게 아주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시민이 대통령에게 권력을 위임하면서 어떤 기대를 할까요? 두 가지 정도가 있을 거예요. 일차적으로는 자기가 지지하는 세력이 계속 유지되리라는 기대에요. 1992년 대선 때 대구·경북(TK) 사람이나 충청도 사람들이 민자당(민주자유당)의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표를 왜 줬겠어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어젠다를 지지해서요? 아닙니다. 이런 마음이었을 거예요.

'김영삼 당신이 민주화 운동하고 전두환, 노태우를 싫어한다는 건 알아. 하지만 과거는 다 잊고 세 당이 합해서 민자당이 만들어졌잖아. 눈 딱 감고 찍어줄 테니, 뒤통수는 치지 마!'

1997년 대선 때 충청도 사람이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표를 준 이유도 비슷했을 겁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유롭다고요? 아닙니다. 2002년에 호남 사람들이 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지했겠어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어젠다를 지지했던 이들도 있었겠지만, 다수의 호남 사람들의 마음은 이랬을 거예요.

'노무현 당신이 예전에 지역주의 타파를 내세우면서 호남 그리고 김대중과 갈등도 있었던 건 알아. 하지만 김대중이 키운 민주당 후보잖아. 적극 지지해 줄 테니, 민주당은 깨지 마!'

2007년 중도 실용을 내세웠던 이명박 대통령에게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지지했던 보수 진영이 표를 준 것도 '박근혜와 공동 정부로 운영해라' 하는 압력이 들어 있는 거죠. 그런데 한국의 모든 대통령은 지지들에게 위임 받은 연합을 결국은 모두 깨버렸죠. 정치적으로 노회한 김영삼·김대중은 시간을 갖고 깼고, 그렇지 못한 노무현·이명박은 성급하게 깼다는 차이만 있는 거죠.

프레시안 : 그러고 보니, 한국 정치는 권력을 위임한 시민에 대한 배신의 연속이었네요. 이 책에 여러 차례 '통치 연합'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시민이 권력을 위임해준 그 통치 연합을 틀을 계속해서 깼으니까요. 이 책의 주인공 중 한 사람인 노무현 전 대통령도 당선이 되자마자 대북 송금 특검을 수용하고, 결국에는 민주당을 깨고 열린우리당을 창당했잖아요.

한 원로 언론인이 이런 얘기를 하더군요. 문재인, 김두관, 유시민 씨 등 '노무현의 적자'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대선에 나가서 호남의 지지를 얻으려면 광주, 전주, 목포 같은 곳에 가서 무릎이라도 꿇어야 될 거라고요. 그래야 호남 사람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 깬 통치 연합의 틀을 다시 복원하는 걸 승인하리라는 거예요. 상당히 수긍이 갔지요.

박성민 : 맞아요. 노무현 전 대통령이 했던 가장 큰 판단착오에요. 개인적으로 정치인에게 컨설팅을 해줄 때, 어젠다를 제시할 때 꼭 강조하는 세 가지 원칙이 있어요. 그 중 하나가 어젠다를 제시하기 전에 꼭 우군을 확인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집권 초기에 자신의 팔다리를 잘라버린 겁니다. (우군을 확인하라!)

프레시안 : 굉장히 정치적이지 못한 판단이었어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취임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2003년 9월 17일에 이런 말을 해서 호남 사람에게 모욕을 줬어요. "호남 사람들이 나를 좋아해서 찍었나요. 이회창이 보기 싫어 이회창 안 찍으려고 나를 찍은 거지."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는 거야 자유지만, 왜 자기가 앉은 의자의 다리를 자기 손으로 자릅니까?

개인적으로 안타까운 것은, 이런 정치적이지 못한 행동을 놓고 일부 노무현 전 대통령 지지자들은 김영삼, 김대중 혹은 다른 정치인과 비교했을 때 '순수하다'며 가슴 뭉클해한다는 것입니다. 정치인이 정치적이지 못한 것은 자신뿐만 아니라 그 지지자 더 나아가서 나라 전체에도 굉장히 큰 불행인데요. 실제로도 그렇게 되었잖아요?

"갈등을 두려워하는 지도자는 실패한다!"

박성민 : 시민이 대통령에 권력을 위임할 때 하는 두 번째 기대가 바로 이 책에서 말하는 어젠다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해볼 수 있어요. 분명히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진보 쪽에 묶일 법한 이들의 지지로 당선이 되었어요. 그렇다면, 대통령이 된 다음에 그가 내세우는 어젠다는 어때야 할까요?

프레시안 : 선거 끝나면 항상 '대통령에게 바란다' 유의 사설, 칼럼이 언론에 등장합니다. 이제 갈등은 접고 통합으로 나서라는 것이지요. 실제로 한국의 지식인은 '통합 강박증'에 걸렸어요. 툭하면 갈등은 부정적인 것, 통합은 긍정적인 것으로 얘기합니다. 언론은 또 이런 걸 확대하고요.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미국의 정치학자 엘머 에릭 샤츠슈나이더는 <절반의 인민주권>(박수형 현재호 옮김, 후마니타스 펴냄)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갈등은 균열선 양쪽에 있는 사람들의 동원을 전제로 한다. 갈등은 사람들을 분열시키는 동시에 통합한다."

최장집 고려대학교 명예교수도 <민주주의의 민주화>(후마니타스 펴냄)에서 이렇게 얘기를 했어요.

"정치의 최종 목표가 사회 통합일 수는 있지만 그것이 시작은 아니다. 통합이 정치의 시작이 되는 경우 차이, 갈등, 소외, 균열은 억압되고 이들이 표출되거나 대변될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은 약화될 것이다."

한귀영 박사의 문제의식도 이런 샤츠슈나이더, 최장집 교수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선거에서 권력을 위임받은 대통령은, 자신에게 적극적으로 권력을 위임해준 그 지지층의 이해에 부합하는 어젠다를 내세워야지요. 물론 그 과정에서 갈등은 불가피하지만, 그런 갈등이이야말로 그 사회의 문제를 드러나면서 다 나은 내일을 낳는 산고(産苦)입니다.

박성민 : 이 책의 가장 돋보이는 부분은 바로 그런 샤츠슈나이더, 최장집 교수의 통찰을 여론 조사 데이터를 통해서 보여준 것입니다. 실제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 타협형 어젠다가 아니라 지지층을 대변하는 갈등형 어젠다를 제기했을 때, 지지율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했어요. 특히 대중의 먹고사는 문제와 관련된 경제·사회 분야에서 이 같은 경향이 두드러졌습니다.

그런데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지층을 대변하기보다는 끊임없이 지지층의 반발을 불러오면서 지지 기반을 약화시켰죠. 2003년의 이라크 파병은 대표적입니다. 노 전 대통령도 나중에 "이라크 파병은 옳지 않은 선택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고 고백했어요. 역사의 평가를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한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는, 지지층을 배반하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충분히 이해는 합니다. 한미 동맹의 중요성을 고려할 때, 정파의 수장이 아니라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고뇌가 있었겠지요. 지금 와서 돌이켜보니 그렇게 판단하는 거지 당시로서는 그런 판단이 쉽지 않았겠죠. 미국인들도 시간이 꽤 흐른 뒤인 2006년 중간 선거에 가서야 부시에게 등을 돌렸으니까요.

프레시안 :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4대 선결 조건 중 하나로 수용하고 추진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한나라당에 대한 대연정 제안은 어떻습니까? 한미 FTA는 지금도 야당의 발목을 끊임없이 잡잖아요? 그 때 노 전 대통령이 신임했던 김종훈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 같은 사람이 앞장서서 전 정부를 모욕하고 있고요.

박성민 : 미국 민주당 대선 예비 경선에서 버락 오바마와 힐러리 클린턴이 붙었을 때, 모두의 예상을 깨고 오바마가 이겼어요. 힐러리의 가장 큰 약점은 이라크 전쟁에 대한 찬성이었습니다. 초창기에는 부시 정부가 주장한 대량 살상 무기 등이 확인이 되지 않은 상태였으니, 이라크 전쟁에 대한 정당성이 아주 없었다고는 할 수 없어요.

실제로 2004년 선거에서 미국 시민은 부시를 재선시킴으로써 이라크 전쟁을 승인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모든 게 날조였던 거예요. 그 결과 2006년에 공화당이 중간 선거에서 패배하고, 결국 대선까지 오게 됩니다. 이 때 오바마가 힐러리를 계속 공격해요. '힐러리는 바로 그 이라크 전쟁을 지지했던 당사자다.' 결국 이것은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는 동력이 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힐러리가 보여주는 중요한 메시지는 이것입니다. '지지층의 지지를 저버리는 지도자는 절대로 성공할 수 없다.' (지지층의 기대에 부응하라 그리고 반대를 두려워마라!)

"정치 만능주의 vs 정치 무능주의"

▲ <진보 대통령 vs 보수 대통령>(한귀영 지음, 폴리테이아 펴냄). ⓒ폴리테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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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
그럼, 이명박 대통령은 어떤가요? 이 책은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는 지지층에 기대에 부합했어야 한다고 얘기하면서도, 정작 이명박 대통령에게는 통합의 정치를 했어야 했다는 이중적인 제안을 하고 있어요. 여론 조사 데이터에 기반을 둔 해석이라고는 하지만, 약간 편의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진보 대통령이 지지층의 지지를 저버리지 않아야 한다면, 보수 대통령도 역시 지지층의 지지를 저버리지 않아야지요. (웃음) 그래서 제목이 약간 오해를 줄 수 있습니다. 한귀영 박사도 지적하고 있듯이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지지했던 사람 중에는 자신의 정체성을 '진보'라고 말하는 이들도 많았거든요.

박성민 : 맞아요.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될 수 있었던 것은 대중의 이런 심리 때문이에요. '그래, CEO 출신이라서 먹고사는 문제 하나는 잘 챙기지 않겠느냐.' 그런데 과연 이명박 대통령이 그런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자신의 지지층에 부합했는지 의문이 든다는 거지요.

예를 들어서, 이명박 대통령이 추진하는 '한반도 대운하'는 어떤가요? 심지어 이것은 <조선일보>, <중앙일보> 같은 보수 언론까지 나서서 반대했습니다. 이 대통령을 지지해준 지지층은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이는데, 이 대통령은 '운하가 살 길'이라고 하고 있으니 책임성의 원리가 구현될 리가 없지요.

프레시안 : 이명박 대통령은 자신의 지지층의 이해가 정확히 무엇인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군요. 어쩌면 지지층의 이해가 정확히 무엇인지 비교적 제대로 파악했으면서도 매번 잘못된 선택을 한 노무현 전 대통령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군요. 둘 다 정치적이지 못한 것은 똑같지만요.

박성민 : 여기서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의 결정적인 차이점을 확인할 수 있어요.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정치 과잉'이었어요. 자신이 생각하는 방식으로 정치 질서를 바꾸면 세상도 저절로 바뀌리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대연정, 선거구제 개편, 개헌 등 끊임없이 정치적 어젠다를 던졌잖아요. 정치 질서만 바꾸려 한 것이 아니라 국제 질서(동북아 균형자)나 동맹의 구조(전시 작전권 환수), 그리고 언론 질서(브리핑 룸) 등도 바꾸고 싶어 했지요.

다만 그런 정치적 어젠다가 지지층의 요구와 부합했나 하는 것과, 그것이 과연 그 시점에 적절한 어젠다였는지는 논란이 있지만요. 또 결정적으로 그것을 추진하는 방식도 정치적이지 못했어요. 애초부터 핵심 동력을 상실한 채였으니까요.

반면에 이명박 대통령은 '정치 결핍'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CEO 출신이라서 그런지 정치에 대한 혐오가 있었어요. "여의도 정치"와 같은 모욕적인 표현을 쓰면서 정치에 대한 혐오감을 드러내잖아요. 사실 대통령이 이러면 안 됩니다. 대한민국 삼권분립의 한 축을 욕보이는 것이니까요.

이명박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는 반대로 정치 질서나 구조를 바꾸는 일에는 도무지 조금도 관심을 보이지 않아요. (웃음) 정치 질서를 바꾸는 개헌에도 시큰둥하고, 웬만한 것에 죄다 '선진화'를 붙여 놓았는데 뭐가 선진화가 되었는지 도통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구조와 틀이 바뀌지 않으면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 같고, 이명박 대통령은 못난 놈들이 세상 탓, 남 탓 하는 거라며 주어진 구조와 틀 속에서 열심히 하면 되는 거다,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습니다. 나를 봐라, 내가 뭐 조건이 좋아서 여기까지 왔나? 대한민국이 조건이 좋아서 여기까지 왔나? 그러니까 당연히 구조를 바꿀 생각이 없는 거죠.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교훈을 하나 얻을 수 있어요. 정치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즉 '슈퍼맨'이라는 말도 사실이 아니고, 정치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즉 '무능력자'라는 말도 사실이 아닙니다. 현재의 세계 금융 위기, 남북 문제 같은 것을 정치가 아니면 누가 해결하겠어요? 그렇다고 세상의 모든 문제를 정치로 해결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지요. '정치 만능주의'나 '정치 무능주의' 모두 극복해야할 정치의 적이죠.

"'안철수 현상'의 진짜 의미는…"

프레시안 : 화제를 바꿔보죠. 어젠다와 관련해서는 언론 환경도 무시 못 할 변수입니다. 이 책에서도 대통령이 주도적으로 제기한 어젠다와 외부의 요구에 반응하면서 제기한 어젠다를 분류하면서, 전자의 경우에 지지율에 더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고 정리하고 있어요. 그리고 그 이유 중 하나로 언론의 역할을 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딱 거기서 멈춰서 아쉬웠어요. 물론 책 한 권에서 모든 설명을 다 할 수는 없지만요. 한국의 왜곡된 언론 지형 속에서는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와 같은 대형 언론과 방송의 역할이 여론을 형성하는데도 또 대통령이 그런 여론에 반응하게 하는데도 중요한 변수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에는 내세우는 어젠다마다 특히 조·중·동 등 보수 언론에 의해서 왜곡되기 십상이었잖아요. 나중에 노 전 대통령이 지지층에 반하는 어젠다를 내세우면서 진보 언론마저도 등을 돌리게 되었어요. 이런 상황에서 어젠다에 대한 반대 여론이 커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아예 언론 전반을 불신하면서 귀를 꾹 닫게 되었다는 것이에요. 언론의 반응은 여론의 일정한 반영이라는 측면에서 그것에 귀를 닫는 순간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하게 되지요. 왜냐하면, 측근이나 혹은 '열성' 지지층의 목소리만 듣게 되니까요. <강남좌파>(인물과사상사)에서 강준만 전북대학교 교수가 이런 얘기를 했었죠.

"(노무현 전 대통령) 열성 지지자들은 먹고사는 문제에 대한 구속이 비교적 덜한 젊은층이었는데, 이들의 뜨거운 분노와 그에 따른 열화와 같은 지지는 주로 '이데올로기적 쟁투'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사회·경제적 이슈민감한 서민층은 인터넷을 들여다볼 시간조차 없을 정도로 먹고사는 일에만 몰두하느라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없었으니, 그런 대표성 왜곡으로 인한 문제가 노무현 정권의 성찰과 자기 교정을 방해한 것이다."

한귀영 박사도 이 부분을 책에 인용했더군요. 수긍이 가는 통찰입니다. 반면에 이명박 대통령은 어떤가요? 임기 초부터 방송까지 장악한 이 대통령은 방송이 앞장서고, 종합 편성 채널 선정에 목 맨 보수 언론이 지원하는 우호적인 언론 환경 속에서 여러 가지 어젠다를 내놓을 수 있었어요.

그런데 이렇게 우호적인 언론 환경 속에도 독이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나 그 측근들이 <프레시안>, <경향신문>, <오마이뉴스>, <한겨레> 등을 적대시하고 또 무시하는 것은 잘 알려진 일이에요. (웃음) 이러다 보니, 이명박 대통령도 노무현 전 대통령과 똑같은 잘못에 빠지는 것입니다. 언론에서 보는 게 민심과는 괴리된 듣기 좋은 소리일 뿐일 테니까요.

박성민 : 바로 그 지점에서 우리는 정당의 역할을 생각할 수 있을 거예요. 그렇게 왜곡된 언론 환경 속에서 대통령이 지지층과의 연결 고리를 끊지 않고, 계속 방향 감각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이 바로 소속 정당일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최근의 '안철수 현상' 등에 대해서도 문제제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실 안철수 현상, 박원순 바람을 보면서 기존 정당에 몸담고 있는 정치인은 '정치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정당의 필요성을 강조합니다. 정당의 위기, 정치의 위기를 거론하면서 모두 책임 정치를 강조하잖아요? 무소속은 책임 정치를 할 수 없고, 정당에 속한 정치인만이 할 수 있다고요.

그런데 과연 그런가요? 노무현 전 대통령은 어땠나요? 이명박 대통령은요?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요? 가장 최근의 오 전 서울시장만 볼게요.

오세훈 전 시장이 그만두는 과정에서 한나라당이 무슨 역할을 했나요? 아니, 유승민 최고의원이나 많은 이들이 말하듯이 도대체 '주민 투표를 누가 하라고 했나요?' 더 본질적으로는 한나라당에 무상 급식 당론이 있기는 했나요? 한나라당 후보로 당선된 오 전 시장의 당과는 무관한 행보가 결국은 10·26 보궐 선거로 이어지게 되었어요.

노무현 전 대통령도 민주당을 깨고 열린우리당을 만들 때나, 대연정을 제안할 때, 혹은 재신임을 묻겠다고 했을 때 당으로부터 어떤 승인을 받았죠?

프레시안 : 일종의 사기에요. (웃음) 예를 들어 '○○○ 아파트'라고 해서 입주를 했는데 하자가 생겨서 연락을 했더니 이런 답이 들어와요. '우리는 이름만 빌려줬고, 그 아파트는 실제로는 지역 중소 건설 업체가 지었으니 거기에 문의하라.' 지금도 상황이 이러니 기존 정당이 안철수 현상, 박원순 바람에 토를 다는 것이 우습지요.

박성민 : 그래도 기업의 잘못된 제품은 기업 이미지에 타격을 입힙니다. 그래서 기업은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리콜을 하잖아요. 지금의 정당은 리콜은 고사하고 애프터서비스도 안 해줍니다. (웃음) 정당이 그 이름으로 당선시킨 대통령·국회의원·시장을 당론으로 통제할 수 있나요? 책임 정치는 거기에서부터 출발하죠.

지금은 무책임 정치의 극치입니다. 그것이 정당의 위기를 불러온 거죠. 그렇다고 안철수 현상이나 박원순 바람을 쌍수를 들고 환영하는 일도 위험한 일입니다. 앞에서 얘기했듯이 기존의 정당이 하는 역할은 일종의 필터링 기능이에요. 안철수, 박원순, 조국 등은 모두 생각이 다를 거예요.

이들이 모여서 정당을 결성하고, 그 안에서 지지층의 압박 속에서 입장이 수렴되고, 그것이 당론이 되는 것입니다. 민주주의는 깊은 지식이 없는 사람도 정치적 결정을 쉽게 하도록 고안된 거죠. 정당의 역할이 바로 그것입니다. 시민의 선택지를 줄여주는 일이지요.

그리고 이것은 나중에 안철수, 박원순, 조국 같은 이들이 대통령, 지방자치단체장, 국회의원이 되었을 때, 그들이 자의적으로 권력을 행사하지 않는 제약으로 작용하는 것입니다. 제약이라고 하니까 부정적으로 들리지만, 꼭 그렇지도 않아요. 그것은 제약이자 동시에 어젠다를 적극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핵심 동력으로도 작용하니까요.

프레시안 : 지금의 안철수 현상, 박원순 바람은 탈정당의 신호라기보다는 오히려 제대로 된 정당을 요구하는 흐름으로 봐야겠군요. 신호를 잘못 파악해서 일부에서 주장하듯이 정당의 역할을 제한하고 심지어 그것을 아예 없앨 때의 폐해를 노무현 전 대통령, 이명박 대통령 그리고 오세훈 전 시장이 보여준 셈이니까요.

"담대한 제안을 하라!"

박성민 : 마무리하기 전에 저도 질문을 하나 던져볼게요. 아까 정치인에게 컨설팅을 해줄 때, 어젠다를 제시할 때 강조하는 세 가지 원칙을 얘기했었죠? 그 중 둘은 이미 앞에서 언급이 되었어요. '우군을 확인하라!' '반대(갈등)를 두려워마라!'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원칙은 이것입니다. '담대한 제안을 하라!'

최근에 스티브 잡스가 죽으면서 그의 '혁신'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지요. 위대한 지도자라면 이런 혁신에 대한 고민과 실천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혁신은 때로는 지지층 더 나아가서 공동체의 기대를 넘어서는 것으로도 나타나지요. 단순 비교하기는 그렇지만, 마치 잡스가 시장의 기대를 넘어서는 제안으로 혁신했던 것처럼….

예를 들어서, 김대중 전 대통령은 그런 성취가 있었지요. 물론 처음 나온 아이디어는 아니지만 2000년에 남북 정상 회담을 성사시켰습니다. 이명박 정부 하에서 삐걱거리기는 합니다만, 이제는 전쟁은 있어서는 안 된다는 합의가 최소한 합리적인 사람들 사이에서는 상식이 되었잖아요. 그런 혁신적인 어젠다는 어떻게 가능할까요?

프레시안 : 글쎄요. 대통령이라고 누구나 혁신을 할 수 있는 건 아닐 거예요. 타고난 능력, 남다른 철학, 시대를 앞서는 비전이 담보가 되어야겠지요.

사실 2008년 8·15 국정 연설에서 '녹색 성장'을 얘기한 이명박 대통령도 제대로만 했다면 나중에 혁신의 한 본보기로 칭송을 받았을지 몰라요. 새로운 패러다임을 연 대통령이라고요. 그런데 '녹색 성장'을 얘기하면서 그 안에 담긴 내용이 고작 토건 사업이나 핵 발전 칭송이니 사람들이 쓴웃음을 짓는 거지요.

기왕에 김대중 전 대통령 얘기를 했으니까. 이 책의 주제와 연관해서 생각해볼 여지가 있지 않을까요?

박성민 : 방금 얘기한 대로 모든 지도자가 혁신적인 어젠다를 제안하고 실천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 조건은 얘기할 수 있을 거예요. 김대중 전 대통령은 처음에는 통치 연합의 틀을 흔들지 않았습니다. 국가보안법, 양심수 석방 문제 등도 아주 소극적이었어요. 대신에 모두가 그 정당성을 부정하지 못할 외환 위기 극복에 주력했지요.

그리고 중반이 되는 시점에 남북 정상 회담을 추진했어요. 대조적으로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3년에 전격적으로 금융 실명제를 관철시켰죠. 이처럼 초기에는 자신이 당선된 통치 연합의 틀 속에서 지지층의 이해에 부합하는 어젠다에 몰두하고, 그 동력을 기반 삼아서 모두가 놀라는 혁신적인 어젠다를 내놓는 것. 이게 한 가지 경로 아닐까요. 역사적인 대통령이 되려고 조급증을 내기보다는….

대통령이 어젠다를 추진할 때 잊지 말아야할 원칙을 로켓 발사에 빗대서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제일 먼저 지지 기반을 붕괴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은 대기권 밖으로 우주선을 날라다주는 1단 로켓입니다. 둘째는 어젠다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입니다. 하고 싶은 걸 다할 수는 없으니까요. 인공위성을 정확한 궤도에 올려놓는 2단 로켓의 역할이지요.

그 다음은 어젠다를 추진하는 것이지요. 이 때 중요한 것은 추진 세력이 충분해야 하고 목표·방향·전략·의지가 확고해야 합니다. 인공위성도 명확한 목표를 갖고 쏴야 올라가니까요. 마지막으로 민심을 예민하게 살펴야 합니다. 인공위성이 보내온 자료도 결국은 해석을 잘 해야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노무현·이명박 대통령도 모두 1단 로켓에 문제가 생겨서…….

프레시안 : 용꿈을 꾸는 정치인들에게 이 책이 또 오늘 대화가 주는 교훈은 이런 것이겠네요. 지지층의 이해에 부합하는 화끈한 어젠다는 가능하면 집권 초기에 내놓아라! 자기만의 혁신적인 어젠다는 숙성시키고 또 숙성시켜서 통치 기반이 어느 정도 마련이 되었을 때 내놓아라! 둘 중 하나만 잘해도 역사에 남는다. 이런 식인가요? (웃음)

박성민 : <보수 대통령 vs 진보 대통령> 안에는 다른 중요한 메시지도 많은데 너무 우리 읽고 싶은 것만 읽은 게 아닌가요? (웃음) 하긴 모든 독서는 일단은 개인적이니까요. 지금 한국 정치에 관심 있는 분들이 현실 정치를 조롱하는 데만 신경을 쓰지 말고, 이 책을 읽고 우리의 대화에 다양한 댓글을 달아줬으면 좋겠습니다.

다음에 또 다른 흥미로운 책으로 수다를 떱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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