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① “작년 여름 논의 시작” → 건물주 “입주한 지 2년 넘어”
② “기업들 제안으로 설립” → 4대 그룹 “우린 제안한 적 없다”
③ K스포츠 이사장 2명 선임 과정도 본인들과 진술 엇갈려
② “기업들 제안으로 설립” → 4대 그룹 “우린 제안한 적 없다”
③ K스포츠 이사장 2명 선임 과정도 본인들과 진술 엇갈려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은 미르, 케이스포츠 재단을 전경련이 주도해 만들었다고 밝히고 있으나, 설립 시기나 모금 경위, 이사장 선정 등에서 기본적인 사실관계가 어긋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따라 재단의 진짜 주인은 따로 있는데 이를 감추기 위해 전경련이 거짓 해명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이승철 부회장은 지난 22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미르와 케이스포츠는 기업들이 지난해 여름부터 논의를 시작해 자발적으로 설립한 재단”이라며 “문화·스포츠 재단은 기업 의견을 모아 (내가 낸) 아이디어로 설립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미르 재단이 입주해 있는 건물의 소유주 박아무개씨는 24일 <한겨레> 취재진과 만나 “미르가 입주한 지 2년 이상 됐다. 최근에 입주한 게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얼마 전 재계약 시점이 돼 얘기를 해보니 미르 쪽이 그동안 쓰던 2층 외에 3, 4층도 쓰겠다고 해서 3, 4층은 복덕방에 내놓지도 않았는데 최근 문제가 생기면서 재계약이 미뤄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미르 재단이 문화체육관광부에 제출한 재산목록 서류를 보면 임대보증금은 1억5천만원으로 나와 있다.
이는 미르 재단이 이미 2년여 전부터 구상되고 사무실까지 얻어 본격적으로 설립 작업에 들어간 것을 의미하는 것이어서, 이승철 부회장이 밝힌 지난해 여름과는 시기적으로 분명하게 다르다. 그러나 건물주 박씨는 25일 <한겨레> 기자를 다시 만나 “2년 전 건물 임대를 계약한 사람은 전경련 사람으로 그동안 월세를 꼬박꼬박 내왔다”고 말해 의문이 증폭되고 있다. 박씨의 말이 사실이라면 전경련이 왜 2년 전부터 별도의 사무실을 월세로 임대하고 있는지 밝혀야 할 대목이다. 전경련 한 관계자는 “전경련이 내부의 공간도 많은데 외부에 그런 공간을 마련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이승철 부회장은 23일에도 “기업들의 제안으로 내가 주도해서 추진한 일”이라고 거듭 밝혔다. 하지만 재단 출연금 774억원의 63%(488억원)를 부담한 삼성·현대차·에스케이·엘지 등 4대 그룹은 ‘재단 설립을 제안했느냐’는 <한겨레> 질문에 모두 강력하게 부인했다. 4대 그룹의 한 고위임원은 “(이번 사안처럼) 재계 공통사업의 경우 특정 그룹이 적극적으로 나서는 경우는 없다. 주도하는 경우 (출연금 등) 부담만 많아지고 공은 모두에게 돌아가 생색도 나지 않는데 누가 나서겠느냐”고 말했다. 다른 4대 그룹의 임원들도 모두 “(우리가 주도할) 이유가 없고, 그런 적도 없다”고 말했다. 통상 재계 공통사업의 경우 예산의 대부분을 부담하는 4대 그룹의 의중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승철 부회장도 재단 설립을 제안한 기업이 어디냐는 <한겨레>의 질문에 “기억나지 않는다”며 얼버무렸다.
4대 그룹이 거액의 출연금을 내게 된 경위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것도 의문을 더한다. 4대 그룹의 한 홍보임원은 “(홍보실에서는) 아는 게 전혀 없다”며 답답해했다. 또 다른 임원은 “그룹 안에서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다. 전경련 업무 담당 부서에 물어봐도 묵묵부답”이라고 말했다. 미르 및 케이스포츠의 경우처럼 대기업들이 사회공헌 차원에서 거액의 출연금을 부담한 경우 널리 알리는 게 기업들에도 이익이 된다는 점에서 재계에서도 이해하기 힘든 일로 받아들인다. 4대 그룹 전직 고위임원은 “이번 사안의 성격을 감안할 때 청와대에서 전경련 고위임원에게 직접 협조 요청을 했고, 전경련 고위임원이 다시 그룹 고위임원에게 직접 그 뜻을 전달했을 가능성이 높아, 그룹 안에서도 내막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승철 부회장은 “케이스포츠 재단의 1대 이사장은 직접 우리(전경련)가 명망있는 분으로 모셨는데, 2대 이사장은 재단에서 자체적으로 선임했기 때문에 잘 모르는 일”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정동구 1대 이사장은 그동안 <한겨레>와 10차례 이상 만나거나 통화를 했는데도 전경련과의 연관성은 한차례도 언급한 적이 없다. 오히려 그는 “내용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재단의 김필승 이사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참여하게 됐다”고만 밝혔다. 전경련으로부터 직접 연락받은 적은 없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한겨레>는 전경련과의 관계를 좀더 분명히 하기 위해 정동구 전 이사장에게 여러 차례 전화를 걸었으나 받지 않았다. 정동춘 2대 이사장은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측근으로 알려진 최순실씨가 다니던 스포츠마사지센터의 원장 출신이다. 그는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재단 이사장 제안은 전경련에서 어떤 사람하고 연결이 돼 연락이 왔다”고 밝힌 바 있다. 이승철 부회장의 말과는 다른 것이어서 둘 가운데 한 사람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 셈이다.
김의겸 곽정수 선임기자, 박수지 기자 kyu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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