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BAR_김재수 해임건의안 방해 기획의 재구성 
2016년 9월24일 토요일 0시55분. 국회 본회의장의 불은 환하게 밝았고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해임건의안은 통과됐다. 해임건의안 표결 자체를 막으려는 새누리당의 무리수가 마침표를 찍은 순간이다. 다수 의석을 점하지 못한 집권여당이 안 되는 걸 억지로 해보려다 스타일만 구기고 나가떨어지는, 비극에서 쓴웃음을 뽑아내는 10시간의 블랙 코미디가 막을 내린 시간이기도 했다.
어버이연합 청문회와 세월호 특조위 조사 연장 제안했지만…
2016년 9월23일은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이 발의한 김재수 장관 해임건의안의 표결이 예정된 날이었다. 오전 10시에 국회 본회의가 열리고 국무위원을 상대로 한 교육·사회·문화 관련 대정부질문이 끝나면 김 장관 해임건의안이 처리되는 수순이었다.
그러나 새누리당이 갑자기 오전 9시10분부터 의원총회를 소집해 국회 본회의는 오후 2시로 미뤄졌다. 의총에서는 야당을 향한 성토가 주를 이뤘다. 이정현 대표는 “(의원) 수를 앞세운 인해전술을 국민들이 납득할 수 없다. 표결 강행으로 인한 국회 파행 책임을 더불어민주당이 모두 떠안아야 한다”고 말했다. 해임건의안은 의원 재적 과반수(151석)의 찬성이면 통과된다. 야3당이 똘똘 뭉치면 어렵지않은 일이다.
더불어민주당은 본회의 개의 30분 전인 오후 1시30분 의원총회를 소집했다. 그런데 정진석 원내대표가 더민주 의총장에 나타났다. 새누리당의 국회 사령탑이 혈혈단신 적진을 찾은 것. 우상호 더민주 원내대표와 10분 동안 만났지만 협상은 성과가 없었다.
야당은 ‘어버이연합 게이트’ 청문회와 세월호 특별조사위의 연장에 동의하면 김재수 장관 해임건의안을 철회하겠다고 했지만 정진석 원내대표가 이를 받아줄 리 없었다. 그는 “이런 식으로 정치 흥정을 하면 국민들이 뭐라고 하겠냐”며 되레 야당을 비난했다.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건의안 제출을 앞두고 23일 오후 열린 교육 사회 문화 분야 대정부질문을 위한 국회 본회의에서 각 부처 국무위원 보좌진들이 김도읍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의 호출을 받아 회의장을 나갔다가 들어오고 있다.(왼쪽 사진) 보좌진들이 이준석 사회부총리(오른쪽 사진 맨 왼쪽) 등 국무위원에게 귀엣말을 하고 있다. 이어진 문답에서 국무위원들은 답변을 길게 해 야당의 항의를 받기도 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건의안 제출을 앞두고 23일 오후 열린 교육 사회 문화 분야 대정부질문을 위한 국회 본회의에서 각 부처 국무위원 보좌진들이 김도읍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의 호출을 받아 회의장을 나갔다가 들어오고 있다.(왼쪽 사진) 보좌진들이 이준석 사회부총리(오른쪽 사진 맨 왼쪽) 등 국무위원에게 귀엣말을 하고 있다. 이어진 문답에서 국무위원들은 답변을 길게 해 야당의 항의를 받기도 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장관 해임건의안은 본회의에 보고된 뒤 72시간 안에 처리하지 않으면 자동 폐기된다. 해임안은 22일 오전 10시3분 본회의에 보고됐기 때문에 ‘유효기간’은 25일 오전 10시3분까지였다. 새누리당은 이를 노리고 무제한 반대토론(필리버스터)도 검토했다. ‘무제한 토론’은 본회의 개의 전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이 서명한 요구서를 국회의장에게 제출하면 가능하지만 새누리당은 오후 2시까지도 요구서를 내지 않았다. 해임건의안 처리를 합법적으로 막을 수 있는 방법도 사라진 것이다. 그 대신 새누리당 김도읍 원내수석 부대표가 대정부질문에 참석할 부처 공무원들을 불러모아 구수회의를 여는 광경이 야당에 딱 걸렸다. 국회 대정부질문을 엿가락처럼 길게 늘어뜨려 해임건의안 처리를 지연시키려는 꼼수를 기획한 것이다. 국무위원들을 상대로 한 대정부질문에서 의원의 질문시간은 20분(질문발언 15분, 의사진행발언 5분)으로 제한돼있지만 장관들의 답변 시간은 제한이 없는 점을 악용하려는 것이었다. 대정부질문에서 답변에 나선 장관들이 해임건의안 처리를 방해하도록 하는 ‘장관 필리버스터’였다.
‘장관 필리버스터’ 요건 몰랐지?
이날 예정된 대정부질문자는 모두 13명이었고 그중 새누리당 의원은 5명에 불과했다. 이들에게는 ‘장관 필리버스터’로 최대한 시간을 끌어야 하는 막중한 임무가 부여된 셈이었다.
남인순 더민주 의원에 이어 2번째 대정부질문자로 나선 정우택 원내대표가 찍은 기록은 55분이었다. 황교안 총리의 장광설이 기록에 한몫했다. 그러나 어느 조직에서든 전략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구성원은 있는 법. 유성엽 국민의당 의원, 소병훈 더민주 의원에 이어 연단에 오른 임이자 새누리당 의원은, 황주홍 국민의당 의원이 김재수 장관 해임건의안에 반대하며 블로그에 올린 A4 3장짜리 분량의 글을 “괄호 열고”, “괄호 닫고”까지 언급하며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의원 자신의 발언과 질문은 최대한 짧게 하고 장관들의 발언을 길게 유도해야 하는 ‘장관 필리버스터’의 핵심 전략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임이자 의원은 그렇게 황주홍 의원의 글을 국회방송을 통해 국민들에게 들려주는 역할에 만족해야 했다.
대정부질문은 정회 없이 계속됐고 저녁 6시가 되자 더민주는 조를 나눠 도시락으로 저녁식사를 하기로 했다. 6시10분부터 1조가 원내대표실에서 30분만에 식사를 마치고 본회의장으로 돌아오면 2조가 원내대표실로 내려와 식사를 하는 방식이었다. 새누리당은 저녁 7시에 본회의장을 나왔다. 저녁식사가 아닌 의원총회를 하기 위해서였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국회의장이) 의사진행발언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한다. 옛날 같으면 완력이라도 써보겠는데 지금 그럴 상황이 아니다”라고 분통을 터뜨리며 “절제 안된 권력은 혹독한 국민의 심판을 받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한민국 헌정사에 길이 남을 ‘필리밥스터’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와 심재철 국회 부의장 등이 23일 저녁 교육·사회·문화 분야 대정부질문 도중 국무위원들에게 저녁식사 시간을 줘야 한다며 발언대를 점거한 채 정세균 의장에게 정회를 요구하고 있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내려가서 이야기하자며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와 심재철 국회 부의장 등이 23일 저녁 교육·사회·문화 분야 대정부질문 도중 국무위원들에게 저녁식사 시간을 줘야 한다며 발언대를 점거한 채 정세균 의장에게 정회를 요구하고 있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내려가서 이야기하자며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의총에서 발언만 하고 식사는 하지 않은 채 본회의장으로 돌아온 정진석 원내대표는 저녁 7시50분 김석기 새누리당 의원의 대정부질문 차례가 되자 본회의장 단상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정세균 국회의장에게 “국무위원들과 여당 의원들이 저녁식사를 못하고 있다”며 정회를 요구했다. 헌정사에 길이 기록될 ‘필리밥스터’의 시작이었다. 밥 먹는 문제를 놓고 정진석 원내대표와 새누리당 의원들은 정세균 의장에게 강력하게 항의했다. 민망한 대화가 이어졌다.
정진석 의원들이 식사를 못하고 있습니다.
새누리당 의원들 밥 먹고 합시다. 국무위원도 밥 먹을 시간 줍시다.
정세균 자자 들어가세요. 김석기 의원 나오세요
정진석 아니, 김밥 먹을 시간이 없어요
정세균 여러분들이 걱정하시는 것만큼 똑같이 의원들 걱정합니다. 근데 오늘 일정상 시간이 없어요. 저도 국무위원들 걱정해요. 근데 어쩔 수 없잖아요. 오늘 새누리당 의총 때문에 이런 거 아닙니까.
우상호 내가 살다가 밥 필리버스터는 처음 보네.
정진석 원내대표가 “김밥 먹을 시간도 없다”며 감정에 호소했지만 정세균 의장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본회의 일정이 늘어진 건 새누리당의 책임이라는 점을 명확히 한 것이다. 그러자 새누리당 의원석 어딘가에서 “정세균 의장이 의리 없이 혼자 저녁을 먹었다”는 주장이 날아들었다. 말싸움은 더 격해졌다.
새누리당 의원 의장이 혼자 밥 먹었다!
정세균 내가 밖에 나가는거 봤어요? 내가 언제 밥먹었어요? 회의 이렇게 방해하지 마세요. 오늘 회의 늦어진 거 누구 때문에 그렇습니까? 잘 아시면서 그러세요. 회의 진행에 대해서는 제가 책임지고 합니다.
정진석 의원들 다 굶기고! 국회에 오점을 남기지 마세요! 양심도 없이 말이야.
정세균 나 때문입니까? 두시간반 동안 뭐하는 짓이야. 김석기 의원 질문 없습니까? 여러분들 진정하세요. 국회를 이렇게 만들면 안돼요. 누가 이런 상황 초래했는지 잘 따져봐. 이제 더 이상 여러분들 말에 답변하지 않겠어요.
정진석 저 4선의원입니다 원내대푭니다. 30분만이라도 나갈 수 있게 해야지. 집권여당 대푭니다. 저 16대부터 국회의원 했습니다. 최소한 우리 체통은 보장해줘야지.
윤소하(정의당) 국무위원들 생각하면 빨리 끝내고 편하게 식사하시라고 도와줘야 할 거 아니야.
정세균 의장은 헌정 사상 초유의 ‘장관 필리버스터’에 대해서도 점잖게 한 마디 했다.
정세균 지금 시간이 얼마나 낭비가 됐습니까. 여러분 의총하느라고 2시간 반 없앴죠. 또 길게 답변하고. 의장은 오늘 주어진 의사일정을 잘 처리해야할 책임있는 사람이에요. 여러분들이 한번 잘 생각해봐. 국무위원들 답변 잘 보셨죠. 어떻게 하는지.
정진석 길게 답변하면 안 되나? 좋게 생각해야지 그걸 의장이 뭐라고 해?
정세균 정도껏 해야지. 그렇다고 내가 못하게 하지 않잖아. 오늘 의사진행은 내 책임으로 하는 거에요. 거기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하지 마시고!
정진석 아니 이런 경우가 어디 있습니까. 이런 의회 독재가 어딨어. 이런 의회 독재가 어딨냐고. 의회 민주주의가 이렇게 해도 되는 겁니까? 자기 혼자 식사하고 오고 말이야. 의장님, 이러시면 최악의 위장님으로 남습니다.
기동민(더민주) 어떻게 집권당 대표가 의사진행을 방해하세요. 왜 이러세요.
진선미(더민주) 채증되고 있습니다.
국회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집권여당 의원들의 ‘밥투정’에 야당 의원들은 일제히 스마트폰을 들이댔다. 채증이 아니라 생중계였다. 표창원 의원 등은 이 진귀한 광경을 에스엔에스(SNS)에서 실시간으로 중계했다. 그리고 야당 의원들은 간단한 해법을 제시했다.
표창원(더민주) 식사하고 오세요. 지금.
강병원(더민주)이 방법 아닌 거 같아요. 의총 가서 다시 짜오세요.
정세균 부끄럽게 이게 뭡니까.
민병두(더민주) 국회법 145조·146조에 의해 여러분 고발될 수 있습니다.
국회법에서는 본회의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질서유지와 모욕금지 조항이 있다. 이를 어기면 징계를 받을 수 있다.
제145조(회의의 질서유지) ① 의원이 본회의 또는 위원회의 회의장에서 이 법 또는 국회규칙에 위배하여 회의장의 질서를 문란하게 한 때에는 의장 또는 위원장은 이를 경고 또는 제지할 수 있다.
②제1항의 조치에 응하지 아니한 의원이 있을 때에는 의장 또는 위원장은 당일의 회의에서 발언함을 금지하거나 퇴장시킬 수 있다.
제146조(모욕등 발언의 금지) 의원은 본회의 또는 위원회에서 다른 사람을 모욕하거나 다른 사람의 사생활에 대한 발언을 할 수 없다.
제147조(발언방해등의 금지) 의원은 폭력을 행사하거나 회의중 함부로 발언 또는 소란한행위를 하여 다른 사람의 발언을 방해할 수 없다.

영상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새누리당, 40분 투쟁 끝에 식사시간 30분 얻어
“밥 먹을 시간을 달라”는 새누리당 의원들의 생떼는 40분간 계속됐다. 정세균 의장은 3당이 정회 여부를 논의하라 했고 우상호·박지원 원내대표는 30분 정회에 동의했다. 새누리당은 40분간의 투쟁으로 30분의 고귀한 식사 시간을 확보한 것이다.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장관들 밥 먹으라고 했다. 배고파보니 알겠지”라며 “이제 북한에 쌀 지원하라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상호 더민주 원내대표는 “집권여당 대표가 국무위원 밥먹이라 데모하는 사회가 됐으니 그것 참…. 의사진행을 지연시키는 방법도 가지가진데, 좀 품위 있고 국민들 볼 때 납득할 이유가지고 하는 게 좋지 않겠냐”며 “30분간 정회했으니까 정회하는 동안 많이 드시고 오시라”고 말했다.
김종인 전 더민주 대표는 지연 전술을 구사 중인 새누리당을 “미련한 사람들”이라고 비웃었다. 김 의원은 “밥 못 먹어서 의회독재야? 기본적으로 한심한게 뭐냐면 어차피 여소야대 불가항력인데 그걸 갖다 저런 식으로 막으려고 하면 꼴이 무슨 꼴이냐”며 혀를 끌끌 찼다. 김 의원은 “(새누리당) 이 사람들이 무슨 생각하냐면 국민의당 의원들이 오늘 주말이니 다 지역구에 갈 줄 알고 하는 건데 저게 어리석은 짓”이라며 맥락 없는 새누리당 ‘필리밥스터’ 전략의 맥을 짚었다.
밤 9시에 본회의가 속개된 와중에, 청와대가 이석수 특별감찰관의 사표를 수리했다는 소식이 야당 의원들 사이에서 돌았다. 언론의 확인 요청에 청와대 홍보 관계자는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지만 몇분 지나지 않아 사실로 드러났다. 이 감찰관이 검찰 수사를 받게 된 도의적 책임을 지고 사표를 냈으나 한달 동안 수리를 하지 않던 청와대가, 이 감찰관이 오는 30일 국정감사 출석을 준비하자 전격적으로 이를 처리한 것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 오후 이 감찰관 사표를 수리했지만 청와대 정무 라인에서 이 사안이 김재수 장관 해임건의안 표결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쉬쉬하고 있었다고 한다.
‘식사 투쟁’의 성공으로 30분을 번 새누리당은 밤 9시45분, 정진석 원내대표 명의로 소속의원 전원에게 다음과 같은 문자를 보냈다.
“9.24(토) 새벽까지 계속 투쟁이 이어질 예정이므로 지방에 귀향활동 중인 의원님들까지 전원 상경하여 본회의장에 입장하여 강력한 대야투쟁에 동참하여주시기 바랍니다.”
“작전 실패다!” 패색은 짙어지고…
그러나 자정이 가까워질수록 새누리당은 패색이 짙어지고 있었다. 국회법에서는 본회의 일정을 당일, 하루 1회만 진행하게 돼있기 때문이다. 자정을 넘긴 뒤에도 처리할 안건이 있으면 새롭게 본회의를 소집하는 형식을 거쳐야 하는데 이를 ‘차수 변경’이라고 한다. 23일 오후 2시부터 지루하게 이어진 ‘장관 필리버스터’도 국회법에 따라 이날 자정이 지나면 진행할 수가 없었다.
새누리당도 현실을 인지하게 됐다. 이완영 의원은 밤 10시30분, 김도읍 새누리당 원내수석 부대표실로 들어가면서 “실패다. 작전 실패야”라고 투덜댔다. 김도읍 원내수석은 “국민의당에 기대하고 있다”며 실낱같은 희망을 드러냈다.
그러나 국민의당은 마음이 떠난 지 오래였다. 이상돈 의원의 대정부질문이 끝난 이날 밤 10시께 의총을 소집한 국민의당은 대부분 해임건의안 찬성으로 뜻을 모았다. 이용호 원내 대변인은 “충분히 정치적으로 풀어갈 기회와 시간을 줬음에도 청와대가 노력하지 않고 더욱 공세적으로 몰아간 그런 행태가 분위기를 더욱 악화시켜 안타깝다”고 말했다.
밤 10시30분 이우현 새누리당 의원이 연단에 섰다. 이날의 마지막 대정부질문자였다. 이 의원은 황교안 총리를 불러 답변대에 세운 뒤 2014년 12월 해산한 통합진보당 사건에 대해 질문했다. 당시 법무부 장관으로 통진당 해산을 주도했던 황 총리는 자신의 ‘전공 분야’가 나오자 10분 넘게 답변을 이어갔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국내 근로자 임금 수준이 어느 정도냐”고 묻자 이 장관은 구체적인 수치는 얘기 안 하고 장황한 발언으로 화답했다. 야당 의원들이 야유하자 이 의원은 “피곤하면 가세요! 저녁 잘 먹고 우리는 김밥 먹고!”라고 받아쳤다. 박문규 보건복지부 차관에게는 “기초연금에 대해 소상하게 말해달라”고 주문했지만 박 차관은 간략하게 답변을 끝냈다. “박문규 차관이 그래도 괜찮네”라는 칭찬이 야당 의원석에서 나왔다. 이우현 의원이 이준식 교육부총리를 불러 세우자 이장우 의원은 “대학 구조개혁 좀 자세히 물어봐!”라고 주문했다. 국민의당 의총에서 해임건의안 반대 의견을 나타냈던 김중로 의원은 이 광경을 모두 지켜본 뒤 박지원 원내대표에게 “새누리당 저런 모습을 보니 안 되겠다”며 해임건의안에 찬성하겠다는 뜻을 나타냈다고 한다.
24일 새벽 국회 본회의장에서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 투표 절차에 들어가려하자 새누리당 의원들이 앞으로 나와 정세균 국회의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24일 새벽 국회 본회의장에서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 투표 절차에 들어가려하자 새누리당 의원들이 앞으로 나와 정세균 국회의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그렇게 이우현 의원의 대정부질문이 계속되던 밤 11시57분. 정세균 의장은 차수 변경 작업에 착수했다. 자정을 기점으로 대정부질문은 종결되고 해임건의안 표결이 진행된다는 의미였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고성을 지르기 시작했고 정진석 원내대표는 또 의장석 앞으로 나와 “부끄러운 줄 알아라, 치욕적 오점을 남기는 독재적 날치기 의장”이라고 열변을 토했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정세균은 독재자”라고 외쳤다. 자정이 되자 정세균 의장이 입을 열었다. “여러분들의 출석은 어제까지였다. 국무총리와 국무위원들은 돌아가도 좋다”고 말했다. 장관들은 주섬주섬 짐을 챙겼으나 황교안 국무총리는 한동안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민주주의 파괴한 정세균은 물러가라”는 구호를 어색하게 외쳤다. 20분 뒤 새누리당은 본회의장에서 나왔다. 해임건의안 표결에 불참하기로 한 것이다. 날을 바꿔가며 열변을 토한 정진석 원내대표는 목이 쉬었다. 그는 “정세균 의장과 더불어민주당은 헌정 사상 유례 없는 비열한 국회법 위반 날치기 처리에 대해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될 거다. 협치는 끝났다”고 했다.
정세균 국회의장이 24일 1시께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건의안을 통과시키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정세균 국회의장이 24일 1시께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건의안을 통과시키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새누리당 의원들의 퇴장 뒤 평온을 되찾은 본회의장에선 김재수 장관 해임건의안 표결이 시작됐다. 더불어민주당 121명, 국민의당 38명, 정의당 6명, 야당 성향 무소속 5명, 정세균 의장까지 모두 170명이 무기명 투표에 참여했다. 0시55분 정세균 의장은 “총 투표수 170표 중 가(찬성) 160, 부(반대) 7, 무효 3”으로 김재수 해임건의안 가결을 선포했다.
기상천외한 투쟁 방식을 구사하는 새누리당과 10시간 넘게 마주했던 우상호 더민주 원내대표는 “민정수석실의 부실검증을 비롯해 이 정권에 제대로 된 인사를 촉구하고 소통하는 민주적인 국정운영 방식이 되도록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내는 국민의 경고”라며 “이것을 계기로 대통령의 국정운영이 방식이 바뀌고 제대로 된 보수인사를 추천하는 관행이 정착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도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각료들이 자업자득한 결과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새누리당의 생각은 다르다. 새누리당은 정세균 의장을 직권남용 및 권리행사 방해죄로 고발하고 직무정지 가처분 신청, 권한쟁의 심판, 국회 윤리위원회 회부, 사퇴촉구 결의안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법적 윤리적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김태규 기자 dokbul@hani.co.kr
[언니가 보고있다 #34_‘친구 없는 사람’의 ‘동네 친구’, 최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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