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법을 내놓으며 문제의 해결을 도모하는 것이 아니라 자극적인 비방의 언어를 구사하면서 상대방을 반이성적으로 몰고 간다"
김윤철 교수(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가 최근 박근혜 리더십을 평가하면서 내놓은 진단이다.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의 비리 의혹, 최순실씨의 미르-케이스포츠재단 개입 의혹 제기 등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이 내놓은 것은 해법이라기보다 '협박'에 가깝다.
지난 22일 박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주재한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비상 시국에 난무하는 비방과 확인되지 않은 폭로성 발언들은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혼란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등장한 것이 국가 안보와 국민 안위의 문제다. 박 대통령은 "저는 국가의 안보와 국민의 안위를 지키는 문제는 정쟁의 대상이 돼서는 안된다고 수없이 강조해왔다"면서 "미국의 링컨 대통령도 스스로 분쟁하는 집은 무너진다고 하면서 국민적 단합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고 덧붙였다.
23일 국회 대정부 질의에서 황교안 국무총리는 나아가 "의혹은 누구든 얘기할 수 있지만 의혹 제기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한다"며 "유언비어에 대해선 불법에 해당되는 것은 의법 조치도 가능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을 헌정 사상 처음으로 거부하면서 내놓은 말도 "이런 비상시국에 해임건의안을 통과시킨 것이 유감스럽다"라는 내용이다.
백남기 농민 사망에 대한 정권의 행태를 두고는 ‘잔인한 정권’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국가폭력으로 희생된 것이 명백함에도 어떤 책임자도 나오지 않고 사과 한마디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은 박근혜 정권의 속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김윤철 교수는 박근혜 대통령의 리더십을 상징적으로 "헤드십"이라고 표현했다. 김 교수는 "박 대통령의 리더십은 사회적 동의와 신뢰에 기반한 권위를 통해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대통령이라는 지위 권력에 주로 기대는 헤드십에 가깝다"면서 "이념과 조직적 자원, 그리고 목표와 결과의 측면에서 봤을 때 박 대통령의 리더십은 낡은 이념과 계파에 기대어 기득권 체제의 유지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고 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정치 리더십은 사회적 동의와 신뢰에 기반한 권위를 통해 작동하는데 이 같은 잣대로 보면 오히려 강해 보이는 박 대통령의 리더십은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신뢰를 구축하기 위한 시민사회와의 소통과 협치는 찾아볼 수 없고 권위주의만을 내세워 협박하는 식의 통치 스타일을 보여주는 것은 헤드십에 가깝다는 것이 김 교수의 진단이다.
김 교수는 박정희 체제의 대표적인 이념으로 통했던 국가중심주의와 반북 반공주의를 박 대통령이 답습하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했다. 김 교수는 "정치에서 이념이 필요한 이유는 그것이 언어이기 때문이다. 이념은 사회적 포괄과 통합을 위한 언어"라며 "박정희 체제의 이념, 국가중심주의와 반북 반공주의는 사실 이념이 아니다. 배제와 금지와 공포감의 조성을 위한 폭력적 언어일 따름이다. 서로 다른 이해와 생각을 가진 이들 간의 공존을 위한 기술인 정치에서 배제해야할 것은 오직 배제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런 국가중심주의와 반북 반공주의를 다시 불러냈고, 통치의 자원과 기술로 사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자연스레 박 대통령의 언어는 과거 대통령의 언어와도 비교된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서 연설비서관실 행정관과 연설비서관으로 재직한 강원국씨는 '대통령의 글쓰기'에서 지난 2003년 3월 나라종금 사태에 관련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작성했던 국회 국정연설 초안을 공개했다.
"무엇보다 사실 규명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만일 나라종금 사건에 저의 참모가 관련되어 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저의 책임이 될 것입니다. 저를 위해 일했던 사람의 잘못은 곧 제 잘못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책임이 저에게 있습니다. 다만 저는 지금 대통령의 신분인 만큼 저의 임기 중에는 형사소추가 유보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만일 제가 법적으로 책임질 일이 있으면 임기를 마치는대로 기꺼이 그 책임을 질 것입니다"(노무현 전 대통령)
노 전 대통령은 2003년 10월 최도술 비서관의 비자금 사건이 불거지자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최도술 씨는 약 20년 가까이 저를 보좌해왔습니다. 그의 행위에 대해서 제가 모른다 할 수가 없습니다. 입이 열개라도 그에게 잘못이 있다면 거기에 대해서는 제가 책임을 져야 합니다"라며 "수사가 끝나면 그 결과가 무엇이든 간에 이 문제를 포함해서 그동안에 축적된 여러 가지 국민의 불신에 대해서 국민에게 재신임을 묻겠습니다"라고 밝혔다.
그리고 2004년 3월 대선자금 특별기자회견을 통해 노 전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부끄럽고 난감하기 짝이 없습니다. 거듭 머리 숙여 사과드립니다. 번번이 하는 사과, 말로 끝나는 사과, 그 뒤엔 다시 달라지지 않는 정치 등 국민 여러분은 사과받기에 지치고 짜증이 나는 일인지 모르겠습니다...(중략)...최도술 씨는 20년 가까이 일을 맡았고, 안희정 씨는 15년 가까이 됐습니다. 제가 감독하고 관리할 범위 안에 있는 사람들이기 때무에 이들의 잘못은 제가 책임져야 합니다. 거듭, 거듭 사과드립니다. 이들이 조달하고 사용한 대선자금은 저의 손발로서 한 것입니다. 법적인 처벌은 그들이 받되 정치적 비난은 저에게 하기 바랍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언어는 '품위가 없다', '가볍다' 라는 평가를 받았고, 사과 기자회견도 정치9단의 술수라는 비난을 받았지만 측근 비리 의혹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자리의 형식만큼은 진정성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았다.
반면, 박근혜 대통령의 언어는 비상시국와 국가안보와 안위와 같은 배경 설명만 늘어놓고 자신만 빠져 있어 정작 대통령의 희생이 보이지 않는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결국 박 대통령의 언어는 상대방의 신뢰를 형성하기 어렵고, 향후 취약한 리더십의 결과로 나타날 것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대화의 제1원칙으로 인간적 신뢰를 쌓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모든 대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적 신뢰를 쌓는 것이다. 입장이나 의견 차이가 없을 수는 없다. 하지만 진심으로 대하면 신뢰가 생기고, 신뢰가 생기면 모든 문제는 풀 수 있다. 진정성이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인다. 진정성 있는 대화는 그 시작은 힘들지만 한번 시작되면 쉽게 깨지지 않는다”
강원국씨는 “진정성은 선한 뜻만으로 평가되는 것은 아니다. 취지가 좋으니까, 나는 선한 동기를 갖고 한 일이니 진정성을 인정해달라는 것은 곤란하다. 진정성은 자기 행위의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을 지는 것이다. 그것이 막스 베버의 ‘직업으로서 정치’에서 말한 책임윤리이고 진정성”이라고 설명했다.
※ 참고자료 ‘대통령의 글쓰기’ - 강원국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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