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2014년 아시안게임 때 황병서에게 ‘청와대 예방’까지 제안했던 박근혜 정부
[미디어오늘 민동기 기자]
“김영철이 북측 군 고위 관계자로서 판문점 남북 군사 회담에 참석한 것과, 스포츠와 아무 관련이 없는 그가 우리 주최 올림픽에 주빈으로 초대받아 2박 3일 동안 우리 땅을 휘젓고 다니는 것을 같은 줄에 놓고 비교한다는 얘기다.”
조선일보 2월24일자 사설 가운데 일부다. 자유한국당의 이중적 태도를 비판한 더불어민주당 입장을 반박하는 내용이다. 더불어민주당이 비판한 부분은 대략 이런 것이다.
△2014년 남북 장성급 군사 회담 때도 김영철이 북한 대표였다. △당시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새누리당은 ‘남북 대화가 꾸준하게 이어지길 기대한다’는 논평을 냈다 △2014년 김영철과 지금의 김영철은 어떤 차이가 있느냐.
상식적인 주장이다. ‘왜 그때는 되고 지금은 안 된다는 것’이냐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해 자유한국당은 제대로 반박하거나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24일) 조선일보가 사설에서 이를 반박했다. “김영철이 북측 군 고위 관계자로서 판문점 남북 군사 회담에 참석”했기 때문에 지금과 다르다는 게 조선일보 주장이다.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지금 자유한국당과 이른바 보수진영은 “김영철이 한국 땅을 밟는다면 긴급 체포하거나 사살해야할 대상”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들 논리대로라면 2014년 당시에도 김영철은 ‘긴급 체포하거나 사살해야 할 대상’이었다. 회담의 주체가 될 수 없었다는 얘기다. ‘북측 군 고위관계자’로 남북군사회담에 참석하면 조선일보가 그토록 강조하고 있는 ‘천안함 폭침’ 책임이 없어지나?
오히려 더 문제 아닌가. ‘천안함 폭침’에 책임 있는 당사자가, ‘한국 땅을 밟는다면 긴급 체포하거나 사살해야할 대상’이, 남북군사회담에 참석하는 게 더 말이 안 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왜 박근혜 정부는 그때 김영철을 체포, xx하지 않았나?”라는 더불어민주당 박범계 의원 비판에 대해 자유한국당과 보수진영이 책임 있는 입장을 내놓아야 하는 이유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김영철이 북측 군 고위 관계자로서 판문점 남북 군사 회담에 참석한 것과, 스포츠와 아무 관련이 없는 그가 우리 주최 올림픽에 주빈으로 초대받아 2박 3일 동안 우리 땅을 휘젓고 다니는 것을 같은 줄에 놓고” 비교하지 말라고 한다. 궤변도 이런 궤변이 없다. 그럼 역으로 한번 물어보자. 그게 도대체 무슨 차이가 있나? 북측 군 고위 관계자로 회담에 참석하면 자유한국당과 조선일보가 입에 거품을 물 정도로 흥분하는 ‘천안함 폭침 책임’을 묻지 않아도 된다는 건가. 전형적인 내로남불 논리이자 궁색한 변명이다.
2014년 아시안게임 때 황병서에게 ‘청와대 예방’ 제안했던 박근혜 정부
조선일보의 이 같은 주장이 궤변에 불과하다는 것은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당시 보도에서도 확인된다. 당시 북한은 북한 권력 서열 2위인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을 비롯해 최룡해·김양건 당비서 등 최고위급 인사를 북 대표단 자격으로 한국에 보냈다. 이들은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 참석을 이유로 2014년 10월4일 오전 인천을 방문했다. 황병서와 김양건이 누군가. 조선일보는 두 사람을 이렇게 소개했다.
“황병서 총정치국장은 ‘북한 군부의 1인자’로, 김양건 노동당 대남 비서 겸 통일전선부장은 ‘대남정책의 1인자’로 흔히 분류된다. 또 두 사람은 모두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최측근 실세로 ‘이너 서클(inner circle·중추세력) 멤버’라고 할 수 있다 … 북한 권력서열 2위인 황병서 총정치국장은 김정은 체제 들어 승승장구를 거듭한 인물로 현재 노동당 정치국 상무위원,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등 핵심 직책을 갖고 김정은의 오른팔 역할을 하고 있다.”
[조선일보] 고위급접촉 北 수석대표 황병서, 김양건은 누구?
‘스포츠와 아무 관련이 없는’, 김정은의 오른팔 역할을 하고 있던 핵심 인사들이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 참석을 이유로 한국에 왔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와 당시 새누리당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태도를 보였다. 당시 조선일보가 보도한 내용에 자세히 나와 있다. 핵심적인 부분만 인용한다.
“(황병서는) 김관진 실장에게 ‘김정은 제1비서의 따뜻한 인사를 박근혜 대통령에게 전한다’고 말했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주로 남북 간 긴장 조성에 치중해 왔던 김정은이 박 대통령에게 개인적인 메시지를 전한 것은 처음이다 … 또 우리 측은 ‘박 대통령이 북측 대표단을 만날 용의가 있다’며 ‘청와대 예방’을 제안했다. 이에 북측은 ‘이번에는 아시안게임 폐막식 참석을 위해 왔기 때문에 시간상 어렵다’며 양해를 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정은의 오른팔 역할을 하고 있던 핵심 인사들에게 ‘청와대 예방’까지 제안했던 게 당시 박근혜 정부였다. 당시 새누리당은 권은희 대변인 명의로 “비록 현재 남북관계가 대화와 도발의 국면을 오가는 상황이긴 하지만 대화의 시도가 끊임없이 이뤄지고 있는 일련의 상황들은 매우 바람직하다. 남북 갈등은 대화로 풀어나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고 부작용이 덜하다. 남북대화가 앞으로도 꾸준히 이어지길 기대한다”는 논평까지 냈다.
‘그랬던’ 새누리당이 지금은 “김영철이 한국 땅을 밟는다면 긴급 체포하거나 사살해야할 대상”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내로남불을 넘어 안하무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선일보는 당시 어떻게 보도 했었나 … 지금과는 정반대였다
더 가관인 건 조선일보다. 당시 김정은 오른팔 역할을 하고 있던 핵심 인사들의 방남 소식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던 조선일보는 2014년 10월6일자 사설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사설 제목이 ‘北 실세들의 깜짝 방문, 차분하게 남북대화 이끌어야’다. 간략하게 인용한다.
“우리 측이 남북대화에 소극적으로 임할 이유는 없다. 박근혜 정부도 그간 북한과 대화할 뜻이 있다는 점을 거듭 밝혀왔다. 북의 도발 가능성에 철저히 대비하면서 분단(分斷) 상태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은 이 나라의 안보·번영에 직결된 중대사다 … 북한 대표단 깜짝 방문에 들떠 지속 가능하지 않은 남북 관계 개선을 서둘러 추진하기보다는, 당장은 힘들더라도 차근차근 남북 간의 신뢰를 회복해가는 단계적·점진적 접근이 필요하다.”
‘이랬던’ 조선일보가 오늘자(24일) 사설에선 전혀 다른 주장을 펼친다. 사설 제목은 ‘김영철 訪南 노림수 김정은 계산대로 흘러가나’이다.
“우리 국민 수십 명을 죽게 만든 테러에 관련됐거나 관련된 것으로 의심할 소지가 있는 사람을 상대방이 협상 대표로 보낸다면 당연히 거부해야 한다. 보내겠다고 제안하는 것 자체가 결례고 도발이다. 그런데 정부는 우물쭈물 말을 흐리고 여당 지도부는 오히려 문제 삼는 사람들을 타박하고 있다. 김정은이 김영철을 대표로 보낸 데는 남남 갈등을 일으켜 판을 흔들겠다는 의도가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 상황은 실제 김정은 계산대로 흘러가고 있다.”
조선일보에 ‘조선일보식 논리’를 적용해 묻는다.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 참석을 위해 방남한 황병서·최룡해·김양건은 “우리 국민 수십 명을 죽게 만든 테러에 관련됐거나 관련된 것으로 의심할 소지”가 없는 인사인가 △이들을 당시 대표단 자격으로 보낸 것을 박근혜 정부는 거부하지 않고 오히려 ‘청와대 예방’까지 제안했다. 여기에 문제는 없는 것인가 △김정은이 당시 이들을 보낸 데는 남남 갈등을 일으켜 판을 흔들겠다는 의도가 없었다고 보는가 △그럼 그때 조선일보는 왜 지금처럼 강력하게 반대하지 않았나.
이 질문에 조선일보가 제대로 된 답을 내놓았으면 좋겠다.
민동기 기자
[미디어오늘 민동기 기자]
“김영철이 북측 군 고위 관계자로서 판문점 남북 군사 회담에 참석한 것과, 스포츠와 아무 관련이 없는 그가 우리 주최 올림픽에 주빈으로 초대받아 2박 3일 동안 우리 땅을 휘젓고 다니는 것을 같은 줄에 놓고 비교한다는 얘기다.”
조선일보 2월24일자 사설 가운데 일부다. 자유한국당의 이중적 태도를 비판한 더불어민주당 입장을 반박하는 내용이다. 더불어민주당이 비판한 부분은 대략 이런 것이다.
△2014년 남북 장성급 군사 회담 때도 김영철이 북한 대표였다. △당시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새누리당은 ‘남북 대화가 꾸준하게 이어지길 기대한다’는 논평을 냈다 △2014년 김영철과 지금의 김영철은 어떤 차이가 있느냐.
상식적인 주장이다. ‘왜 그때는 되고 지금은 안 된다는 것’이냐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해 자유한국당은 제대로 반박하거나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24일) 조선일보가 사설에서 이를 반박했다. “김영철이 북측 군 고위 관계자로서 판문점 남북 군사 회담에 참석”했기 때문에 지금과 다르다는 게 조선일보 주장이다.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지금 자유한국당과 이른바 보수진영은 “김영철이 한국 땅을 밟는다면 긴급 체포하거나 사살해야할 대상”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들 논리대로라면 2014년 당시에도 김영철은 ‘긴급 체포하거나 사살해야 할 대상’이었다. 회담의 주체가 될 수 없었다는 얘기다. ‘북측 군 고위관계자’로 남북군사회담에 참석하면 조선일보가 그토록 강조하고 있는 ‘천안함 폭침’ 책임이 없어지나?
오히려 더 문제 아닌가. ‘천안함 폭침’에 책임 있는 당사자가, ‘한국 땅을 밟는다면 긴급 체포하거나 사살해야할 대상’이, 남북군사회담에 참석하는 게 더 말이 안 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왜 박근혜 정부는 그때 김영철을 체포, xx하지 않았나?”라는 더불어민주당 박범계 의원 비판에 대해 자유한국당과 보수진영이 책임 있는 입장을 내놓아야 하는 이유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김영철이 북측 군 고위 관계자로서 판문점 남북 군사 회담에 참석한 것과, 스포츠와 아무 관련이 없는 그가 우리 주최 올림픽에 주빈으로 초대받아 2박 3일 동안 우리 땅을 휘젓고 다니는 것을 같은 줄에 놓고” 비교하지 말라고 한다. 궤변도 이런 궤변이 없다. 그럼 역으로 한번 물어보자. 그게 도대체 무슨 차이가 있나? 북측 군 고위 관계자로 회담에 참석하면 자유한국당과 조선일보가 입에 거품을 물 정도로 흥분하는 ‘천안함 폭침 책임’을 묻지 않아도 된다는 건가. 전형적인 내로남불 논리이자 궁색한 변명이다.
2014년 아시안게임 때 황병서에게 ‘청와대 예방’ 제안했던 박근혜 정부
조선일보의 이 같은 주장이 궤변에 불과하다는 것은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당시 보도에서도 확인된다. 당시 북한은 북한 권력 서열 2위인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을 비롯해 최룡해·김양건 당비서 등 최고위급 인사를 북 대표단 자격으로 한국에 보냈다. 이들은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 참석을 이유로 2014년 10월4일 오전 인천을 방문했다. 황병서와 김양건이 누군가. 조선일보는 두 사람을 이렇게 소개했다.
“황병서 총정치국장은 ‘북한 군부의 1인자’로, 김양건 노동당 대남 비서 겸 통일전선부장은 ‘대남정책의 1인자’로 흔히 분류된다. 또 두 사람은 모두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최측근 실세로 ‘이너 서클(inner circle·중추세력) 멤버’라고 할 수 있다 … 북한 권력서열 2위인 황병서 총정치국장은 김정은 체제 들어 승승장구를 거듭한 인물로 현재 노동당 정치국 상무위원,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등 핵심 직책을 갖고 김정은의 오른팔 역할을 하고 있다.”
[조선일보] 고위급접촉 北 수석대표 황병서, 김양건은 누구?
‘스포츠와 아무 관련이 없는’, 김정은의 오른팔 역할을 하고 있던 핵심 인사들이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 참석을 이유로 한국에 왔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와 당시 새누리당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태도를 보였다. 당시 조선일보가 보도한 내용에 자세히 나와 있다. 핵심적인 부분만 인용한다.
“(황병서는) 김관진 실장에게 ‘김정은 제1비서의 따뜻한 인사를 박근혜 대통령에게 전한다’고 말했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주로 남북 간 긴장 조성에 치중해 왔던 김정은이 박 대통령에게 개인적인 메시지를 전한 것은 처음이다 … 또 우리 측은 ‘박 대통령이 북측 대표단을 만날 용의가 있다’며 ‘청와대 예방’을 제안했다. 이에 북측은 ‘이번에는 아시안게임 폐막식 참석을 위해 왔기 때문에 시간상 어렵다’며 양해를 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정은의 오른팔 역할을 하고 있던 핵심 인사들에게 ‘청와대 예방’까지 제안했던 게 당시 박근혜 정부였다. 당시 새누리당은 권은희 대변인 명의로 “비록 현재 남북관계가 대화와 도발의 국면을 오가는 상황이긴 하지만 대화의 시도가 끊임없이 이뤄지고 있는 일련의 상황들은 매우 바람직하다. 남북 갈등은 대화로 풀어나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고 부작용이 덜하다. 남북대화가 앞으로도 꾸준히 이어지길 기대한다”는 논평까지 냈다.
‘그랬던’ 새누리당이 지금은 “김영철이 한국 땅을 밟는다면 긴급 체포하거나 사살해야할 대상”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내로남불을 넘어 안하무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선일보는 당시 어떻게 보도 했었나 … 지금과는 정반대였다
더 가관인 건 조선일보다. 당시 김정은 오른팔 역할을 하고 있던 핵심 인사들의 방남 소식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던 조선일보는 2014년 10월6일자 사설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사설 제목이 ‘北 실세들의 깜짝 방문, 차분하게 남북대화 이끌어야’다. 간략하게 인용한다.
“우리 측이 남북대화에 소극적으로 임할 이유는 없다. 박근혜 정부도 그간 북한과 대화할 뜻이 있다는 점을 거듭 밝혀왔다. 북의 도발 가능성에 철저히 대비하면서 분단(分斷) 상태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은 이 나라의 안보·번영에 직결된 중대사다 … 북한 대표단 깜짝 방문에 들떠 지속 가능하지 않은 남북 관계 개선을 서둘러 추진하기보다는, 당장은 힘들더라도 차근차근 남북 간의 신뢰를 회복해가는 단계적·점진적 접근이 필요하다.”
‘이랬던’ 조선일보가 오늘자(24일) 사설에선 전혀 다른 주장을 펼친다. 사설 제목은 ‘김영철 訪南 노림수 김정은 계산대로 흘러가나’이다.
“우리 국민 수십 명을 죽게 만든 테러에 관련됐거나 관련된 것으로 의심할 소지가 있는 사람을 상대방이 협상 대표로 보낸다면 당연히 거부해야 한다. 보내겠다고 제안하는 것 자체가 결례고 도발이다. 그런데 정부는 우물쭈물 말을 흐리고 여당 지도부는 오히려 문제 삼는 사람들을 타박하고 있다. 김정은이 김영철을 대표로 보낸 데는 남남 갈등을 일으켜 판을 흔들겠다는 의도가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 상황은 실제 김정은 계산대로 흘러가고 있다.”
조선일보에 ‘조선일보식 논리’를 적용해 묻는다.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 참석을 위해 방남한 황병서·최룡해·김양건은 “우리 국민 수십 명을 죽게 만든 테러에 관련됐거나 관련된 것으로 의심할 소지”가 없는 인사인가 △이들을 당시 대표단 자격으로 보낸 것을 박근혜 정부는 거부하지 않고 오히려 ‘청와대 예방’까지 제안했다. 여기에 문제는 없는 것인가 △김정은이 당시 이들을 보낸 데는 남남 갈등을 일으켜 판을 흔들겠다는 의도가 없었다고 보는가 △그럼 그때 조선일보는 왜 지금처럼 강력하게 반대하지 않았나.
이 질문에 조선일보가 제대로 된 답을 내놓았으면 좋겠다.
민동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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