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병원 태움 폭로 잇따라
“병원에서 일하는 1분 1초가 지옥이었어요.”
간호사 정모(27)씨는 서울 한 대형병원에서 일했던 1년이 끔찍하기만 했다. 신입 교육과 길들이기 명목으로 가해지는 선배들 ‘태움’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퇴사했다는 고백. 정씨는 “선임이 화내고 던진 차트 판과 볼펜에 맞기 일쑤였다”며 “깨작거리며 야식을 먹는다고 욕을 먹은 적도 있다”고 말했다. “내 눈 앞에서 최대한 사라져 있어”라는 말을 듣기도 했고, 선배가 계속해서 따라다니면서 인신공격을 할 때도 있었다.
연휴 기간 투신 사망한 대형병원 간호사 사건을 두고 간호사 집단 내 병폐인 태움 문화 때문이라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나도 당했다”는 간호사들 폭로가 이어지고 있다. 간호사들은 태움이 대부분 대형병원에서 일상처럼 벌어진다고 증언한다. 통상 신규 간호사는 선배인 프리셉터(Preceptor)와 함께 다니면서 일을 배우는데, 이 과정에서 ‘영혼이 재가 될 때까지 활활 태운다’고 해서 태움이라는 말로 불리는 직장 내 괴롭힘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수도권 유명 대학병원에서 일했던 간호사 이모(25)씨는 “작은 실수라도 하면 환자 앞에서 면박 주고 ‘네 간호사 인생에 빨간 줄 그어질 거다’ 같은 협박을 들어야 했다”고 털어놨다. 대학병원 중환자실 간호사 A(26)씨는 “선배 간호사가 신입 간호사 혼내는 것을 보다 못한 환자 보호자가 병원에 민원을 넣은 적도 있을 정도”라고 했다. 근무하는 12시간 내내 화장실도 못 가게 해 생리대조차 교체할 수 없었다는 간호사도 있었다.
이들은 이구동성 “태움 강도가 외부에서 생각하는 것 이상”이라고 했다. 대형병원 간호사 B(26)씨는 “욕설과 험담, 등을 때리는 등 폭행이 서슴지 않게 일어난다”고 했다. 친척이 숨져 반차 휴가를 신청하려 하자 “이미 살 만큼 산 사람이고, 수술실 내팽개치면 그게 간호사냐”고 혼나는 경우도 있었다.
이를 견디지 못하는 신입들은 이직이나 퇴사를 한다. 2015년 대한간호협회에 따르면, 경력 1년 미만 간호사 평균 이직률은 33.9%. 3명 중 1명이 1년도 못 채우고 병원을 떠난다는 것이다.
태움을 당해도 쉽게 털어놓지 못한다. 이상한 사람으로 낙인 찍히는 것은 물론 다른 병원에서 일하는 것도 힘들다. 대학병원 6개월 만에 태움에 일을 그만뒀다는 김모(28)씨는 “선임의 갖은 욕설을 참다 못해 다른 병동으로 옮겨달라 했는데 ‘다른 병동 가면 소문이 안 날 것 같으냐’는 말만 들었다”고 말했다.
간호사들 역시 태움이 없어져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 “사람 생명을 다루는 곳인 만큼 선배의 교육 방식은 엄해야 하는 게 당연하다”는 의견이 있지만 소수 쪽에 가깝다. 대부분은 간호사 간에 서로 존중하는 문화가 정착되는 게 우선이라고 지적한다. 간호사 정모(41)씨는 “요즘은 후배 때문에 선배들 영혼이 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선배 역시 후배들 교육에 스트레스가 심하다”며 “간호사들끼리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업무 방식이 바람직한 해결책”이라고 했다. 소수 인원으로 많은 일을 시키는 병원 운영 시스템도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다. 김소선 연세대 간호대학 교수는 “(인력 문제로) 실습 등 교육 훈련이 덜 된 신입 간호사들이 투입되고 이들을 가르치다 보니 태움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강진구 기자 realnine@hankookilbo.com(mailto:realn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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