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유의 현직 대통령 탄핵까지 불러온 '국정농단의 시작과 끝' 최순실씨(62)가 재판에 넘겨진지 450여일만에 징역 20년에 벌금 180억원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18개에 달하는 최씨의 범죄 혐의 대부분을 유죄로 판단하면서 박 전 대통령과 공범임을 분명히 밝혔다. 민간인 신분인 최씨와 달리 박 전 대통령은 공무원이라는 점에서 최씨보다 무거운 형이 선고될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가 나온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부장판사 김세윤)은 13일 최씨에게 징역 20년에 벌금 180억원, 추징금 72억9000만원을 선고했다.
◇"대부분 유죄 혐의 '崔-朴' 공범…'공무원' 처벌 더 무거워"
재판부는 △삼성그룹이 최씨의 딸 정유라씨(22) 승마지원 과정에서 최씨 측 코어스포츠에 용역대금 36억여원의 뇌물을 제공(뇌물수수) △현대차그룹의 최씨 지인 회사 일감 몰아주기(직권남용 강요) △포스코, GKL 등이 스포츠팀을 창단하고 운영하는 과정에서 최씨 측 회사가 이익을 보도록 함(직권남용 강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에게 면세점 재인가 청탁을 받고 K스포츠재단 출연금 70억원 수수(뇌물수수) 등 혐의에 대해 최씨가 박 전 대통령과 공모했다며 모두를 유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최씨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사적인 친분을 이용해 대기업에 뇌물을 요구하고 정부 인사에 개입하는 등 "국정질서에 큰 혼란을 일으켰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대부분 범죄 사실들이 최씨가 박 전 대통령에게 부탁하고, 박 전 대통령은 안종범 전 수석 등 청와대 관계자에게 지시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고 판단했다.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뇌물 수령액이 1억원을 넘으면 법정형이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에 이른다. 삼성으로부터의 승마지원과 관련해 뇌물로 인정된 금액만 해도 36억원에 이르는데다 롯데그룹으로부터 청탁해결의 대가로 수령했다고 인정된 것도 70억원에 달한다. 한 대형로펌의 형사 전담 변호사는 "박 전 대통령과 최씨가 공범관계라고 하지만 공무원을 훨씬 무겁게 처벌하는 경향이 있다"며 "국가 시스템 및 공직에 대한 신뢰의 보호가치를 매우 높게 보기 때문에 최씨에 비해 더 무거운 형이 선고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삼성이 준 용역대금 36억·말 3필 '뇌물' 맞다…'부정한 청탁' 인정 안돼"
최씨 재판에서 가장 관심이 집중됐던 부분은 삼성이 최씨 측에 지원한 금품이 얼마나 뇌물로 인정될지였다. 검찰과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 204억원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16억원 △정유라씨(22) 승마훈련 지원 계약금 213억원 등 총 433억원이 뇌물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이중 삼성전자가 코어스포츠에 승마지원 컨설팅 계약금으로 지급한 36억원, 마필 구매 대금과 보험료 등 72억원이 뇌물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앞서 이재용 부회장 2심 재판부는 코어스포츠 용역대금 36억원만 뇌물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이 이 부회장에게 승마지원을 요구했다"며 "박 전 대통령이 뇌물을 요구하고 최씨는 수령하는 지위를 넘어 중요한 부분을 수행한 것으로 보인다"며 공모관계 역시 인정했다.
최씨가 박 전 대통령의 권한을 이용해 각종 기업에 뇌물을 요구하고 인사에 불법 개입한 것 역시 유죄 판단했다. 재판부는 미르·K 재단 출연금 774억원도 기업들이 박 전 대통령의 강요에 의해 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기업들은 출연금이 얼마인지 통보받았을 뿐 구체적인 사업계획조차 듣지 못했다"며 "청와대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어 기업인들이 출연을 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최씨가 박 전 대통령의 직권을 이용해 현대차가 KD코퍼레이션 제품을 납품받도록 강요한 혐의, 현대차에 차은택씨가 대표로 있는 플레이그라운드에 광고를 맡기도록 강요한 혐의 역시 "최씨가 박 전 대통령에게 부탁하고, 박 전 대통령이 이를 안 전 수석에게 지시해 이뤄진 일로 강요에 해당한다"고 봤다.
하남시 체육시설 건립비 등 명목으로 신 회장을 압박해 롯데그룹으로부터 70억원을 뇌물로 수수한 혐의도 유죄로 인정됐다. 포스코에 펜싱팀을 만들고 최씨 소유의 회사 더블루K와 컨설팅 계약을 맺도록 강요했다는 혐의와 KT 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혐의 역시 강요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또 최씨는 박 전 대통령에게 청탁해 이상화 전 하나은행 본부장을 승진시키고 이동수씨, 신혜성씨 등 측근들을 KT에 취업시키는 등 기업 인사에 불법 개입한 혐의도 유죄로 인정됐다.
◇ "'안종범 수첩' 증거능력 인정…이재용 2심 재판부와 판단 갈려"
앞서 이 부회장 2심 재판부가 '안종범 수첩'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최씨 재판부가 이를 어떻게 판단할지도 관심을 끌었다. 이 부회장 2심 재판부는 안 전 수석이 어떤 날짜에 어떤 메모를 남겼다는 정도는 이 수첩으로 입증이 가능하지만 박 전 대통령이 실제 수첩에 적힌대로 발언했다고 할 만한 직접증거의 능력은 인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날 최씨 사건을 심리한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수첩의 증거능력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박 전 대통령과 전화하면서 지시사항을 바로 수첩에 받아적곤 했다는 안 전 수석의 증언으로 볼 때 수첩 내용이 곧 박 전 대통령의 지시사항임을 간접적으로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판단 아래 재판부는 이 수첩을 핵심증거로 삼아 최씨의 거의 모든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안 전 수석은 박 전 대통령의 지시사항을 수첩에 꼼꼼히 메모했다고 법정에서 여러번 증언했다. 때문에 이 수첩은 국정농단 사건의 실체를 밝힐 수 있는 핵심 증거로 주목을 받았다. 다만 지시의 당사자인 박 전 대통령이 수첩 내용을 인정하지 않아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를 두고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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