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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rsday, March 8, 2018

"최순실, 말 너무 못해서 놀랐다"

2월13일 법원은 최순실씨에게 징역 20년과 벌금 180억원을 선고했다. 2017년 1월5일 첫 재판부터 최씨의 국정 농단 재판을 빠짐없이 보도한 현장 기자들이 모였다. 재판 뒷이야기를 전한다.
2월13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김세윤)는 최순실씨에게 징역 20년과 벌금 180억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18개에 이르는 범죄 혐의 대부분을 유죄로 판단했다. 안종범 전 청와대 수석은 징역 6년과 벌금 1억원,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징역 2년6개월이 선고됐다.
<시사IN>은 2017년 1월5일 첫 재판부터 최씨의 국정 농단 재판을 빠짐없이 보도했다. 재판 분위기를 생생하게 전하기 위해 법정 중계 방식을 택했다. 1년 넘게 법정에서 최씨를 지켜본 기자들이 모였다. 기사에는 담지 못한 재판 뒷이야기와 이번 판결을 소재로 방담을 진행했다. 솔직한 대화를 위해 닉네임을 사용했다.
대포폰사랑:1심에서 중형이 나왔는데 최순실씨는 침착했다. 주문(최종 형량을 낭독하는 절차) 전에 재판부에 요청해 화장실에 다녀온 게 전부였다.
최강용수저:나는 좀 더 소란을 떨 줄 알았다. 앞선 결심공판에서 검찰이 25년형을 구형했는데 휴정 시간에 최씨가 대기실에서 고함을 질렀다. “으아아악 ”하고. 결국 호송차까지 휠체어를 타고 갔다.
구치소이모:신동빈 회장은 구속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눈치였다. 한 주 전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나 안심하고 있었던 것 같다. K스포츠재단에 70억원을 줬지만 다시 돌려받았으니까. 그런데 뇌물로 인정되어 바로 법정 구속됐다.
대포폰사랑:재판장인 김세윤 판사의 ‘이중성’도 화제였다. 평소 재판에서는 인자하고 피고인을 많이 배려해줬는데 마지막에 중형을 내렸다(웃음).
ⓒ그림 우연식 2017년 11월24일 최순실씨가 법정에서 갑자기 대성통곡했다.
최강용수저:맞다. 검찰과 피고인 모두 납득할 수 있도록 재판을 원만하게 진행하더라. 재판에 들어오는 모든 구성원을 고려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항상 증인에게 천천히 또박또박 말해달라고 부탁한다. 법원 속기사를 배려하는 거다. 덕분에 재판 내용을 받아 치는 기자들도 편했다.
구치소이모:나는 엘리트 판사라는 인상을 받았다. 자기가 맡은 소임대로 정확히 하는, 일 잘하는 스타일.
대포폰사랑:오랜만에 방청석이 꽉 찼다. 재판이 길어지고 박근혜 피고인도 출석을 거부하면서 한동안 방청석이 텅텅 비었다.
최강용수저:국정 농단 재판 초기에는 워낙 관심이 많아서 재판 며칠 전에 방청권 추첨을 하고 그랬다. 첫 재판 경쟁률이 1.6대 1이었다. <시사IN>에서는 기자 3명이 응모했는데 나만 당첨됐다. 그때 법정 중계 일러스트를 그려주는 작가도 응모했다가 떨어졌다. 경쟁률에 비춰보면 운이 없었다.
대포폰사랑:다들 최순실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했다. 러시아의 라스푸틴에 비견되기도 하고, 외신에도 ‘샤먼’이라는 식으로 보도됐다. 미스터리한 인물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첫 재판에서 인상이 어땠나?
최강용수저:턱을 괴고 있었던 게 기억에 남는다. 전혀 긴장돼 보이지 않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굉장히 여유가 있었다.
대포폰사랑:첫 재판에서는 아무 말도 안 했지만 이후 증인이 출석하면서 재판부가 피고인들에게 직접 질문할 기회를 줬다. 최순실씨는 적극적으로 질문하는 편이었는데 말을 너무 못해서 놀랐다. 국정 농단을 일으킨 비선 실세로서 카리스마에 금이 갔다.
구치소이모:박근혜 피고인이나 최씨나 기본적으로 말하는 스타일이 비슷했다. 둘 다 중언부언한다.
최강용수저:한번은 최씨 발언을 정리하지 않고 그대로 기사를 작성해 데스크에 넘긴 적이 있다. 나름 현장성을 살린다는 취지였는데 아무리 현장성을 살려도 독자들이 알아듣기는 해야 하지 않느냐고 한소리 들었다. 정리해서 다시 썼다. 현장감을 제대로 살린다면 ‘아무말 대잔치’였다(웃음).
ⓒ시사IN 신선영 박근혜 전 대통령의 무죄를 주장하며 석방을 요구하는 보수 단체 회원들.
구치소이모:최씨는 내용은 횡설수설했지만 매서운 데가 있었다.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랩처럼 쏟아내서 위압적이라는 인상을 받기도 했다. 반면 박근혜 피고인은 그냥 거기 없는 사람처럼 보일 때가 많았다. 최씨는 재판 태도가 미숙하거나 태도가 불성실했을망정 자기 재판이라는 걸 인지하는데, 박근혜 피고인은 그냥 넋이 나간 것 같았다.
최강용수저:박근혜 피고인은 재판에서 졸기도 했다. 법정 태도를 보면 최씨가 박근혜 피고인을 조종했다는 말이 왜 나왔는지 알겠더라.
구치소이모:실제로 재판에서 박근혜·최순실·정호성이 나눈 3자 대화 녹음 파일을 재생한 적이 있다. 대화를 주도하는 건 박근혜 피고인이 아니라 최순실씨였다.
대포폰사랑:재판에서 박근혜·최순실이 특별한 관계라는 사실을 확인해주는 진술도 많이 나왔다. 최씨가 “이거 말도 안 돼” 했는데 참고인이나 증인들 말을 들어보면 다 맞았다.
최강용수저:의상실에서 옷 해준 건 이제 유명한 얘기고 화장품, 잠옷, 심지어 주스까지 챙겨줬다. 박근혜 피고인이 마시는 주스 브랜드가 따로 있다고 하더라. 최씨가 외국에 나가 있을 때도 최씨의 운전기사가 그 주스를 윤전추 행정관이나 이영선 행정관에게 전달했다.
대포폰사랑:문고리 3인방이 대통령에게 보고하기 위해 관저에 가면 이미 관저에 와 있던 최씨가 과일을 대접했다고 한다. 장시호씨가 증인으로 출석해, 최씨 휴대전화에 박근혜 피고인이 ‘이모’라고 저장돼 있었고 최씨가 박 피고인을 ‘삼성동 이모’라고 지칭했다고 진술하는데 귀를 의심하게 되더라.
구치소이모:나는 그런 식의 관계가 21세기에 있다는 게 신기했다. 최씨가 이걸 어디서 배웠을까 생각해보면 아버지인 최태민 목사 아니겠나. 박근혜 피고인도 마찬가지로 자기 아버지에게 배웠을 테고.
최강용수저:둘 다 2세네. 재밌는 게 정유라와 이재용 부회장은 3세다. 결국 무리하게 정유라에게 특혜를 주려다가 국정 농단이 들통 났고, 이재용 부회장도 경영권 승계 이슈가 있었다. 따지고 보면 발단은 3세였다.
구치소이모:변호인들의 변론 방식도 이상했다. 재판부가 아니라 대중을 상대로 연설하는 느낌이었다. 법리로 허점을 파고들거나 사실관계를 정교하게 다투기보다는 감정에 호소하는 방식에 가까웠다.
최강용수저:박근혜 피고인의 구속이 연장된 이후 변호인단이 전원 사임했는데 유영하 변호사가 법정에서 울었다. 방청석에 있는 박사모 보라고 쇼하는 건가 싶었다. 변호인보다는 정치인 마인드로 재판에 들어오는 것처럼 보였다.
대포폰사랑:실제로 재판을 방청하러 온 ‘태극기 부대’가 유영하 변호사를 좋아했다. 재판 마치고 법정을 떠나는 유 변호사한테 “수고하셨어요” “힘내세요” 하면서 팬클럽처럼 응원했다.
ⓒ그림 우연식 2017년 10월10일 박근혜 피고인이 재판 과정에서 꾸벅꾸벅 졸았다.
구치소이모:희극적인 모습이 많았다. 박사모가 휴정 때마다 기자들 욕하고. 분노를 그런 식으로 푸는 듯했다. 한번은 법원 로비에서 박사모랑 이명박 전 대통령 지지자랑 싸우는 것도 봤다. 이명박 지지자가 박사모한테 “너네 때문에 보수가 망했다”라고 했다.
대포폰사랑:서초동 법조타운에서 태극기 부대가 일상 풍경이 됐다. 이분들이 방청만 하고 가는 게 아니다. 박 피고인을 태운 호송차가 법원 들어올 때랑 재판 끝나고 나갈 때에 맞춰 길목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태극기를 흔들어준다.
구치소이모:최순실씨에 대한 태극기 부대의 태도도 바뀌었다. 재판 초기에는 ‘대통령이 최씨에게 속았다’는 정서가 강해서 약간 적대적이었는데,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최씨까지 응원했다.
최강용수저:최씨가 법정에서 적극적으로 따지는 게 태극기 부대가 보기에는 속 시원했던 것 같다. 재판 끝나고 나가면서 “똑똑한 여자”라고 칭찬하더라.
대포폰사랑:최씨는 시종일관 모든 혐의를 부인했다. 태블릿 PC도 본인 것이 아니고 대포폰도 쓴 적 없다고 했다. 최후 변론에서 자신은 사익을 추구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런데 삼성이랑 박근혜 피고인에게는 미안해했다. 박 피고인에 대해 얘기할 때면 굉장히 절절했다. ‘존경했고, 내가 처신을 잘못해서 이렇게 되었다’ 하는 식으로.
구치소이모:증인이 100명 넘게 나왔는데 누가 가장 인상적이었나?
최강용수저:노태강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 박근혜 피고인에게 “참 나쁜 사람”으로 찍혀서 공직 사회를 떠났는데 정권이 바뀌고 김종 전 차관 자리로 돌아왔다. 최순실씨 처지에서는 부들부들할 일 아닌가. 그날 재판에서 최씨가 엄청 공격적이었다.
대포폰사랑:박근혜 정부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비서관·행정관들이 나오면 답답했다. 증언 태도도 불성실하고 자기가 왜 하필 이런 일에 연루되어서 검찰에, 법원에 불려 다녀야 되나 하는 억울함이 묻어났다.
구치소이모:나는 재벌 총수 한 명이 인상 깊었다. 말투가 전혀 회장님 같지 않았다. 뭐랄까. 그냥 껄렁한 동네 건달 같았다. 흉내 내기도 힘들다. ‘거꾸로’ 발음을 ‘까꾸로’라고 했다. “제가 까꾸로 묻고 싶어요” 이렇게(웃음). 검사가 질문하면 “애들이 뭐 이렇게 해가지고 저는 잘 모르고요” 이런 식으로 답했다.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 대기업 회장 말을 직접 들을 기회가 별로 없었는데 수준이 그렇게 높지 않구나 싶었다.
대포폰사랑:같이 재판을 받은 안종범 피고인은 반대였다. 쓰는 어휘도 고급지고 아주 점잖게 말했다. 수의를 입고 항상 침울한 얼굴로 피고인석에 앉아 있어서 약간 불쌍해 보였는데, 입을 여니까 그제야 저 사람이 엘리트 경제학자에 교수 출신이었지 싶더라.
최강용수저:안종범 수첩을 보면 그야말로 박근혜 하수인이었다. 최순실씨가 더블루케이라는 회사를 만들고 바지 사장을 내세웠는데 그 사장 연락처까지 적혀 있다. 더블루케이는 직원이 3명도 안 되는 회사다. 그런데 청와대 수석이 직접 연락해서 대표랑 만나기까지 한다.
대포폰사랑:안종범 피고인은 김영재 원장의 부인 박채윤씨한테 뇌물을 받을 때도 엄청 좋아했더라. 돈뿐만 아니라 핸드백, 스카프 등을 받았는데 박씨한테 “덕분에 아내한테 점수 땄다” 이런 말까지 한다.
최강용수저:청와대 경제수석실에 있던 공무원들이 증인으로 나와서 “선량하고 점잖고 아랫사람한테도 예의를 지키시고, 그럴 분이 아니다”라고 하는데, 재판에서 드러나는 걸 보면 그럴 분이다(웃음).
구치소이모:1심 형량은 적당했다고 보나?
대포폰사랑:최순실씨는 검찰과 특검이 기소한 혐의가 18개에 달했다. 미르·K스포츠 재단 관련 혐의, 삼성 승마 지원 뇌물죄처럼 굵직한 것부터 국회증감법(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위반까지 있다. 재판부가 대부분을 인정했다.
최강용수저: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2심과 비교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일단 재판부는 안종범 업무수첩을 간접증거로 인정했다. 안종범 수첩은 이화여대 학사 비리 재판, 문형표 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재판, 차은택씨 관련 재판, 이재용 부회장 1심에서도 모두 증거능력이 인정됐는데 이재용 2심에서만 인정되지 않았다(34~35쪽 인포그래픽 참조). 또 이재용 부회장 2심에서는 뇌물 공여 액수를 36억원만 인정했다. 최순실 재판에서는 삼성한테 받은 뇌물을 72억9000만원으로 판단했다. 이재용 2심과 달리 삼성이 정유라씨한테 제공한 마필의 소유권을 최씨 쪽이 가졌다고 봤다.
구치소이모:이재용 2심 재판부와 동일하게 판단한 부분도 있다. 삼성이 경영권 승계 작업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뇌물을 줬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 바람에 ‘부정한 청탁’이 특정돼야 하는 제3자 뇌물죄, 그러니까 삼성이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16억2800만원을 후원한 부분은 무죄가 나왔다.
최강용수저:이제 국정 농단 관련 재판에서 박근혜·조원동 피고인만 1심 선고가 나지 않았다. 둘 다 최씨와 같은 형사합의22부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재판부는 박근혜·조원동 피고인에 대해 같이 선고하겠다고 했다.
대포폰사랑:이번 판결에서 박근혜·최순실의 공모 관계는 모두 인정됐다. 게다가 박근혜 피고인은 문화계 블랙리스트 관련 혐의도 받고 있다. 최순실씨 이상의 중형이 나올 것 같다.
최강용수저:최순실씨도 항소심에서 형량이 줄어들까?
대포폰사랑:그런 건 이재용 부회장이나 할 수 있는 거 아닌가(웃음).
구치소이모:첫 재판에서 특검이 증거는 차고 넘친다고 하지 않았나. 1년간 재판을 지켜보니 그 말이 허세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1심에 비해 크게 줄어들 것 같지는 않다.
정리ㆍ김연희 기자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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