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를 지키려고 군인이 되었지만, 국가에 버림받은 군인이 있습니다.
그는 미래와 젊음을 바치기위해 가족을 떠나 군인이 되었지만,
지금은 장애인이 되어 가족에게 돌아왔습니다. 더군다나 폭행에 이어 살인으로 이어졌을지도 모를 사건에서 겨우 살아남은 박준기중사를 국방부는 하지도 않은 자살을 했다고 강요하고 있습니다.
그는 미래와 젊음을 바치기위해 가족을 떠나 군인이 되었지만,
지금은 장애인이 되어 가족에게 돌아왔습니다. 더군다나 폭행에 이어 살인으로 이어졌을지도 모를 사건에서 겨우 살아남은 박준기중사를 국방부는 하지도 않은 자살을 했다고 강요하고 있습니다.
박준기중사를 자살로 몰고간 사건의 개요는 이러합니다.
그는 과연 자살일까요?
참혹한 폭행과 생사를 오간 현장에서 그는 기억을 잃었고,
국방부를 믿었기에 자살이라는 결론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두 다리를 절단당하면서 그의 기억이 돌아옵니다.
그것은 자신을 조사했던 조사관인 헌병, 자기에게 자살이라 강요한 헌병이
바로 자신을 폭행했고, 현장의 병원 수위를 협박하여 매수하고,
폭행을 숨기려 의식불명인 자신을 길에 눕히고 차로 밀어버린 기억들이였습니다.박준기중사와 박중사의 형은 다시 현장을 찾았고, 도저히 자살일 수 없는 정황들에 경악했습니다.
참혹한 폭행과 생사를 오간 현장에서 그는 기억을 잃었고,
국방부를 믿었기에 자살이라는 결론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두 다리를 절단당하면서 그의 기억이 돌아옵니다.
그것은 자신을 조사했던 조사관인 헌병, 자기에게 자살이라 강요한 헌병이
바로 자신을 폭행했고, 현장의 병원 수위를 협박하여 매수하고,
폭행을 숨기려 의식불명인 자신을 길에 눕히고 차로 밀어버린 기억들이였습니다.박준기중사와 박중사의 형은 다시 현장을 찾았고, 도저히 자살일 수 없는 정황들에 경악했습니다.
박준기중사가 살아남지 못했다면 이 사건은 수많은 자살사건 중 하나로 끝났을 겁니다.
그러나, 박준기중사는 지금 살아남았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 목발로 일어섰습니다.
한겨레 2013/3/8일 기사에 따르면 전투도 안 했는데, 1만명 넘는 군인이 죽었다고 합니다. '이토록 많은 사망자가 군대에서 발생한 중대한 이유는 군대에 갔다 온 우리 모두가 사실은 이 죽음을 어쩔 수 없는 것이라 여기고 외면했기 때문이다.'라고 한홍구교수는 말합니다.
사실, 지난 20여년동안 국방부는 초등수사의 부실을 인정하고, 제대로 된 조사를 할 수 있는 수많은 기회가 있었고, 박준기중사와 가족들 또한 그러라고 수년을 기다리며 요청해 왔습니다. 그러나, 국방부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바로 우리가 침묵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는 동안 지난 20년간 매년 몇백명의 장병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이상 침묵할 수 없습니다.
박준기중사의 사건에 침묵하는 순간, 우리 군은 계속 변화되지 못하고 자살 위장, 살인공장으로 남을 것이 당연해보이기 때문입니다.
군의 변화, 안전한 군 문화는 바로 우리 가족을 지키고, 우리 자녀를 지키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여러분께서 동참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한민구장관은 국방부의 부실수사를 인정했고, 박준기중사 자살조작사건의 민간합동재조사를 약속했습니다. 이 약속을 지키게 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합시다.
많은 분들이 관심가져주시고 동참하여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리며, 꼭 서명에 참여해주십시요.
"한민구장관은 "박준기중사 자살조작사건"의 민간합동재조사약속을 즉각 시행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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