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감 앞두고 용역팀 쓰던 별관 돌연 매각…댓글부대 작성 의심 기사에서 아이디 일괄 삭제
한국산업기술시험원(KTL)의 글로벌정보 용역팀과 국정원 댓글부대의 관련성을 밝혀줄 증거들이 국감을 앞두고 사라지고 있다.
<주간경향>이 3회(1141~1143호)에 걸쳐 KTL 댓글부대 의혹을 보도하면서 야당에서도 민감한 국감 이슈 중 하나로 관심을 갖기 시작했지만 상황은 좋지 못하다. 검찰, 감사원, 국민권익위원회, 서울경찰청이 차례로 늑장수사를 벌이는 사이 댓글부대 흔적으로 의심되는 꼬리들이 하나둘 자취를 감추고 있기 때문이다. 이대로 가면 야당은 또다시 ‘닭쫓던 개’신세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현재 의혹을 밝히기 위해 가장 시급한 과제는 댓글부대로 의심되는 KTL 용역팀이 사용하던 서버를 압수해 증거를 보전하는 것이다. 지난해 KTL 용역팀에서 5개월간 인턴사원으로 일하다 퇴사한 최모(34)·김모(35)씨는 “모든 작업은 짐스 프로그램으로 불린 서버를 사용했다”며“서버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수한 이름과 아이디들이 들어 있었다”고 말했다. 실제 최씨와 김씨가 퇴사 전 짐스 프로그램에서 캡처한 일부 화면에는 두 사람도 모르는 이름과 아이디로 올라간 콘텐츠들이 보였다. 대부분 구글 번역기를 이용한 조잡한 내용의 콘텐츠들이었다.
그렇다면 이 무수한 아이디의 정체는 뭘까.
설명 가능한 시나리오는 두 가지다. 먼저 KTL 용역팀 외에 별도로 짐스 프로그램 서버를 공유하는 제3의 조직이 있을 가능성이다. 실제로 KTL은 8월 31일 <주간경향>이 용역팀의 부실 콘텐츠 생산을 지적하자 “구글 번역기를 돌려 만든 콘텐츠는 용역팀과 무관하다”고 해명한 바 있다. 서버에 자신들 외에 다른 조직들에서 올린 콘텐츠가 있음을 사실상 시인한 것이다.
“서버에 많은 아이디 보관돼 있었다”
또 다른 시나리오는 누군가 다른 목적에 사용하기 위해 익명의 아이디와 이름을 조직적으로 관리해 왔을 가능성이다. 실제 최씨와 김씨에 따르면 짐스 프로그램에는 콘텐츠 생산과 무관하게 무수한 아이디와 이름을 저장해 놓은 공간이 따로 있었다. 두 사람은 “사용자 권한이 있어야만 접근 가능한 페이지에 들어가 본 적이 있는데, 거기에 엄청나게 많은 양의 이름과 아이디가 소속팀, 직책 등으로 구분돼 보관돼 있었다”고 말했다. 소속팀은 전략기획, 수집a, 수집b, 수집c, 분석, 마케팅팀 등으로 나누어져 있었고 조직1, 조직2 등의 명칭이 붙은 방들이 100여개 정도 존재했다. 최씨와 김씨에 따르면 용역팀 프로젝트 매니저인 국가정보전략연구소 소장 민모씨(46)는 전략기획팀 소속이었고, 두 사람은 수집a팀과 분석a팀으로 분류됐다.
하지만 이 무수한 아이디와 이름은 어느 특정인이 사용했다기보다 한 사람이 여러 개의 아이디를 돌려 쓰는 형태로 운영돼 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두 사람은 “민 소장이 우리들에게도 하나의 이름만 쓰지 말고 여러 개 다른 이름을 쓰라고 요구했다”고 말했다.
최씨와 김씨에 따르면 민 소장은 서버 구축작업이 마무리되면 외부인들의 출입을 엄격히 통제한 100평 규모의 ‘워룸’(War room)을 설치할 계획도 갖고 있었다. 워룸은 KTL 본관 건물 한 층을 통째로 사용하고, 설치 시기는 KTL 지방 이전에 맞춰졌다. <경향신문> 보도로 용역팀 계획은 무산이 됐지만 KTL은 당초 글로벌정보 사업을 발주하면서 워룸 설치에 대비해 4억여원의 예산을 따로 배정한 바 있다.
공공기관이 글로벌 기업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구축한 서버에 왜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수한 아이디와 이름이 보관돼 있고,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한 워룸을 설치하려 한 이유는 뭘까. 이 의문을 푸는 방법은 용역팀이 KTL 별관 사무실에서 작업해 지난 2월 납품한 서버를 압수해 전문가들이 분석작업을 진행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 사건을 건드렸던 검찰과 감사원, 국민권익위 모두 서버에 대해 단 한 번도 정밀분석을 진행한 적이 없다. 검찰과 감사원은 진정서 접수 후 아무런 조사도 진행하지 않았고, 지난 4월 KTL을 직접 방문조사한 국민권익위 파견 경찰관들은 2개월이나 뜸을 들인 끝에 서울경찰청에 사건을 이첩했다. 2개월이면 KTL과 용역팀 입장에서 얼마든지 서버에서 문제가 되는 흔적을 지우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야당 또 ‘닭쫓던 개’ 되나
국민권익위에서 사건을 이첩받은 서울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가 국감을 앞두고 최근 KTL에 수사협조 요청서를 보냈지만 이 역시 수상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미 KTL 내부직원들이 용역팀과 공모한 의혹이 드러난 마당에 압수수색도 아니고 ‘수사에 들어갈 테니 협조해달라’는 공문을 보낸 이유가 궁금하다. 게다가 국감을 한 달 앞둔 지난달 중순 KTL은 용역팀이 서버 구축작업을 진행하던 별관 사무실을 통째로 민간에 매각했다. 별관 사무실에서 용역팀이 작업할 때 사용하던 컴퓨터와 각종 집기, 문서들은 이미 말끔히 치워졌다. 시간이 갈수록 용역팀들의 수상한 꼬리를 잡을 수 있는 단서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서버에 남아 있는 정체불명의 아이디가 지워졌다 해도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KTL에서 용역을 수주한 그린미디어가 운영하는 온라인 신문의 기사 아이디와 이름을 추적하는 방법이 남아 있다. 최씨와 김씨는 “민 소장 팀원들이 그린미디어 온라인 신문에 자신들이 사용하는 가명과 e메일 아이디로 수시로 기사를 올렸다”며 “용역팀원들이 실명이 아닌데도 자기가 쓴 기사가 온라인 신문에 실리는 것을 보고 어린애처럼 좋아하기도 했다”고 당시 기억을 떠올렸다. 두 사람은 또 “인턴 동기 중 한 명이 그린미디어 본사에서 근무했는데, 온라인 신문에 직접 기사를 올리는 기자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며 “그런데 우리가 직접 검색해본 결과 기사목록 10페이지에 보통 서로 다른 e메일 아이디와 이름을 가진 기자가 50명이 넘었다”고 말했다. 온라인 신문에 등장하는 기자 중 상당수는 ‘유령기자’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하지만 유령 아이디 역시 현재는 추적이 쉽지 않아 보인다.
<경향신문>이 두 사람의 얘기를 듣고 직접 그린미디어 온라인 신문 기사를 검색해 본 결과 지난 2월 이전에 작성된 기사 중 상당수는 기자 이름과 e메일 아이디가 지워져 있었다. 2월은 <경향신문>이 최초로 KTL 용역팀의 댓글부대 의혹을 제기하는 기사를 작성한 시점이다. 3월 이후 기사는 정상적으로 모든 기사에 기자의 이름과 e메일 아이디가 달려서 제공되고 있다.
그린미디어가 무슨 이유에서 <경향신문>이 최초 댓글부대 의혹을 제기한 지난 2월 이전 기사에서만 기자 이름과 아이디를 삭제했는지 의문이 증폭되는 대목이다. 물론 그린미디어는 원래 해당 기사들은 아이디가 없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우리가 아이디가 삭제된 전·후 기사를 캡처해서 가지고 있기 때문에 원래부터 아이디가 없었다고 발뺌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여러 가지 정황을 종합해보면 KTL 용역팀과 그린미디어가 댓글부대 의혹이 불거진 후 정체불명의 아이디가 외부에 노출되지 않도록 안간힘을 쓴 흔적은 역력하다. 하지만 이 모든 의문점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갈수록 의혹을 파헤치기 위한 증거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수사기관들은 노골적으로 진상규명 의지가 없음을 내비치고 있고, 이제 남은 것은 야당의 몫이다.
번번이 국정원을 둘러싼 의혹 규명에서 ‘닭 쫓던 개’ 신세가 됐던 야당의원들이 이번 국감에서 어떤 결과를 내놓을지 주목이 되고 있다.
한국산업기술시험원(KTL)의 글로벌정보 용역팀과 국정원 댓글부대의 관련성을 밝혀줄 증거들이 국감을 앞두고 사라지고 있다.
현재 의혹을 밝히기 위해 가장 시급한 과제는 댓글부대로 의심되는 KTL 용역팀이 사용하던 서버를 압수해 증거를 보전하는 것이다. 지난해 KTL 용역팀에서 5개월간 인턴사원으로 일하다 퇴사한 최모(34)·김모(35)씨는 “모든 작업은 짐스 프로그램으로 불린 서버를 사용했다”며“서버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수한 이름과 아이디들이 들어 있었다”고 말했다. 실제 최씨와 김씨가 퇴사 전 짐스 프로그램에서 캡처한 일부 화면에는 두 사람도 모르는 이름과 아이디로 올라간 콘텐츠들이 보였다. 대부분 구글 번역기를 이용한 조잡한 내용의 콘텐츠들이었다.
그렇다면 이 무수한 아이디의 정체는 뭘까.
설명 가능한 시나리오는 두 가지다. 먼저 KTL 용역팀 외에 별도로 짐스 프로그램 서버를 공유하는 제3의 조직이 있을 가능성이다. 실제로 KTL은 8월 31일 <주간경향>이 용역팀의 부실 콘텐츠 생산을 지적하자 “구글 번역기를 돌려 만든 콘텐츠는 용역팀과 무관하다”고 해명한 바 있다. 서버에 자신들 외에 다른 조직들에서 올린 콘텐츠가 있음을 사실상 시인한 것이다.
“서버에 많은 아이디 보관돼 있었다”
또 다른 시나리오는 누군가 다른 목적에 사용하기 위해 익명의 아이디와 이름을 조직적으로 관리해 왔을 가능성이다. 실제 최씨와 김씨에 따르면 짐스 프로그램에는 콘텐츠 생산과 무관하게 무수한 아이디와 이름을 저장해 놓은 공간이 따로 있었다. 두 사람은 “사용자 권한이 있어야만 접근 가능한 페이지에 들어가 본 적이 있는데, 거기에 엄청나게 많은 양의 이름과 아이디가 소속팀, 직책 등으로 구분돼 보관돼 있었다”고 말했다. 소속팀은 전략기획, 수집a, 수집b, 수집c, 분석, 마케팅팀 등으로 나누어져 있었고 조직1, 조직2 등의 명칭이 붙은 방들이 100여개 정도 존재했다. 최씨와 김씨에 따르면 용역팀 프로젝트 매니저인 국가정보전략연구소 소장 민모씨(46)는 전략기획팀 소속이었고, 두 사람은 수집a팀과 분석a팀으로 분류됐다.
하지만 이 무수한 아이디와 이름은 어느 특정인이 사용했다기보다 한 사람이 여러 개의 아이디를 돌려 쓰는 형태로 운영돼 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두 사람은 “민 소장이 우리들에게도 하나의 이름만 쓰지 말고 여러 개 다른 이름을 쓰라고 요구했다”고 말했다.
최씨와 김씨에 따르면 민 소장은 서버 구축작업이 마무리되면 외부인들의 출입을 엄격히 통제한 100평 규모의 ‘워룸’(War room)을 설치할 계획도 갖고 있었다. 워룸은 KTL 본관 건물 한 층을 통째로 사용하고, 설치 시기는 KTL 지방 이전에 맞춰졌다. <경향신문> 보도로 용역팀 계획은 무산이 됐지만 KTL은 당초 글로벌정보 사업을 발주하면서 워룸 설치에 대비해 4억여원의 예산을 따로 배정한 바 있다.
공공기관이 글로벌 기업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구축한 서버에 왜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수한 아이디와 이름이 보관돼 있고,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한 워룸을 설치하려 한 이유는 뭘까. 이 의문을 푸는 방법은 용역팀이 KTL 별관 사무실에서 작업해 지난 2월 납품한 서버를 압수해 전문가들이 분석작업을 진행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 사건을 건드렸던 검찰과 감사원, 국민권익위 모두 서버에 대해 단 한 번도 정밀분석을 진행한 적이 없다. 검찰과 감사원은 진정서 접수 후 아무런 조사도 진행하지 않았고, 지난 4월 KTL을 직접 방문조사한 국민권익위 파견 경찰관들은 2개월이나 뜸을 들인 끝에 서울경찰청에 사건을 이첩했다. 2개월이면 KTL과 용역팀 입장에서 얼마든지 서버에서 문제가 되는 흔적을 지우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야당 또 ‘닭쫓던 개’ 되나
국민권익위에서 사건을 이첩받은 서울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가 국감을 앞두고 최근 KTL에 수사협조 요청서를 보냈지만 이 역시 수상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미 KTL 내부직원들이 용역팀과 공모한 의혹이 드러난 마당에 압수수색도 아니고 ‘수사에 들어갈 테니 협조해달라’는 공문을 보낸 이유가 궁금하다. 게다가 국감을 한 달 앞둔 지난달 중순 KTL은 용역팀이 서버 구축작업을 진행하던 별관 사무실을 통째로 민간에 매각했다. 별관 사무실에서 용역팀이 작업할 때 사용하던 컴퓨터와 각종 집기, 문서들은 이미 말끔히 치워졌다. 시간이 갈수록 용역팀들의 수상한 꼬리를 잡을 수 있는 단서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서버에 남아 있는 정체불명의 아이디가 지워졌다 해도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KTL에서 용역을 수주한 그린미디어가 운영하는 온라인 신문의 기사 아이디와 이름을 추적하는 방법이 남아 있다. 최씨와 김씨는 “민 소장 팀원들이 그린미디어 온라인 신문에 자신들이 사용하는 가명과 e메일 아이디로 수시로 기사를 올렸다”며 “용역팀원들이 실명이 아닌데도 자기가 쓴 기사가 온라인 신문에 실리는 것을 보고 어린애처럼 좋아하기도 했다”고 당시 기억을 떠올렸다. 두 사람은 또 “인턴 동기 중 한 명이 그린미디어 본사에서 근무했는데, 온라인 신문에 직접 기사를 올리는 기자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며 “그런데 우리가 직접 검색해본 결과 기사목록 10페이지에 보통 서로 다른 e메일 아이디와 이름을 가진 기자가 50명이 넘었다”고 말했다. 온라인 신문에 등장하는 기자 중 상당수는 ‘유령기자’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하지만 유령 아이디 역시 현재는 추적이 쉽지 않아 보인다.
<경향신문>이 두 사람의 얘기를 듣고 직접 그린미디어 온라인 신문 기사를 검색해 본 결과 지난 2월 이전에 작성된 기사 중 상당수는 기자 이름과 e메일 아이디가 지워져 있었다. 2월은 <경향신문>이 최초로 KTL 용역팀의 댓글부대 의혹을 제기하는 기사를 작성한 시점이다. 3월 이후 기사는 정상적으로 모든 기사에 기자의 이름과 e메일 아이디가 달려서 제공되고 있다.
그린미디어가 무슨 이유에서 <경향신문>이 최초 댓글부대 의혹을 제기한 지난 2월 이전 기사에서만 기자 이름과 아이디를 삭제했는지 의문이 증폭되는 대목이다. 물론 그린미디어는 원래 해당 기사들은 아이디가 없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우리가 아이디가 삭제된 전·후 기사를 캡처해서 가지고 있기 때문에 원래부터 아이디가 없었다고 발뺌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여러 가지 정황을 종합해보면 KTL 용역팀과 그린미디어가 댓글부대 의혹이 불거진 후 정체불명의 아이디가 외부에 노출되지 않도록 안간힘을 쓴 흔적은 역력하다. 하지만 이 모든 의문점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갈수록 의혹을 파헤치기 위한 증거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수사기관들은 노골적으로 진상규명 의지가 없음을 내비치고 있고, 이제 남은 것은 야당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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