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29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실에서 제3차 대국민담화를 발표한 뒤 돌아서자 한 기자가 질문이 있다며 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은 권력투쟁에 능한 사람이다. 20대에 어머니를 대신해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할 때 아버지로부터 일종의 ‘제왕학’을 사사했다. 그래서인지 2004년 한나라당 대표 시절 당내 권력싸움을 능수능란하게 처리했다. 어떻게 그렇게 권력싸움에 잘 대처하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건 내가 좀 해봤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29일 3차 대국민 담화의 메시지는 두 가지다. 첫째, 자신은 단 한순간도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둘째, 대통령직 임기 단축을 포함한 진퇴 문제를 국회의 결정에 맡기겠다는 것이다.
첫번째 메시지는 지금까지 언론의 보도와 검찰의 수사 내용을 통째로 부인하는 강력한 저항이다. 1998년 정치를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자신이 사익을 챙기는 것을 본 일이 있느냐고 지지자들에게 되묻고 있는 것이다. 바닥으로 추락한 여론을 끌어올리기 위한 몸부림이다. 4% 남은 지지자들에게 거리의 논쟁에서 밀리지 않도록 마지막 무기를 손에 쥐여준 것이다.
두번째 메시지는 2일이나 9일로 임박한 국회의 탄핵소추 의결에 급제동을 걸기 위한 정치적 책략이다. 탄핵에 동참하는 새누리당 비박계 의원들을 흔들려는 것이다. 실제로 그동안 탄핵에 찬성했던 새누리당 비박계 의원들 가운데 일부는 동요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야당은 박근혜 대통령 담화를 ‘꼼수’라고 강하게 비판하며 본래 예정대로 탄핵을 밀어붙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표 계산을 다시 해야 하는 것 아닌지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새누리당 비박계 의원 40명 이상이 동참하지 않으면 탄핵소추 의결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공학적 계산이 무엇인지는 이날 담화 직후 열린 새누리당 의원총회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친박좌장’ 서청원 의원은 △‘정권 이양의 일정과 절차’ 여야 논의 △야권이 추천하는 거국내각 총리 국회가 결정 △야권의 개헌 주장 경청 등 세 가지를 주문했다.
하지만 야당은 지금 박근혜 대통령 퇴진 일정은 고사하고 총리 추천이나 개헌 논의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박근혜-최순실 사태를 야당이 이끌어온 것이 아니고 촛불집회를 주도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현 사태나 정치적 상황을 수습할 능력이 거의 없다.
박근혜 대통령과 서청원 의원은 야당의 이런 처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야당과 국회에 대통령직 임기 단축 일정을 만들어보라고 떠미는 것은 코앞에 닥친 탄핵을 좀 미루고 시간을 벌기 위한 얄팍한 술수라고 봐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특기는 그 나름의 진정성과 정치공학을 결합한 짤막한 메시지를 적절하게 구사하는 것이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피습 뒤 말했던 “대전은요”가 그런 사례다. 2007년 원포인트 개헌을 요구한 노무현 당시 대통령에게 던진 “참 나쁜 대통령”이라는 말도 그런 경우다. 이날 3차 담화에서도 박근혜 대통령 나름대로 그런 반전을 시도하려 한 것 같다.
하지만 자신이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나 국회가 임기 단축 일정을 마련해보라는 메시지는 과거와 같은 울림이 전혀 없고 비웃음을 사고 있다.
진정성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언론의 보도와 검찰의 수사로 드러난 자신의 범죄행위를 깡그리 부인하는 억지를 부리고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3차 담화는 1·2차와 마찬가지로 완전히 실패한 것 같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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