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남동생 박지만 EG 회장이 폭탄급 발언을 한 것으로 밝혀져 최순실 게이트의 전모가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채널A에 따르면 박지만 회장은 과거 정윤회 문건 유출 사건의 핵심 인물이었던 박관천 청와대 전 경정에게 "누나가 최순실과 정윤회 이야기만 나오면 최면이 걸린다"고 토로했다.
박관천 전 경정은 또한 "박지만 회장이 가장 싫어하는 사람은 최순실 씨와 정윤회 씨"라며 "박지만 회장이 요즘 많이 외로워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2014년 12월 16일 박지만 EG 회장이 '청와대 문건 유출'과 관련해 참고인 자격으로 검찰에 출석해 조사를 마친고 서울 서초동 중앙지방검찰청을 나서고 있다. |
박지만 회장은 2014년에도 고위 관계자를 통해 "피보다 진한 물도 있더라"는 말로 최순실 씨의 비선실세 의혹을 암시한 바 있다.
박지만 회장은 이번 사태와 관련해서도 측근을 통해 "참담하다"며 최순실 게이트에 대해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은 것으로 전해진다.
박지만 회장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제발 문고리 애들 정리하라고 거리 두라는 말도 했었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 게이트를 정리하지 않으면 큰 화를 불러올 것이라 경고하기까지 한 것으로 나타났다.
박근혜 대통령과 최태민 씨가 가까워지게 된 것은 1974년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 이후부터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당시만 해도 최태민 씨가 장녀 박근혜에게 깊숙하게 접근할지는 몰랐던 것으로 파악된다.
최태민 씨는 자신이 육영수 여사 영혼에 빙의됐다는 등 육영수 여사가 꿈에 나타나 장녀 박근혜를 도와주라고 지시했다는 주장을 폈다. 이후 박근혜 대통령은 최태민 씨에게 강한 믿음을 보이며 최태민 씨가 설립한 '구국여성봉사단'에서 명예총재를 맡기까지 한다.
그러나 최태민 씨가 박근혜 대통령 이름을 빌미로 기업들에게 돈을 요구하고 정부 각 부처마다 영향력을 행사하려 든다는 진정이 잇따르자 박정희 전 대통령은 직접 나서 최태민 씨 제거에 직접 나선다. 중앙정보부로부터 최태민 씨의 얘기를 전해 들은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7년 9월 최태민 씨 심문에 들어갔다.
박정희 전 대통령 공보비서관이었던 선우련 씨의 비망록에 따르면 박정희 전 대통령은 "최태민을 거세하고 박근혜와 청와대 주변에는 얼씬도 못하게 하라. 구국봉사단 관련 단체는 모두 해체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최태민 씨의 파국으로 가는 분위기였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그의 방패막을 자처했고 아버지를 설득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10.26 사태로 피살당하자 둘의 사이는 더욱 가까워졌다는 전언이다. 1984년 성북동 자택을 팔고 삼성동 최태민 씨 집 근처로 이사를 감행한 것도 이러한 정황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항간에는 최태민 씨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자신의 딸 최순실 씨를 소개시켜주면서 최순실 씨가 육영수 여사의 영혼과 영접능력을 갖췄고 예지력을 물려받았다는 식으로 박근혜 대통령을 속였다는 주장도 나온다.
박지만 회장은 박근령 씨와 함께 지난 1990년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탄원서를 보내기도 했다. 탄원서는 박근혜 대통령이 최태민 씨에게 속고 있으니 구해달라는 내용이었다.
당시 탄원서에는 "최태민은 순수한 저희 언니에게 교묘히 접근해 언니를 격리시키고 고립시킨다"며 "이번 기회에 언니가 구출되지 못하면 언니와 저희들은 영원히 최태민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의 장난에 희생되고 말 것"이라고 썼다.
이어 "저희들에게는 힘이 없으니 힘과 용기를 줄 수 있는 분은 오직 각하 내외분 뿐"이라고 호소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탄원서를 받은 후 최태민 씨 일가의 가계도를 조사하는 등 요주의 인물로 관리해왔다. 국가정보원 전신인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가 최태민 씨를 집중 관리했다.
박지만 회장은 1990년 한 잡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큰누나와 최태민의 관계를 그냥 두는 것은 큰누나를 욕먹게 하고 부모님께도 누를 끼치게 되는 것 같아 떼어놓으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박지만 회장은 1958년생으로 1977년 서울 중앙고등학교 졸업, 1981년 육군사관학교 제37기로 졸업했다. 이후 방공포병과 소위로 임관했으며, 재직 중 교통사고를 당해 의무복무만 마치고 1986년 육군 대위로 예편했다.
박지만 회장은 고등학교 1학년에 모친 육영수 여사, 육사 생도시절 3년 차에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피격 사건의 아픔을 겪었다. 이후 육영재단 이사를 지냈으며 1991년 삼양산업을 인수해 기업가로 변신했다.
1989년부터 2002년까지 마약 투약 혐의로 여러 차례 구속된 전력도 있다. 삼양산업은 2000년 코스닥에 상장하며 상호를 EG로 변경했다.
박지만 회장은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대통령 후보를 지지해 아버지와의 악연을 털어내려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박지만 회장은 2004년 16세 연하인 변호사 서향희와 결혼해 2005년 장남 세현을 얻었다. 이후 2014년 둘째 아들을 얻었고 2015년 초에는 쌍둥이 아들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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